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현대가 만난 사람] 박흥식 부패추방실천시민회 대표

“힘없고 빽없는 사람, 당당한 사회 만들 것”

범찬희 기자 | 기사입력 2016/04/09 [15:45]

국가의 녹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가운데 “일 안 하는 공직자를 발본색원하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며 나선 이가 있다. 바로 박흥식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대표. 한때 잘나가던 중소기업 대표에서 금융기관의 잘못으로 채무자로 전락한 박 대표는 “나처럼 힘없고 빽 없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나와선 안 된다”는 일념하에 사회운동에 몸담고 있다. 열악한 재정 상황에서도 자신의 명예회복과 보다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매진하고 있는 박 대표의 얘기를 <주간현대>가 들어봤다.


 

 중소기업 대표에서 부정부패 척결운동 20년

국선변호사 7명 대동, 검찰과 싸워 이긴적도

“공직자 바로서 나처럼 억울한 사람 없어야

 

[주간현대=범찬희 기자] 전도 유망한 젊은 중소기업 대표에서 현재 10억대 채무자인 박흥식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대표는 금융감독기관의 잘못으로 한순간에 인생이 바뀌게 됐다는 박 대표는 25년 가까이 ‘제2, 제3의 박흥식이 나와서는 안 된다“며 공직사회 정화에 앞장서고 있는 시민운동가다.

 

▲  봄 기운이 완연한 지난 4월5일  충정로의 한 카페에서 박흥식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대표를 만났다.  © 주간현대

 

-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이하 부추실)란 어떤 곳인가?

▲1999년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다. 단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근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공직자의 직무유기 등으로 억울한 사건을 당한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인권과 청원권 회복도 중점 사업이다.

    

- 시민운동에 뛰어는 계기는?

▲많은 시민운동가가 그렇듯 나 역시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됐다. 나는 기술고시 출신의 보일러업체(만능기계) 대표였다. 보일러와 관련된 특허 6개 및 신기술 고시등록으로 1990년 25회 발명의 날에서 표창을 받기도 했다. 중소기업구조조정기금으로 경북 상주군 공성농공 단지에 대규모 보일러 공장을 신축하던중에 문제가 터졌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던 1991년 2월제일은행 상주지점에서 커미션 거부에 대한 보복으로 약속어음 2300만원짜리의 지급을 거절당해 부도가 난거다. 하루아침에 공장경매로 1억95백만 원의 채무자 신세가 됐고, 이 문제를 금융감독원에 제기했으나 꺽기 당한 저축예금을 조건부 예금이라고 기각당했다. 이때부터 이 길로 접어들었다.

    

- 당시 상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 경실련이다. 여기에서 ‘만능기계 부도처리를 둘러싼 금융분쟁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1994년 재무부에 제출했다. 당시 이 문제는 ‘KBS 9시 뉴스’와 ‘중앙일보’ 등에 보도됐고 재무부에서 구제 조치 지시를 내렸으나, 금융감독원은 증거 부족으로 각하했다.

 

이후 제일은행이 제기한 대여금청구의 소에 대해 부당이득금반환으로 반소를 제기하여 3년여 만에 대법원에서 승소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원에서 제일은행과 기술신보에 대해 원상회복하라는 시정조치 및 담당자를 고발하지 않아 마지막 방법으로 찾아간 곳이 국회다.

 

제17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금융감독원과 은행에 청원인과 합의를 보라고 의결해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합의금을 놓고 입장이 크게 엇갈렸다. 금융감독원과 제일은행은 7000만원 이상은 합의할 수 없다고 나왔는데, 나 역시 이때 이미 빚만 10억이 넘었기에 그 금액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에 국회에 금액을 정해 달라고 진정을 넣었지만 처리되지 않았다. 또 제18대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합의금 2억2000만원을 논의하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다시 제19대국회에 청원을 접수하여 그 간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해 국가가 보상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도 정무위원회는 청원심사소위를 개의하여 의결하지 않고 연장만 할 뿐이었다. 청원제도란게 현실과 동떨어진 유명무실한 것임을 깨닫고 국회의원 57명을 사기정치로 고발하게 되었다.

    

- 소위 힘있는 기관이 본인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자 직접 뛰어든 것인가?

▲그렇다. 1993년부터 경실련에 들어가 부패감시단 총무로 일했다. 이후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에서 상담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1999년 부추위를 설립해 나 자신의 명예회복은 물론 부패척결에 앞장서게 됐다.

    

- 부추위가 설립된 지 17년 됐다. 그간의 주요 성과에는 어떤 게 있나?

▲신문고 행사, 법정모니터 운동, 부정비리 고발 접수 및 상담 등을 꾸준히 해왔으나 부추실이 설립된 1999년 군납비리를 폭로했다. 참여연대에서 검토 중이던 이 사안은 도중에 중단되면서 부추실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게 됐다. 핵심 내용은 K-1 전차의 주요 부품을 미국에서 들여오면서 국방부 인사들이 가격을 뻥튀기한 것이다. 당시 부추실의 폭로는 2001년 국방부 장관이 교체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4년 회원 중 한 명이 법조인 87명을 집단 고발해 검찰로부터 무고죄로 기소를 당한 일이 있었다. 이때 실형 위기에 처한 회원을 국선변호사 7명을 대동해 항소심에서 무죄선고를 받게 했다.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보상 청구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생각이다.

    

- 시민단체 대표로서 조직을 운영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 문제다. 공익 점수 미달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순전히 회비에만 의존하고 있는데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조직을 확장해 좀 더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힘에 부친다.

    

- 정치성향이나 지지정당이 있나?

▲딱히 없다. 고향도 서울 출생이다. 나는 순전히 나 자신의 신념에 의해 움직인다. 다만 현재 여당의 이모 의원에 대한 낙선 운동을 펼치려 했으나 중단한 상태다.

    

- 그분을 낙선 대상으로 생각했던 이유는?

▲의뢰인 중 한 명이 이모 의원으로 인해 큰 피해를 봤다. 과거 이모 의원이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변호사비 2300만원을 받고도 의뢰인의 사건을 제대로 맡지 않아 건물 10억짜리를 통째로 날린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재정이 충분히 마련되면 ‘부패방지재단’을 설립하고자 한다. 이 재단을 UN NGO로 등록, 국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으로 키워 일 안 하는 권력층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할 것이다. 나처럼 힘없고 빽없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국민들이 없도록 대한민국을 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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