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느끼고 머무는 여행

애기단풍 붉고 쪽동백 노랗게 물드는 시월, 빈 마음으로 오시라!

정리/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21/10/15 [12:38]

책과 함께 느끼고 머무는 여행

애기단풍 붉고 쪽동백 노랗게 물드는 시월, 빈 마음으로 오시라!

정리/김수정 기자 | 입력 : 2021/10/15 [12:38]

춥지도 덥지도 않아 딱 좋은 계절, 가을이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지만 한낮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로도 불린다. 일 년 내내 책을 멀리하던 사람도 가을이면 쫓기듯 책을 찾게 된다. 왠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책을 손에 잡았지만, 너도나도 놀러가기 바쁜 계절에 책만 읽고 있긴 억울한가? 그렇대도 걱정 붙들어 매시라! 한국관광공사에서는 가을에 가볼 만한 곳으로 독서와 여행과 사색을 함께하는 여행지를 권하고 있으니까.

 

독서광으로 유명한 중국 작가 잔홍즈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 했다. 여행과 독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이야기. 전북 완주 삼례읍과 강원도 정선의 작은 책방은 책이 진정한 휴식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공간이다. 책과 함께 걷고, 느끼고, 둘러보고, 머무는 여행법을 소개한다. 

 


 

삼례책마을 서가 살피다 옛 추억 떠오르는 책 우연히 발견하는 행운

투명한 가을 햇살을 등잔 삼아 책 읽는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행복!

 

정선 숲속책방 마당 평화롭고…꽃이 피고, 고추 익어가고, 그 옆엔 정자

방문객은 앉거나 누워 책을 읽고…계곡물 소리, 풀벌레 소리 어우러지고

 

1. 전북 완주 삼례책마을

 

책이 있는 풍경은 여유롭다. 이는 ‘책’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풍요로움 때문일 터다.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녘을 바라볼 때와 비슷한 넉넉함. 그래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먹거리 풍성한 가을날 배만 불리지 말고 책 한 권 읽으며 마음도 든든히 채우라는 의미에서.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까.

 

파란 하늘과 상큼한 바람이 여행자를 유혹하는 요즘, 가방에 책 한 권 챙겨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면 전북 완주군 삼례읍으로 가자. 책을 스마트폰으로 읽고 음악처럼 듣는 시절이지만, 삼례는 종이 책의 감성에 흠뻑 젖기 좋은 곳이다. 사람의 온기가 짙게 배어서 테두리마저 누렇게 바랜 헌책의 감성을 온몸으로 느끼니 이보다 매력적일 수 없다.

 

▲ 2013년에 문을 연 삼례책마을.  

 

삼례책마을은 지난 2013년 6월에 문을 열었다. 낡은 양곡 창고를 개조해 북하우스와 북갤러리, 책박물관 등으로 꾸몄다. 고서점과 헌책방, 카페로 구성된 북하우스가 중심 공간으로, 10만 권이 넘는 고서와 헌책이 있다. 절판된 소설이나 수필집은 기본이고 1960년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1950년대 어린이 잡지 <새벗>에서 발행한 엽서 같은 희귀 자료도 보인다.

 

헌책방 한쪽 벽에 ‘남은 쌀을 팔읍시다’라는 글귀가 큼직하게 들어간 군정청 포스터와 일제강점기에 제작한 최승희 공연 포스터도 흥미롭다. 최승희 공연 포스터는 하단 일부를 여백으로 남겨 공연 장소와 시간이 바뀔 때마다 적을 수 있도록 제작했다.

 

서가를 찬찬히 살피다 보면 옛 추억이 떠오르는 책을 우연히 발견하는 행운도 찾아온다. 어릴 적 어머니가 읽어주신 동화책이나 첫사랑에게 선물한 시집 같은 것. 하지만 지금껏 까맣게 잊고 지낸 것…. 혹시 그런 책을 만나면 주저 없이 구입하시길. 삼례책마을은 그런 곳이니까.

 

싼값에 혹은 아련한 추억에 이끌려 서너 권 샀다면 헌책방 옆 책마을카페에 앉아 향 좋은 커피 한 잔 마시며 느긋하게 읽어보자. 실내가 답답하면 북하우스 앞 잔디밭 벤치나 어디든 상관없다. 푹신한 잔디밭에 앉아 투명한 가을 햇살을 등잔 삼아 책 읽는 시간이 상상 이상으로 행복하다.

