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3부 <7> 독초

“백발 할마씨가 아랫도리 다 벗겨진 채 살해당했어”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9/11/11 [09:12]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3부 <7> 독초

“백발 할마씨가 아랫도리 다 벗겨진 채 살해당했어”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9/11/11 [09:12]

주한미군은 권리만 많고 의무는 거의 없는 ‘자유로운 서부영화의 총잽이’
그들은 군모와 군복 속에 숨어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며 욕망 채우기 횰언

 

“소망식당 할매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 하얀 머리카락을 뻘겋게 물들였어”
“일본군과 미군 몸뚱이 밑에서 시달린 한많은 인생…대체 누가 능욕했을까?”

 

▲ 1950년 11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함백산 절벽들 속에 자리 잡은 마을, 동막골 이야기를 그린 영화 ‘웰컴 투 동막골’ 한 장면.    

 

한 달에 한 번씩 쉬는 날이면 청운은 산길을 털레털레 걸어내려 동두천 읍내로 나갔다. 바람 쐬러 나가는 그를 몽키하우스의 철창 속에 갇힌 여자들은 몹시 부러워했다.


아직 눈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지만 차츰 다가오는 봄의 숨결을 견디다 못해 서서히 녹아 갔다. 청명한 날씨였다. 꽃샘바람은 불어도 따스한 햇빛 아래서 넓다란 빈 논밭은 스름스름 봄의 약동을 준비하며 향긋한 흙내음을 풍겼다. 푸릇푸릇 돋아날 미래의 새싹들을 기다리듯이….

 

싱그럽던 향토 훼손


저 멀리 한켠에 드넓은 부지를 차지한 채 농촌 풍경과는 이질적인 미군 부대가 내려다보였다.


미군이 동두천(東豆川)에 첫발을 딛게 된 건 전쟁 중인 1951년 6월이었다. 그 후 본격적으로 기지를 짓기 위해 주민들을 몰아내고 토지를 징발했다. 그에 따른 보상은 지주에게만 땅값의 3분의 1이 주어지고, 사람들의 둥지인 집에 대해서는 일번반구도 없는 강제적 수용이 이루어졌다.

 

그 후 기지가 건설됨에 따라 차차 미2사단, 3사단, 7사단, 24사단 등이 들어와 주둔하면서 동두천은 휴전선 최전방의 기지촌 1번지로 불리기 시작했다. 동두천에서 미군기지가 차지하고 있는 땅은 1000만 평이 넘으며 전체 면적의 30%를 차지할 정도였다.


동두천은 동쪽으로 맑게 흐르는 내천이 있다는 뜻이었다. 예로부터 물이 해맑아 일담(一潭), 이담(伊淡)으로 불렸으며 가뭄과 홍수의 피해가 없는 곳이었다. 또한 아담하지만 기암괴석과 나무가 잘 어우러진 소요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었다.

 

그런 금수강산의 명당 자리에 거대한 미군기지가 들어서서 마을의 풍광을 일그러뜨린 것이었다. 1960~1970년대 동두천은 ‘돈천’으로 불렸다. 푸른 달러가 시냇물처럼 흐른다는 뜻이기도 하고 돈천지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지 주변의 땅이 오염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불평이 농부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오래 전 땅속에 묻어 놓았던 초대형 기름 탱크와 송유관의 일부분이 부식돼 기름이 새어나온 것이었다. 몇 년인지 모를 세월 동안 토양 속으로 깊고 넓게 퍼져 나간 군용 기름은 옥토를 계속 오염시켜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거무칙칙하게 변질된 썩은 토지는 새싹을 틔워 올리지 못했고, 지하수나 우물엔 기름방울이 둥둥 떠서 먹을 수도 없고 빨래를 할 수도 없었다. 성냥불을 켜 붙이면 논물 위로 불이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


토박이 농부들은 그런 고향 땅을 보며 혹시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가 더럽혀진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양공주처럼 미군에 의해 훼손된 싱그럽던 향토가 안타까워 절망의 눈물을 흘렸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동두천뿐만 아니라 미군기지가 자리잡은 전국 각지의 100여 곳이 넘는 국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술력 좋은 미군이 왜 빵꾸난 오일 탱크를 고치지 않고 방치했을까? 그건 미군 자체가 나빠서라기보다 SOFA의 불공정성 때문이었다. 주일미군이나 주독미군과 달리 주한미군은 권리만 많고 의무는 거의 없는 ‘자유로운 서부영화의 총잽이’였다. 그들은 기지와 그 주변의 땅이 아무리 오염되더라도 원상복구해야 할 의무가 전혀 없었다.


