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밌는 국악 브랜드 ‘부지화’ 만든 강현준 부지화 예술단 대표 속풀이 인터뷰

“친근한 ‘모던국악’으로 K한류 저력 보여주겠다”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21/02/26 [16:52]

쉽고 재밌는 국악 브랜드 ‘부지화’ 만든 강현준 부지화 예술단 대표 속풀이 인터뷰

“친근한 ‘모던국악’으로 K한류 저력 보여주겠다”

김혜연 기자 | 입력 : 2021/02/26 [16:52]

요즘 젊은이들은 힙합, 재즈, 댄스 음악은 가까이 해도 섬세한 우리 음악, ‘국악’과는 친숙하지 못하다. 코로나19 여파로 공연계가 얼어붙으면서, 한국에서 인기 없고 낡은 장르로 홀대받는 국악, 국악인들은 더욱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

 

국악 애호가이자 공연 기획자로 살아가는 강현준(53) 부지화 예술단 대표는 우리 소리의 다채로운 모습을 알기 쉽고 친숙한 방식으로 전하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악에 뮤지컬과 드라마를 섞은 대중국악 브랜드 ‘부지화’를 처음으로 고안하고 10년 넘게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해온 것도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국악을 쉽고 재밌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최근 ‘부지화’ 10주년 기념 언택트(비대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강 대표는 “국악의 힘은 무한대”라면서 “무대에서 K팝을 능가하는 K한류의 저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를 만나 다양하고 깊은 국악의 세계와 어른도 아이도 흠뻑 빠져든다는 퓨전 국악 ‘부지화’ 공연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소리의 다채로움 알리려 국악+뮤지컬+드라마 접목 ‘부지화’ 창안
10년째 국내외 넘나들며 부지화 공연…민족정서 담은 국악 쉽게 전달

 

“귀에 착착 감기는 ‘판소리’야말로 지루할 틈 없고 신명나는 K한류”
“밝음 이끄는 우리 노래와 춤으로 코로나 시름 달래기 한몫했으면”

 

―코로나19 확산으로 국악을 하는 예술인들의 어려움이 클 것 같은데,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예술인들만 아니라 모두가 어렵다. 다들 인내하며 견디고 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시간이 가면 잘 이겨내어 좋은 시절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악인들보다는 그렇지 않는 예술인들이 더 많아 걱정이다.

 

▲ 국악 애호가이자 공연 기획자로 살아가는 강현준(53) 부지화 예술단 대표는 우리 소리의 다채로운 모습을 알기 쉽고 친숙한 방식으로 전하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통음악 몰라보는 ‘부지화’


―대중국악 브랜드 ‘부지화’ 10주년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부지화’란 무슨 뜻인가?


▲부지화(不知畵)는 ‘그림을 보고도 그림을 모른다’는 것이니, 그림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줄 모른다고 할까. 조선후기 화가 조희룡이 당시 천재화가인 고람의 그림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 말이다. 고람 전기(田琦, 1825~1854)는 <계산포무도> <매화초옥도> <설경산수도>를 그린 남종문인화가다. 신선이 도를 닦듯 담담한 화풍이었다고 하는데 서양음악에만 빠져 우리 주변에 있는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는 현 상황을 정확히 지적하는 것 같아 따온 말이다.


―부지화 예술단은 언제 만들었나?


▲원래 해오던 공연 기획을 전통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부지화’로 브랜딩하여 2011년 6월부터 진행했다.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국악에 현대 뮤지컬과 드라마를 접목했다. 그동안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예술인 춤과 소리를 일반 대중들에게 어떻게 하면 친숙하게 다가가 어떻게 알릴까 하는 고민이 컸다. 국악은 우리 것인데도 즐기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일부 국악 마니아 층만 찾는 공연보다는 관객이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면서도 지속성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총연출과 각본을 만든 황진경 단장과 함께 회사를 설립해 국악 대중화 브랜드 ‘부지화 공연’을 기획·제작 하게 되었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다. 다양한 레퍼토리로 ‘시즌 20’까지 공연했다.


―국악의 대중화는 풀기 어려운 숙제인데….


▲내게는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갈까’ 이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흥을 이끌어내기 위해 일단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했고 대중가요, 평상복, 현대적인 안무로 이를 풀어내고 있다. 그동안 부지화 공연만 20차례, 필리핀 등지에서 자선공연도 수십 차례 열었다.


그리고 공연을 할 때 반드시 지키는 철칙은 국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승무의 전수조교 임이조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특히 지금까지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항상 참여하는 피리 명인 최경만 명인, 서도민요 유지숙 명창의 공연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해외공연 때 외국인들이 한국 전통예술인데도 언어가 다르고 내용을 잘 몰라도 그 구슬프고 강렬한 소리와 춤사위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임이조 ‘승무’ 본 후 운명 바뀌어


―국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사업을 잘해 한때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1997년 IMF 여파로 고생도 했다. 다시 직장인이 되어 삼성생명에 근무하다가 국악에 눈을 돌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년째 국악과 관계를 맺고 있다.


