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 장편소설 제2회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애완견 1000만 마리 시대에 개 소음 방지법은 왜 없나?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20/06/05 [10:58]

김영권 장편소설 제2회 '형제복지원-회색 구슬 속의 산 18번지 왕국'

애완견 1000만 마리 시대에 개 소음 방지법은 왜 없나?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20/06/05 [10:58]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완견 소음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지 아는가?
심장이 떨어지게 고통당하다가 살인의 흉기를 휘두르는지 아는가?

 

인간의 고독 달래주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 쓰다듬는 사랑스런 개들…
그 개들이 이웃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는 법도 필요하거늘

 

▲ ‘맥스’로 환생한 ‘베일리’는 오직 일견단심 ‘씨제이’를 기다리던 중 유기견 입양소에서 드디어 ‘씨제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사진은 영화 ‘안녕 베일리’ 한 장면. 

 

제1부<2> 개 포르노


요즘 층간 소음 문제로 인한 폭행이나 살인 사건이 이웃 간에 자주 발생하고 있다. 슬프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실상을 따져 보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신문 방송에 살인 사건이 보도되면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얘기하곤 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군. 죽인 놈도 나쁘지만… 어리석긴 죽은 자도 마찬가지야. 둘 다 한심하달밖에. 아니, 서로 잘 타협을 볼 것이지 겨우 그딴 문제로 소중스런 인생을 개굴창에 내던져 버리냔 말야? 그럴 땐 감정을 좀 죽이고 이성적으로 대처해야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동물로 변질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건은 우발적이기보다 수많은 고통과 논쟁과 언쟁과 절망 끝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아파트 속에서는 이웃을 한번 방문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좋은 일도 아니고 서로 얼굴을 붉혀야 하는 문제라면… 얼마나 많은 놀람과 불쾌와 불면의 밤을 지샌 끝에 방문을 결행했는지 참작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부탁과 애걸… 그건 최소한의 인격과 생명의 요구이므로 거절당한 경우 자기도 모르게 불시에 칼로 상대의 목을 쑤시게 되는 것이다.


그들 중 누가 그런 참상을 바랐겠으며 예상조차 했겠는가? 그들은 한국 사회라는 불투명한 링 안에서 그저 생존의 복싱을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괴상야릇한 룰(법)의 사각지대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 문득 평민에서 살인자로 변하고 시체로 변질돼 버린 것이다. 대체 누가 살인자고 누가 피살자인지 헷갈린다고 말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어쩌면 불현듯 피살자가 살인범이 되고 살인범이 피살자로 뒤바뀔 가능성은 충분했으리라. 나만 해도 얼마나 수많은 밤을 뒤척이며 살해 욕망에 시달렸는지 모른다. 그게 바로 나 자신을 죽이는 무지스런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알면서도 죽이고 죽는 곳이 바로 이 잘난 한국 세상이다.

 

한국인의 유치한 특성 중 하나는 허장성세와 세상 모르는 과대망상으로 인한 견강부회적이고 아전인수적인 착각이다.


반도인(半島人)의 특징이랄까. 일본처럼 섬도 아니고 중국처럼 대륙도 아닌… 이리저리 갈라진 좁은 땅에서… 그들처럼 주어진 상황을 잘 이용해 최상으로 발전하긴커녕 왠지 항상 최악의 결과를 제조해 내는 듯싶다.


땅이 반쪼가리면 생각과 마음이라도 통일해 창조적으로 개척할 작정은 않고, 오히려 땅보다 더 지리멸렬 사분오열돼 자기 이익과 당파의 이득에만 붉은 뱀눈을 밝히고 있지 않은가? 조선시대 이래의 사색 오색 육색 팔색 당파 싸움… 망국(亡國)… 지옥의 식민지… 6·25 동족상쟁… 기나긴 독재와 평범한 일반 국민들의 고난 행군…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지역감정….


물론 약소국을 집어삼킨 일제가 나쁘고, 은근슬쩍 남북전쟁을 불러일으킨 끝에 토끼(호랑이) 닮은 나라를 반토막 낸 미제와 로스케 놈들이 사악하다는 전문 연구 학자들의 심도 깊은 분석 비판도 일리 있지만… 지금 당장 오늘날의 현실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성싶다. 더 이상 언급하고픈 마음이 일지 않는다. 이런 꼬락서니라면 일본·중국·미국뿐 아니라… 여러분들이 신사와 예술의 나라라며 존숭하고 좋아하는 영국과 프랑스 또한 상황만 조성되면 언제 꿀꺽 집어삼켜 허연 이빨로 꽉꽉 씹어댈지 모른다.


