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8회

인간을 악귀의 구렁으로 몰아넣은 곳, 현대의 아수라 지옥!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7/24 [10:37]

김영권 장편소설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제8회

인간을 악귀의 구렁으로 몰아넣은 곳, 현대의 아수라 지옥!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7/24 [10:37]

한때 붉은 핏기 섞인 거품이 진실 향해 솟아오르다 사그라져 버려
이 세상과 피해자들 심장 속에선 비애의 곡조로 맥동치지 않을까?

 

부랑인 수용시설로 바뀌고 위탁보호 계약 맺음으로써 생지옥 시작
영화 속 괴물이 사람 잡아 가둔 채 살을 뜯어 먹고 생피 빨아 마시듯
원생들의 노동 착취하고 성폭행 저지르면서 국가의 적극적 지원 받아

 

▲ 재수 없게 거미줄에 걸린 나비며 꿀벌이며 개미들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했지. <사진출처=Pixabay> 

 

제2부<5> 신의 침묵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솜희 엄마는 아직 무소식이었다. 벌써 한 주일이 지나 보름째가 다 되어 가건만….


나로선 이기적인 그 여자가 돌아오는 건 무척 싫었으나 차마 죽음까지 바라진 않았다. 그 악녀에게도 찾아보면 전혀 장점이 없진 않을 테고,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 또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저 어딘가 먼 순례 여행 후 한 가닥 삶의 진실을 깨우쳐 돌아온다면 멋쩍은 인사나마 한 마디 건넬 용의는 있었다.


꼭 필요하다면 내가 다시 지하방으로 내려갈 수도…. 설령 솜희가 따라 내려오지 않더라도…. 그런데 왠지 의외로 솜희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훌쩍 나갔다가 일주일이나 한 달쯤 후 귀가한 경우가 흔했던 모양이었다. 남편과 함께 혹은 홀로….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간혹 한 번씩 전화가 걸려 왔지만 솜희가 받아 여행 중이라고 대답하면 곧 끊어졌다.


3층짜리 공동주택의 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의 시멘트 섬에 사는 그들은 자기 속을 내보이고 싶지 않은 만큼 이웃의 내장도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간혹 치고 박는 싸움을 벌여도 별무관심이었다. 아마 살인이 일어난대도 모른 척할 성싶었다.


내겐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예전 같으면 피 터지는 집안 싸움이나 개소리에 대해 공동체적 대응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젠 내가 처한 상황이 예사롭지 않은 만큼 그저 조용히 무관심하길 바랐다. 흐흐….


문득 세상이 비극의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이 비극적이라는 얘기만은 아니다. 현재 생존 현실도 그렇겠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숨쉬는 과거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 또한 비극을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이 많다.


(여기저기서 희극적인 비누 거품이 부글부글 솟아오르긴 해도 강물의 분류는 깊은 상심을 가슴속에 품은 채 흐른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비극 없이는 희극도 없고 희극 없인 비극도 그저 공허 비참할 뿐이다. 직접 체험해 봐야 비극의 깊이를 알 수 있는가.)


혹시 형제복지원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때 붉은 핏기 섞인 거품이 진실을 향해 솟아오르다가 사그라져 버렸으나, 여전히 이 세상과 피해자들의 가슴 심장 속에선 비애의 곡조로 맥동치고 있지 않을까?


어떤 피해자 개인이든 우리 사회 국가든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으면 좋은 미래를 바라볼 수가 없다. 종교적인 징벌이나 윤회를 배제하더라도, 현실사회 생활과 국가 체제는 늘 돌고 돌기 때문이다. 마치 욕망의 맷돌처럼… 인간이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잊혀져 버리기도 하겠거니와 끝내는 변질돼 좀비 균처럼 광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무서운 일인데도 우리는 태연하고 무심하다. 자기 자신에게 재앙이 미치기 전까지는….


솜희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은근히 나를 증오하고 있는지 사랑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 작업에 참여해 거들어 주는 편이었다.


처음엔 거부감을 지닌 채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는데(혹시 나에 대한 반감이었을까?) 차츰 피해자들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난 그녀에게 조금씩 설명해 주었다.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 원고엔 쓸 수 없는 얘기에 대해 솜희는 소녀처럼 처녀처럼 호기심을 내보였다.

 

옛날 옛적에 형제(자매)복지원이란 곳이 있었지. 지상의 지옥이랄까. 땅속 구만 리가 아니라 부산시 북구 주례동 산 18번지에 실제로 존재했던 회색의 건물….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부 시대인 1975년 무렵부터 전두환 철권 통치 시절이던 1985년 전후까지 가장 맹위를 떨쳤지만, 그 모태는 1960년 초에 설립된 형제육아원이라더군. 그리고 1970년대에 부랑인 수용시설로 바뀌고 부산시와 위탁보호 계약을 맺음으로써 생사람의 지옥이 시작되었다지.


