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로 그리는 추상화가 허미자, ‘오늘도 그리는’ 이야기

고요한 화면 위에 ‘먹물 드로잉’…자유로운 기운이 피어올랐다!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22/09/23 [15:23]

‘먹’으로 그리는 추상화가 허미자, ‘오늘도 그리는’ 이야기

고요한 화면 위에 ‘먹물 드로잉’…자유로운 기운이 피어올랐다!

김혜연 기자 | 입력 : 2022/09/23 [15:23]

#1987년 처음으로 연 개인전에선 무수한 색깔의 선이 갈등하듯 어지럽게 이어졌다 끊기는 그림을 선보였다. 인간세계의 혼란과 무질서를 뚫고 새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것.

 

#34년이 흐른 후 열린 2021년 개인전에선 흰색 물감으로 여러 겹 붓칠을 한 화면 위에 먹으로 ‘드로잉’을 올렸다. 그 화면은 서예가가 커다란 붓에 먹을 듬뿍 찍어 한지에 일필휘지로 글씨를 써 내려간 느낌이다. 먹물감은 말갛고 고요한데, 먹으로 그려낸 형상들은 거침없고 대범하다. 단조로운 흑백 화면은 동양화를 보는 것 같고, 강렬한 붓놀림은 참으로 서양화답다.

 

성신여자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후 ‘회화’를 화두로 잡고 35년을 화업(畵業)에 바친 서양화가 허미자의 그림 이야기다. 그의 그림에서 ‘만만찮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수십 년 세월 때문인가, 치열한 내공 때문인가?

 


 

유화·아크릴 물감 대신 먹물 활용…화면은 동양화 보는 듯, 붓놀림은 강렬한 서양화

수많은 시도 끝에 ‘먹물’ 만나 독특한 세계…먹은 말갛고 고요한데, 그 형상은 대범

 

“검정을 주춧돌 삼은 화면 위에 먹으로 드로잉 올리면서 내 그림 달라지고 재밌어졌다”

“갑갑한 누군가의 숨통 뻥 뚫는 울림 주고파”…35년째 오늘도 거침없고 대담하게 붓질

 

화가 허미자의 ‘인생유전’을 들으려고 9월14일 그의 파주 작업실을 찾았다. 화가는 경기도 파주시 출판단지 내 한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화실에서 분주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주홍빛 캔버스에 먹으로 분방하게 붓질을 한 그림이, 미완성인 채로 여럿 널려 있었다. 작업대에 놓인 동그란 캔버스에서도 먹으로 그려낸 형상이 춤을 추듯 일렁거리고 있었다. 작업실에는 벽시계를 닮은 ‘원’ 형태의 그림에서 200호짜리 액자까지 ‘작품’들이 그득그득했다. 30평 작업실 4면에 쟁여놓은 그림은 어림잡아 1000점은 되어 보였다. 

 

▲ 서양화가 허미자. 그는 요즘 경기도 파주시 출판단지 내 한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화실에서 분주히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실 4면에 ‘작품’ 그득그득

 

여기 있는 그림이 모두 몇 점이나 되냐고 묻자 화가는 “셀 수도 없고 세어보지도 않았다”면서 “이곳 말고 예전에 작업실로 쓰던 가리봉동 건물 옥상 창고에도 ‘작품’이 가득 쌓여 있다”고 말했다. 

 

―그림 좀 그린다는 이야기는 언제부터 들었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방과 후 아이들 몇 명을 불러 그림을 시켰다. 그렇게 그린 것을 미술대회에 출품했는데 내 그림이 상을 받았다. 그 이후 신나게 그렸고 6학년 때도 그림으로 상을 받았다. 중학교 땐 자연스레 미술반에 들어갔고. 고등학교는 홍익대학교 부속 여자고등학교에 배정됐는데, 예능 수업에 비중을 두는 학교였다. 미술 시간에는 선생님이 좋은 그림을 뽑아 앞에 두곤 했는데 내 그림이 늘 뽑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꿈이 ‘화가’가 됐고 대학도 서양화과를 택한 것 같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사는 화가는 아침이면 파주 작업실로 출근하고 밤이면 직장인이 퇴근하듯 집으로 돌아간다. 

