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바로 알기 릴레이 기획/영국 정치가 ‘글린 포드’가 짚은 북한의 노림수와 한반도 핵문제

“김정은이 간절히 원하는 건 정권 안전과 북한 번영이다”

박연파 기자 | 기사입력 2019/10/20 [11:58]

북한 바로 알기 릴레이 기획/영국 정치가 ‘글린 포드’가 짚은 북한의 노림수와 한반도 핵문제

“김정은이 간절히 원하는 건 정권 안전과 북한 번영이다”

박연파 기자 | 입력 : 2019/10/20 [11:58]

 

 

“북한 방문 50번…7년간 로동당 국제부 부부장과 폭넓은 대화” 
북한은 명백한 생존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 중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권 변화시키기’ 

 

북한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불량국가, 혹은 미치광이 국가로 치부됐고, 수많은 오해와 왜곡, 감춰진 진실을 만들어왔다. 그런 점이 지난해와 올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소위 ‘긴장 속의 고요함’을 만들어낸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 북한과 그들이 보유한 핵 억지력에 관해 수차례 협상이 진행됐지만, 한반도의,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미래에 관한 밝고 명확한 계획은 누구도 자신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북한에 50여 차례 다녀온 영국의 정치가 글린 포드가 북한 지도부와의 특별한 관계에서 얻은 북한 정권의 실상을 바탕으로 북한의 현재 입장을 분석하고 변화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책을 펴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글린 포드는 지난해 하반기 한국 서점가에도 선보인 <토킹 투 노스 코리아>(생각의 날개)를 통해 “여전히 내부적인 문제가 몇몇 있지만, 북한 지도층은 근대화와 번영을 이룩하고 고립상태에서 벗어나려고 고심하는 중”이라면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대처한다면 충분히 평화와 공존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진단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을 포함한 최근 국제정세의 전개 양상을 분석하고, 더 많은 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수백만 명의 삶을 위협할 수도 있는 국제전쟁의 위협을 슬기롭게 피해갈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하는 글린 포드의 담론과 분석을 간추려 소개한다. 


 

▲ 북한 노동신문은 10월17일 평양 주민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백두산 행보를 전하는 노동신문을 보는 모습을 보도했다.     © 뉴시스

 

북한은 어떻게 현재의 상황에 이르렀는가? 지금 북한이 의도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이런 북한의 입장을 정말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면 세계가 북한을 보는 시각과 북한이 세계를 보는 시각을 시의적절하고도 예리하게 분석한 영국의 정치가 글린 포드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

 

“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열린 북한 대 이탈리아 경기였다. 북한에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기 훨씬 전이다. 1984년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된 후 대외관계위원회(현 국제무역위원회)에서 내가 처음으로 했던 제안 중 하나는 유럽연합과 북한 간의 무역관계 보고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 보고서에서 북한과는 어떤 관계도 무역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북한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고 관심 대상도 아니었던 것이다. 유럽의회 보고서들이 다 그렇듯이 이 보고서도 한 부씩 ‘집행 위원회, 이사회, 회원국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 발송된다’는 표준문구로 끝을 맺었다. 


2년 후 프랑스 파리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네스코 대사관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이 유럽의회 보고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물었다. 그들은 보고서를 본 적도 없다고 대답했다. 브뤼셀로 돌아와서 나는 유럽의회 행정부서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공식 답변은 ‘주소가 없었다’였다. 변화가 필요했다. 2004년 유럽의회는 한반도에 상주대표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그 조치만으로는 상황을 개선하기에 부족했다.”


북한의 고위관료들과 직접 접촉하며 평생 북한을 관찰하고 분석해온 글린 포드는 자신과 북한의 첫 인연을 이렇게 술회한다. 

 

2017년 평양 5번 방문 왜? 


포드가 북한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97년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어두운 시기, 기근의 정점에 있을 때였다. 그 뒤로도 다양한 구실로 거의 50번가량 북한에 다녀왔다, 1997년부터 유럽의회 특별대표단의 일원으로 여러 번 방북했으며 2004년에는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 상주대표단 설립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방북 초반부터 나는 북한에서 권력이 어디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면서 “중국과 마찬가지로 영향력이 있는 곳은 정부 부처가 아니라 당이었다. 내 방북의 대부분은 조선로동당 국제부의 후원으로 이뤄졌다”다고 소개했다. 