내 고향은 전북 전주인데 당시 남원시립 국악연수원 예술감독으로 있던 임이조 선생님이 ‘승무’를 연습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선생님의 춤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전율이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듯했다. 바람이 대자리를 들추듯, 제비가 바람을 일으키듯, 우주 속에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듯 장삼을 뿌리치고 거둘 때마다 아찔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건 찰나였고 내 운명도 그렇게 바뀌었다.


―공연을 기획하면서 영향을 받은 국악인이 있다면.


▲임이조 선생님의 권유로 이매방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고인이 된 두 분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한량무와 무당춤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승무’를 좋아한다. 춤고수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고요한 그 경지가 춤사위에서 ‘딱’ 하고 멈추는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답다.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염불장단에 맞추어 합장하면서 춤이 느리게 시작되는데, 사위를 살짝 뿌려 천천히 펼쳐 올리다 위로 크게 뿌려 팔을 넓게 펴 천천히 내리는 팔놀림을 보면 넋이 나갈 지경이다. 승무에 실린 자진타령과 굿거리 장단을 들어보면 장삼이 뿌려질 때의 그 맺고 풀고 ‘근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되돌아옴’이 내게도 선생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통 국악인들과 어떤 공연을 했는지….


▲이매방·임이조 선생님 두 분을 모시고 외국으로 여러 차례 공연을 다녔다. ‘우리 춤의 이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어떻게 알릴까?’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고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은 마음에 경기소리, 서도소리, 국악 연주를 ‘믹스’해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었다. 해외에도 알리고 대중도 좋아할 다양한 형식을 만들어 본 것이다. 정통 한류에 현대적인 안무와 힘 있는 타악 퍼포먼스도 더하기 시작했다.

 

▲ ‘부지화’ 10주년 기념 언택트(비대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강 대표는 “국악의 힘은 무한대”라면서 “무대에서 K팝을 능가하는 K한류의 저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상복 입고 춤추는 국악 ‘신선’


―부지화 예술단이 자선공연을 많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연예술인은 먹고 살기 힘들다며 회사를 절대 차리지 말라던 임이조 선생의 만류도 기억난다. 하지만 선생님은 부지화 첫 번째 공연 때 자신은 물론이고 제자인 젊은 출연진을 설득하여 출연료 전액을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문동옥·이춘희 선생님도 제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부지화 두 번째 공연에서는 한국의 전통 풍습 중 하나인 ‘대보름 행사’를 부지화 공연과 연계하는 공연으로 기획해 3회 전 회 매진 기록을 세우며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국악인들이 출연료를 고사하며 해오던 ‘해외나눔 봉사공연’을 방송국과 연계한 부지화 공연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필리핀 저소득층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에게 해오던 부지화 3회 마닐라 공연과 부지화 4회 세부 공연이 그것이다. 한인회와 영사관 등 많은 분들이 우리 국악을 알리려고 도움을 주었다.


―부지화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부지화 5회 공연은 MBC 에브리원 방송에 이춘희 선생과 바기오 정해철 한인회장 등 현지 후원으로 <무한걸스>의 연예인들이 국악을 배워 해외공연을 하는 공연을 기획제작해 대중화의 첫발을 디뎠다고 생각한다. 이후 국악과 민요, 한국 전통무용 등을 결합한 기존의 소리극과는 차별화된 국악 뮤지컬 형식의 ‘바람에 날려를 왔나’를 만들게 되었다.


청소년들과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성공 스토리로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기존 소리극 위주의 국악과 차별화하기 위해 ‘전통민요’를 기반으로 재해석한 창작 음악으로 극의 흐름을 만들었다. 한복만을 고집하지 않고 젊은이들이 평상복 차림의 민요를 부르고 음악에서도 1930년 ‘만요’ 등을 부르기도 하며 새로운 시도를 해본 것이다.


―경기소리 보유자 단성 이춘희 선생과의 인연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느 날, 문득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스토리를 찾던 중 내가 인간문화재 이춘희 선생님을 떠올렸고, 이를 기본의 소리극이 아닌 창작극으로 만든 것이다. 단성 선생님과는 오랜 인연이고 나를 많이 도와줬다. 내가 하는 여러 자선공연에도 항상 참여했다.


‘부지화’ 브랜드와 관련해서는 2012년 8월에 모던국악컬 ‘부지화 시즌6-바람에 날려를 왔나’를 만들어 단성 선생님의 국악 외길인생을 다루기도 했다. 전통 예술인 성공 스토리를 3회 정도 부지화 공연 안에 녹여낸 것이다.

 

▲ 강현준 대표는 ‘국악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려고 전통예술에 대중가요와 현대안무를 접목한 ‘모던 국악’을 무대에 올렸다. 사진은 모던국악 뮤지컬 블랙스완 공연 모습. 

 

국악계는 핀잔, 관객은 열광


―퓨전 국악, 모던 국악 공연에 대한 국악계의 시선은 어떠했나.