 

-작업실에 주로 머무는 편인가.

 

“작업실이 집 근처에 있는 건 싫더라. 액셀을 밟으며 자유로를 달려 작업실로 오는 길이 마음에 든다. 또 집에 오래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벌렁거려서 밖으로 뛰쳐나와야 마음이 편하다. 놀아도 작업실에서 노는 게 좋다. 여기서 성경도 보고,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낮잠도 자고. 그러다 발동이 걸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에 몰두하고.” 

 

-작업하면서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작업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를 둘러싼 환경들 때문에 힘든 적은 많지만. 작업은 ‘화두’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오히려 즐겁다. 그림이 안 풀려도 힘들진 않다. 오히려 작업하지 않을 때가 힘들지, 그림을 그릴 때는 마음이 풀린다. 마음을 잡고 일단 시도를 하면 어떻게든 ‘작업’이 되니까. 망친 것도 하나의 그림이고 작품이다. 그렇게 망칠 정도로 마음이 풀어져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

 

“숨통 트이는 그림 그리고파”

 

허미자는 1987년 서양화가로 추상화를 선보인 후 3년에 한 번꼴로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작업이 왕성할 때는 해마다 개인전을 연 적도 있다. 전시회 주제는 ‘블루와 균열로부터의 레토릭’, ‘정신의 공간, ‘회화한다 함의 의미, 자유로운 터치’, ‘섬 아닌 섬’, ‘오늘도 그린다는 건’ 등이다. 단체전에는 일일이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참가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 앞에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낯설다고 했다. 어릴 때 꿈은 비록 화가였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그림 그리며 살아요” “작품 해요” 정도로 얼버무리곤 한다고. 

 

“15번째 개인전을 연 이후 전시회 횟수를 세지 않는다. 개인전을 많이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촌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초대형 갤러리 1·2·3층 전관에 트럭 3대 분량의 그림을 건 적도 있지만, 이제는 좋은 전시장에서 울림을 주는 전시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개인전 얘기를 해본다면.

 

“대학원 졸업하며 논문도 쓰고 전시회도 열었는데, 그때는 뭔가 자유스러움을 추구했던 것 같다. (작업실 책꽂이에서 첫 전시회 팜플렛을 찾아내어 들춰보며) 이때는 선을 많이 썼다. 종교적인 갈등과 인간의 양면성, 이런 걸 무수하고 어지럽게 뒤엉킨 선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무질서를 뚫고 새 빛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

 

-전시회 도록을 살펴보면 주제로 ‘자유로운 터치’를 내세운 적이 있다. 그렇다면 화가 허미자의 작업 키워드는 자유인가?

 

“나의 화두는 회화다. 회화성이라는 것 자체가 자유라고 생각한다. 회화라는 건 숨통이 트이듯 뻥 뚫리게 하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 또 다른 걸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물을 볼 때도 눈에 보이는 것 말고 그 너머의 또 다른 걸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회화라고 믿는다. 풀 한 포기를 그려도 곧이곧대로 화폭에 담아내기보다는 그 풀이 지닌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감정을 파고드는 책이나 글을 접할 때 무언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 듯이 내 그림이 누군가의 감정을 파고들어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화면이 예쁘고 남들과 달라 보이는 창의적인 그림이 눈에 쏙 들어오던데.

 

“내게는 ‘예쁨’이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 깃든 또 다른 걸 느끼고 거기서 나오는 감동과 울림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허미자 화가의 연작 시리즈. 자연스런 블랙, 물이 닿아 색이 빠진 블랙, 검정색이 빠지면서 흰 빛이 배어나오는 화면이 독특하다.   

 

먹을 만나 자유로운 붓질

 

그는 자신만의 감동과 울림을 전하는 세계를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시도했다. 수많은 시도 끝에 ‘먹물’을 만났다. 그의 작업대에는 유화나 아크릴 물감 대신 흑먹·청먹·홍먹 등 먹물감과 크고 작은 붓들이 뒹굴고 있어 이즈음 화가의 작업 세계를 짐작케 했다.

