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가볼 만한 여행지 ‘우리 문학 속 그곳’ 올가이드

“괜스레 쓸쓸하고 눈물 나면 기차 타고 선암사 가라”

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19/11/11 [10:03]

이 가을, 가볼 만한 여행지 ‘우리 문학 속 그곳’ 올가이드

“괜스레 쓸쓸하고 눈물 나면 기차 타고 선암사 가라”

김수정 기자 | 입력 : 2019/11/11 [10:03]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역문화 알리기의 일환으로 앞다투어 문학 관련 유적을 조성하거나 복원시키고 있다. 그런 만큼 예전처럼 기록과 기념만을 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문화공간이자 쾌적한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문학 속 그곳’에 가면 볼거리, 느낄거리가 풍성하고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긋거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라 친근하다. 그저 길가에 핀 꽃들이나 큰 나무 아래에서 맡았던 향기, 휴게소에서 먹은 음식을 기억하듯이 작가의 고향이나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관광공사에서는 ‘늦가을에 가볼 만한 여행지’로 문학작품 속 장소를 꼽고 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알고는 있었지만 속속들이는 몰랐던, 문학작품 속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작가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어떻게 해서 그런 작품이 나왔는지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문학과 친해지고, 문학이 주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게 될 것이다.

 


 

오래된 ‘선암사 해우소’ 들러 실컷 울어라!…마음의 찌꺼기 사라질 것
‘불일암 무소유길’ 30분 오르면 간간한 땀방울이 몸의 욕심 덜어내고…

 

폐교 개조한 ‘권정생동화나라’는 낮은 마음가짐으로 마주하는 공간
비료 포대로 만든 부채, 몽당연필 등 검소한 삶 보여주는 흔적 애잔

 

1. 문학의 고장, 전남 순천


가을은 감성의 계절이다. 괜스레 설레고 괜스레 쓸쓸하다. 그런 날은 정호승의 시 한 편이 선물이고 위로다. 〈선암사〉는 이리 시작한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시인의 말을 따라 순천 가는 기차를 탄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KTX로 약 2시간 30분 거리다. 정호승이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를 낸 때가 1999년, KTX가 다니기 전이다. 시인은 긴 시간 공들여 기차를 타고 선암사에 갔으리라.


선암사는 정호승의 시가 아니라도 가을에 붐비는 사찰이다. 초입부터 불어드는 계곡의 바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을이다.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에 눈을 씻는다. 그 절정은 화강암 장대석을 무지개 모양으로 연결한 승선교(보물 400호)다.

 

▲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을 보듯 다리를 감상하거나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승선교는 지척의 강선루와 짝을 이룬다. 이름을 풀면 선녀가 내려온 누각(降仙樓)이고, 다시 올라간 다리(昇仙橋)다.


봄날에는 대웅전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선암매(천연기념물 488호)를 찾았겠다. 가을에도 그 길을 더듬어 오를 만하다. 가을 선암매 앞에서는 뭉클하다. 봄날 매화에 가려 있던, 650년 된 나무의 몸짓이 보인다.


하지만 시인이 선암사에 가라 권한 장소는 따로 있다. 순천선암사측간(전남문화재자료 214호),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해우소)이다. 선암사는 돌다리가 문화재이듯 해우소 역시 문화재다. 앞면 6칸, 옆면 4칸 맞배지붕 건물로 평면은 정(丁) 자 모양이다.

 

▲ 뒷간, 측간으로도 불리는 선암사 해우소.    

 

정호승 시인은 이곳에서 “실컷 울어라”라고 했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줄 거라 했다. 바닥이 깊은 해우소는 으슥하다기보다 그윽하다. 선암사에 현대식 화장실이 여러 곳 있지만, 해우소에서 일을 보고 나올 때 마음의 찌꺼기도 사라진 듯하다.


선암사 해우소에서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면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에 들러볼 일이다. 선암사 가는 길에서 살짝 벗어난 산중 한옥이다. 순천시에서 생산하는 야생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보거나 시음할 수 있다.

 

▲ 야생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보거나 시음할 수 있는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    


선암사까지 가서 송광사를 그냥 지나칠까. 송광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승을 많이 배출해,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이다. 그 모습 역시 아름답다. 선암사에 승선교와 강선루가 있다면, 송광사는 삼청교와 우화각이 마중한다. 다리와 누각이 한 몸을 이뤄 대웅보전 앞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선암사에 정호승 시인의 문장이 어려 있다면, 송광사에는 <무소유> <산방한담>의 법정 스님이 있다.


송광사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1975년에 내려와 1992년까지 기거하며 글을 쓴 곳으로, <무소유>의 산실이라 불린다. 하지만 경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중 암자라 무심코 지나는 이가 많다. 불일암에 이르는 길은 ‘무소유길’로 3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그 이름처럼 간간한 땀방울이 몸의 욕심을 덜어낸다. 대신 고요한 숲길의 청량함이 마음을 채운다.

