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도 넘은 대학축제 성상품화

‘업소여성 흉내인가’…막장 치닫는 ‘지성의 전당’

조미진 기자 | 기사입력 2014/09/29 [13:14]

<집중취재> 도 넘은 대학축제 성상품화

‘업소여성 흉내인가’…막장 치닫는 ‘지성의 전당’

조미진 기자 | 입력 : 2014/09/29 [13:14]

최근 대학가 축제 풍토가 선정성을 넘어 심각하게 저급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엉덩이만 간신히 가린 핫팬츠에 야한 스타킹을 신고 여대생들이 주점을 홍보한다며 캠퍼스를 활보하는가 하면, 주점 간판·메뉴판도 남성의 생식기나 퇴폐적인 농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다. 마치 유흥업소 여성이나 홍등가를 연상케 한다는 반응이 나오는가 하면 일부 대학생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론 대학생·대학의 저급화를 비판하는 여론이 많은 실정이다.<편집자주>


“나지금 급해…나젖게해줘”…명문대축제 주점메뉴판 ‘충격’
하녀복·기생복 차림…캠퍼스 활보하며 홍보하는 ‘여대생들’
일부 ‘표현의 자유’주장에도, “홍등가 여성 같다” 비판 우세
 
[주간현대=조미진 기자]  옆의 문구들은 유흥업소와 관련된 것들이 아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지난해 고려대 모 학과의 대학축제 주점 메뉴판 일부다. 다소 충격적이다. 문제는 거의 모든 메뉴가 수위높은 성적 농담을 통해 표현돼 있는 것. 고려대는 공부 잘한다는 학생들이 들어간다는 명문사립대다. 하지만 이곳도 현재 우리나라 대학문화의 지나친 선정성 내지 저급화 논란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는 것.


▲ 지난해 고려대 모 학과 축제 주점 메뉴판.     © 주간현대


가슴골 노출은 기본?

이러한 선정성 논란은 지난해만의 문제도, 고려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심지어 여대생들이 기생복·하녀복을 입고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손님을 끌어들이는 모습을 여러 대학의 축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대생들이 빨간 조명 아래에서 과거 기생을 연상하게 하는 한복 차림으로 서빙을 하고 가슴골을 드러낸 채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 짧은 반바지(핫팬츠)를 입고 망사스타킹을 신은 학생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져 많은 이들을 경악케 하기도 했다.

그중 최근 건국대학교 서울 캠퍼스에서 여대생들이 대학 축제 주점을 홍보하기 위해 캠퍼스를 활보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찍혔다. 지난 9월17일 서울 광진구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이 엉덩이를 간신히 가린 핫팬츠에 레이스가 덧대어진 망사 밴드스타킹을 신고 직접 주점 손님몰이에 나섰다. 이들이 들고 있는 팻말에는 ‘오빠, ○○주점 빨개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른 주점에서는 ‘조선시대 기생 황진이’를 주제로 여학생들이 속옷이 비치는 망사 저고리에 한복 치마를 입고 술을 팔았다. 주점 내부는 빨간색 한지로 감싼 ‘홍등’으로 꾸며졌다. 황진이 주점을 준비한 예술학부 소속 한 학생은 언론을 통해 “이 콘셉트는 예대에서 5∼6년간 매년 해오던 것으로 선배들이 정해준 것을 후배들이 그대로 따르는 것뿐”이라며 “교수님들이 복장 등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비슷한 주점들 사이에서 튀어 보이고 매상도 오르려면 독특함이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 작곡과의 축제 주점 포스터.     © 주간현대


‘승무원 주점’이라는 콘셉트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대생들이 장사를 하는 곳도 있었다.
이들 주점은 학생이 아닌 일반인들의 입장 문의도 이어졌다.

대학 축제에서 주점 이름이나 홍보 표현의 선정성 논란은 흔하다. 주점 이름이 ‘오빠, 우리집 비어’인데 ‘비어’는 맥주의 영어 표현이기도 하지만 문장 전체적으로는 선정적 의미가 강하다.