 

▲ 북하우스에는 10만 권이 넘는 고서와 헌책이 있다.  

 

책박물관에서 열리는 ‘문자의 바다―파피루스부터 타자기까지…’ 전시도 놓치기 아깝다. 기원전 3세기 콥트어가 적힌 파피루스 조각과 물소 뼈에 새긴 바탁족의 문자 같은 진귀한 유물 186종 2775점을 연말까지 선보인다. 기원전 16세기 이전에 제작된 인디언 스톤에는 버펄로를 사냥하는 인디언 모습이 그림문자로 선명하게 새겨졌다. 삼례책마을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명절 연휴 휴관), 입장료는 없다. 책박물관 전시는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지난 봄에 개관한 그림책미술관은 삼례책마을의 새 식구다. 북하우스에서 200미터 남짓 떨어진 이곳도 다른 건물처럼 옛 양곡 창고를 개조했다. 삼례책마을의 맏형 격인 북하우스가 책의 가치를 발견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라면, 그림책미술관은 책 자체다. 작가의 친필 원고와 원화를 전시하고, 작품 속 등장인물을 조형 작품으로 형상화해 책을 읽듯이 돌아볼 수 있게 꾸몄다.

 

▲ 지난 봄에 개관한 그림책미술관은 삼례책마을의 새 식구다.  

 

그림책미술관에서는 현재 영국 동화 작가 G. 그레이브스의 미출판 원고를 바탕으로 한 개관 기념 전시 〈요정과 마법의 숲(Nursery Versere)〉이 열린다. 1940년경 완성했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출판하지 못한 비운의 작품으로, 작가의 친필 원고와 삽화가 나오미 헤더의 원화 외에도 버섯 모양 집, 하늘을 나는 요정, 무당벌레 아줌마 등을 조형 작품으로 되살려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요정과 마법의 숲’ 삽화를 벽화로 재현한 공간도 인상적이다. 그림책미술관에서는 세계 최초로 <요정과 마법의 숲>을 출간·판매한다.

 

그림책미술관 2층에는 빅토리아시대 그림책 3대 거장인 케이트 그린어웨이, 랜돌프 칼데콧, 월터 크레인의 작품과 원화, 친필 편지 등을 소개한 상설 전시 공간이 있다. 19세기 후반, 당대 최고 인쇄업자이자 편집자 에드먼드 에반스는 그림책의 가능성을 간파했다. 그는 세 작가와 손잡고 다채로운 색상의 그림책을 펴내며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그림책미술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명절 연휴 휴관), 관람료는 없다.

 

▲ 헌책방에서 책을 읽는 여행자. 

 

삼례책마을에서 차를 몰고 대아저수지 방면으로 40분쯤 달리면 거대한 물줄기가 시원한 위봉폭포와 만난다. 위봉폭포는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권삼득 선생이 수련한 장소로 유명하다. 위봉터널 지나 전망대에 오르면 높이 60미터에서 2단으로 쏟아지는 위봉폭포의 장엄한 모습이 두 눈에 온전히 담긴다. 전망대 인근 나무 계단으로 폭포 하단까지 내려갈 수 있지만, 그곳에선 전경이 보이지 않는다. 완주 위봉폭포 일원은 문화 경관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6월 명승으로 지정됐다.

 

완주 위봉산성(사적)은 1675년(숙종 1) 전라감사 겸 부윤 권대재가 유사시 전주 경기전(사적)에 모신 조선태조어진(국보)을 옮겨 올 목적으로 축성했다. 실제로 동학농민운동 때 전주부성이 함락되자, 태조어진과 시조의 위패를 가져왔다. 위봉산성은 둘레 약 8539미터에 높이 1.8~2.6미터다. 일부 성벽을 제외한 성벽과 성문, 포루, 여장, 총안, 암문 등이 잘 보조돼 조선 후기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완주군은 위봉폭포와 위봉산성, 위봉사를 묶어 완주9경 가운데 6경으로 꼽는다.

