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장편소설 제6회 '아, 형제지옥원 얘기 쓰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7/10 [11:32]

김영권 장편소설 제6회 '아, 형제지옥원 얘기 쓰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7/10 [11:32]

엄동설한 단식투쟁…피해자들은 생존자든 사망자든 할 말 많고
지옥 속 얘기들 국가 차원 조사…그들의 피맺힌 울음 보듬어야


가망 없이 단식하는 그들은 극한 상황 내몰려 절규하는 인간 짐승
전 마두는 국민을 희롱하면서 잘살고, 죄 없는 피해자들은 피눈물

 

▲ 사진설명2019년 11월6일 형제복지원 관계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지하철역 입구 지붕 위에 올라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모습. 

 

제2부<3> 슬픈 박쥐


난 발길이 잘 떼어지지 않아 뒤돌아보았다. 그 젊은 사내는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선 채 검은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다시 건너 돌아올 땐 우울한 기분이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전철 바퀴 소리가 여러 가지 말을 뇌까리는 것만 같았다.


‘그만둬! 쓸데없는 짓이야… 세상 일은 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지나고 보면 한갓 욕심일수도 있어. 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일간의 선택이란 피라미 한 마리가 솟구치며 물방울 하날 튕기는 것과 뭐 그리 다를까?… 아냐! 저 강물은 무슨 사사로운 원한을 품고 흘러가는 건 아니겠지만, 결코 과거를 잊어버린 건 아닐 거야. 스스로 흘러 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아마 기억하겠지. 한 방울의 물이 모여 저 강을 이루는 것이니까. 정화력이 없는 모든 존재는 죽은 것과 같아….’


난 고개를 흔들었다. 어찌 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옛 고전작가들 중엔 단 한 명의 진실한 독자를 위해 쓴 적도 있다지만 이런 경우와는 다른 성싶었다. 그 천재들은 새로운 내용이나 형식을 일단 세상에 알리는 게 목적이므로 그런 호기를 부릴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은 이미 대부분 알려진 상태였다. 일개 소설 나부랭이보다는 엄동설한 속에 단식투쟁하는 생존 피해자들의 상황이 더 중요하고 위급한 상황이었다.*(*그들은 지금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017년 11월부터 국회 앞에서 노숙 중이다-지은이 주.)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이 알려진 반면(혹은 그렇기 때문인진 모르지만) 일반 대중의 관심은 희박한 편이었다.


피해 당사자들은 생존자든 사망자든 아직 할 말이 많았고, 그건 풍문처럼 떠도는 지옥 속의 얘기들을 국가 차원에서 조사해 확인한 후,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그들의 피맺힌 울음을 보듬어 주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나로선 무척 속상한 노릇이었다. 사실 난 원래 인간 내면의 존재론적 고뇌와 진실을 탐구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실제로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팔리지 않았기에 아르바이트로 간간이 출판사의 교정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던 중 한 곳으로부터, 특이한 소재가 있는데 소설로 한번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다. 심사숙고 끝에 결국 착수한 건, 외딴 섬에 어린 청소년들을 감금한 채 강제노동과 폭행 살인을 마구 자행한 선감도 수용소 이야기였다. 생존한 피해자들을 만나 그 지옥의 체험담을 듣고 취재를 하는 동안 이거야말로 이른바 존재론적 진실의 탐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소설을 모방해 걸작을 써내 보려던 욕망이 부끄러웠고, 잔미리 굴리기로 진실을 희롱하는 작태에 구역질이 났다.


