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무대 오르는 송승환, 연극 같은 인생 3막 스토리

“배우일 때 가장 자존감…나이 든 역 멋지게 하고 싶다”

이재훈(뉴시스 기자) | 기사입력 2020/10/16 [11:55]

다시 무대 오르는 송승환, 연극 같은 인생 3막 스토리

“배우일 때 가장 자존감…나이 든 역 멋지게 하고 싶다”

이재훈(뉴시스 기자) | 입력 : 2020/10/16 [11:55]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100편가량 했고, 연극도 그렇고. 제작은 또 50편가량 된다. 검사, 정치인 등 별 역할을 다 해봤다. 그런데 정작 배우 역을 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더 드레서>는 늙어가는 배우 역할이다 보니, 모든 부분이 다 감정이입이 잘 된다.” 배우인 송승환 피엠씨(PMC) 프로덕션 대표는 최근 제작자와 연출자로서 더 각인됐다.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한 한국 대표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제작자, 세계의 주목을 받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대중에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배우로 일찌감치 유명세를 떨쳤다. 1965년 KBS 라디오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은방울과 차돌이>의 MC로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연극 <에쿠우스>의 앨런 역을 맡아 청춘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가 2009년 <에쿠우스>에서 앨런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역을 맡는 것만으로도 대학로가 들썩이기도 했다. 송승환 역시 그 해를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꼽는다.

 


 

명연극 ‘더 드레서’에서 극단 대표 겸 배우인 선생님 역 맡아
평창올림픽 총감독 끝낸 후 시력 악화…대본 통째로 외워 극복

 

▲ 연극 ‘더 드레서’를 통해 무대로 돌아온 배우 송승환. 

 

지난 10월8일 정동극장에서 만난 배우 송승환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내가 자존감을 가장 느낄 때가 언제인가 하면, 바로 배우를 할 때다. <더 드레서>를 시작으로 다시 연기활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나이가 든 역을 멋지게 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더 드레서>는 노(老)역 배우로 인생의 3막을 여는 송승환의 연극무대 복귀작이다. 2011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안톤 체홉의 <갈매기> 이후 9년 만이다. <더 드레서> 제작사이기도 한 정동극장을 다시 찾은 것은 1999년 ‘난타99’ 제작자 이후 21년 만이다.


<더 드레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명작가 로날드 하우드의 작품이 원작이다. 하우드는 영화 <피아니스트>의 각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이 배경이다.


<리어왕> 연극 공연을 앞둔 분장실에서 벌어지는 하루 이야기다. 오랫동안 셰익스피어극을 해온 노배우와 그의 의상 담당자와의 관계가 주를 이룬다.


1980년 영국 맨체스터 로열 익스체인지 시어터에서 초연했고 1984년 극단 춘추가 국내에 소개했다. 최근에는 영국 BBC에서 안소니 홉킨스와 이안 맥켈런 주연의 TV 영화로 제작돼 국내외 마니아 팬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 10월8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열린 2020 정동극장 연극시리즈 ‘더 드레서’ 제작발표회에서 ‘선생님’ 역 배우 송승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송승환은 홉킨스가 연기한 극단 대표 겸 배우인 선생님(Sir) 역을 맡는다. 하우드는 이 캐릭터를 실제 유명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인 도널드 올핏 경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송승환은 “내가 극단 대표도 맡고 연기 활동을 해서 내 이야기 같아 캐릭터에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2차대전 와중에 공연을 올리는 모습도 마음을 움직였다. 코로나19 여파로 20년 동안 매일같이 공연해온 ‘난타’를 잠정 중단한 송승환은 “우리가 전쟁 아닌 전쟁인 코로나19와 싸우는 모습이 극 중 장면과 흡사했다”고 말했다.


