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과 SK그룹, 놀라운 ‘바이오 진격’

뇌전증 이어 항체 신약 도전…K바이오 새 역사 쓴다

송경 기자 | 기사입력 2020/05/15 [12:14]

최태원 회장과 SK그룹, 놀라운 ‘바이오 진격’

뇌전증 이어 항체 신약 도전…K바이오 새 역사 쓴다

송경 기자 | 입력 : 2020/05/15 [12:14]

SK그룹의 28년 뚝심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SK그룹 계열사 SK바이오팜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를 미국 시장에 공식 출시하며 K바이오 역사를 써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신약은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SK바이오팜은 SK라이프사이언스의 직판 체제로 약 33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뇌전증 치료제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최초로 독자 개발을 통해 FDA 승인을 받고 미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을 축하한다”며 세노바메이트 미국 출시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SK그룹은 바이오·제약을 제2의 반도체로 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항체신약 개발사에 투자하는 등 바이오·제약 시장에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바이오·제약 사업을 ‘제2 반도체 신사업’ 육성한다는 전략
뇌전증 치료제 미국 출시로 7조5000억 글로벌 시장 정조준


최태원 “세노바메이트 혁신신약 개발로 사회적 가치 실현”
SK(주), 항체 신약 기업 투자하며 바이오 혁신기술 선점 행보

 

SK그룹 자회사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혁신신약으로 마침내 미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가 미국 시장에 공식 출시된다고 5월12일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993년 바이오 산업에 뛰어들고 ‘뚝심의 R&D’로 신약 개발을 밀어준 지 28년 만에 이룬 성과다. SK그룹의 뚝심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K바이오 기술 수출국으로 재탄생했다.


SK그룹은 아시아·유럽에 이어 미국 시장까지 생산 거점을 확보해 바이오·제약 사업을 ‘제2의 반도체 신사업’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왔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SK, K바이오 새 역사 쓴다


SK바이오팜은 미국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에 직판 체계를 구축해 직접 판매에 나선다. 대한민국 제약회사가 미국 내에 직판 체계를 구축하고 독자 개발 신약을 판매하는 것은 SK바이오팜이 처음이다.


앞서 SK바이오팜은 작년 11월 독자 개발한 혁신신약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실제로 글로벌 임상 수행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알려진 FDA 허가 역시 미국 법인에서 직접 진행했다.


SK라이프사이언스에는 전 세계 전문가들의 핵심 역량을 내재화한 고유의 신약개발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세노바메이트 외에 다른 신약의 글로벌 임상도 진행 중이다.


SK그룹의 도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부분의 제약사가 기술 수출을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과 달리 직접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판 체제를 선택했다. 미국에서 뇌전증 치료제는 주요 전문의 중심으로 처방되기 때문에 독자적인 영업 구축이 용이하다는 게 SK그룹의 설명이다. 110명의 전담 인력을 채용해 현재 영업 활동을 진행 중이다.


SK라이프사이언스는 그동안 뇌전증 질환 인식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코로나19 확산 등 최근의 의료 환경을 경향을 감안해 디지털 채널 마케팅을 적극 전개할 계획이다.

 

최태원 ‘바이오 뚝심’과 결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016년 6월 경기도 판교에 자리 잡은 SK바이오팜 생명과학연구원을 찾아 “1993년 신약개발에 도전한 이후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20년 넘도록 혁신과 패기, 열정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면서 “글로벌 신약개발 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여러 난관을 예상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히 투자해왔다. 혁신적인 신약 개발의 꿈을 이루자”며 구성원들을 격려했다.


그로부터 3년 만에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았고, 4년 만에 마침내 미국 시장에 출시됐다. SK바이오팜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개발, 신약허가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한 국내 최초의 제약사가 됐다.


신약개발은 통상 10~15년의 기간과 수천억 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고도 5000~1만 개의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개발될 만큼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연구 전문성은 기본이고 경영진의 흔들림 없는 육성 의지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영역으로 꼽혀왔다. 세노바메이트 역시 최 회장의 뚝심과 투자 철학이 없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다는 게 바이오 업계의 평가다.


SK그룹은 1993년 대덕연구원에 연구팀을 꾸리면서 불모지와 같았던 제약사업에 발을 들였다. 인구 고령화 등으로 바이오·제약 사업은 고부가 고성장이 예상되는 영역인 데다, 글로벌 시장에 자체개발 신약 하나 없던 한국에서는 ‘신약주권’을 향한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대부분의 국내 제약사들이 실패 확률이 낮은 복제약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SK바이오팜은 오직 혁신신약 개발에만 매달렸다. 단기 재무성과에 목마른 기업 입장에서 큰 결단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최 회장의 비전과 확고한 투자 의지였다.


2002년 최 회장은 바이오 사업의 꾸준한 육성을 통해 2030년 이후에는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운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했다. 신약 개발에서 의약품 생산·마케팅까지 모든 밸류체인을 통합해 독자적인 사업 역량을 갖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키워낸다는 비전을 펼쳐 보인 것이다.

 

이에 따라, 같은 해 생명과학연구팀, 의약개발팀 등 5개로 나누어져 있던 조직을 통합, 신약 연구에 집중케 하는 한편, 다양한 의약성분과 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과 미국에 연구소를 세웠다.


200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에도 신약개발 조직을 따로 분사하지 않고 지주회사 직속으로 둬 그룹 차원에서 투자와 연구를 지속하게 한 것 역시 최 회장의 신약 개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약 개발이야말로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투자와 장기적인 비전이 담보돼야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SK그룹은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수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지속했다. 임상 1상 완료 후 존슨앤존슨에 기술수출 했던 SK의 첫 뇌전증 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가 2008년 출시 문턱에서 좌절했을 때도 최 회장의 뚝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해에 SK바이오팜 미국 현지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의 R&D 조직을 강화하고 업계 최고 전문가들을 채용함으로써 독자 신약 개발을 가속화했다. 이때 역량을 강화했던 SK라이프사이언스가 FDA 승인을 얻은 세노바메이트의 임상과 미국 시장 출시를 주도했고, 발매 이후 마케팅과 영업까지 도맡고 있다.