 

첫 개인전 때 자유로운 듯, 어지러운 듯 화면을 채우던 무수한 선은 사라지고 몇 년 후 ‘블랙’에 꽂힌다. 은밀한 사연을 가슴에 묻어둔 사람처럼 따분할 정도로 단조로운 흑색에서 무겁고 두꺼운 블랙, 갈라진 논바닥처럼 금이 간 검정까지 온통 검은 채색에만 천착한 적도 있다. 그렇게 매달리던 ‘블랙’이 얼마 후 먹과 ‘드로잉’을 만나 ‘자유로운 회화’가 됐다. 뻑뻑한 유화물감 대신 붓질하는 대로 따라오는 먹을 쓰면서 선의 움직임이 살아났고 ‘드로잉’이 자유로워졌다. 

 

-주재료로 먹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화로 작업을 하면 물감이 두꺼워 붓질이 거칠어진다. 그러나 먹물감으로 붓질을 하면 쭉쭉 뻗어 나가는 맛이 있다. 밑칠을 한 화면 위에 먹으로 ‘드로잉’을 올리면 형체가 꿈틀거려 살아 움직이는 것 같고 생동적이다. 나는 추상화로 출발했고 서양화를 추구하지만 먹을 쓴 이후 수묵화나 동양화 느낌이 나서 좋더라. 작업 과정에서 얻어걸리는 ‘우연’을 즐기는 편이다. 시커먼 먹을 쓴 그림에서 밤색이나 초록색이 배어나오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림이 더 깊어진다. 카메라가 흔들려 초점이 흐려진 사진의 느낌을 내기 위해 잉크나 먹으로 그림을 그린 후, 비를 맞혀 바람이 지나간 느낌을 내는 것도 좋아한다. 다 우연히 온 것이지만 너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우연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작업실을 둘러보니 그림 대부분에 검정 비중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원래 블랙을 좋아했다. 옷도 검정색을 즐겨 입고. 작업에서 검정을 주로 쓰는 데는 씁쓸한 사연이 있긴 하다. 어떤 일을 계기로 흰색은 배제하다 보니 다른 색깔도 멀리하게 됐다. 주구장창 검정색 그림만 그렸다. 화면에 새까만 물감만 칠하며 8~9년을 보냈다. 어느 순간 ‘블랙’에 통달하게 되더라. 이제는 전시장에 갔다가 검정색이 들어간 작품을 만나면 그 작가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읽을 수 있다.”

 

돌아가신 부친이 손수 지은 가리봉동 5층 건물 옥탑방을 작업실로 쓰던 시절, 두터운 검정에서 매끄러운 검정까지, 블랙 일색이던 그의 그림은 우연히 비를 맞아 번짐과 균열이 생기면서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온다. 당시 그는 독특한 표면을 구축하기 위해 카본 블랙과 옥사이드 블랙이라는 재료를 즐겨 썼다. 두 재료는 화면에 달라붙는 점착성이 약해 시간이 지나면 들뜨거나 갈라졌다. 화가는 그런 속성에 착안해 터지고 갈라지는 효과를 자연스럽게 살려내는 데 관심이 많았다. 

 

“물감을 말리기 위해 옥상에 그림들을 비스듬히 뉘어놨다. 그날에 따라 소나기가 내려 애써 그린 작품이 비를 쫄딱 맞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비를 맞은 후 바람이 스쳐간 듯 오묘한 색상으로 변해 있는 게 아닌가. 그 색깔과 형태가 무척 마음에 들어 이게 뭘까 연구를 했다. 합판에 검정 그림을 올린 후 물에 담가봤다. 안료를 쓰던 시절인데 물에 섞어 쓴 검정색 가루가 풀어져서 너무 예쁜 푸른색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 다음부터 장마철이면 일부러 그림에 비를 맞혔다. 자연스런 블랙, 물이 닿아 색이 빠진 블랙, 검정색이 빠지면서 흰 빛이 배어나오는 화면을 얻을 수 있었다. 블랙을 주춧돌로 삼아 얻어낸 배경화면 위에 먹으로 드로잉을 올리면서 내 그림이 달라지고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 오직 자신만이 펼칠 수 있는 세계를 찾다가 먹의 묘미를 발견한 허미자 화가는 오동나무에 ‘꽂혀’ 10년 넘게 오동나무 ‘드로잉’에도 매달리고 있다.  