<더 드레서>에서 선생님은 삶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 몇 년 전 예순을 넘긴 송승환은 “예순이 넘으니까,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 그 전까지는 죽는다는 걸 생각한 적이 없는데 <더 드레서>의 선생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20년 동안 배우보다 공연 제작일에 더 헌신해온 송승환은 앞으로 “노역 배우로 더 열심히 해볼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배우라는 직업이 좋은 것이 나이가 들면, 노역을 할 수가 있거든. <더 드레서>를 시작으로 무대, 드라마, 영화에서 자주 뵙기를 바란다. 주변에서 너무 부담을 많이 줘서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이걸 왜 한다고 했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끝낸 일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잘 융합했다는 평을 들은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한 많은 공부는 큰 자산이라고 했다.


“한국은 문화적인 DNA가 강하다. 고구려 때부터 춤 잘 추고, 활을 잘 쐈다. 유교, 일본 통치, 군사독재로 오랫동안 억눌려 왔는데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분출된 거다. 그 전까지 우리의 정서는 한(恨)이었는데 흥(興)이 된 것이다. 월드컵 즈음에 <겨울연가>가 한류 열풍을 일으켰고 ‘난타’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것도 2003년이었다.”


평창올림픽의 영광 직후 송승환에게 바로 시련이 찾아왔다. 시력이 급격이 악화된 것이다. 조금 떨어진 사람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고, 글씨는 아예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2000년대 PMC에서 프로듀서로서 송승환과 함께 일하는 등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김종헌 <더 드레서> 예술감독(쇼틱씨어터컴퍼니 대표 겸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 교수)은 “시력이 안 좋아져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왜 우려가 없었겠냐”고 운을 뗐다.


하지만 “내게 선생님이자 선배님 그리고 멘토 같은 분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매일 ‘진정 배우구나’라는 놀라움과 감사함에 벅차다. 연습실에서 거인 같은 모습을 본다”고 귀띔했다.


송승환은 “시력이 굉장히 안 좋다”고 했다.


“(앞에 앉아 있는 기자) 얼굴이 하나도 안 보이고 목소리만 들린다. 그런데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면 리허설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암전에서만 다른 배우 팔에 의지할 뿐이다. 작년 드라마 <봄밤> 출연 때부터 시력이 안 좋아져 걱정을 했는데 막상 해보니 연기를 할 수 있겠더라고.”


대본은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걸 듣고 통째로 외웠다.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리딩 전에 다 외워갔다. 안 보이는 게 익숙해졌다. 다행히 의학적으로는 더 나빠지는 건 멈췄다고 한다.”


선생님 역의 송승환과 함께 호흡할 의상 담당자 노먼 역에는 안재욱 배우와 오만석 배우가 더블 캐스팅됐다. 이번에 처음 송승환과 호흡하는 안재욱은 “무대에서 선배님과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 PMC프로덕션이 제작한 뮤지컬 <달고나> 초연 배우이기도 한 오만석은 “선생님보다 대표님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썼는데 이런 유연함과 포용력을 가진 배우가 그 나이대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했다.


송승환은 안재욱과 오만석의 차이점에 대해 “묵직한 데 날카로운 가벼움(안재욱), 가벼운 것 같은데 진중한 무거움(오만석)이 있다”고 봤다.


송승환은 마지막으로 <더 드레서>의 선생님 대사를 읊으며 의지를 다졌다.


“이렇게 무참한 상황에서 우리는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각자가 힘을 다하고 있다. 지친 심신을 충전하기 위해 극장으로 많이 와달라. 지금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한편 <더 드레서>는 올해 25주년을 맞은 정동극장이 <은세계>(2008) 이후 12년 만에 선보이는 연극이다. 김희철 정동극장 대표는 “정동극장은 오만석씨가 공길로 출연한 <이>, 손숙 선생이 출연하신 <어머니>, 강부자 선생이 출연한 연극 <오구> 등 연극으로 봐서도 유서 깊은 극장”이라면서 “이제 <더 드레서>를 시작으로 매년 한 편씩 신작 연극을 지속적으로 올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의 부감독 겸 폐막식 총연출을 맡아 송승환을 보좌한 장유정 연출이 '더 드레서'에서 각색과 연출을 맡아 그와 다시 호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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