[주한미군이 용산기지 내에서 1000갤런 이상의 기름이 유출된 ‘최악’ 등급의 오염사고 5건을 한국 정부에 숨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녹색연합·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용산미군기지 되찾기 주민모임은 2017년 4월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기지 내에서 1990년부터 2015년까지 84건의 기름 유출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가 통보받은 기름 유출사고 건수(5건)는 물론이고 이제까지 언론, 국회를 통해 알려진 기름 유출사고 건수(13건)보다 6배 많다. 특히 기름 유출 중 7건은 주한미군 자체 기준으로 ‘최악’ 등급에 해당하는 사고였으며 ‘심각한 유출’에 해당하는 사고도 25건이었다. 녹사평 인근 지하수에서는 1군 발암물질인 벤젠과 중추신경계 손상을 초래하는 석유계총탄화수소가 허용치의 5백 배를 초과해 검출됐다-지은이 주]


한국 땅은 그들에겐 잠시 체류하며 근무하고 재주껏 즐기다가 떠나면 되는 곳이었다. 부대 내엔 잘 정수된 수돗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오염에 대해 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의 심보를 들여다보면 남들이 못하는 것을 자기가 할 때 더 큰 기쁨을 느낀다고 동서고금의 속담은 알려주고 있다. 혹시 미군복을 입은 아메리카의 사람들은 정수기에서 나온 순수한 물을 마시면서 자기네들이 오염시킨 물을 마시는 농부들을 원숭이 같은 족속이라고 깔보았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한반도의 토양을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아녀자들을 희롱하고 강간하며 살인하여 한국의 심성 자체를 오염시켰다. 물론 인격과 인정으로 동등하게 보듬어 준 아메리카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군인들은 군모와 군복 속에 숨어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며 욕망을 채우기도 했다.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실시하던 군사훈련을 좁은 한반도에서도 유사하게 실행했다. 전 국토에서 수시로 펼쳐지는 미군의 폭격과 사격훈련은 금수강산을 제멋대로 파괴하고 자욱한 포연으로 더럽혔다. 그건 우방국을 지켜 주기 위한 훈련을 넘어서 한반도를 미국의 대리전투 훈련장으로 활용하고 더 나아가 미군 무기를 소비(판매)하기 위한 ‘작전’ 같았다.


한국 땅 여기저기서 연일 강행되는 사격훈련의 포탄은 한국 여자들의 음부 속에 반강제적으로 쏟아붓는 미군의 정액인 양 느껴졌다. 아니, 혹은 몽키하우스에 수용된 여자들의 몸에 일률적이고 규칙적으로 주사해 넣는 페니실린인지도 몰랐다. 성병에 걸렸든 안 걸렸든 일단 수용된 이상 매일 주사를 맞아야 했다. 병든 여자들은 빨리 치료돼 수용소를 나가고 싶어 했지만 그 페니실린 주사만은 죽도록 두려워했다.

 

심한 고통도 고통이지만 꼭 그 때문은 아니었다. 개개인의 몸 상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을 뿐더러 언제부턴가 한국인에게 적정한 단위가 아닌 미국인 표준에 맞춰 지나치게 과도한 단위를 무차별 투여했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면 페니실린 쇼크로 인해 온몸을 파르르 떨다가 성병균보다 먼저 시체가 되어 버릴 위험이 상존했다.


왠지 모르지만 황폐하게 파괴된 산하와 양공주들의 비극적인 삶은 간혹 한밤중 청운의 꿈속에서 겹쳐지곤 했다.

 

▲ 사진은 윤금이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다큐멘터리 ‘동두천’ 한 장면.    