 

송광사는 종남산 아래 평지에 자리한 사찰이다.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승보사찰인 순천 송광사와 이름이 한자까지 같다. 송광사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은 종루(보물)다. 조선 시대 유일한 십자형 2층 누각으로 가치가 높다. 송광사에는 종루 외에도 대웅전, 소조사천왕상, 소조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등 문화재가 많다. 봄이면 송광사에 이르는 벚꽃 길이 장관이다.

 

<글·사진/정철훈(여행작가)>

 

2. 강원도 정선 숲속책방

 

강원도 정선 오지 계곡에 책방이 있다. 덕산기계곡 상류에 중년 부부 작가가 운영하는 ‘숲속책방’이다. 책방 가는 길은 녹록지 않다. 마른 계곡을 굽이굽이 지나 비포장 자갈길도 건너야 한다. 그나마 큰비가 쏟아져 물이 늘면 책방은 적막한 산골 숲속에 갇힌다. 인적 드문 계곡 깊숙한 곳, 숲속책방이 들어선 이유이자 존재하는 의미다.

 

▲ 덕산기계곡 인적 드문 곳에 들어앉은 숲속책방.  

 

숲속책방은 2017년에 문을 열었다. 소설가 강기희씨와 동화 작가 유진아씨 부부가 책방지기다. 강씨는 이곳 출신으로 선대부터 살아온 땅에 책방을 꾸렸다. 본채는 디딜방앗간이 있던 자리다. 화전을 일구던 예전 주민들이 옥수수를 찧어 강냉이밥을 먹곤 했다. 강씨는 어린 시절 방앗간과 문지방고개 너머 까마득하던 정선읍 가는 길의 추억이 있다.

 

숲속책방은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책방 입구와 담벼락에 ‘나와 나타샤와 책 읽는 고양이’라는 간판이 있다. 나타샤는 강씨의 부인, 고양이는 부부가 키우는 반려묘 두 마리를 뜻한다. 책방 부제는 동경하는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따왔다.

 

▲ 빛바랜 책 1만여 권이 빼곡한 책방 내부.  

 

서가에는 빛바랜 책 1만여 권이 빼곡하다. 부부가 소장한 책에 신간을 모아 소설부터 인문학, 동화, 만화까지 다양하다. 책방지기가 쓴 책도 진열대 가운데 있다. 강씨는 장편소설 <이번 청춘은 망했다> <연산의 아들, 이황> 등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 유씨는 동화 <토리 이야기>를 썼다. 책을 구입하면 저자인 주인장의 친필 사인을 받을 수 있다. 덕산기계곡에 들어올 때 책만 트럭 5대 분량이었다. 동네 청년들이 트럭을 운전해 도왔다. “이제 옮겨 온 책을 다시 빼내는 일은 힘들 것 같다”는 게 부인 유씨의 생각이다.

 

책방은 평화로운 마당을 품었다. 꽃이 피고, 고추가 익어가고, 조각상과 의풍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곳곳에 나무 탁자와 의자도 놓았다. 숲속책방에 방문한 사람은 원하는 곳에 앉거나 누워 책을 읽는다. 계곡물 소리와 풀벌레 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지고, 책방의 반려견 ‘동이’가 가끔 “컹컹” 짖는다.

 

▲ 책방에 있는 찻집 창가 풍경.  

 

책방에는 옛 창호가 남은 작업실, 살림집과 함께 찻집이 딸려 있다. 찻집에서 미숫가루, 오미자차 등을 낸다. 책을 구입한 손님들은 차 한 잔이 무료다. 차만 따로 판매하진 않는다. 9월 말이 되면 난로를 피울 정도로 기온이 떨어진다. 손님들은 마당에서 훈훈한 찻집으로 들어와 책을 읽는다. 음악이 흐르고, 자그마한 창과 고양이 조형물이 여백을 채운다.

 

책을 읽다가 계곡 트레킹에 나서기도 한다. 덕산기계곡은 총 길이 12km가량으로, 고양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층층 바위를 이루며 협곡 따라 이어진다. 가물 때는 대부분 바닥을 허옇게 드러내다가 큰비가 오면 금세 물이 불어나 옥빛이 된다. 계곡 길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처럼 흥미로운 글귀를 적은 이정표가 무료함을 달랜다. 나무 팻말은 책방지기가 만든 것이다. 연극인이 운영하는 민박, 사과 농원 등 이웃집도 있다.

