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8회

“아니, 대한민국 민주사회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오?”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7/31 [12:14]

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8회

“아니, 대한민국 민주사회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오?”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7/31 [12:14]

쇠창살 붙들고 내보내 달라는 사람, 십자가 향해 기도하는 사람
대부분의 인간 군상은 큰 죄 없으니 곧 풀려나겠지 바라는 모습

 

몽둥이 든 규율대, 그곳에선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물건 혹은 인형
“여기 일단 들어오면 대통령 할애비라도 맘대로 나갈 수 없단 말요”

 

▲ 2019년 9월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전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가 행안위 회의실로 들어가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다 국회 관계자들에 의해 회의실에서 쫓겨나고 있다. <뉴시스> 

 

제2부<6> 소녀 눈동자


그곳엔 어린애부터 노인네까지 두루 수용돼 있었다. 갓난 어린애부터 소년 소녀, 청년 처녀, 중장년 아주마와 아저씨, 저승꽃이 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요즘 시대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군부 독재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유신 정권을 거쳐 1980년대까지는 정부가 제 입맛에 거슬리는 국민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해 감옥이나 강제수용소에 처넣을 수 있었다. 일제 시대의 악질 경찰보다 더 악랄한 고문을 자행해 만신창이 병신으로 만들었으며 때려 죽여 암매장해 버리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 여러 가지 수용소가 있었지만, 형제복지원은 그 규모가 최대였으며 살인적인 구타, 소년·소녀 성폭행 등 상상을 초월하는 만행으로 악명이 높았다. 심지어 선감도 강제 수용소에서 이감돼 온 꼴통 원생마저 바짝 긴장한 채 죽음의 늪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할 정도였다.


(국가지원금을 이중·삼중으로 받아 챙겨 먹기 위하여 전국의 복지원과 수용소들은 서로 음모해 원생들을 빌려주고 돌려 막는 따위의 온갖 방법으로 이른바 ‘원생 장사’를 했다-지은이 주.)


북구 주례동 산 18 지옥 번지.


저 멀리 산기슭에 황량하고 거대한 회색시멘트 건물들이 위압적으로 죽 늘어서 있었다. 원생들이 직접 피땀 흘려 지은 건물이 그들 자신을 가둬 놓고 있었다.


수송차가 육중한 검은 철문을 밀고 들어서면 괴상스런 마찰음과 함께 즉시 닫혔다. 그 순간부터 사람의 모든 자유가 박탈당했다.


굵은 쇠창살을 붙들고 흔들며 죄가 없으니 내보내 달라고 절규하는 사람도 있고, 산꼭대기에 우뚝 선 십자가를 향해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인간 군상은 긴장한 채 그저 수런거렸다. 큰 죄가 없으니 곧 풀려나겠지 하고 바라는 모습이랄까.


하지만 그건 모두 착각이었다.


운동장(연병장) 한가운데로 모이라는 단 한 마디 명령이 우렁우렁 울려 퍼진 즉시 붉은 완장을 차고 손에 몽둥이를 든 규율대들이 나타나 복종하지 않는 ‘물체’들을 마구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그곳에선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물건 혹은 인형이었던 셈이다.

 

‘아악! 으윽!’ 하는 비명소리 속에서 대열은 칼로 자른 두부같이 반듯이 정돈되고, 한쪽엔 반주검 상태에 빠진 인형이나 부상자들이 뻗어 있었다. 그들은 즉 형제복지원의 규율을 실제로 보여주고 더욱 강고히 유지시키기 위한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누군지 개트림을 하며 이동식 철제 단상 위로 올라섰다. 그 꼴로 보아 원장은 아니었지만 제법 위세를 가진 자인 듯했다. 독사 같은 눈을 번들거리며 그는 지껄였다.


“이곳은 하나의 신세계다! 자기 하기에 따라 미국 서부 영화에서처럼 사나이의 멋진 생존법을 터득해 출소 후 새로운 인생을 구가할 수도 있고 개병신 같은 존재로 빌빌거릴 수도 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다만, 너희들은 건맨이 아니라 인생 쓰레기임을 명심하고 늘 시시각각 새사람이 되게끔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령에 대해 절대 복종해야만 한다! 알겠나? 불만 있는 자는 손을 들어라!”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아무도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너무 살벌했던 것이다.


사단은 본관 안으로 들어가 수용자 분류와 신상명세서를 작성할 때 벌어졌다. 자기는 부랑자가 아니라는 애소가 이어졌다. 그중 한 젊은 남자는 점퍼 윗주머니에서 종이쪽 한 장을 꺼내 흔들며 소리쳤다.