만약 그 당시 너 또는 내가 부산역이나 남포동 혹은 영도 다리 부근에서 서성거리다가 붙잡혀 그곳으로 끌려갔다면, 현실 위에 군림했던 지옥의 맛을 톡톡히 보곤 지금과 다른 인간이 돼 있을지도 몰라. 인생의 흐름도 전혀 다르고….


그곳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은 자기가 진짜 자기 자신인지 가짜인지 헷갈릴 뿐더러 밤낮 없이 괴기스런 악몽에 시달린다더군. 왜 안 그렇겠어, 응? 자살까지도….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타인의 비극에 대해 짐짓 민감할 성싶은데, 한국에선 오히려 점점 더 매정하고 냉담해져 갈 뿐이야. 미드(미국 드라마)나 일본 영화를 보면서는 가짜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말이지. 왜 가짜 눈물이냐구? 슬픈 장면에서 깔깔 웃어대기 때문이랄까. 후훗, 대체 왜 누가 누구 좋으라고 이 나라를 생존 적자의 동물계로 변질시켜 나가고 있는 걸까? 남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증폭시키려 하는 건 진짜 행복을 모르기 때문이겠지. 흐흥, 답을 안다고 무슨 수가 있는 건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구.


아무튼 그 시절 어떤 사람은 부산에서 거대 항구도시의 낭만을 만끽했는지 모르지만, 재수 없게 거미줄에 걸린 나비며 꿀벌이며 개미들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했지. 이건 희떠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었다더군.


거미는 포획된 생명체를 곧장 발라 먹기도 하지만, 일단 칭칭 감아 마취시킨 후 두고두고 싱싱한 엑기스를 계속 빨아 먹는다. 형제복지원의 박인근 원장 이하 졸개들도 자기들의 탐욕과 쾌락을 위해 죄없는 수용자들을 그렇게 다뤘다지.


그 당시 처가살이하던 중 장인에게 일종의 쿠데타를 일으켜 복지원을 장악한 그는 서서히 하나의 독재 왕국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혁명을 빙자한 쿠데타, 1인 철권독재, 살인마적 인권 유린이라는 점에서 박통(박정희)과 그의 양아들격인 전통(전두환)의 행실과 비슷했다. 그 이후, 박인근 원장의 수완이 좋았는지 혹은 두 대통령들께서 박 원장을 졸개로 이용했는지 속셈은 알 수 없지만 한통속의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누가 누굴 속이고 속였는지 굳이 따질 필요도 없으리라. 서로 이용한 관계… 선진조국 건설이니 정의사회 구현이니 하는 플래카드를 하늘 높이 펼쳐 놓은 채, 부정부패한 특권자들에게 면죄부를 팔아먹고, 가난한 국민들은 일개미처럼 부려먹다가 조금만 불평불만을 흘려내도 간첩이니 빨갱이니 누명을 덧씌워 감옥이나 수용소로 보냈었지.


권력자들은 국민을 반동분자로 날조해 인간 쓰레기로 처분해서 좋고, 박인근 원장 같은 자들은 국가 보조금을 꼬박꼬박 타먹어서 만고땡이지 뭐. 개나 소처럼 두당 얼마씩에 거래한 셈이랄까. 마치 영화 속의 괴물이 사람을 잡아 가둔 채 살을 뜯어 먹고 생피를 빨아 마시듯 그들은 원생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성폭행을 저지르면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단 얘기야. 공생과 기생….

 

▲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국제시장’ 한 장면. 


원장 박인근은 어떤 인물이었던가?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천사의 가면을 쓴 괴인이었단다. 악귀와 괴물이 인간의 형상 속에 들어 있었달까.


대부분의 복지 시설이 신의 사랑을 내세우고 있지만, 특히 박 원장은 본관 지붕 꼭대기에 십자가를 내세워 놓은 채 천국에 대하여 연설하곤 했다지. 진짜 천국이 아닌 주관적인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 그 사이비 복지원은 지옥을 꼭 닮아 있었대. 인간을 신에게 가까이 가게 하기보다 악귀의 구렁 속으로 몰아넣은 곳, 현대의 아수라 지옥!….


그는 왜 그랬을까? 혹시 그 자신이 대통령보다 더 지엄한 신으로 행세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소왕국의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악신….


그는 허우대가 좋고 얼핏 보아 호인형이었다더군. 거무죽죽하고 두꺼운 낯가죽엔 늘상 자기 나름의 주관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데, 원생들은 독사가 눈을 번득거리는 것 같아 맘속으로 더 두려워했대.


어느 날 오후, 양복을 쫙 빼입고 나타난 그는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휘파람을 불었단다. 문득 이슬비가 몇 방울 떨어지자 그는 하늘을 향해 구시렁거린 후 마당 한쪽에서 한창 고된 작업 중이던 원생들을 향해 손짓하며 소리를 질렀대.


