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 5·18 사진첩은 전두환 보고용이었다”

조인우(뉴시스 기자) | 기사입력 2019/12/06 [14:39]

“보안사 5·18 사진첩은 전두환 보고용이었다”

조인우(뉴시스 기자) | 입력 : 2019/12/06 [14:39]

“보안사 대공처 역할·위상으로 미뤄 전두환 보고”
“폭동으로 날조하고 연루자 처벌 위한 입증 자료”

 

▲ 5·18기념재단이 12월3일 오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별관에서 ‘5·18 비공개 사진 대국민 설명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9년 만에 대중에 공개된 보안사령부 생산 5·18 사진첩은 ‘전두환 보안사령관 보고용’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5·18민주화운동 진압을 총지휘한 보안사가 공작·수사와 민주 인사 재판·처벌에 활용키 위해 촬영·수집·관리했던 사진첩이라는 뜻이다.


5·18기념재단은 3일 오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별관에서 ‘광주의 눈물, 그날의 참상‘을 주제로 ‘5·18 비공개 사진 대국민 설명회‘를 열었다.


안길정 5·18기념재단 자문위원은 ‘사진첩의 제작 목적과 제작처‘에 대한 주제 발표를 통해 “사진첩 생산·관리 주체인 보안사 대공처(3처)에 주목해 봐야 한다”고 했다.


보안사 대공처(대공수사과·대공과·공작과 3개 과 140명으로 구성)는 1980년 당시 정권 찬탈용 특수 공작과 무력 진압, 민주 재야인사 강압 수사 등을 총괄했다.


안 위원은 보안사 대공처의 역할·위상으로 미뤄 이 사진첩 또한 ‘전두환 보고용‘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학봉 대공처장 겸 합동수사단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받은 지시를 실행하고, 광주항쟁의 모든 상황을 직접 보고했다. 이 처장은 1980년 5월17일 전두환의 지시로 집권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인사들을 ‘국가 기강 문란자’와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날조해 ‘끼워 맞추기식 수사’를 이끌었다.


이 처장은 1980년 5월24일과 27일 광주를 직접 찾아 ‘송암동에서 벌어진 계엄군 간 오인사격’을 조사하고, ‘수습책’을 지시하기도 했다.


군의 투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 논리를 생산·유포한 ‘편의대(군 기록상 511명가량 추정, 사복 차림 군경)‘ 운영을 총괄하기도 했다.


안 위원은 이 처장의 행적을 설명한 뒤 “대공 수사 상황을 진두지휘한 이학봉은 전두환에게 모든 상황을 직접 보고했다. 80년 8월29일까지 수사 상황을 일단락하기 위해 보고서를 급히 만들고, 수사와 민주인사 처벌용으로 사진첩을 활용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보안사가 ‘수사·재판에 악용할 사진 자료를 의도적으로 편집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안 위원은 “제작 목적은 사진첩 표제·목차 하단에 적힌 ‘증거 자료‘에서 시사된다. 합동수사본부를 지휘한 보안사 대공처가 민주화운동을 소요 폭동으로 날조하고 그 연루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입증 자료용으로 수집·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번에 공개된 사진첩 17권 중 13권(5~17권, 1769매·중복 포함) 내용 대부분은 시위대의 과격성과 군경의 피해 상황을 부각하고 있다. 군에 불리한 내용이 담긴 사진 대부분은 은폐·왜곡됐다.


신군부는 80년 5월 캐터필러 궤도로 된 장갑차는 계엄군만 몰았는데도 7~8권 사진에 ‘시위대가 끌고 다니다 버린 장갑차’라고 왜곡했다.


80년 5월27일 도청 진압작전 직후 촬영·채증·수집한 사진 5장 중 시민군(윤상원 열사로 추정)이 총상으로 사망한 모습이 담긴 1장도 사진첩에 누락시켰다.


9권에 나온 ‘김대중의 범죄 개요’는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방향·향후 재판의 종결 방향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군부는 재야 측에 홍남순, 학생 측에 정동년을 주모자로 놓고 수괴 자리에 김대중을 설정했다.


신군부가 무력 진압과 정권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5·18 항쟁을 불순한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날조했고, 김대중 내란 음모와 5·18을 하나로 엮어 자신들을 국난극복의 영웅으로 미화했다는 뜻이다.


이성춘 송원대 국방경찰학과 교수도 ‘5·18 사진첩과 진실에 관한 함의‘란 주제의 발제를 통해 ▲진압 명분 여론 조성 ▲5·18 재판 증거 자료 활용 등이 사진첩 제작 목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시민군의 폭력성이 두드러지는 사진과 함께 편파적이고 왜곡된 사진 설명(‘난동자’·‘폭도’·‘탈취‘·‘방화’)을 적은 것은 5·18 당시 광주에서의 군 활동을 합리화하는 근거와 논리를 만든 것”이라며 “시민군의 폭력성, 피해 상황을 부각하기 위해 지속적인 자료 최신화 등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향후 연구 과제로는 ▲사진첩 제작 참여 인원 ▲행방 묘연 사진첩 1~4권 등 추가 자료 확보 ▲제출·수거한 언론사 촬영 사진 행방 추적 등을 꼽았다.


김태종 5·18기록관 연구실장도 ▲진압 명분 확보 위해 사진 설명이 다수 왜곡된 점 ▲집단 발포 이후 사진이 누락된 점 등을 근거로 “사진 자료의 생산 맥락과 제작 과정을 추적,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편의대 활동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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