“이게 뭔지 좀 보시우. 자, 똑똑히 보란 말요! 이건 국가에서 발행한 귀향증이오. 사기꾼 놈한테 속아 집도 논도 마누라까지도 뺏겨 버렸수. 사이비 신흥종교 협잡꾼 놈들한테… 참다참다 못해 개쌍놈 하나를 패고 감옥살이하다가 얼결에 여기까지 왔수다.”


“잘났다, 이 새끼야! 까딱했으면 살인자가 돼 교수형 당할 뻔했구먼. 집도 절도 없으니 여기가 천국이라 생각하고 얌전히 감사하게 생각하라구.”


붉은 완장을 찬 채 감시하던 두 사내가 원통한 인간의 절규를 비웃으며 양 뺨을 사정없이 갈긴 후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 다음엔 반질반질한 양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불평·불만을 토해냈다.


“아니, 대한민국 민주 사회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오? 울화통이 터지지만 가능한 이성적으로 말하겠소. 난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유명한 제약회사 사무직 과장대리요. 경남 지사에 출장 왔다가 서울 본사로 복귀하려고 부산역 대합실에 앉아 잠시 조는 사이 깡패 같은 놈들에게 끌려 왔단 말요. 당장 내보내 주지 않는다면 경찰에 신고하겠소!”


“하핫, 그러슈? 나름대로 뇌물을 주고 받으며 잘 살았겠군. 하지만 어쩐다? 여긴 일단 한번 들어오면 대통령 할애비라도 맘대로 나갈 수 없단 말요. 왜냐? 바로 대통령 각하께서 윤허하셨으니까. 흐흐… 규칙대로 처리될 뿐이니 잔말 마슈.”


“사설 범죄 집단이 아니면 도저히 이럴 수가 없어! 대통령 자체가 희대의 살인마라고 지탄받고 있는 마당에 뭔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만 그 남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완장 찬 사내의 억센 주먹이 입을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비명 소릴 낼 틈도 없었다. 주먹질이 퍽퍽 둔탁하게 이어졌고, 중년 남자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무릎 꿇고 쓰러져 신음했다.


피거품 묻은 이빨 몇 개가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왔다. 침과 함께 땅바닥에 굴러 내린 자신의 생이빨을 바라보던 사내는 문득 기괴스런 표정으로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흙 묻은 이빨을 하나씩 줍던 그는 갑자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망실돼 다시 되찾을 길 없는 자기 생명의 유일물에 대한 전율….


“뭘 그딴 걸 갖고 지랄이셔, 응? 남은 옥수수까지 왕창 다 털어 버리기 전에 정신차려, 짜샤!”


“이 썅놈!….”


중년 남자는 온 힘을 끌어 모아 완장 찬 사내의 사타구니를 움켜쥐었으나, 반대로 급소에 발길질까지 당한 후 짐승처럼 끌려 나갔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 얼마쯤 벽시계 바늘이 째깍거렸을 즈음, 갑자기 늙수그레한 어떤 촌로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바싹 마른 입으로 호소했다.


“선생님, 제발 한번만 봐주시우. 난… 저 사람들맹키로 죄가 없다고 뻗대진 않겠시우. 어릴 적에 새 새끼를 둥지에서 꺼내 키우려다가 죽인 적도 있고, 길거리에서 주운 돈을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은 채 슬쩍 챙기기도 했고, 그리구 또… 마누라 몰래 딱 한 번 홍등가에 들렀다는 사실을 여태껏 숨기고 있으니까유… 좋소, 내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겠소이다!

 

다만… 딱 한 가지만 애걸복걸 부탁 드릴게유… 사실은 내일 낮 정오에 우리 큰딸이 결혼을 합니데이. 반평생 살아오매 인생살이가 여의치 않다는 건 익히 겪어 알지마는… 첫딸 년 혼례식에 멀쩡한 아비가 이런 데 갇혀 불참한다먼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시유? 나는 지금도 이게 꿈속의 지독한 악몽이 아닐까 싶구먼유. 선생님, 제발 좀 선처해….”


“흥, 그런 더러운 죄를 지었으면 딸을 위해서라도 예식장에 가지 말고 여기서 속죄하는 게 더 좋겠구먼. 할배 자신은 뻔뻔스레 별 죄가 아니라 변명하지만 누가 어찌 알겠어? 당신이 기분에 취해 어느 창녀의 뽁 속에 싼 용갯물이 어떤 애를 낳게 만들었다면, 과연 그 애의 삶이 어땠을지 한번쯤 생각해 보기나 했수, 응?”


“창녀가 뭔 애를 낳으려구….”


촌로 역시 누르칙칙한 주름 투성이 뺨을 얻어맞곤 끌려가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이게 뭔 날벼락이여! 여긴 국가도 법도 없는겨!”


