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 대진표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국민의힘이 야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방안을 놓고 기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안 대표는 서울시장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다른 야권 후보들을 앞서가는 것으로 나오자 겉으로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안 대표를 향한 여야의 견제구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는 양상이다. 현재 서울시장 후보군 중에서 군소정당 주자로는 이례적으로 1위로 앞서가는 안 대표가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며 거대 양당의 협공을 받는 모양새다. 갈수록 ‘고립무원’ 신세가 되고 있다.
안철수, 서울시장 지지율 1위 달리지만 여야 맹공으로 고립무원
김종인, ‘안철수 타령’ 금지령 …단일화 협상 대비 길들이기 차원?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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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고립무원’에 빠졌다. 서울시장 후보군 대진표가 윤곽을 드러내고,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둘러싸고 국민의힘과 기싸움이 고조되면서 파열음도 커지고 있다.
거대 양당의 맹공격을 받고 있는 안 대표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당분간 독자 행보를 지속하면서 존재감을 살리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 대표가 ‘광폭 스킨십’으로 불릴 만큼 보수 진영 인사들을 두루 접촉하고 민생행보를 이어가는 것도 이 같은 판단에 따른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일각에선 거대양당이 본경선에서 최종 후보를 선출한 뒤 조직력을 동원해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설 경우 안 대표의 지지율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 입당을 거부하고 ‘기호 4번’ 출마 원칙을 고수함에 따라 국민의힘 측의 날 선 비판은 연일 계속 되고 있다.
안 대표의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고 공세적인 자세를 취한 것을 두고 후보 단일화 협상에 대비한 ‘길들이기’ 차원의 전략적 무시라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나경원 전 의원을 비롯해 이혜훈 전 의원과 김선동 전 사무총장 등 중량감 있는 여러 후보를 확보하면서 국민의힘이 안 대표를 고립시키고 자당 인물을 띄우기 위한 네거티브 전략을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타도 안철수’ 전선의 선봉에 서고, 당내 핵심 세력을 중심으로 견제에 나선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1월11일 기자들을 만나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후보 단일화 방안으로 당대당 통합, 중도통합정당의 신설 등 다른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을 일축해가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입당을 압박했다. 단일화에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안 대표, 더불어민주당과의 3자 구도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앞서 안 대표와 국민의힘 사이의 단일화 논의가 지지부진해지자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중도통합정당론, 당대당 통합 등에 대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 위원장은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자신은 출마하지 않겠다’며 오세훈 전 시장이 ‘조건부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정당 통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사항이라 더 이상 거론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장 후보 3자 대결구도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비공개로 진행된 비대위 회의에서도 조건부 출마선언 등 오 전 시장이 안 대표를 자신의 선거에 끌어들이려는 듯한 태도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안 대표에 대해 “(단일화를 위한 국민의힘) 후보가 정확히 나온 것도 아니고 좁혀진 상태도 아니다”라며 “안 대표가 정말 출마할 생각이 있으면 당으로 들어오든지 (입당) 수순을 밟아야 하는데 안 대표나 당내 중진들이 왈가왈부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고 말했다고 비대위 관계자들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1월12일 안 대표가 자신을 중심으로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주장한 것에 대해 “그 양반은 정신적으로 자기가 유일한 야당 단일후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도대체가 정치 상식으로 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안 대표와의 후보 단일화가 연일 거론되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비치며 “기회주의” “콩가루 집안” 등 격한 표현으로 비판한 데 이어 1월12일에도 안 대표에 대해 무시전략으로 일관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연히 야권을 단일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단일화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특정인)로 단일화해 달라는 요구를 하면 안 된다”며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은 또한 “그러니까 나는 거기(안 대표 중심의 단일화)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며 “우리 당에 가장 적합한 후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 책무”라고 강조했다.
안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에 지지율 강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그 여론조사는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면 별로 의미가 없다”며 “안철수 지지도를 보면 우리 당에 있는 사람 중에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민주당 사람 중에 지지한 사람도 있고 그렇다”고 깎아내렸다.
게다가 김 위원장이, 과거 국민의당 대변인이었던 장진영 변호사가 안 대표를 비판한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누른 사실이 알려져 뒷말을 낳고 있다.
장 변호사는 1월11일 ‘안철수가 변했을까’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소통에 관한 한 안철수는 박근혜·문재인과 매우 유사한 과라는 점은 내가 경험한 바였고 그 이후의 행보 역시 과거와 별반 차이를 보지 못했다”며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역시 출마하지 않겠다며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출마 선언을 해버렸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 논의 과정에 참여했는지는 궁금하다. 솔직하게 꺼내놓고 논의를 이끌기보다 부인하다가 갑작스러운 선언을 하는 패턴을 과거나 지금이나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해당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으며, 그전에 올라온 1월8일 게시글에도 ‘공감’을 표시했다.
