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12번, ‘감사하다’ 6번 사용 등 애민 리더십 부각
북한 최고 지도자가 대중연설에서 눈물 흘린 건 초유의 일
▲ 북한 조선중앙TV가 10월10일 오후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을 방송하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설 도중 울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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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월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 ‘미안하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반복하며 세 차례나 울먹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를 두고 과거 지도자들이 공개석상에서 제재 돌파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다져왔던 것과 달리 감성적 리더십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10월9일 심야에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해 28분가량 육성 연설을 진행했다. 김 위원장은 인민복 대신 회색 정장에 회색 넥타이를 매고 등장해 “오늘 이 자리에 서면 무슨 말부터 할까 많이 생각도 해보았지만 진정 우리 인민들에게 터놓고 싶은 마음속 고백, 마음속 진정은 ‘고맙습니다’ 이 한 마디뿐”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6000자 분량의 원고에서 고맙다는 표현을 12번, 감사하다는 표현을 6번이나 사용했다. 김 위원장은 군인들과 수도당원 등을 향해선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그는 “장병들의 고생이 너무도 컸다”며 “너무도 미안하고 이 영광의 밤에 그들 모두와 함께 있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나온 우리 당 75성상이 다 그러했지만 특별히 올해는 정초부터 하루하루, 한 걸음 한 걸음이 예상치 않았던 엄청난 도전과 장애로 하여 참으로 간고하고 힘겨웠다”고 한 해를 돌이켰다.
이어 “특히 올해 예상치 않게 맞다든(맞닥뜨린) 방역전선과 자연재해 복구 전선에서 인민군 장병들이 발휘한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헌신은 누구든 감사의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는 것들”이라며 “이 영광의 밤에 그들 모두와 함께 있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이 대북 경제제재와 코로나19, 태풍 및 수해 등 ‘삼중고’가 가중되는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시인했다. 그는 “가혹하고 장기적인 제재 때문에 모든 것이 부족한 속에서 비상방역도 해야 하고 혹심한 자연피해도 복구해야 하는 엄청난 도전과 난관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도당원사단을 언급하면서 “자기들의 피해 복구건설 임무를 완수하고도 사랑하는 집이 있는 평양행을 택하지 않고 스스로 또 다른 피해복구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긴 애국자들”이라며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연설을 이어갔다. 김 위원장은 평양 당원 1만2000명으로 수도당원사단을 조직해 함경도 수해 복구 현장에 급파한 바 있다.
또 “하늘같고 바다같은 우리 인민의 너무도 크나큰 믿음을 받아 안기만 하면서 언제나 제대로 한 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다”면서 “제가 나라를 이끄는 중책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실패를 솔직하게 시인했다.
김 위원장은 “그럼에도 우리 인민들은 언제나 나를 믿고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나의 선택과 결심을 그 무엇이든 지지하고 받들어주고 있다”며 “이런 훌륭한 우리 인민을 섬기고 모시고 투쟁하는 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간직하겠다. 나는 우리 인민의 하늘같은 믿음을 지키는 일에 설사 몸이 찢기고 부서진다고 해도 그 믿음만은 목숨까지 바쳐서라도 무조건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설 도중 김 위원장은 세 차례나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한 번은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장면이 나왔고, 집회에 참석한 주민들도 상당수가 눈물을 보였다. 그간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대중 연설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초유의 일이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거듭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자신을 믿고 더 따라주면 잘먹고 잘살 수 있다는 미래 희망을 강조하고, 약속한 것은 회피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반드시 지킨다는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며 “애민 지도자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노림수를 여실히 노출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사실상 경제부문에 대한 성과는 없이 역대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을 이유로 방역 성과를 가장 우선적으로 내세워 당 창건 75년 행사를 자신을 향한 결사옹위, 주민 결속, 일심단결의 기회로 활용하는 리더십을 과시한 것이라는 평가다.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 우리 인민 모두가 무병무탈 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한 명의 악성 비루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해 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감성 정치에 나선 것은 그만큼 북한의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뜻으로도 해석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2016~2020년) 마지막 해를 맞아 그간 추진한 경제 사업의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지난 8월 당 전원회의에서 경제 실패를 시인한 바 있다.
북한은 내년 1월 8차 대회까지 ‘80일 전투’를 통해 또다시 총돌격전을 선언했지만 그때까지 성과를 내기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북미 관계가 풀리지 않고 전방위 제재 압박 속에서 북한이 군사력 향상에 계속 자원과 내부 역량을 집중하게 될 경우 어떤 경제 건설 목표 달성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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