하지만 어떤 대꾸도 메아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음엔 한 어린 소녀 차례였다. 열 살쯤이나 됐을까, 얼핏 예쁘장한 얼굴인데 볼 한쪽에 불그무레한 반점이 핏방울이나 노을처럼 퍼져 있어 일말의 애달픔을 왠지 모르게 자아냈다.


“넌 왜 이리 왔어. 계집애라면 저쪽 줄로 가!”


뚱뚱한 관리원이 말하자 소녀는 긴 머리카락을 찰랑찰랑 흔들며 대꾸했다.


“난 집 없는 떠돌이 계집애가 아니라 공주란 말야. 그러니 어서 내보내 줘.”


“쪼꼬만 미친 년이 지랄하네! 너 코끼리 꼬추 맛을 한번 보고 싶냐, 웅?”


“씨발놈, 지랄 떨고 자빠졌네. 니 좆이 그리 크면 니 콧구멍 속에 집어넣으면 딱 되곘네. 호호….”


“요 쌍년, 언젠가 꼭 한번 내 맛을 보여주지.”


사내는 볼펜으로 소녀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 소녀는 때 절은 머리칼을 세차게 흔들었다. 누추한 옷 속의 호리호리한 몸매도 따라 율동쳤다.


“썅 개색… 니 마누라한테나 꽂아 줘! 호호….”


소녀의 웃음은 중간에 끊어졌다.
완장 찬 놈의 억센 손이 입술을 막곤 냉큼 끌어 갔기 때문이었다. 소녀의 발버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수많은 사내들이 잡혀 와 있었지만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더 이상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 극단 자갈치가 2014년 불법 감금과 폭행치사 등으로 물의를 빚은 옛 부산 형제복지원의 참상을 소재로 다룬 창작극 ‘복지에서 성지로2’를 무대에 올린 모습. <뉴시스> 

 

제3부 <1>사랑의 오염


하얀 눈이 또 내렸다.
한 며칠 흐리더니 펄펄 내려 세상을 순수의 사원처럼 덮어 갔다.


하지만 그 속에 얼마나 많은 허위와 추악이 숨어 있는지 대부분의 인간은 이미 짐작한다. 다만 흰 눈 속에서 잃어버린 진실과 선량함과 아름다움을 꿈꾸고 추억할 뿐….


지금은 매머드 아파트 단지로 변해 사라져 버린 형제복지원도 한 겹 한 겹 눈에 덮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곳….


창문을 떠나 거실 쪽으로 갔다. 티브이 뉴스 화면에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솜희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채 살풋 잠든 모양새였다. 난 이불을 가져다가 그녀의 육신 위에 덮어 주었다. 평소엔 몰랐는데 좀 해쓱해진 얼굴이다. 아무리 나 같은 괴팍스런 남자에게 연정을 느껴 이런 상황을 만들게 됐다지만 개인적인 고민이 없을 리 없다.


난 허리를 굽혀 그녀의 창백한 이마에 살짝 입맞춰 주었다. 눈은 뜨지 않았으나 잠들어 있지 않다는 걸, 적어도 조금 전쯤 깨어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대체 왜 자연스레 눈을 뜨지 않을까? 왜? 장난으로 그러는 것 같진 않았다. 난 다시 창문가 쪽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날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 왜 불안하고 초조스럽지 않겠는가. 그럼 그동안 다정다감하고 침대에서도 애정을 속삭이던 예쁜 입술은 인형의 입이었나, 내가 속은 걸까? 아냐, 존재 자체의 공포감은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지 뭐. 음, 그래도 좀 섭섭하고 허망하긴 한걸….


난 창문 앞에 서서 펄펄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가옥들은 백설에 덮여 가면서도 자기를 과시하려는 성싶었다.


유리창 아래쪽에 문득 티브이 화면이 비쳤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남녀 의원들이 뒤섞여 파당의 이익을 내세우며 개떼처럼 싸우는 장면이었다. 민의의 전당 안쪽에선 피가 튀는데 바깥은 흰 눈에 덮이고 있었다. 그 한구석에서 단식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의 얇은 비닐 텐트가 눈발에 스산스레 묻혀 가는 모습도 잠시 잠깐 스치듯 비쳤다.


저 하나의 풍경을 두고도 사람들 혹은 언론은 자기네의 아집 아견에 따라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칠 터였다. 엄동설한 속에 웅크린 채 단식중인 저 사람들을 보고도 사리사욕의 이기심이라 비난하는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들 자신의 사리사욕엔 잔뜩 눈독을 들인 채….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나 자신의 진실과 진심도 믿을 수 없으니… 유리창에 비쳐 어른거리는 티브이 화면이 진상인지 복제품인지, 마당의 오동나무에 피어나는 설화(雪花)가 실재인지 환상인지, 내 기억이 옳은지 눈앞 현실이 허상인지 종잡을 길이 없었다.