고생 끝에 책이 나오자 그닥 팔리진 않았으나 언론에서 선감도 사건에 조명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걸 계기로 어둠 속에서 과거의 트라우마에 떨던 피해 생존자들이 조금씩 밖으로 걸어나와 비참했던 체험을 밝히고 모임도 만들었다. 나도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의 요청을 받곤 생전 처음 TV 카메라 앞에 앉아 한 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하지만 아쉽게도 방송이 되진 못했다. 담당 PD는, 경기도 당국에서 실태 조사 후 공동묘지를 파 유해를 발굴하고 그곳에 기념관 및 위령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라며, 그 결과까지 찍어 꼭 방송하리라 약속했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출판사 대표가 속편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원고료도 인세도 한 푼 받지 못한 채 착수한 건, 전편의 주인공이 어찌 될지 그 인생의 운명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선감도 모임에서 만난 한 노인으로부터 기괴한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어린 소년·소녀들로만 구성된 북파 공작원이 6·25 전쟁을 전후해 활약했다는 것이었다. 1년 여 동안 죽자사자 그걸 쓴 후 출판사에 보냈건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알고 보니 세계철학사상사 개정판을 냈다가 곤경에 처한 모양이었다. 전 20권으로 이뤄진 그 책은 독재정치가 횡행하던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현재는? 신문광고도 꽤 했지만 별 반응이 없자 재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낙망에 빠진 사장은 심한 우울증에 걸려 방황하는 성싶었다.


가능성이 없어 보였으나 난 스스로 제3탄의 작업을 시작했다. 그건 성병에 걸린 양색시(미군 위안부)들을 강제 수용한 일명 몽키하우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전편에서 활약했던 주인공이 아직 할 말이 남았다고 버텼으므로 그만두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선감도를 탈출한 주인공 운이 북파공작 끝에 살아 돌아온 후 몽키하우스로 잠입해 그 악랄한 실상을 파헤치는 구도로써 지옥 시리즈를 완성해 볼 작정이었다. 마침 원고료 없이 제2편을 연재해 주겠다는 매체가 있어 좀 힘이 되었다. 혹시 제3탄은 좀 더 좋은 조건으로 연재할 수도 있으리란 희망을 품고… 아무튼 그 정도로 시리즈를 마무리한 뒤 진정한 명작을 쓸 심산이었다.


그런데 주인공 녀석은 머릿속에서 계속 살아 숨쉬며 또 다른 활동 무대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형제복지원 문 앞까지 오게 된 셈이었다.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것이 문제였다. 주인공과 달리 작가인 난 솔직히 들어서고 싶지 않았다. 서초동 법원·검찰청을 지나쳐 국립중앙도서관을, 그리고 남산 기슭의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이미 자료 조사는 거의 마무리한 상태였지만 가능하면 멈추고 싶었다.


허허, 너무 알려져 버렸기에… 헌데 머릿속의 주인공은, 너무 알려지긴 했을 뿐 아이러니컬하게 아직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며 반박하다가 급기야 꿈속에까지 스며들어 지옥의 괴기상을 쓸쩍 보여주며 괴롭혔다. 그래서 일단 단식 중인 피해 당사자들의 상황이나 한번 살펴본 후 결정하자는 심정으로 여의도행 지하철을 탔던 것이었다.


결과는 예상보다 비참했다. 인터뷰를 거절당한 내 기분도 구슬펐지만, 허름한 비닐 천막 속에서 가망 없이 단식하는 그들이 괴물세상에 의해 극한 상황으로 내몰려 절규하는 가엾은 인간 짐승처럼 느껴져 떨쳐 버리기 어려웠다.


‘피 어린 독재시대는 지났건만… 왜 아직 전 마두는 국민을 킬킬 희롱하면서 뻔뻔스레 잘살고, 정작 죄 없는 피해자들은 여전히 피눈물을 핥아야 하는가?… 더욱 이상스러운 건, 마치 하이에나처럼 눈에 불을 켠 채 특이스런 얘깃거릴 찾아 헤매는 작가들이 왜 그 해괴망측한 사건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멀뚱거리기만 하느냔 얘기야. 아무리 많이 알려졌다곤 해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키면 또 다른 의미와 진실로 감동을 줄 수 있을 텐데… 아, 나 자신이 더 한심하군. 어떤 잘나가는 인기작가 년은 피해자들이 엎드려 청원해도 거절했다는데… 흠, 난 쫓아다녀도 개떡보다 못한 신세로군. 만일 돈이나 좀 있으면 도박하듯 한번 승부를 걸어 볼 텐데. 돈이 전부는 아니로되 문학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거든… 치사스럽지만 내심 부럽기도 해. 한국의 현존 대형 인기작가 대여섯 명은 특별한 괴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 내가 시기심이 좀 강한 편이긴 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런 명성을 얻었다면 마른 박수나마 쳐 주리라.’


