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 말 명당 김극뉴 묘 이야기

목마른 말이 물 찾는 터에 무덤…광산김씨 명문가 번성

글/장천규(풍수지리가) | 기사입력 2019/12/06 [10:42]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 말 명당 김극뉴 묘 이야기

목마른 말이 물 찾는 터에 무덤…광산김씨 명문가 번성

글/장천규(풍수지리가) | 입력 : 2019/12/06 [10:42]

박 감찰 3형제 ‘명당 실력 테스트’ 과정에서 천하 말 명당 발견
목마른 말이 물 찾는 갈마음수형, 말이 하늘 오르는 천마등공형

 

아들 없어 말머리에 본인·딸·사위, 말고삐에 김극뉴 후손 무덤 조성
김극뉴 후손 중 문묘 배향 2명이나…문과 급제자 200명 이상 배출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김극뉴 묘가 있다. 조선의 8대 명당으로 알려진 이 묘는 김극뉴가 묘를 쓰고 광산김씨가 조선의 명문가로 발돋움한 계기가 된 곳이다.


묘를 중심으로 현무봉이 말안장으로 보이며 형국론으로 김극뉴의 묘를 목이 마른 말이 물을 찾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이라고도 하고, 말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천마등공형(天馬騰空形)이라고도 한다. 말머리에는 박 감찰과 그의 딸인 박씨부인의 묘가 차례로 있으며 맨 아래에 사위 김극뉴의 묘가 있다. 또 말고삐에 해당하는 곳에는 김극뉴 자손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있는 김극뉴의 묘. 조선의 8대 명당으로 알려진 이 묘는 광산김씨가 조선의 명문가로 발돋움한 계기가 됐다.    

 

순창 마흘리의 말 명당


이곳에는 말 명당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제부터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풍수에 능통한 도사 박씨 3형제가 살았다. 하루는 3형제가 모여 서로의 풍수 실력을 가늠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며 시합을 하기로 했다.


“아우님들, 우리가 풍수지리를 공부한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 우리 형제의 실력을 시험해 보자!”


“예 형님! 그럼, 어떤 방법으로 실력을 검증하죠?”


“우리 삼 형제가 3년 동안 우리가 묻힐 명당 자리를 찾자. 그리고 누구의 것이 대명당인지 비교해 보자.”


“형님! 좋은 생각입니다. 빨리 시작하지요.”


3형제는 3년 동안 전국을 돌면서 명당을 찾아 나섰다. 3년이 지난 후 만난 박씨 3형제는 서로가 찾은 명당 자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우님들 명당터를 찾았는가?”


둘째가 말하였다.


“예! 형님 임실 갈담에서 잉어 명당을 찾았습니다.”


“고생했네, 막내는 어디를 찾았는가?”


“예! 큰형님, 임실 가실마을에 금계포란형을 찾았습니다.”


3형제는 잉어명당과 금계포란형 명당을 살펴보았다. 두 군데 모두 큰 명당이었다.


“자네들 수고했네! 풍수 실력이 대단하구만.”


“그런데 큰형님은 어떤 명당을 찾으셨습니까?”


막내가 물었다.

박 감찰은 말문을 열었다.


“순창 마흘리에서 말 명당을 찾았네.”


“형님이 찾은 자리로 가보시죠.”


3형제는 순창의 말 명당 자리를 살펴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윽고 형제들이 마흘리에 도착했다.


“형님, 저 말안장처럼 생긴 봉우리 아래에 말 명당이 있습니까?”


“그렇네!”


“빨리 가보시죠. 보고 싶습니다.”


3형제는 말 명당 터에 올라 감탄을 했다.


“큰형님의 풍수지리 실력이 최고입니다. 이런 대명당을 찾으시다니 놀랍습니다.”


3형제는 서로 기뻐하며 형제 모두 풍수 실력이 도사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박 감찰, 딸, 사위 순으로 무덤


시간이 흐르고 박 감찰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다. 박 감찰은 저 명당 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저 말 명당 자리를 내 딸과 사위의 가족에게 주어야겠다. 그래서 내 사위의 후손이 번창하도록 해야겠다.’


박 감찰은 어느 날 사위 김극뉴와 딸을 불렀다.


“내가 죽거든 말 명당의 맨 윗자리에 나를 묻어라. 그리고 차례대로 무덤을 써라.”


박 감찰은 김극뉴와 딸에게 당부했다.
박 감찰이 죽고 난 뒤 김극뉴와 딸은 말 명당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김극뉴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 박 감찰의 무덤 아래에 박씨 부인의 묘를 조성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김극뉴도 세상을 떠났다. 후손들은 김극뉴를 부인 묘소 앞에 모셨다. 박 감찰과 딸과 사위의 무덤을 말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에 조성하게 된 것이다. 김극뉴의 후손들은 말고삐에 해당하는 자리에 묘를 조성했다.


김극뉴의 후손들은 날로 번성하여 고손에 이르러 동방 18현의 한 분인 사계(沙溪) 김장생 선생이 나왔으며 그 아들 김집 또한 동방 18현이다.


동방 18현은 신라·고려·조선 시대에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문묘(文廟, 공자를 모신 사당)에 종사된 유학자다.


문묘에 종사된 동방 18현은  동배향: 설총, 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서배향: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 등이다.

 

박 감찰 판단 참으로 절묘


옛말에 “정승 10명이 대제학 1명에 미치지 못하고, 대제학 10명이 문묘종사 현인 1명에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문묘 종사 현인은 신라·고려·조선 시대 때 국가에서 인정하는 정신적 지주인 학자들이다.


이렇게 김극뉴의 후손 중 문묘에 배향된 후손이 2명이나 나왔으며 문과 급제자가 200명이 넘으며 정승·대제학·왕비·공신 등 수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박 감찰은 자신의 풍수 실력으로 말 명당을 찾았으며 그곳에 자신과 딸, 사위가 묻히게 함으로써 광산김씨가 조선의 명문가로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박 감찰의 판단은 참으로 절묘했다.


박 감찰은 아들이 없었지만 자신의 딸 또한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인 것을 깨닫고 사위의 가문이 번성하게 한 것이다. 김극뉴의 후손이 발복을 하면 할수록 박감찰의 뜻은 더욱 더 이어질 것이며 김극뉴의 후손이 박 감찰의 후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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