이후 2012년에는 유럽연합의 정치인들과 대화를 주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국제중재단체 인터미디에이트(Inter Mediae)를 설립한 조너선 포웰과 함께 이를 성사시켰다. 그 이후로 포드는 1.5트랙 회의정부 관리와 민간 전문가가 함께 참석하는 반관반민 회의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현재 이 회의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 주최한다. 또한 포드는 “남한에 대한 북한의 시각은 조선아시아태 평양평화위원회(통일전선부)에 의해 전달된다”고 짚었다. 

 

▲ 지난 9월 평양의 청년 중앙회관에서 제17차 조선옷 전시회가 열렸고, 이 행사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한 모델이 무대를 걸으며 한복을 선보이는 모습.     © 뉴시스


포드는 “지난 1년간 5번이나 평양에 갔다 왔다”고 털어놓으면서 “이런 특이한 접촉 기회 덕분에 백악관에서 청와대로, 일본 내각에서 중국 외교부로, 유엔에서 미국 태평양사령부로, 유럽연합 대외 관계청에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로 통하는 문을 열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후 북한에 관해 가장 뛰어난 통찰을 가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포드는 지난 73년 동안의 정치 책략, 의사소통 장애와 정체로 인한 실패 사례, 그리고 이 교착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을 보여주면서도 북한에 대해 치우치지 않은 시각을 제시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북한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핵무기와 미사일로 온 세 상을 확실하게 협박하면서 25년째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전에 내가 <벼랑 끝에 선 북한(North Korea on the Blink)>라는 책을 쓰기로 작정했던 이유는 그때까지 나온 북한 관련 서적 대부분이 완전히 암울한 내용이거나 아주 드물게 완전히 밝은 내용이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악의 축’ 아니면 사회주의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모두 아니다.” 


글린 포드는 전 세계에서 북한을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국제적인 북한 전문가다. 전 유럽의회 의원으로 국제정치와 외교에 능통하며 북한 관련 경험을 가장 많이 한 사람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그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북한의 내부 사정과 최근 변화를 여과 없이 그대로 잘 설명해준다.

 

“북한은 군사용보다 비즈니스 계약 거래수단으로 쓰려고 핵 구축”
“그러나 미국 정부는 북한이 무얼 내주려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북한은 50가지 회색의 나라 


포드는 “북한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나라”라고 규정하면서 “적 또는 친구의 이미지에서 생겨난 흰색이나 검은색보다는 다소 어두운 색조를 띤 회색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지난 10년 사이에 역사는 많이 진보했다. 모든 것이 변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한반도는 평화보다 전쟁에 더 가까웠다. 북한은 국민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불친절한 정권이 다스리는 가난하고 고립된 나라다. 하지만 북한의 적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북한의 고통을 더 심화할 것이다. 유럽연합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을 빈곤에서 구제한 덩샤오핑 정권과 그 후속 정권이 기대수명을 10년이나 떨어뜨리고 강도 억만장자, 한 명을 위해 수천, 수만 명을 빈곤 상태로 몰아넣은 옛 소련의 정실자본주의보다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의 국민 대다수는 현재 자신들이 겪고 있는 잔인하고 가혹한 혼란 상태가 과 거의 질서정연했던 권위주의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까? 이라크의 보통 사람들은 내란과 내전이 10년 가까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 상황이 가혹했던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보다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할까?” 


포드는 “이런 의문들은 답하기가 쉽지 않지만, 제기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면서 “북한이 민주주의나 왕이 없는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봉건주의 시대와 식민지 시대를 거쳐 바로 공산주의 국가로 진입했다는 점을 고려해 북한의 역사, 정치, 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하드 파워가 아닌 소프트 파워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의도에서 북한에 대한 책을 펴내게 됐다”고 토로한다.


아울러 그는 시종일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비판적 개입’, 즉 ‘정권 교체하기’가 아니라 ‘정권 변화시키기’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북한 방문 횟수가 50번쯤 되고, 지난 7년간 조선로동당 국제부 부부장과 폭넓은 정치 관련 대화를 나눠왔다. 그 덕분에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 더 정교한 이해가 가능해진 것은 사실이다.” 