아마 그런 고상스런 영불(英佛) 식민지 시대를 고대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예전에 그랬듯이… 결국 어느 시대에든 그랬듯 빤질거리는 놈들은 그 천국 속에서 잘살고 진실한 국민들은 지옥에 빠져 허덕거리지 않을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옛날부터 한국 사람들은 의외의 불상사가 벌어졌을 때 곧잘 이런 말을 쓰곤 했다.


“조금만 더 꾹 참고 좋게 잘 달래 보지… 서로 한 발짝씩만 양보해서 타협했더라면… 그렇게 허망스레 죽기보다 머리가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빌어나 보지… 만약 좀더 인간적으로…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그건 아쉬움과 후회가 섞인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좀더 인내하며 선량하게 노력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되지 않는다면 다행이리라. 대체 왜 그럴까. 무슨 좋은 방법은 없을까?


현재로서는 엉망진창 오리무중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성싶다. 사회 현실은 약육강식의 정글을 넘어 야수보다 훨씬 잔인 무정한 좀비 로봇들과 싸워야 하는 판국인데, 도덕 윤리 의식은 50~100년 전의 말뚝에 억지로 매인 채 변질되다 못해 썩어 버린 상태이고, 법은 부자와 권력자 등 기득권자들의 쾌락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어둠 속에서 점점 ‘개선’되어 가기 때문이다.


이미 양심이나 인성에 기대를 걸 만한 시대가 아니다. 법 없이 사는 사람이 선량하고 법이 없을수록 좋은 세상이라지만, 이제 그런 허술한 의식 따윈 버리고 오히려 좋은 법을 만들어 바르게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과연 어떤가? 대체로 여의도의 국회의원 나리들은 국민보다는 자기네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만 여의주를 굴리고 여의봉을 휘두른다. 아니 도대체 왜… 무려 애완견 1000만 마리 시대에 접어들었건만 개 소음 방지법을 제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완견 소음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고통당하다가 이웃싸움 끝에 살인의 흉기를 휘두르는지 알기나 하는가?


물론 애견은 필요하기 때문에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고독을 달래주고, 동족인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쓰다듬어 낫게 해주는 사랑스런 개들… 그 애들이 나쁜 주인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 줄 법이 필요함과 동시에 그들이 이웃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는 법도 필요한 것이다.


강아지들의 마음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그저 백지처럼 순수한지 모르는데, 인간의 추악스런 심보에 물들어 악마견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이 고성방가를 하면 즉각 경범죄에 걸려 잡혀 가는데, 개는 아무리 짖어대어도 경찰이든 구청 생활환경과 공무원이든 전혀 건드릴 수가 없는가?…

 

관련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혹시 널따란 호화주택에 거주하는 국회의원 나리들은 외국 희귀종 애완견뿐만 아니라 초대형 파수견까지 키우고 있기에 (놈들이 계속 맘껏 짖어댈 수 있게끔) 소음방지법 따윈 무시하는지도 모른다.


다른 방면에선 미국을 잘도 모방하시는 분들이 왜 민생에 꼭 필요한 현실엔 오불관언인가? 혹시 그이들은…(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 당선하셔서 금배지를 단 선량이 되긴 했지만 내면적으론 일반 보통 국민보다 훨씬 저급하기에)…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기 존재의 행복을 시시각각 확인하는 망나니가 아닐까? 그래서 그들과 그들의 똘마니인 일부 공무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면서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는 히히 웃어대며 방치하는 게 아닐까(그네들이 하는 일을 보면, 항상 최선을 지향한다고 허풍을 떨면서도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앞에서 조금 실언을 한 성싶다. 법은 필요하지만 사실 요즘도 양민들에겐 필요하지 않다. 사회 현실이 조금씩이나마 개선돼 사람이 사람답게 살 만하다는 희망을 지낼 수 있게 된다면 개보다는 이웃 사람과 쉬이 정을 나누게 되지 않을까?

 

모든 상황에는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숨어 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형편에도 약점은 들어있고 반대로 아주 나쁜 처지에도 강점은 숨쉬고 있다는 얘기다.


계속되는 위층의 소음이 만들어내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전화위복과 새옹지마에 대해 심사숙고하면서 가능하면 최악의 상황 속으로 다가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점점 그쪽으로 조금씩 들어서고 있었다.