 

소망식당 할매 살해당했다


청운은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미군 기지와 그에 기생하는 수많은 클럽들은 동두천 읍내가 아닌 보산리, 생연리 등의 농촌 마을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촌마을이 미국의 어느 다운타운처럼 흥청거렸고, 읍내는 언뜻 보아 껄렁한 갱 패거리가 바람을 몰고 왔다가 사라져 간 서부영화 속의 작은 마을처럼 고적했다.

 

그곳엔 관공서, 시외버스 터미널, 병원, 학교, 극장, 목욕탕, 다방 따위가 간판을 내걸고 있었으나 이따금 미군 병사와 진한 화장을 한 여자들이 팔짱을 낀 채 지나치는 모습을 제외하면 그닥 기지촌 같지 않았었다.

 

읍장, 원장, 교장, 사장님 들은 클럽 양공주들의 덕을 직접적으로 받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입었을 텐데도 짐짓 시침을 뗀 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히 깔보았다. 물론 일반 주민들 또한 그녀들에게 무척 냉정했지만….


청운은 들길을 지나 소망식당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에서 피에로 형을 만나 점심을 먹고 읍내로 나가 이소룡의 맹룡과강이란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왠지 분위기가 좀 이상스러웠다. 식당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경찰까지 보여 은근히 불안감을 자극했다.

 

더구나 간간이 여인의 새된 울음소리마저 들려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선감도를 탈출한 이후 청운은 경찰만 보면 지레 오금이 저렸으나 궁금증을 못 이겨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다가갔다. 마침 블루문 클럽에서 알게 된 여자들 몇이 서 있다가 청운을 보곤 손짓했다.


“대체 무슨 일이죠?”


청운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애고마니, 세상 천지에 이런 끔찍스런 일이… 백발 할마씨가 살해됐어.”


머리카락을 누르스름하게 물들이고 얼굴이 화장독으로 푸르칙칙한 여자가 울먹거리며 대꾸했다.


“뭐라구요! 아니, 언제 누가…?”


“글쎄, 세상에나… 칼국수나 한 그릇 먹을까 하고 왔더니만… 문은 열렸는데 아무리 불러도 할마씨가 아무 대답이 없는 거야요. 그래서 방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아이구 아이구… 한 많은 인생이 어찌 그렇게….”


볼 위에 주근깨가 점점이 앉은 다른 여자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키 작은 또 다른 여자가 앵두 같은 입술을 깨물며 겨우 말을 꺼냈다.


“할매는 아랫도리가 다 벗겨져 있었어. 그리고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 하얀 머리카락을 뻘겋게 물들였어.”


청운이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자 한국 경찰이 막았다. 노랑머리 여자가 청운의 팔을 잡아끌었다.


“보면 뭣하겠니. 그냥 살아생전 모습을 추억하는 게 더 좋을 거야. 하긴 그 언니가 청운이 널 아들처럼 생각했으니 너도 많이많이 아프겠지만….”


그때 저쪽에서 피에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원래 창백한 그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조선의 채플린을 자처하는 만큼 늘 하회탈처럼 해학적인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퍽이나 놀란 표정이었다.


“할매가 죽은 게 정말이야? 방금 전에 소식을 듣고도 긴가민가했건만… 대체 어찌 된 거야? 누가 왜 그런 짓을… 허기진 사람들한테 따뜻한 음식을 차려 주었을 뿐인데….”


“그러게 말야. 천벌 받을 놈!”


“뻔하지 뭐. 미군 개새끼 짓이 분명하다니깐.”


노랑머리 여자가 속닥속닥 소곤거렸다.


“속단해선 안 되겠지만, 이건 한국 사람이 저지른 건 아닌 성싶어. 만약 그랬다면 미군 놈들의 흉악스런 수법을 흉내 낸 짓인 것 같아.”


피에로가 이마의 주름살을 잔뜩 모은 채 중얼거렸다.


그때 하얀 앰뷸런스가 바닷속의 백상아리보다 더 기세 좋게 달려왔다. 얼마 후 한국 헌병들이 미군 엠피의 지시를 받으며 희망식당에서 검은 천을 덮은 시체를 들고 나와 앰뷸런스에 실었다. 그러고는 먹이를 삼킨 백상어처럼 휙 돌아 순식간에 사라져 가 버렸다.