장 변호사는 해당글에서 “난 국민의당 시절 수석최고위원으로 6개월간 함께 일 해본 경험이 있다”며 “험난한 과정을 함께 했으니 아마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일해 본 사람에 속할 것이다. 지난 4년간 제3지대의 흥망을 겪은 당사자로서 나는 정치인 안철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반성과 참회라고 본다”는 주장을 폈다.
장 변호사는 “안철수가 변했다는 기사를 보니 근거로 ‘형님’ 표현을 쓰고 폭탄주를 말아 돌리며 눈썹 문신을 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런 외형으로 사람이 변할 수 있다면 ‘내가 갑철수입니꽈~아’ 하며 괴성을 지르는 변신으로 진작 변했어야 했지만 어디 그랬나”라고 비꼬았고, “그와 함께 일 해본 경험에 비춰 나의 견해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를 경험했던 김종인, 손학규, 윤여준 등의 연륜 많은 분들이 왜 안철수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상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쨌든 김 위원장이 당을 ‘콩가루 집안’에 비유할 만큼 격노하고 ‘안철수 타령’ 금지령을 내리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자강론’과 공감대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정진석 공천관리위원장은 1월13일 국민의힘 초선의원 모임인 ‘명불허전 보수다’ 초청 강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자기가 중도 지지층을 독점하는 양 이야기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라며 “국민의힘이 최근 오차범위를 넘겨 5주 연속 1위다. 안 대표도 눈이 있으면 좀 보시라”고 일갈했다. 그는 범야권 단일후보를 자처한 안 대표를 겨냥해 “구체적인 단일화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채 계속 간만 본다”고도 쏘아붙였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1월1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안잘알(안철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전부 다 부정적”이라며 “‘나 아니면 안 돼. 내가 나가면 이기고 네가 나가면 진다’고 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나. 이거 외에는 별 얘기가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들도 안 대표를 깎아내리거나 흠집내기에 가세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철수정치’를 겨냥해 “쉽게 물러서고 유불리를 따지는 사람에겐 이 중대한 선거를 맡길 수 없다”며 “중요한 정치 변곡점마다 결국 이 정권에 도움을 준 사람이 어떻게 야권을 대표할 수 있단 말이냐”고 비판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전 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고, 이듬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야권 단일화 협상에서 합의에 실패하자 불출마를 선언해 사실상 후보직을 양보한 사례를 꼬집은 것이다.
이처럼 견제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자 안 대표와 국민의당도 반격에 나섰고,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 제기한 의문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민의당은 야권 후보 단일화와 관련, “단일후보 결정은 이 정권에 분노하는 서울시민들께서 하면 된다”면서 사실상 국민의힘 입당을 통한 경선을 거부했다.
안 대표는 1월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차분하게 진행돼야 할 단일화 논의가 전체 야권 지지층의 바람과는 반대로 가려하고 있다”며 “심지어 저와 정치를 함께하지도 않았고 잘 알지 못하는 분들까지 나서서 저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을 한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안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앞서 정진석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나경원 전 의원 등이 자신을 비판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보인다.
안 대표는 또한 “누군가는 안철수가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다”면서 “단일화, 반드시 해내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어 “대통령선거 출마를 접고 서울시장 보선 출마를 결심한 배경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지면 정권 교체도 물 건너간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며 “단일후보 결정은 이 정권에 분노하는 서울시민들께서 하면 된다”고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 “이해는 한다”면서도 “그 분들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재기를 위해 그러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안타깝다. 과연 여러분의 행동이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결과적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압살하고 있는 자들을 이롭게 하는 행동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국민의당도 안 대표 엄호에 나섰다. 이태규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안철수 대표는 서울시장 보선을 이기고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불합리하고 악의적인 말들이 있더라도 인내하고 참자고 했지만 당 사무총장으로서 짚고 넘어가야겠다”면서 국민의힘을 향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무총장은 또한 “제1 야당에 계신 분들에게 안철수 대표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상대를 무시하는 일방적인 요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제1 야당의 행태를 보면 실망스럽다. 제1 야당은 왜 모든 게 자기들 중심인가. 청와대와 민주당이 헛발질해서 반사이익 좀 얻으니까 기고만장해서 국민의 간절함은 보이지 않는 것인가”라고 핏대를 세웠다.
안 대표와 김 위원장은 5년 전에도 ‘야권 단일화’를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이며 서로에게 상처만 안겼다.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라는 난제를 놓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기싸움이 고조되면서 ‘2016년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위원장과 안 대표가 이번에는 단일화 해법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