 

▲ 숲이 보이는 책방.  

 

도깨비소, 말소 등 계곡의 명소가 책방 가까이 위치한다. 가물어도 책방 앞에는 얕은 물이 흐른다. 책방에서 계곡 초입 덕산1교까지 도보로 넉넉히 1시간 30분쯤 걸린다. 덕산기계곡은 상류인 화암면 북동리로 이어진다. 계곡을 즐기는 사람들은 길이 거친 북동리까지 트레킹에 나서기도 한다. 비포장 자갈길은 차체가 낮은 일반 승용차는 진입하기 어렵다. 자갈길에 들어서기 전에 주차하고 책방까지 걸어야 한다.

 

덕산기계곡 일대는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며 한때 유명세를 치렀다. 계곡은 2022년까지 자연 휴식년으로, 7~8월에 차량 출입을 제한한다. 계곡에서 트레킹이나 가벼운 물놀이 등은 가능하지만, 야영과 취사는 금지된다. 숲속책방 주인은 오히려 인적이 뜸해 책 읽기 좋아졌다며 웃는다.

 

가을이 오면 계곡은 고요한 평화를 되찾는다. 숲속책방 입구에 강기희 씨가 이곳의 사계를 담은 시 〈덕산기에 오시려거든〉이 걸려 있다. “물매화가 꽃대를 밀어 올리기 시작할 무렵/빈 마음으로 오시라 (…) 애기단풍 붉고 쪽동백 노랗게 물드는 시월/마음 또한 노랗고 붉어지러 오시라.” 

 

덕산기계곡은 가을에 물매화 꽃이 핀다. 9월 말부터 단풍도 물들기 시작한다. 숲속책방은 해가 뜨고 지는 시각에 맞춰 문을 열고 닫는다(연중무휴).

 

정선의 계곡은 곳곳에서 길과 절경이 어우러진다. 단풍이 유명한 소금강계곡에는 화암8경 가운데 7경으로 꼽히는 몰운대가 벼랑과 계곡, 시구를 간직한 채 들어섰다. 숲길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시비와 너른 바위, 고사목이 있고, 그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수백 년 세월을 지나온 고사목 옆에 화암면 주민들이 심은 후계목 아기 소나무가 있다. 몰운대에는 ‘구름도 절경에 반해 쉬어 가다’라는 뜻이 있다. 황동규를 비롯한 시인들이 절벽과 계곡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몰운대 벼랑 아래로 조양강의 지류인 어천이 흐른다. 계곡과 지방도424호선 따라 한적한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다.

 

도로로 연결되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1330미터)는 가을까지 야생화 세상이다. 만항재 일대는 국내 손꼽히는 야생화 군락지 중 한 곳으로, 정상 쉼터 주변에 ‘하늘숲정원’ ‘산상의화원’ ‘바람길정원’ 등 소공원이 조성됐다. 높은 산을 힘겹게 오르지 않고도 귀한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산상의화원 산책로는 꼭 걸어볼 만하다. 정선과 태백, 영월을 잇는 만항재는 함백산 턱밑에 자리한다. 봄부터 야생화 300여 종이 피고, 가을에는 투구꽃과 벌개미취 등 40여 종이 흐드러진다. 소공원에서 해설사가 꽃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고, 인근 두문동재까지 야생화 트레킹에 나설 수 있다.

 

만항재에서 이어지는 고한읍은 옛 탄광 마을이 정감 넘치는 호텔 골목으로 변신해 눈길을 끈다. 고한우체국 인근의 마을호텔18번가는 ‘골목에 누워 있는 호텔’을 표방한다. 고한18리 주민들이 골목 상점을 모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호텔이다. 민박은 객실로 탈바꿈했고, 마을회관은 연회장, 기획사는 비즈니스센터로 쓰인다.

 

공예 카페에서 조식을 제공하고, 사진관과 중국집, 연탄 구이 고깃집, 세탁소 등 10여 개 상점이 투숙객에게 이용료를 할인해주며 부대시설로 함께 한다. 집마다 담벼락에 화분을 놓아 정원처럼 단장한 골목은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다.

 

<글·사진/서영진(여행작가)>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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