 

그 후에도 몇 번 방문해 정중히 부탁했건만, 여자는 자기 딸애(예삐라는 이름의 개)가 성대 수술을 무서워한다느니, 목테를 채워 놓았는데 스트레스를 못 견뎌 제 발톱으로 눈을 후벼파 피를 흘렸다느니 구시렁거릴 뿐이었다. 딸애는 잘 보이지 않았다. 증오와 애정의 양가감정 속에서 나는 현실의 벽에 막힌 욕구불만을 상상과 몽상과 망상 등으로 조금이나마 해소하려 시도했다. 그건 어떤 방법이었던가? 미리 계획해서 시도했다기보다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단잠 속의 아름다운 꿈이나 어렵사리 도달한 그윽한 명상의 열락이 개 한 놈 때문에 일순간 박살나 버릴 경우, 또는 아주 중요한 사색을 하는 도중 놈이 불현듯 광견인 양 마구 짖어대 아이디어가 달아나고 심장이 쿵쿵 뛰며 쿡쿡 쑤실 땐 딱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엔 개를 향해 욕을 했는데 별 효과가 없을 뿐더러 맞대거리로 더 요란스레 왈왈거렸으므로 울화증만 한층 심해졌다. 죽이고 싶었다. 목을 콱 밟아… 그리고 입주둥이 속에 대못을 하나 세로로 찔러 넣어두고 싶기도…

 

언젠가 오래 전에 개도둑 악당이 어느 방랑 백구의 주둥이를 철사 줄로 꽁꽁 묶어 두었는데 백구(白狗)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다가 주둥이가 반나마 부러져 참혹한 꼴로 울부짖는 걸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너무 끔찍해서 인간의 악마성에 치를 떨었는데 이제 내가 직접 그런 짓을 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 하지만 개놈한테 무슨 큰 죄가 있겠는가. 인간의 악을 모방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무지스런 불찰밖에 없는데… 그러나 설령 네 주인이라 하더라도 무분별한 모방 동조죄는 사면해 줄 수가 도저히 없다. 그러므로 네 목과 여주인의 목을 잘라 서로 바꿔 붙여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미덕을 향유하게끔 선고하노라.’


그런 상상은 끔찍할수록 짜릿한 모종의 쾌감을 주고 울화를 가라앉혔기에 점점 더 엽기적인 망상의 장면을 불러일으켰다. 내 아무리 추악한 성격의 소유자일지언정 그 기괴망측한 장면을 다 드러내 보이기는 사실상 부끄럽다.


하지만 오래 지속하긴 어려웠다. 날이 흐르고 반복될수록 흥취가 사라져 무감각해졌을 뿐더러 나 자신의 심성만 점차 훼손되는 성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놈의 고성방가는 계속되었기에 무슨 방도를 찾아내지 않으면 조만간 심장이 팡 터지고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이사를 가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돈이 문제였다. 유리창을 살짝 깨 쇠고기 같은 걸로 개놈을 유인해 내어 목졸라 죽이고 싶었으나 경찰 조사로 곧 뽀록날 것만 같았다. 아마 제1순위 용의자로 지목될 테니까. 정신집중법을 수련해 염력으로 소리 소문 없이 없애 버리면 제일 좋으련만… 오히려 고요히 명상에 집중한 상태에서 개놈의 괴음이 터지면 훨씬 더 깜짝 놀라 울화증 지수가 높아졌다.


그런 어느 날, 문득 위층 어여쁜 아가씨의 허연 젖가슴을 떠올리며 연분홍색 유두를 깨물고 쪽쪽 빠는 공상에 빠져 보는 순간, 심장의 통증과 울화가 봄눈 녹듯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었다(그 전에도 그녀를 생각하곤 했지만 어디까지나 플라토닉한 정감이었는데 그건 실재적인 고통 앞에선 찰나의 위안으로 절단났다).


물론 파렴치한 짓을 계속하고 싶진 않았으나, 즉효약과 비슷했으므로 생명과 건강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실 육체적인 음욕은 일순간의 쾌감을 줄 뿐이로되 정신적인 상상은 천국의 길목으로 초대하는 듯싶었다. 다만 개소리만 아니라면….


갑작스런 놈의 괴음이 극성스러워질수록 마치 마약 중독자가 흡입 도수를 높이듯 음란한 공상은 점점 괴상망측한 포르노 망상으로 변질돼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공상을 넘어 현실에서 욕망을 채워 보기로 작정했다.

 

▲ 인생은 길고 견생은 짧다는데, 다섯 번째로 환생한 베일리는 저 녀석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사진은 영화 ‘안녕 베일리’ 한 장면. 

 

제1부<3> 처녀의 방


그녀, 솜희는 내게 길이 잘 든 예쁜 애완견이기도 했고 시녀이기도 했다. 좀 부끄러워하긴 해도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는 자기 취향보다는 내 입맛에 맞춰 요리를 했으며, 워드 타이핑뿐 아니라 간단한 교정까지 맡아 해냈다. 이를테면 그녀는 결혼하지 않은 아내이자 비서였으며, 연인이자 살짝 미친 정부(情婦)였다.