난 솜희의 눈에 입맞춰 주고 싶어 몸을 돌려 창가를 떠나려 했다. 그런데 침대에 누웠으리라 생각했던 그녀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눈도 졸음기 없이 거울처럼 맑았다. 난 흠칫 놀랐으나 겉으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섬뜩한 느낌이 든 건 나 자신의 죄악 떄문이었을까.


“왜, 응?”


솜희는 대꾸 없이 나를 따라 입귀에 살짝 미소 띨 뿐이었다. 그러곤 유리창에 다가서서 흰 눈에 덮여 가는 바깥 세상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섭지 않아?”


“자긴 내가 무서워요?”


“아니….”


“거짓말.”


“난 가끔 자기한테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대체 뭣이 두렵겠어… 오히려 자기가 날 두려워하지 않을지 궁금한걸.”


“때론 두려워요. 하지만… 무서움 없는 사랑은 없지 않겠어요? 호호….”


“거짓은 어때, 응?”


“알면서… 거짓 없는 사랑이 과연 이 세상에 있었고, 지금도 있을까요?”


“몰라. 여긴 없지만, 어딘가 먼 만년 동굴 속엔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이 세상에도 있어요. 뭐, 나두….”


“내 죄악성 땜에… 미안해.”


“이 세상에 살면서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응? 저 하얀 눈 속에도 오염물질이 섞여 있는걸. 그게 뭐 백설의 죄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아름답군. 자기가 옆에 있어서 그런 것 같아.”


“….”


우리는 오래도록 눈 내리는 풍경을 함께 바라보았다.


“아, 언젠가 지옥 같은 형제복지원에도 백설이 펄펄 내려 지붕과 마당을 덮고, 수용자들의 마음도 조금쯤 덮어 주었을까.”


솜희는 말없이 창 틈으로 새어든 눈바람에 흩날린 머리카락을 걷어올렸다.


“자긴 왜… 생긴 모습과 달리 그런 무서운 이야길 쓰는 거예요? 남들처럼 재미있거나 감성적인 소설을 쓰면 좋을 텐데….”


“개소리만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지하방에서 그러려고 애쓰고 있을지도 모르지.”


“미안해요. 이젠 짖지 않으니 지금부터라도….”


“아냐, 꼭 그런 것만은… 물론 나도 특이하거나 특별한 소재에 기대지 않고 문학 본연의 방법으로 인간 존재를 탐구하고 싶었지. 그런데 의외로 방향이 바뀌어 버렸어. 어느 날, 선감학원에 대한 소설화 의뢰가 왔을 때 난 그 낚시를 덥석 물었지 뭐야. 진실을 탐색한다는 생각 외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 꿈도 없지 않았지. 흐흐, 인세는 별로 못 받았지만… 선감도의 비극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되었달까. 이것으로 땡! 하고 생각했지.”


“응?”


“그런데 주인공의 후일담이 궁금하다는 독자들의 요청이 있다면서 속편을 쓰라고 출판사 측에서 권하더군. 선인세 3백만 원이라는 미끼를 앞에 두고 물까 말까 고민하다가 지렁이의 달콤함을 못 이겨 결국 물고 말았어. 그 무렵 이따금 다니던 남산 도서관에서, 어린 소년 소녀 북파 공작원들이 6·25 당시 활약했다는 증언을 보곤 긴가민가하던 참이었지. 그런데 그 순간부터 내 마음속에 일종의 마약이 주입되지 않았는가 싶어.”


“무슨 마약?”


“음, 글쎄… 사람 마음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천재거나 도둑놈이겠지. (둘 다 훔치는 덴 도사니까.)… 흠, 마음속에 욕망이 섞여 들어 여러 갈래로 복잡했어.”


“….”


“난 인기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개년놈들처럼 사탕발림으로 하긴 싫었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에도 유행이 있겠으나 따르고 싶은 맘은 없었거든. 그래도 어쨌건 특이한 소재에만 기대어 개발 쇠발 지랄치는 짓은 삼가고 싶었는데, 생명력이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야. 그런데 쓰다 보니 차츰 은근히 재미가 생기더군.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고 나아가 피해자들의 원한을 내 나름대로 풀어 준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헌데 출판사 사장이 방대한 철학사전과 10권짜리 세계철학사를 만드는 데 큰돈을 들였다가 죽을 쑤는 바람에 땡전 한푼 받지 못한 채 소설 출간은 무기한 보류되고 말았어. 그런데도 난 세 번째 작품에 착수했지. 중국 시인 이태백인지 두보가 과거에 연거푸 낙방하고서도 절망하긴커녕 태산 꼭대기에 올라서서, 인생의 진리와 진실을 온 세계에 펼치겠노라 외치던 호연지기와는 좀 다르겠으되… 설령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꼭 써야 한다는 작가의식이 발동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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