 

▲ 북한 로동신문 인터넷판에 공개된 "희열과 랑만이 넘치는 릉라물놀이장" 제목으로 더위를 피해 평양 릉라유원지 내 릉라물놀이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 뉴시스

 

패러독스에 빠진 북한 정권 


“평양은 패러독스에 갇혀 있다. 북한이 장기적으로 확실하게 생존하는 데 필수라고 생각해온 바로 그 방법이 단기적으로 북한을 위험에 빠뜨렸다. 핵 억지력 구축과 경제 발전에 동등한 비중을 둔 김정은의 ‘병진노선’은 경제 성장을 위한 안보 환경과 시간·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근본적으로는 북한을 베트남이나 중국의 변형 모델로 만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 병진노선에 따른 북한의 핵 정책은 미국의 ‘예방’ 타격과 ‘의지 연대’를 촉발해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동반하는 제2의 한국전쟁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미국은 북한을 철 지난 헤어스타일의 부유한 천덕꾸러기 청년이 통치하고 중국에 빚을 진 저개발 공산국가, 그래서 인과관계라는 정상적인 정치적 지렛대에 둔감하고 외면당하게 된 위험한 집단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상황에 갇혀 있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산업·경제가 부상하지 못하면서 북한 정권에는 외부 세계를 믿지 않을 정당한 이유가 생겼으며, 명백한 생존 위협에서 확실하게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의 처지에서 자신들의 행동은 생존 투쟁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북한의 정치적 층위가 드러난다. 기저를 이루는 봉건주의적 계층 위로 잔혹한 일제 식민주의의 교훈이 덮여 있다. 그 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미국이 경솔하게 강요한 분단이라는 층이 있다. 한국전쟁 초기 이래 모든 일은 결국 반세기의 교착상태를 초래한 문명 간의 대리전 성격으로 변했으며, 북한은 붕괴하는 소련의 잔해 밑에 묻힐 위험을 겪기도 했다. 북한의 최근 행동은 돌격을 위한 외침보다는 도움을 청하는 외침에 가깝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외교적 사건에 관해 남한 사람 대부분은 북한 정권이 매우 폐쇄적이고 극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드는 “이것은 과거의 북한과 현재의 북한을 혼동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북한은 오히려 변화를 원한다”고 귀띔한다. 


그 변화는 시장경제의 도입을 통한 경제 발전, 그리고 북한 정권 유지와 안전 보장, 국제사회의 인정과 존중을 위한 변화다. 그들에게 핵무기와 전쟁 위협은 세계를 상대로 한 도움의 외침이나 협상의 수단에 가깝다. 이런 북한의 속내에 관해 포드는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현재의 긴장 상태를 지속하지 않고 서로가 원하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평화적 공존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단, 서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의 미덕을 발휘한다면 말이다. 


“북한 정부의 패러독스는 경제 건설과 핵 억지력 구축을 동시에 시도하려는 데 있었다. 하지만 후자는 자동적으로 전자의 달성에 방해가 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한 단계씩 진전을 보일 때마다 국제사회가 북한 경제의 목을 더 바짝 졸랐기 때문이다. 2010년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은 국가와 당 지도부에 새로운 자신감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허용해줬던 시장(경제)을 김정은은 두 팔 벌려 수용했고, 북한의 도시 곳곳은 점차 시장 주도적으로 변하고 있다. 


아버지 시절 핵 억지력 개발은 불만족스러운 협상으로 중단을 거듭하며 개발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간헐적으로만 발전이 이뤄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김정은은 2013년에 모든 것을 다 걸었다. 김정은의 의사결정은 핵 억지력 프로그램을 동반한 경제 성장이 장기적으로 가망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결과다. 그가 북한의 핵 억지력을 팔아넘기기로 마음먹었으니 경제적 족쇄는 곧 풀릴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핵의 판매가를 최고로 높일 수 있을까? 