 

실은 무소유하기 쉽지 않을 만큼 호젓하고 다감하다. 편백 숲에 정신이 혼미할 즈음, 법정 스님의 글귀가 쉬었다 가길 권하고, 대나무 숲의 정취에 취할 즈음에는 댓잎에 서걱서걱하는 바람이 스님의 법문인 양 귓가를 스친다.

 

▲ 불일암.


그리 다다른 불일암은 고요하고 청빈하다. 법정 스님이 잠들어 있다는 후박나무(실은 일본목련이다) 그늘 아래서는 절로 눈을 감고 잠시나마 묵언할 수밖에. 다시 눈을 뜨면 발아래 채소밭과 대숲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보일 듯 말 듯하다.


스님은 당신이 만들었다는 ‘빠삐용 의자’ 위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불일암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한다. 그리고 선암사와 송광사는 조계산 굴목재를 넘어 오갈 수 있다. 보통 3시간 남짓 걸린다. 보리밥집에 들르면 4시간은 잡아야 한다.


순천의 가을은 고찰에만 머물지 않는다. 순천만습지에 갈대가 흐드러진다. 그 사이를 거닐며 단풍과 다른 갈대의 매력을 만끽한다. 가족 여행객은 습지 생태학습을 겸할 수 있다. 갈대숲탐방로 가는 길에 자연생태관, 순천만천문대, 자연의소리체험관 등 배움터가 많다. 곧장 갈대숲탐방로를 거닐어도 무방하다. 탐방로 아래 농게와 칠게, 짱뚱어 등 다양한 습지 생물이 꼼지락댄다. 연인에게는 사방이 포토 존이다. 가을빛 낭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소설가 김승옥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안개 낀 ‘무진(霧津)’의 다른 이름이다. 1964년 발표한 <무진기행>은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이다. 작품 속 무진은 쓸쓸한 이상향이고 동경이다. 가상의 지명이지만 그곳이 순천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순천 출신 김승옥 작가 또한 “무진이 순천만에 연한 대대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순천만습지 탐사선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아침 무진 선상 투어’는 소설 속 무진을 경험하는 기회다. 안개가 자욱하지 않은 날에도 그 정취가 소설 못지않다. 순천만습지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김승옥 작가가 궁금한 이는 순천문학관에 가보자. 순천만습지에서 동천을 따라 도보 20분 거리다. 초가 9동 가운데 김승옥관이 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 김승옥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공간이다. 순천문학관에는 <오세암>을 쓴 동화 작가 정채봉의 전시관도 있다. 그가 법정 스님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읽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순천만습지에서 와온해변이 멀지 않다. 박완서 작가가 봄꽃보다 아름답다 한 개펄이 솔섬과 어우러지는 해변이다. 특히 일몰이 장관이다. 순천만습지 용산전망대 못지않다. 근래 들어 사진 몇 장 때문에 ‘한국의 우유니’라 소문이 났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 개펄 수조의 반영을 이용하면 비슷한 느낌으로 찍을 수 있다.


시내권에는 조곡동 철도문화마을이 재미난 사진을 찍기에 좋다.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철도관사마을로, ‘뉴트로’ 감성이 돋보인다. 옛 농협 창고를 개조한 청춘창고 또한 순천 여행길에 들러볼 만하다.

 

<글·사진/박상준(여행작가)>

 

2. 안동 권정생동화나라


안동 권정생동화나라는 낮은 마음가짐으로 마주하는 공간이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 주옥 같은 작품으로 아이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 고 권정생 선생의 문학과 삶이 담겨 있다.

 

권정생동화나라는 선생이 머무르며 집필 활동을 한 일직면의 한 폐교를 문학관으로 꾸몄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유품과 작품, 가난 속에서도 따뜻한 글을 써 내려간 삶의 흔적이 고스란하다.

 

▲ 안동 권정생동화나라는 낮은 마음가짐으로 마주하는 공간이다.    

 

선생은 2007년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은 남아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작은 희망과 위안이 된다. 이곳에서 ‘좋은 동화 한 편은 백 번 설교보다 낫다’는 선생의 신념을 찬찬히 되새길 수 있다.


권정생동화나라가 자리한 망호리는 첫인상부터 친근하다. <몽실 언니>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권정생동화나라 초입에 넓은 운동장과 놀이터가 있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 엄마 까투리 등의 조형물도 건물 곳곳에서 만난다. 건물 벽면을 채운 커다란 강아지 똥 모형과 선생의 추억이 깃든 교회 종모형이 눈길을 끈다.


1층 전시실에는 권정생 선생이 남긴 작품과 유품이 있다. 단편 동화 <강아지 똥> 초판본, 선생이 쓴 일기장과 유언장, 가난을 견뎌내며 살아온 발자취가 시기별로 전시된다. 선생의 일대기와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 뭉클한 감동을 준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5남 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선생은 청소부로 일한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가져온 헌책을 읽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해방 이듬해 귀국해서 한국전쟁을 겪었고, 나무 장사와 고구마 장사 등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꾸려갔다. 청년 시절 결핵을 앓았고, 한쪽 콩팥과 방광을 들어내기도 한 선생에게 가난, 병마와 함께한 세월은 글을 쓰는 자양분이었다.