한양대학교 작곡과 축제 주점 포스터는 ‘작곡가’라는 단어를 패러디한 듯하지만 자음들을 세로로 이어붙여 ‘오빠…여기서 자고갈래?’라는 표현을 노렸다. 이쯤 되면 젊은이들의 일시적 일탈이라거나 지엽적인 현상 정도가 아니라는 해석이 충분히 나올 법하다.

결국 지난 9월20일 숙명여대 총학생회에선 선정적인 복장 등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이러한 제재의 계기가 된 것은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숙명여대 미술대학의 축제 주점 포스터다. 메이드(하녀) 복장의 여성이 허리를 굽힌 채 가터벨트와 속옷을 드러내며 야릇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옆에 있는 문구에는 “Maid가 나눠 주는 사탕을 가져오면 음료 한 잔 무료”라고 적혀 있다.
파티의 이름마저도 ‘매혹적인 하녀들(Fascinating Maids)’이다.

이 포스터가 공개되자 인터넷상에선 ‘스스로를 성적 도구로 전락한 하녀의 모습으로 표현해서라도 축제 주점이 잘되는게 중요하냐’는 등 부정적 반응들이 줄을 이었다. 이렇게 논란이 일자 총학생회에서 축제 주점의 선정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차원에서 제재안을 만든 것.


▲ 숙명여대 미술대학 공예과의 주점 포스터.     © 주간현대


해당 제재안에 따르면 가슴골이 보이는 상의, 살이 비치는 망사, 시스루(속이 비치는 의상), 손을 들었을 때 살이 드러나는 크롭티 등이 제재한에 포함됐다.

치마 착용에 대한 규정도 있다. 속바지를 착용하지 않거나 허벅지 전체 길이의 50% 이하의 길이는 입을 수 없게 했다. 옆트임 치마는 비치지 않는 검은 스타킹을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하며 선정적인 분위기를 유도할 수 있는 교복 등의 유니폼은 금지됐다. 홍보 등에 ‘오빠’ ‘자기’ 등 선정적인 단어나 표현 등을 사용하는 것도 금지했다.

총학생회는 위의 규정을 어길 시 10만원 벌금을 물게 할 수 있으며 3회 이상 위반하면 부스를 즉시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제재조치에 대해 해당 총학생회장 박신애 학생은 언론을 통해 “여대이기에 해마다 많은 남학생이 방문하는데,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여학생 사진을 찍은 뒤 인터넷에 올리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제재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학생 사이에서 이견이 있지만 대체로 제재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숙대의 또 다른 학생은 “다른 여대에서는 짧은 옷을 입고 서빙을 하는 여학생에게 손님이 ‘술을 따라보라’고 요구한 일도 있었다”면서 “이번 제재안으로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축제 문화가 개선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성과주의와 성적 저급화

학생들이 이처럼 호객을 위해 성상품화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1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 행사 수익금이 학과나 동아리의 연간 외부 수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술은 매출 대비 순익이 크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무리하게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 대학의 문화인류학 교수는 언론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고 성공하면 된다는 경쟁·성과주의 세태의 한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여성 아이돌 그룹 등 연예인들의 선정적 패션, 가사 표현 등이 일반화되면서 이들을 젊은 여성들이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연예인들이나 젊은 여성들이 외국의 선정적 문화를 그대로 따라 하거나 심지어 유흥업소 여성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

소설가 이외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러한 현 시류를 비판하기도 했다. “예전의 대학가에선 서점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가에선 술집이 호황을 누린다. 예전엔 호스티스들이 여대생 흉내를 내면서 거리를 활보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대생들이 호스티스 흉내를 내면서 거리를 활보한다.”

이처럼 저급화된 연예인들의 대중문화와 대학가 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happiness@hyunda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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