헌데… 그들의 책은 일단 출간되면 작품 가치를 떠나 하나의 귀물(貴物)로 변신한다. 돌멩이나 차돌이 다이아몬드로 변해 번쩍이며 눈을 현혹하듯… 귀물이 아니라 귀물(鬼物)이라고나 할까.


그 연금술적인 과정은 추한 티를 내지 않는다. 반강제적으로 동원돼 찬사 일변도로 축사를 내뿜는 평론가들, 그에 못잖게 칭찬 일색으로 기사를 내보내는 신문기자들.


동시에 대한민국 사람들은 융단폭격 같은 광고 공해에 시달리게 된다. 좋은 광고든 나쁜 광고든, 아름다운 광고든 꼴사나운 광고든, 이 세상에서 광고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멋진 광고라도 지나치게 반복되면 지루할 뿐만 아니라 북한 공산당의 세뇌 방식과 비슷해진다. 광고도 정보 전달의 일종이다. 알릴 만큼 알렸으면 스톱하든지 이미 구약(舊約)을 아는 사람들도 감동할 만한 신약(新約)을 제공하는 게 예의고 윤리 도덕이다.


그런데 (대기업체와 비슷한) 대형 출판사와 대형 인기작가가 손잡은 상태에선 윤리 도덕이 사라져 버린다. 남는 건 그저 약장수의 심리뿐… 세뇌성 광고가 나쁜 줄 뻔히 알면서도 몰염치하게 들이민단 말이지. 다른 것도 아닌 이성과 지성의 매개체이자 상징이라는 책을 이용해….


그들의 책은 나오기도 전에 미리 언론 플레이가 시작돼 출간 후엔 무차별 광고 폭탄이 투하된다. 특히 공룡처럼 이름이 거대해진 세 남녀 작가의 경우 미사일급 광고 공세가 연일 이어진다. 조중동을 비롯해 거의 모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펼쳐지는 전면광고 포격 전술은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 할지언정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흘끗 스쳐 보거나 무시하고 넘어가더라도 잔상은 무의식 속에 스며들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특히, 생존 중에 자신의 황금 동상을 세우고 싶어 하는 듯해 보이는 한 노작가의 책은 거대 출판사의 마게팅 전략인지 뭔지 무려 장장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계속 광고됐다. 그 당시 개소리도 피할 겸 매일 도서관에 올라가 비치된 대부분의 신문을 훑어보던 난 차츰 욕지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허구한 날 똑같은 광고를 대여섯 번씩 보느라니 지긋지긋하다 못해 불현듯 구토증이 일며 침을 퉤 뱉어 버리고 싶었다.


책. 아무리 막가파 시대라더라도 최소한 인간 의식을 각성시키진 못할지언정 도리어 마비시키려 들다니….


그건 분명 신상품에 대한 홍보를 넘어 세뇌성이 농후했다. 첫 단계에서 궁금증을 던진 뒤 다음 단계에서 사람들이 지루하고 지긋지긋해 하다가 결국 욕지기가 튀어나오더라도… 그걸 세뇌공작의 전단계로 생각하고 은근히 기뻐할지도 몰랐다. 요즘 광고 보고 책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일단 대형서점에 나가서 특별 매대(수백만 원부터 수천만 원짜리까지) 위에 수백 권씩 쌓아 진열해 놓은 그 책을 본다면 마음이 쏠려들지 않을까? 꼭 세뇌까지 되진 않았다 하더라도 인지상정의 관심으로….


출판사는 그런 마케팅을 통해 돈벌이 욕망을 채울 테지만 아마 작가는 꼭 그렇지만은 않을걸. 돈은 이미 충분히 모아둔 갑부 상태일 테니 외려 좀 황홀하게 쓰고 싶지 않을까? 남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떼돈을 번 인기작가들이 (혹시 겸손스레 감추는지는 모르지만) 가난한 이웃이나 동료들을 위해 기부했다는 얘긴 별로 못 들어 봤어. 술값을 한턱 쐈다는 소린 들었는데 말야. 풍문에 의하면 작가 측에서 광고비를 전액 혹은 반액 정도 대납한다는 얘기도 있더군. 고고히 글만 쓰고 마케팅 따위엔 무심한 줄 알았건만, 오히려 출판사보다 더 나서서 은근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찬란한 금동상을 세우길 희망한다는 거야.