조탑마을 일직교회의 종지기로 문간방에 머무른 선생은 죽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 좋은 책 한 권 남기려 했다. <강아지 똥>은 그렇게 탄생한 작품으로, 1969년 기독교아동문학상에 당선됐다.

 

▲ 권정생 선생이 작품 활동을 한 조탑마을의 집.    

 

전시실 곳곳에는 선생의 책이 설명과 함께 전시된다. 전쟁의 참상 속에 아이들의 삶과 인간미를 그린 <몽실 언니>, 산불 속 까투리의 모성애를 담은 <엄마 까투리> 외에 <무명 저고리와 엄마> <황소 아저씨> 등 유작 수십 편을 만날 수 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전부지만, 선생은 불쌍한 어린이에게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전시실에 보관된 유언장에는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적혀 있다.


전시실 한쪽에는 권정생 선생이 살던 오두막집을 실물 그대로 재현했다. 하루 글을 쓰면 이틀 누워 쉬어야 했지만, 선생은 사람 하나 간신히 누울 수 있는 단칸방에서 낮은 책상에 의지해 <점득이네> <랑랑별 때때롱> 등 마지막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비료 포대로 만든 부채, 몽당연필 등 검소한 삶을 보여주는 흔적이 애잔하다.


1층 복도에는 선생이 살아온 길을 담은 사진이 전시된다. 사진 속의 선생은 늘 편안하고 따뜻하게 웃는 얼굴이다. 권정생동화나라에는 도서실과 서점이 마련되어 선생의 작품을 읽어볼 수 있다. 복도 한쪽에 단편 동화 <해룡이>를 그림으로 풀어낸 김세현 화가의 작품 50여 점도 전시 중이다.

 

▲ 전시실에 재현된 선생의 방과 유품.    


권정생동화나라는 우표와 엽서를 판매해 느린우체통으로 편지를 보내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동화나라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북녘 어린이 돕기에 쓰인다. 건물 2층에 단체 관람객을 위한 숙박 시설과 강당이 있으며, 놀이터 옆에 숲속도서관도 문을 열었다. 권정생동화나라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이며, 입장료는 없다(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휴관).


권정생동화나라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달리면 권정생 선생이 거주한 조탑마을에 닿는다. 선생은 이곳 일직교회의 종지기로 문간방에 살며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을 썼다.

 

교회와 종탑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선생은 1983년 마을 청년들이 빌뱅이언덕 아래 마련해준 작은 집으로 이사한 뒤,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며 홀로 지냈다.

 

선생은 “조용하고, 마음대로 외로울 수 있고, 아플 수 있고, 생각에 젖을 수 있어 참 좋다”고 편지를 썼다. 담벼락도 대문도 없는 집은 단출한 이정표와 텃밭, 개집, 변소 등이 있으며, 단칸방 문고리에는 누군가 두고 간 꽃이 매달렸다.


안동 가을 여행은 문향(文香)이 서린 유서 깊은 공간이 함께해 운치를 더한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이 안동에 있다.

 

하회마을 인근의 안동 병산서원(사적 260호)은 호젓한 정취와 건축미가 돋보인다. 서애 류성룡이 후학을 양성한 곳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남은 사액서원 중 하나다. 병산서원으로 들어서는 길은 숲이 깊은 비포장도로이며, 서원 앞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만대루 앞으로 펼쳐지는 강과 산의 풍경이 압권이다.


국도 35호선을 따라 봉화로 향하면 안동 도산서원(사적 170호)이 모습을 드러낸다. 낙동강의 풍취와 어우러진 도산서원은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의 흔적이 담긴 곳이다.

 

서원은 퇴계가 거처하며 제자들을 가르친 서당 영역, 사후에 유림들이 그를 기려 세운 서원 영역으로 나뉜다. 책을 보관하고 열람하는 동·서광명실, 〈도산십이곡〉을 비롯한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 등에서 세월의 온기가 배어난다.

 

비탈진 언덕에 강을 바라보고 선 건물 배치가 독특하며, 강 건너에는 정조가 퇴계를 흠모해 과거를 치른 것을 기념하는 시사단이 있다. 대강당인 전교당(보물 210호)은 현재 보수 중이다.


도산서원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면 강변 비경이 하나둘 베일을 벗는다. 절경 속에 들어앉은 고산정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강나루 배경으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낙동강 변 암벽이 탄성을 자아내는 정자로, 이황의 제자 금난수가 세웠고 이황과 여러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다. 고산정 앞 가송리에는 〈어부사〉를 지은 농암 이현보의 고택인 농암종택이 강가에 들어서 가을밤의 운치를 더한다.

 

<글·사진/서영진(여행작가)>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포토뉴스
12월 첫째주 주간현대 1122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