 

달러 한 장과 군표 몇 장


텅빈 길바닥엔 음산한 바람이 불며 흙먼지와 휴지 따위를 휩쓸어 올렸다. 뒷산 어디선가 두견새가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애상하듯 구슬피 울었다. 그들은 한동안 망연히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저 새가 내 마음을 대신해 애통해 하는 것만 같군. 자, 이러고 있지 말고 일단 민들레회 사무실로 가서 의논해 보자구.”
피에로가 말했다.


“그래, 일단 내려가자.”


노랑머리 여자가 대꾸했다. 그들은 상념에 잠겨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그 언닌 누구한테 원한 살 만한 사람이 아닌데… 대체 왜 그리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을까?”


노랑머리 여자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말했다.


“돈을 노린 게 아닌가 싶어. 아까 방안을 잠시 들여다보았을 때 달러 한 장과 군표 몇 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봤거든.”


주근깨 많은 여자가 말했다.


“그래, 나도 같이 봤어. 그런데 물론 돈도 돈이겠지만… 방안의 참혹한 그 광경을 봤을 때 난 직감적으로 변태 성욕자의 짓거리로 느껴졌어.”


키 작은 여자의 대꾸였다.


“하기사 그 식당은 돈하고는 별 상관없는 우리들의 따스한 사랑방이었지. 밥 팔아서 재료비 대기도 힘들었을걸. 외상이 워낙 많았으니까. 이건 우리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노랑머리가 거들었다.


“음,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사건은 한국 남자나 여자가 저지른 범행이 아닌 게 확실해.”


피에로가 말했다.


“왜?”


청운이 반문했다.


“고인이 되신 그 누님이 고생을 직사하게 한 나머지 할망구 꼴이 돼 버렸지만 강단이 있잖아. 젊은 여자뿐 아니라 웬만한 남자 하나쯤은 쥐어뜯어 버린다구. 허지만 건장한 양키라면 얘기가 다르지. 아무리 발버둥친들 어쩌겠어. 힘이 딸리는걸. 그리구… 미국에서는 소녀나 노파에게 달뜨는 변태성욕자가 많은 모양이더라만, 한국에선 아직 시기상조거든.

 

혹시 그런 미치광이가 있더라도 돈 같은 것엔 별 관심이 없는 괴상스런 약골이지 남자답게 건장하면서 물욕까지 왕성한 ‘한국판 일반 사내’일 리는 없다는 얘기야. 그런 한국 사내들은 떼돈을 벌고 처녀를 1천 명 따먹는 게 꿈일진 몰라도 만일 노파를 범하는 꼴을 보면 아마 놀란 나머지 치를 떨 거야.”


“아이구, 셜록 홈즈 탐정께서 납셨네.”


노랑머리 여자가 빈정거렸다.


“내가 채플린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형사 콜롬보라는 걸 몰랐나 보군.”


“흥, 그럼 추리를 계속해서 범인을 잡아내 보시지 그래.”


“식당에 드나드는 사람은 많아도 큰돈이 모이진 않는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건 미군들이지. 혹시… 한탕 털려고 들어왔다가 잔돈푼뿐이니 딴생각을 먹었는지 몰라. 하여간 사망 시간, 지문, 체액 검사 등 과학적인 수사가 이뤄지면 쉽게 잡을 수도 있겠지만… 미군 사령부 휘하 헌병수사대가 과연 그렇게 할지 의문이야. 아마 가능하면 감추려 들겠지. 한국 경찰이 터치할 수도 없으니까… 후유, 답답하고만….”


“대체 누가 왜 언니를 능욕했을까? 일본군과 미군의 몸뚱이 밑에서 시달린 한많은 인생 끝자락에 밥보시나 하며 지장보살님처럼 웃었는데….”


키 작은 여자가 구슬픈 목청으로 말했다.

 

능글맞은 민들레회 회장


그들은 클럽타운 어귀에 도착했다.


