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9회

여체로 인해 정신 흐물흐물…교착 상태에 빠져 헤매는 기분이었다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8/14 [12:17]

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9회

여체로 인해 정신 흐물흐물…교착 상태에 빠져 헤매는 기분이었다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8/14 [12:17]

진실이라는 상표와 거짓 욕망들의 행진…가짜 현실 내려다보는 맛이랄까
솜희가 내 머리칼 매만지며 히히 웃자 백발로, 호호 웃자 흑발로 변했다


“당신의 진실은…비닐 봉지에 싸여 있는 것 같아 잘 느낄 수가 없어요”
“또 세상 탓, 먼저 마음부터 신선처럼 변해 봐요, 그럼 내조 잘할 테니”

 

▲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최승우씨가 2020년 5월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현관 캐노피에 올라가 형제복지원 사건 등에 대한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모습. <뉴시스> 

 

제3부 <2>사랑의 오염


“난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요. 다만… 너무 야한 말은 하지 마요.”


“내가 언제 그랬어?”


“아까… 양고추니 회음부니….”


“난 그런 말하지 않았는데…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의 장점을 배우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 더러워 침 뱉어 버린 가래와 피고름을 빨아 먹는 원숭이같아.”


“아무튼… 그러지 마요. 일부러 그런다는 건 알고 있지만 너무 안 어울려. 왜 멋진 얼굴을 악마처럼 망측스레 짓궂게 가장하곤 해요. 응?”


“….”


“이번 작품은 너무 심각하게 하지 말고 좀 재미있게 쓰세요. 요즘 신세대 독자들은 책 내용이 아니라 책 표지에 비친 자기 이미지를 찾는다잖아요. 책을 사서 꼭 읽지 않아도 마음의 거울처럼 슬슬 넘겨 보며 마스코트로 여기거든요.”
“그거 좋군. 인터넷 서핑 하듯… 그래야지 뭐. 난 예전에 남의 책이 마음에 안 들면 갈기갈기 찢어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어머나, 대체 어떤 거예요?”


“몽키하우스라고… 성병에 걸린 양공주들을 잡아 강제 수용한 곳이었지.”


“치료해 주려고?”


“그건 명목상의 간판일 뿐이었어. 사실은 미군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자들을 교육하고 체벌하는 수용소였지. ‘컨택’이라고 해서, 일단 미군이 지목하면 성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잡혀가는 거야.”


“그녀들에겐 지옥 같았겠다. 그런데 왜 몽키하우스예요?”


“세상의 자유가 그리워 감옥 창살에 매달린 채 절규하던 여자들이 원숭이 같다며 미군들이 붙인 이름이라더군.”


“어머, 참 짓궂어. 장난삼아 그랬을까?”


“그랬으면 좋겠지. 하지만 몽키하우스에 수용된 수많은 여자들이 강압적이고 열악한 상황 속에서 죽임 당하거나 스스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니까… 결코 장난이 아니라 사람을 짐승 취급했다는 증거가 아니었을까?”


“응….”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마 지금도 미국군뿐 아니라 미국 사람들도 한국인을 인간 같잖은 유치한 원숭이로 생각할지 몰라. 제정신을 빼놓은 채 모든 분야에서 오로지 미국만 모방하려 지랄치는 꼴이니 말야.”


“….”


“모방을 해도 제대로 자기 형편에 맞게, 적어도 일본인들처럼 영리하게 하면 얼마나 좋아. 그러니 앙큼하나마 대접받잖아. 미국은 땅이 넓어 자동차가 많을 수밖에 없고, 집 구조가 달라 애완견을 실내에서 기른다지만… 요즘 한국인들은 자동차 지옥과 애견 지옥에서 산다고 할 수 있어.

 

미국이나 유럽처럼 법규를 엄중히 제정해 술 취한 듯한 광인과 광견들을 미리 방범해야 할 텐데 말야. 이 좁은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치광이 같은 차에 치여 죽고 개놈들한테 물려 죽고 컹컹대는 소음으로 고통받는지 몰라. 그걸 수리과학자가 한번 조사해 본다면 얼마나 많은 국가적 손해가 날지….


만약 아메리카가 한반도처럼 좁았다면 미국인들은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애용하고, 차량을 페스트 균을 보유한 쥐처럼 규제하고, 애견보다 이웃을 더 선호하겠지. 합리적인 그들은 정말 그럴 거야. 하핫, 그런데 한국인들은 남자고 여자고 죄다 그들의 양×과 항문을 빠느라 정신이 빠져 더럽다거나 징그럽다는 생각 자체를 하질 못해.