맨 앞쪽에 서 있던 어린 원생이 삽을 든 채 지친 다리로 흐느적흐느적 달려갔어. 혹시 가장 빨리 가면 건빵이라도 하나 얻어 먹을 수 있는 선착순 경기로 생각했는지 몰라. 그런 일은 종종 있었다니까. 늦게 도착하는 놈은 아무리 전심전력 내달렸더래도 무슨 죄인인 양 몽둥이 밥이 되었대.


소년은 1백 미터 단거리 경주 선수처럼 달려갔지만 원장의 얼굴엔 점점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지. 시간감각이란 건 어차피 객관적일 수 없고 주관적이니까. 젖 먹던 힘까지 내어 한껏 내달렸으나 황제 원장의 눈엔 느림보 거북이로 보였던가 봐. 그는 헐떡거리는 어린 원생의 팔꿈치에 낀 삽을 억세게 뽑았어. 긁힌 어린 손등에서 붉은 핏방울이 돋아나 이슬비와 섞여 흘러 내렸지. 박 원장은 삽날로 원생의 발을 찍으며 호통을 내질렀어.


“여기가 네 집 안마당이냐, 엉? 어디서 엄살 떨어대며 느즉느즉 걸어와, 새꺄! 우산 가져오랬지 요걸 갖고 도대체 뭘 하라는 거야, 앙? 너나 실컷 뒤집어쓰라우!”


그는 삽을 들어 소년의 빡빡 깎은 알머리를 내리쳤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은 괴이스런 비명을 흘리며 쓰러져 흙탕물 속에서 뒹굴었대. 발가락들이 반쯤 떨어진 채 피를 흘리며 물 위에 이상스런 지도를 그리고, 머리는 찢겨 허연 골수가 붉게 물들었다더군. 자만심에 가득 찬 악동들은 죄 없는 개구리를 잡아 내동댕이치곤 깔깔거리곤 하지. 흠, 그런 악동 앞의 개구리처럼 파르르 떨며 몸부림치는 어린 원생을 잠시 쬐려보던 박 원장은 삽날로 몇 번 더 내려치곤 복지원 본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단다….

 

“그앤 어찌 됐나요?”


솜희가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껍질을 반쯤 벗겨 놓은 개구리가, 팔딱거린다고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한번 상상해 봐.”


“아유, 무서워!”


솜희는 진저리를 쳤다.


“그곳에서 죽음은 돌멩이나 지푸라기처럼 늘려 있었다더군. 삶과 죽음의 실체는 은닉되고 누르칙칙한 갱지에 적힌 수인번호가 사람 대신 행세를 했다지. 그 갱지 명부를 찢어 구겨 버리면 한 인간 존재의 생몰마저도 지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거지.”


“살인자.”


“흠, 살인자보다 더 간악하지 않을까? 생명을 짓밟는 것도 모자라, 자기가 믿는 신을 내세워 인간을 우롱하고, 자신을 신성화시키고, 결국엔 신을 타락시켜 자신의 노리개로 삼은 괴물… 내면의 깨달음을 통해 초인이 되는 게 아니라, 외면적인 허세와 강압으로 인신(人神)인 양 군림하려 획책했기에 그런 살인적인 폭력이 필요했던 거겠지.

 

고등종교를 흉내낸 사이비 종교라기보다… 기독교를 제멋대로 해석하여 이른바 복지를 빙자한 채 신흥 황금 화수분 왕국을 건설하려고 광분한 자… 정상적인 관계보다 절대권력과 절대복종을 강요한 독재자 혹은 그의 모방 그림자랄까? 그의 신, 신념, 진실이란 건 주관적인 과대망상에 바탕을 둔 악마의 욕망이 아니었을까?”


솜희는 말없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여자란 대체 뭐니, 응?”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면서 여잘 모른다구?”


묵묵히 머리를 끄덕였다.


“흠, 나 역시 잘 모르겠어. 인간을….”


난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여 한 장의 사진을 화면에 떠올렸다.


박 원장 부부가 아들 같은 소년과 함께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앉아 있었다. 또 한 장의 사진인, 박 원장이 대통령 각하 앞에서 깊이 목례하며 상을 받는 장면과 결부시켜 보면 축하 파티 같기도 하지만 확실친 않았다.


원생들로부터 사모님 혹은 때론 영부인으로 불리기도 한 박 원장 마누라는 퉁퉁한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한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래된 흑백 사진이지만 목걸이와 반지에 박힌 보석들이 내뿜는 화려한 광채는 잘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얼굴 뒤에서는 원생 한 명당 얼마라는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한 두당 보조금 얼마에 노동생산력 얼마… 인피 가면을 쓴 채 사람을 짐승이나 사물로 독단한 게 아니겠는가.


암여우 같은 그녀가 꾀를 내고 삵 같은 남자가 악행을 저질렀는지 반대였는지 불분명하지만, 그들 둘이 형제복지원이란 소왕국의 왕과 왕비로 행세한 건 사실이었다고 전해진다. 원장 부인은 배우보다 화려하게 치장하곤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와 웃으며 구경시켜 주었다고 한다.


<다음 호에는 ‘소녀 눈동자’가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특정 사실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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