이후 SK는 신약 개발 사업의 집중 육성을 위해 2011년 사업 조직을 분할해 SK바이오팜을 출범시켰다.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한 신뢰와 지원을 이어온 덕분에 FDA가 요구하는 엄격한 기준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임상 전 단계를 수행할 수 있는 독보적인 노하우와 경험이 SK바이오팜에 축적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 회장은 세노바메이트 미국 출시와 관련, “대한민국 최초로 독자 개발을 통해 FDA 승인을 받고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어 “세노바메이트는 혁신신약 개발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사례”라며 “사회적 가치의 실천은 앞으로 우리의 성장과 영속성에 필수”라고 강조했다.

 

▲ SK그룹은 바이오·제약 사업을 ‘제2의 반도체 신사업’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왔다. 

 

7조5000억 뇌전증 시장 조준


글로벌 뇌전증 시장 규모는 약 61억 달러(7조5000억 원, 2018년 기준)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54%를 미국 시장이 차지하고 있으며 시장 규모는 33억 달러(4조500억 원)에 이른다. 향후 미국 뇌전증 시장은 2024년 약 41억 달러(5조3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성공의 첫 번째 관문인 미국 FDA 허가와 시장 진출을 위해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인재 영입과 육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며 “미국 내에서 독보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세노바메이트는 2022년 유럽에서도 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SK바이오팜의 파트너사인 스위스 아벨 테라퓨틱스가 세노바메이트 유럽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세노바메이트에 대한 유럽의약품청(EMA) 허가 심사가 시작됐다.


세노바메이트는 확장성도 있다. 향후 전신발작(임상 3상 진행 중)과 신경병성 통증 및 조울증 등으로 치료 대상을 확장할 수 있다. 세노바메이트가 전신발작에 대한 허가도 받게 되면 뇌전증 환자의 95%를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항체 신약 투자 혁신기술 선점


SK그룹 제약·바이오 군단의 진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뇌전증 신약 개발 결실을 맺은 데 이어 항체 신약 관련 기업에 투자하며 바이오 혁신기술 선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위해 투자형 지주회사 SK주식회사(대표이사 장동현)가 항체 의약품 개발회사 투자로 바이오 분야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SK주식회사는 5월11일 싱가포르 바이오 벤처 기업인 ‘허밍버드 바이오  사이언스(Hummingbird Bioscience, 이하 허밍버드)’에 투자하며 항체 의약품 시장 진출을 위한 혁신기술 선점에 나섰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중국의 바이오 벤처 ‘하버바이오메드(Harbour BioMed)’에 투자한 지 7개월 만이다.


항체 의약품이란 질환을 유발하는 단백질에 선택적으로 결합하여 항원의 작용을 방해하는 체내 면역 단백질로, 대표적 바이오 의약품으로 꼽힌다. 부작용이 적고 약효가 뛰어나 대형 제약사들이 앞다투어 개발 중인 고부가 약품이다.


허밍버드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사노피(Sanofi) 출신 전문가들이 혁신적인 항체신약  개발을 위해 2015년에 설립한 바이오벤처로, 본사는 싱가포르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국 휴스턴에 임상개발센터를 두고 있다. 약 80억 원 규모로 진행된 이번 투자에 SK주식회사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허밍버드는 항체신약 개발의 핵심 요소인 최적의 항체 발굴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기존 항체 개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항체 개발은 항원을 동물에 주입하여 최적의 항체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항원의 특정  부위에만 선별적으로 결합하는 항체를 단시간에 만들기 어려웠다.


하지만 허밍버드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해 항체가 결합하기 가장 좋은 부위를 선별하고, 선정된 부위에만 결합하는 자체적인 항체 발굴 기술(RAD, Rational Antibody Discovery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약 개발 과정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최적의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허밍버드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작년 2월 미국 텍사스 암예방 연구소(CPRIT, Cancer Prevention Research Institute of Texas)가 1300만 달러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했고, 같은 해 8월 영국 암 연구소(Cancer Research UK)도 허밍버드의 항암 신약후보 물질 임상 1상 비용을 지원했다.

 

연구기관에서 임상단계의 신약 후보물질을 지원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허밍버드는 지난해 9월에는 다국적 제약사 암젠(Amgen)과 최대 1억  달러 규모의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SK주식회사가 지난해 10월 투자한 하버바이오메드는 사노피(Sanofi),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 등 글로벌 제약사와 하버드 의대 출신 전문가들이 2016년 설립한 바이오 벤처 기업으로, 중국 상하이 본사 및 네덜란드 로테르담, 미국 보스턴에 자회사를 두고 있으며 항암과 면역질환 치료용 항체 의약품을 개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SK주식회사는 약 900억 원 규모로 진행된 하버바이오메드 투자에 싱가포르투자청(GIC), 레전드캐피탈(Legend Capital) 등 과 공동 참여했다.


글로벌 바이오 제약 시장조사 업체인 이벨류에이트파마(EvaluatePharma)에 따르면, 바이오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8년 2430억 달러(약 290조 원)에서 2024년 3880억 달러(약 470조 원) 수준으로 연평균 8%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SK주식회사는 이번 투자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바이오 의약품 시장 진입과 함께 신약개발 자회사인 SK바이오팜과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SK주식회사 관계자는 “앞으로도 바이오·제약 혁신기술 확보를 위한 다양한 글로벌 투자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지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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