 

미친(美親) 병에 걸렸으면서도 오히려 스스로 깨끗하고 건강하고 아름답다고 착각한다고나 할까. 일종의 정신병자겠지 뭐. 세상을 좀 안다며 자만하는, 즉 한국 사회에서 좀 잘난 척하는 년놈들일수록 일본과 미국인들의 성감대를 애완견처럼 잘 핥아 주면서 번영하지. 일반 국민들을 슬금 내려다보며 바보 멍청이라 비웃으면서… 훗, 모방자의 비극, 나르시시즘과 자괴감이 뒤섞인 풍경이랄까.”

 

솜희는 말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엄마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만….”


“응?”


“보고 싶지 않기도 해.”


“왜?”


“모르겠어요… 왠지….”


친엄마인지 계모인지 몰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난 물어 보지 않았다. 애정을 나누며 키웠다면 설령 계모인들 어찌 그리움을 느끼지 않으랴. 또한 친엄마라더라도 자기 인생 스타일을 뻔뻔스레 강요했다면 오히려 머나먼 다른 세상으로 사라지길 은근히 바랐을 수도 있다.


요즘 사회에서 벌어지는 자식·부모 살해극을 보라. 그네들 가정의 안방 거울에 비친 비극상은 바로 우리의 초상화가 아닐까?


“미안해. 아무튼 나 때문에….”


난 다중적인 기분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솜희는 대꾸 없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난 서서히 눈이 감겨 명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신선 도사 수준은 아니지만 묘미가 있었다. 도통한 선사님이라면 허위라고 일갈하며 죽비를 내리칠지 모르되, 마치 백치인 양 선악에 대한 판단을 잠시 내려놓은 채 오색 구름 위의 가상 천당을 노니는 것이다. 길고 짧음, 더러움과 깨끗함, 내 못남과 너 잘남, 진실이라는 상표와 거짓 욕망들의 행진… 그 모든 것들을 잊고 무념무상 상태에서 사이비 니르바나를 경험하며 가짜 현실을 내려다보는 맛이랄까.


사실 지하방에 살 땐 몰입이 훨씬 더 잘 됐다. 느닷없이 짖어대는 개소리만 아니라면 내겐 일종의 작은 천국이었다. 악마의 소굴인 형제복지원에 대한 글도 한 발짝 한 발짝씩 잘 써 나갔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교착 상태에 빠져 헤매는 기분이었다. 여체로 인해 정신이 흐물흐물해진 탓인지 몰랐다.


하지만 난 솜희의 부드러운 손길 아래서 시나브로 혼몽스런 선잠 속을 떠돌다가 천길 낭떠러지로 서서히 떨어져 내렸다. 솜희야 사랑해, 하고 중얼거리는 나 자신이 같잖은데도 후회는 없었다.


짧은 잠인지 긴 잠인지 몰랐다. 솜희가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히히 웃자 문득 백발로 변하고 호호 웃자 흑발로 변했다. 언젠가 광화문 지하도에서 본 마술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행인들 앞에서 각종 장난감 물건을 팔던 그는 내가 계속 지켜보자 그만 가라며 슬쩍 눈알을 부라렸다. 그 망막 위에 솜희가 나타나 춤추며 요염하게스리 웃었다.


히히 하면 백두로, 입술을 살짝 오무리면서 호호거리면 흑두로 변하는 건 바로 내 머리카락이었다. 히히 소리는 이제 계속 이어졌고 한번 하얗게 변색된 내 머리는 본래대로 돌아올 줄 몰랐다. 얼굴마저 쭈글쭈글해진 듯싶었다. 늙어빠진 나 자신이 서글퍼 인생 무상을 탄식하다가 단말마 같은 비명을 내지르던 중 잠에서 깨어났다. 내 두 손은 솜희를 붙잡으려고 헤매었으나 허공을 쥐며 떨 뿐이었다. 씁쓸한 기분만 남았다.


솜희는 내 머리카락 대신 개의 하얀 머리털을 쓰다듬고 있었다. 악몽의 뒤끝이라 그런지 의혹과 함께 질투심이 부글거렸다. 하지만 표내긴 싫어서 팔을 쭉 펴 기지개를 켜고 나서 하품까지 보탰다.


“너무 그리 귀여워해 주지 마. 또 옛 버릇이 나올지 모르니까 말야.”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아니에요. 그냥 잠깐….”


순간 개놈이 차마 이빨을 드러내지 못한 채 목 속으로만 아르릉 거렸다.


“그것 봐. 또 지랄치잖아.”


“조금쯤은 귀엽기도 하잖아요. 가엾기도 하구….”