▲한마디로 따가웠다. 기획·제작한 모던 국악 뮤지컬 민요 가사 일부인 이춘희 명창의 성공 스토리 ‘바람에 날려를 왔나’는 내가 국공립 단체처럼 충분한 제작비가 없으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다. 더구나 살아 있는 사람 개인의 스토리를 가지고 공연을 기획한다는 눈총도 있었다. 처음 시도되는 여러 형식 중, 평상복 차림으로 민요를 부르자 국악계 내부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부 선생님들로부터도 ‘품위 없다’는 비판도 들었다.


―그럼, 언론 반응은 어땠나?


▲사실 가난한 시절을 연출하는 극의 장면이나 표현방법 등에서 필요한 의상 콘셉트인데도 조금 억울한 평을 듣기도 했지만 오히려 국악계가 아닌 일반관객들과 언론의 반응은 좋았다. 국악공연엔 꼭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버리니 신선해서 공연의 집중도가 높았다고 한다. SBS 교양 프로그램 <문화가중계>에서 한 시간 동안 전체 공연을 방송하고 나중엔 두 시간으로 늘려 제작하여 같은 프로그램에서 총 4회에 걸쳐 방송하는 성과도 있었다.

 

“내면 아름다움이 한국의 멋”


―2013년에 한국경제신문 주최로 열린 부지화 아홉 번째 공연 ‘꽃 피고 사랑 피고’는 여러모로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국악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려고 전통예술에 대중가요와 현대안무를 접목한 ‘모던 국악컬’로 만들었다.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국악에 현대 뮤지컬과 드라마를 접목했다. 인간문화재부터 젊은 국악인들까지 다양한 출연자들이 등장해 정통국악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창작 악극을 만들었다. 전석 매진의 성과도 있었다.


―욕만 먹은 게 아니라 호평도 받았는데, 요즘 ‘이날치밴드’의 효시가 아닌가.


▲당시 한복 대신 평상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고 여성그룹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차용한 춤을 선보인 것은 이전에는 보지 못한 장면이자 시도였다. 비록 정통 국악계에서는 욕을 먹었지만 관객은 무척 좋아했다. 호평도 있고 악평도 있었지만 재미도 선사한 공연이었다. 이런 콜라보는 내가 조금 빨랐던 것 같다.


요즘 화제가 된 이날치밴드의 ‘범 내려온다’를 들어보라. 리듬은 빠르지만 얼마나 귀에 착착 감기는가. 우리 세대는 제이-지(JAY-Z)의 속사포 랩에 빠진 자녀들과 살고 있다. 하지만 이날치밴드에선 서양식 랩이 명함도 못 내밀 한국식 랩이 나온다. 그것도 판소리로. 현대식 판소리가 절제된 드럼과 베이스 기타에 얹히고 기막힌 댄스와 어우러져 한바탕 신명을 선사한다. 그 소리꾼 보컬들은 20년 이상 판소리를 공연한 전통 예술가들이다. 유튜브 조회수가 3억 뷰를 넘었다. 그게 바로 ‘K한류’라고 생각한다. K한류는 지루할 틈이 없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우리 가락에 실어 신바람 나게 알리고 싶다.

 

▲ 부지화 시즌8 '바람에 날려를 왔나' 공연 장면. 

 

K팝 못지않은 ‘K한류’ 국악 기획


―앞으로 부지화 10주년 기념 공을 연출한다면.


▲요즘은 트로트도 인기이고 모든 장르의 음악이 개성 넘치게 소비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국악인들의 다양한 시도와 콜라보는 오히려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때 우리가 전통예술 국악을 K팝 못지않은 ‘K한류’로 기획해 세계에 선보이고 싶다. 코로나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방식은 언택트(비대면) 공연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015년 초등학교 6학년 체육 교과서에 내가 만든 모던 국악컬 ‘블랙 스완’이 사례로 실리기도 했다. 그만큼 국악을 대중화하여 창의적으로 재해석 되어야 함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쉽게 상상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신축년 대보름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이번 정월 대보름에는 코로나19를 물리칠 간절함을 담은 언택트 공연을 선보이려 한다. 천지신명께 빌어 이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달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시대를 건너는 우리 전통예술의 비급이 있다면.


▲2011년 1월 최재영 중앙일보 사진기자가 찍은 작품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백남준 추모 5주기 사진전을 공동 연출하고 실제 굿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사진 속의 백남준은 양복에 갓을 쓰고 한복을 걸쳐 입고 독일의 화가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피아노 제사를 굿거리로 올려가며 동서양의 넋을 달래고 있었다. 그릇과 요강이 어우러지고, 꽹과리와 장구, 징과 북, 피리가 그날 굿으로 다시 울렸다.


우리 국악은 늘 누군가를 이어주고 달래주고 매개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요즘이다. 세상의 밝음을 이끄는 노래와 춤이 우리들의 신명을 불러내는 비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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