 

검정, 우연 그리고 오동나무

 

오직 자신만이 펼칠 수 있는 세계를 찾다가 먹의 묘미를 발견한 화가는 오동나무에 반해 10년 넘게 오동나무 ‘드로잉’에도 매달렸다. 자유로운 붓놀림과 터치가 화면을 가로지르면서 앙상한 나뭇가지, 오동나무 잎, 열매가 화폭에 들어앉았다. 검정색 붓놀림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교차하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발판 삼아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 

 

“어느 해 겨울 파주 광탄면 보광사를 찾았다가 오동나무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 여름에는 집채만 했을 나무가 이파리를 다 떨궈낸 채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앙상하게 서 있는 모습은 기가 막혔다. 나뭇가지는 이리저리 구부러지며 뻗어 있고, 무당이 요령을 들고 춤을 추듯 오동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춤을 추는 모습이 너무 와닿아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담아온 사진을 모티브로 삼아 오동나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0년 넘게 우려먹고 있다. 합판 위에 흰색 아크릴 물감을 여러 겹 칠한 후 먹으로 오동나무 가지와 열매를 그리는 작업이 여전히 재밌다.”

 

미술사학을 연구하는 심상용 박사는 허미자의 작품에 대해 이런 평을 내놨다. 

 

“그의 오동나무 가지와 잎들은 너무도 회화적이다. 검정색 가지들은 흐르듯 화면을 가로지르고 서로 교차한다. 이 세계는 이따금 중립적인 회색조나 갈색 톤의 뉘앙스를 머금긴 하지만, 굵거나 가늘고 짙은 검정색 선들에 의해 단정하고 위엄있는 질서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배경은 경쾌하지만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고, 하양색 또는 미색의 여백은 단아하다. 여기 어디에도 거창한 담론을 가장한 설교, 수다, 허튼소리는 없다. 허미자의 회화는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또 평생 동양화를 파고든 어느 작가는 허미자의 전시를 본 후 “그 어떤 동양화 작가보다 그림이 대범하고 먹과 붓의 운행이 자유롭다”고 칭송했다. 

 

▲ 벽시계를 닮은 ‘원’ 형태의 최신작.  

 

오늘도 그린다는 건

 

-화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갈 만한가?

 

“화가가 직업은 됐지만 돈은 못 번다. 화가라는 직업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내 경우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강의를 나가며 용돈은 벌고 있지만 힘들다. 있는 집 딸일 것 같다고? 아무리 가진 게 있어도 그림만 그리며 버티기란 쉽지 않다. 돈 있어도 이건 못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재료비는 또 아깝지가 않더라. 생활비에 들어가는 건 벌벌 떠는 편인데 그림 재료는 아끼지 않고 산다.”

 

열다섯 번째 이후 횟수를 세지 않을 정도로 전시회를 많이 하면서 화가로서 명성은 얻었지만, 허미자의 그림은 여전히 잘 안 팔린다. 대학원 졸업 이후 35년간 그림이라는 한우물만 파고 있는 그는 “여태껏 작업만 하며 살아나온 것도 기적”이라고 했다. 수많은 그림을 쟁여놓고 있지만 ‘스스로 낳은’ 작품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닌 적도 없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못 한다고. 화가는 “내가 아직 배가 덜 고픈 모양”이라며 쓸쓸히 웃었다. 

 

“오늘 아침 산책을 하는데 메마른 풀에 눈이 갔다. 요즘 뭘 그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걸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잡풀을 보는 순간 문득 ‘너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스쳐 잡풀을 뜯어와서 ‘드로잉’을 올려보고 있다. 그러면서 나도 잡초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도 그린다는 건’. 화가 허미자가 고요한 응시 속에 던지는 질문이다. 오늘도 눈과 머리, 그리고 손으로 인생을 묵상하는 그의 오동나무와 잡초에 물이 오를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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