한편으로 불안감이 전혀 없진 않았다. 실종된 상태인 그녀(솜희)의 엄마가 어디서 살해되었는지, 남모를 고민으로 자살했는지, 알코올 또는 무슨 약물에 중독돼 헤매다가 엉뚱한 사고라도 당했는지, 혹은 인신장기 매매범에게 납치돼 버렸는지 오리무중이기 때문이었다.


이 좁은 한국 땅에서 한 해에 2만여 명, 즉 하루 50여 명의 여자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데, 왠지 놀랍기보다 ‘그런가 보지 뭐’ 하고 생각되는 자체가 도리어 더 기이하다. 매일 무수히 돌발하는 사건 사고에 일일이 다 신경쓰다가는 누군들 중요한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할 터였다.


하긴 그게 더 좋을 수도 있다. 경찰에 실종 신고에 들어가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일단 가출 사건으로 처리된다고 한다. 나로서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지기보다 애매모호한 상태로 유지되는 게 나을 성싶다. 살해든 자살이든 납치든 실상이 명백해져… 그 충격으로 인해 솜희가 더 심하게 미쳐 버리는 것도 싫거니와, 반대로 혹시 정신이 번쩍 들어 정상적인 여자로 변하는 것도 꽤 염려스러웠다고나 할까.


물론 모종의 의혹을 느낀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한다더라도 내가 크게 겁낼 일은 없었다. 난 그저 내 삶에 피해를 주는 뻔뻔스런 그 여자가 죽거나 인신 밀매범에게 납치돼 사라져 버리길 심혈을 모아 바랐을 뿐이었다. 가능하다면 염력으로 아무 흔적 없이 몰아낸다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망하긴 했기에… 약간 미안스런 마음은 가슴속에 늘 잠재해 구더기처럼 꿈틀거렸다. 물론 내게 그런 초능력을 구사할 만한 기술이 있다고 믿진 않았으나, 그 당시 너무 강렬한 증오심을 쏟아 염원했기에 조금쯤 얼떨떨하고 착잡한 심정이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원래 심약하고 몸도 약한 솜희가… 원한 품은 계모의 혼귀가 부리는 해코지로 인해 지금과 전혀 다른 험악한 인격체로 변질돼 버리지 않을까 싶어 불안스러웠다. 나에 대한 그녀의 복종과 사랑은 여전히 순수했으나 반쯤 미친 여자의 정신 상태는 언제 어느 쪽으로 기울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가능하면 재빨리 그녀의 재산을 내 앞으로 빼돌려 놓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런저런 암귀(暗鬼)에 시달릴 땐, 차라리 지하방에서 청정한 마음으로 고뇌하며 꿈꾸던 때가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솜희는 별로 변한 성싶지 않았다.


그닥 슬퍼하지도 않았다. 계모와 양녀의 애증 관계 때문이라기보다 도리어 애증의 감정이 없기에 그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녀는 계모가 친아빠를 꾀어 어딘가 머나먼 곳으로 함께 불귀(不歸) 여행을 떠나 버린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간혹 한번씩 들르던 괴짜 화가(솜희 아빠)는 언제부턴지 통 나타나지 않았다.


솜희와 달리 내 생각엔 그 자칭 유니크한 천재 화가께서 내연녀를 데리고 계획적인 여행을 떠난 게 아닌가 싶었다. 인생의 방해물을 이국(異國)의 바닷속에 던져 버리기 위해….


언젠가 불쑥 냉엄한 얼굴로 나타난다면 어찌 정시하고 대면할 수 있을까. 그는 자기 딸을 농락한 나를 기괴한 방법으로 죽이려 하지 않을까?


심란스런 나머지 간혹 지하 골방으로 내려가… 거미줄이 마구 쳐진 음습한 곳에 앉아 옛 추억에 잠겨 보기도 했으나… 무덤 속 같은 느낌을 견디기 힘들어 곧 뛰어 올라오고 말았다.


오, 인간 마음의 간사스러움이여!… 순수 정신은 신에게까지 가 닿는다는데, 짐승보다 순순하지 못한 인간 마음… 그러나 어찌하랴.


감옥 같은 지하방엔 다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돈 버는 능력 없는 사람이 갇히는 자본주의의 감옥이랄까.


때론 솜희에 대한 애증의 감정도, 그녀가 물려받을지 모를 재산에 대한 욕망도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훨훨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나의 반쪽이 된 상태였고, 또한 중요한 원고를 완성하는 데 최소한 일년은 더 걸릴 듯싶었기에 일부러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그 미지의 시공간은 내가 모르는 새롭고 기괴한 체험일 될 수도 있을 터이기에….

 

<다음 호에도 ‘처녀의 방’이 이어집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포토뉴스
3월 둘째주 주간현대 1244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