두 여자는 바쁜 일이 있다면서 종종걸음치며 가 버리고 노랑머리 여자와 두 남자만 남아 서성이다가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재우쳤다. 외곽으로 조금 나가자 의외로 큰 빨간 벽돌 양옥이 보였다.


앞장서 가던 노랑머리 여자가 말했다.


“여긴 회장네 집인데 저 옥상 위에 사무실이 있어. 저게 다 양갈보 씹구녕에서 빼내간 돈을 야금야금 훔쳐 신축한 거래. 흥, 서울엔 더 어마어마한 건물이 있다더군. 정부에서 만든 새마음 운동본부와도 연줄이 있는 모양이야.”


그녀는 꽉 닫힌 검은 대문이 아니라 뒷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개가 컹컹 짖어댔다. 여자는 침을 찍 내뱉곤 계단을 올랐다.


“참 웃기게도… 이 회장 년은 민들레회 회원들이 사무실 임대료 명목으로 낸 회비를 살살 빼먹고 있어.”


옥상 한쪽에 만들어 놓은 화단에 말라 비틀어진 민들레 꽃대가 보였다. 언제 잎새에 푸른 물이 오르고 노란 작은 꽃은 어찌 피어날까? 옥탑방 출입문 위에 동두천 민들레회 사무실이란 간판이 걸려 있었다. 안쪽에서는 팝송이 흘러나왔다. 노랑머리는 휘파람으로 따라 불며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열리지 않자 확 당겼으나 마찬가지였다.


“쓰벌, 열린 행정이니 뭐니 해쌌더니 문 잠가 놓고 서방질이라도 하나 봬. 쌍년….”


꽤 불만스레 지껄이곤 마지막 말은 입속으로 작게 중얼댔다.


“음악 소리가 나니 있긴 있나 본데….”


“능구렁이 같은 년이니까 좀 있다가 나오겠지 뭐.”


그러면서 문을 쾅쾅 두드렸다. 잠시 후 종종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아이구, 조용한 시간에 업무 좀 보려니까 왜 이리 난리법석을 떠는 거야?”


금속성이 섞인 목청이었다.


청운은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방금 미장원에라도 다녀온 듯한 올림머리에 화장을 진하게 한 얼굴이었다. 목소리는 화를 내면서도 입술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만큼은 속을 짐작하기 어렵도록 능글맞아 보였다.


“어머, 남자분들까지… 어서들 좀 들어오세요. 그래, 웬일이야? 몸소 여기까지 납시구….”


회장은 노랑머리를 향해 빈정거림을 섞어 말했다. 노랑머리는 대꾸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청운에게만 들릴 정도로 “재수없는 년, 올림머리 하나는 지극정성으로 매일 한다니까.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여신인 양 추켜세우면서… 속아지는 개차반이고 머리 모양만 조롷게 흉내낸다니깐…” 하고 종알댔다.


모두 사무실로 들어섰다. 전기난로를 켜 놓아서 그런지 실내는 좀 후덥지근한 느낌이었다. 10평 남짓 돼 보이는 공간 속에 회장 명패가 놓인 테이블은 널찍하고 난초 화분 등 여러 가지 장식물로 잘 꾸며져 있었다. 벽 위엔 각종 상장이 든 금박 액자가 붙어 빛을 냈다.

 

회장 자리에서 맞바라보이는 벽 위엔 태극기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과 육 여사의 사진이 역시 금박 액자에 든 채 붙어 있었다. 어쩐지 위엄에 찬 대통령과 고상스런 올림머리를 한 영부인 사이에서 태극기는 좀 쪼그라든 모습이었다.


회장이 냉장고에서 미제 캔 음료를 꺼내 와 응접용 탁자 위에 놓았다.


“오렌지, 그레이프, 스트로베리, 입맛대로 골라서….”


“지금 이딴 걸 마실 마음이 있겠어? 회장씩이나 돼 갖고 개똥인지 쇠똥인지도 모르나 보네, 흥….”


“뭘 그리 흥분하니? 목이라도 좀 축이고 나서 얘길 들어 보자구.”


그녀는 푹신한 소파에 느긋이 기대 앉아 다리를 꼬았다.


<다음 호에는 독초&민들레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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