소문은 소문이고… 내 생각엔… 그 유명한 작가님네들은 마치 인기 중독자처럼 주기적으로 인기의 환상을 먹어야만 존재감을 향유하는 게 아닌가 싶어. 살아 있으면서 자신의 금동상을 세우기로 작심한 인간은 결코 진실한 원래 인간으로 돌아오기 싫을 거야… 르네상스의 본뜻보다 살아 있는 인간의 동상이 우뚝우뚝 솟아나 사람 정신을 마비시키려는 작자들은 악성 사이비 좀비가 아닐까… 흠, 진짜 좀비들은 좀 더 진실하지. 우선 자기 피를 빨아먹고 나서 남들에게 감염시키니까 말야.


요즘 자비출판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 자본주의 세상에선 다른 무엇보다 돈이 최고 수단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떤 자수성가한 돈 많은 사이비 사업가나 정치인이 파란만장한 자신의 인생을 광고 선전하기 위해 책을 한 권 낸다고 가정해 보자. 일자무식이라도 가능한 건 우선 대필작가(유령작가)가 따라 붙기 때문이다. 한국 땅엔 자(自費) 전문 출판사만 수십 군데가 있는데, 그들은 돈만 주면 그럴싸한 책을 만들어 바친다(요즘엔 일류급 출판사 또한 돈만 많이 주면 그런 짓을 한다지).


그런 사이비 영웅 호걸들에겐 몇 억 원쯤 껌값일 테니… 이어 본격적인 투자를 빙글 웃으며 시작하는 거지. 인기작가보다 효과는 못하겠지만 계속 대규모 광고 폭탄을 투하하다 보면 독자들은 처음엔 좀 궁금해하다가 차츰 호기심이 강해져, 혹시 다크호스 작가의 베일 속에 가린 비밀 병기가 아닐까 싶어 구입하기도 하리라.


만일 정말 읽을 만한 작품이라면 독자들은 횡재하는 셈이고, 설령 속는다 치더라도 욕설 한번 내뱉고 말 뿐 책값 1만 원 때문에 항의까지 하진 않을 테지. 물론 소박하거나 거칠지언정 제 손으로 직접 써서 공감을 던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화자찬을 늘어놓거나 허황된 거짓을 꾸며내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이비 작자도 적지 않아….


그건 그렇고 난 과연 어찌 하는 게 좋을까? 아, 형제지옥원 얘기를 쓰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소리 없이 흘러가는 한강 물을 내려다보며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령 노심초사하여 원고를 완성해 봤자 이 불황에 출간해 주겠다는 데가 없다면 헛일이었다.


고민 끝에 억지 춘향 격으로 다른 출구를 모색해 보았다.


이 자그마한 한반도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 수많은 선과 악이 자행돼 왔을 터이다. 원시시대의 악행은 독재시대를 거쳐 현재도 방식만 바꿔 더 악랄무비하게 이어지는지 모른다. 특수한 지옥 한 곳에 집중하기보다 차라리 본질적인 사회악과 인간의 죄악에 대해 탐색해 보는 건 어떨까?


형제원 외에도 성지원, 희망원 등등 전국 각지에 비슷한 (보호를 빙자한) 감금 시설이 존재했고, 악을 응징 교육한다며 스스로 악행을 감행한 선감원, 삼청대, 몽키하우스뿐만 아니라 소록도와 세월호의 어처구니없는 비극도 목격하지 않았는가. 그런 참상을 관통하는 본질은 과연 무엇이며, 악괴의 실체는 어디에 잠복해 있는지 추적해 보는 것도 무의미한 짓은 결코 아닐 성싶었다.


하지만 모니터 앞에 앉으면 여전히 짙은 안개 속을 헤매듯 막막한 심정이었다.


<다음 호에는 ‘멈춘 시간’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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