“그만둬!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란 건 거짓말이라 치더래두… 개가 인간의 얼굴 표정을 배우거나 훔쳐… 자기네 조상인 늑대를 보면 미개 무식하다며 비웃는 건 사실이 아닐까 싶어. 개놈들! 늑대가 자기네 보고 매족노, 매국노, 비겁자, 정신빠진 살덩어리, 미친 피에로라며 경멸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놈들은 인간의 앞잡이가 돼 동족 사냥에 핏대를 세우기도 하거든. 그러고는 인간이 던져 주는 선조 동족의 뼈다귀를 핥으며 자기 만족에 빠져 쩝쩝거린단 말야.”


“나를 바보 취급하느니 차라리 침을 뱉으세요. 그럼 핥아 먹을게요.”


“뭐?”


“한국의 어떤 사람들을 개 같은 짐승에 비유한 거잖아요. 그 속에 나를 포함시킨 듯해서….”


“무슨 소리야.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걸.”


“사실보다는 뉘앙스가 더 섬뜩해요.”


“쳇, 나 참….”


“그렇게 혀를 차는 건 내가 하찮다는 속마음을 은근 슬쩍 표현하는 거잖아요. 당신의 진실은… 마치 비닐 봉지 속에 싸여 있는 것 같아 잘 느낄 수가 없어요.”


“그럼 찢어!”


“그래봤자 뭐해요. 맘속이 두 쪽인걸… 여름철 선풍기가 시원해도 얼음과 다르고, 겨울 에어컨 난풍은 장작불과 다른걸 뭐.”


“나 참… 심플한 성격인 줄 알았더니 꽤나 까다롭군.”


“호홋, 다 자기 때문이야. 얼음 같았다가 화롯불 같았다가, 변덕스레 바뀌는 사람과의 사랑이 날 이상한 여자로 만들어요.”


“쳇!”


“두고 봐요. 앞으로 또 어찌 바뀌는지… 난 당신의 거울이 될 거예요.”


“흥, 무섭군.”


“염려 마요. 호홋, 자기가 신선처럼 행동한다면 나두 요조 선녀인 양 굴 테니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사람답게 살기도 힘든 세상인걸.”


“또 세상 탓이야. 먼저 마음부터 신선처럼 변해 봐요. 그럼 잘 내조해 드릴 테니….”


“마누라쟁이 같은 소리 그만 하고 타이핑이나 잘 하고 있어.”


난 외투를 걸치곤 현관 쪽으로 걸었다.


“땅거미가 내리는데 어딜 가려구?”


“여의도에.”


“거긴 왜? 국회의원님들한테 막 욕하려구요?”


“아냐. 내 입만 더러워져.”


“그럼 나두 함께 갈래요. 한강 구경도 하고 바람도 쐬구….”


“낭만 여행은 다음에 하자구. 지금은 형제원 피해자들 단식하는 데 가는 거야.”


“거긴 내가 가면 안 돼?”


“인사치레하러 가는 게 아니라 취재차 가는 거란 말야.”


“그래도 한번 가 보고 싶어.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해.”


“오지랖 넓히지 마. 거긴 지금 아마 남자들뿐일 거야. 자연스런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얘길 들어 봐야 해. 나 혼자 가더라도 어떨지 모르는데 괜히 여자가 생뚱스레 끼면 어색해져. 그냥 좋아하는 멜로 영화나 보고 있어.”


“싫어요. 구석쪽에 앉아 조용히 듣기만 하겠어요. 혹시 언짢은 눈치가 보이면 나와서 홀로 달 구경이나 할래.”


“말괄량이 요정처럼 까불지 마. 그들은 지금 목숨 걸고 절실히 생존투쟁 중이란 말야.”


“알겠어요. 그러니 오히려 자기 따라 내가 가야 해요.”


“뭐라구, 왜?”


“음… 남자들끼리 술이라도 한잔 나눠 마시면 얘기가 풀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요. 더구나 자긴 말주변도 별로 없고… 나 같은 순수한 요정, 하늘에서 귀양 와 당신에게 사로잡혀 유폐된 불쌍한 선녀가 간다면… 아마 그분들의 구슬픈 마음도 조금쯤 열릴지 몰라요.”


“제발 좀 웃기지 마. 날 보기 전엔 지옥 속에 유폐된 듯했다더니….”


“그래요. 자기 잘났어요. 어쨌든 갇혀 있는 건 마찬가지니까 오늘 밤엔 나가서 바람이나 좀 쐬자구요.”


“흥, 선년지 악년지 두고 보자구.”


난 중얼거리며 신발을 꿰차곤 밖으로 나섰다. 솜희는 철장을 벗어나는 새처럼 지저귀며 따라왔다.


<다음 호에는 ‘틀니의 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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