일확천금의 행운을 얻으려면 미국 본토에 그럴 듯하게 핵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완성된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 정도는 있어야 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빨리 일어날수록 좋은 법이다. 핵개발에 대한 경제적 압박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더 많은 제재의 장벽이 북한 경제를 서겠지만, 북한 정부가 그들의 핵 억지력을 인도주의적 손길과 개발 지원, 안전 보장 등과 맞바꾸는 대응 거래에 성공한다면 제재의 장벽은 한 층씩 철회될 일이다. 이 외교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로 지난 1~2년 사이에 우리는 북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최고조에 달했던 전쟁 위기와 테러의 공포, 핵무기 관련 소식과 북미 관계 악화에 가슴 졸여야 했다. 


이런 분위기는 해가 바뀌자마자 김정은의 긍정적인 신년사와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그리고 이어진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한숨 돌리게 됐다. 특히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국내에서 벌어진 거대한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북미정상회담 성사로 긴장은 서서히 완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제법 좋아 보이던 관계는 최근 다시 북한과 미국 간의 신경전으로 인해 교착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분위기다. 이렇게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양상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과연 북한의 의도는 무엇이며,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의 본심을 파악하기에 앞서 우리는 북한을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뭘 주려는지 모른다” 


글린 포드는 “김정은이 원하는 바는 정권의 안전과 국제사회의 존중, 그리고 북한의 번영 세 가지”라면서 “이를 위해 그는 실제 군사용보다는 비즈니스 계약의 거래 수단으로 쓰려고 구축한 핵 억지력을 기쁜 마음으로 맞바꿀 것”이라고 분석한다. 


아울러 그는 “그러나 미국 정부는 북한이 무엇을 내주려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서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뒤이은 초기의 낙관주의, 심지어 일부 집단이 얻은 희열은 쓸모없는 곳에 허비됐다”고 꼬집는다.


“미국과 세계 언론은 북한 정부의 약속을 풍자의 핵심 삼아 과장하고 꾸며 댔다. 북한을 마치 속이 보이지 않는 상자에 구멍을 뚫어놓고 손을 넣어서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가지라고 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제는 북한에 하나 가격에 두 개를 주는 특별할인이나 깜짝 선물을 기대할 수 없다. 김정은의 2018년 신년연설은 간단 명료했다. 그는 핵 억지력 구축을 완료했으며 핵무기와 대륙간탄도 미사일 시험을 더 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이제는 대량생산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서해 위성발사 시설의 로켓엔진 시험대 해체 등 김정은이 추가로 보여준 일방적 행동들은 모두 그런 기조와 확고하게 일치한다. 힘 쓰고 땀 흘리는 작업 과정은 모두 끝났고, 마침내 핵 억지력은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진행 순서도 지키지 않으려 했다. 김정은에게는 북한의 비핵화 노력을 시작하기에 앞서 ‘종전’ 선언이 꼭 필요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성명서에는 이 입장이 그대로 반영됐다.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노력에 동참할 것과,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은 평화에 앞서 핵사찰, 비핵화 검증 등을 요구하는 교묘한 술책을 꺼내 들었고, 이는 지난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폭력배’로 취급당하고 8월 방문이 취소되는 결과를 낳았다. 트럼프의 참모진은 여전히 과거의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김정은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협상하던 시절처럼 생각한다. 


그간 북한 정부는 남한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회복을 포함해 수많은 평화의 신호를 계속 보내왔다. 마찬가지로 지난 9월9일 북한의 정권 수립 70주년 건국절 기념식은 모든 군인이 평양 시민과 함께 김일성광장을 행진하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유행과도 같은 군대 포스터를 옥외간판에서 모두 제거하는 등 북한 역사상 적의를 가장 적게 드러낸 행사였다. 하지만 북한은 1945년 8월의 일본 같이 ‘항복하는 나라’가 아니다. 어떤 해결책을 택하든 협상은 서로 주고받는 방식이어야 한다. 김정은은 두 번째 정상회담을 통해 고립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에게는 비타협적 태도에 직면했을 때 끝없이 인내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 트럼프와 미국 정부를 잘못 판단했는지는 최근 북한 최상위 지도층 내에서 격렬하게 논쟁하는 사안이다.”


북한 정부의 이런 회의주의는 미국이 자신들의 북한 관련 선동을 스스로 끊임없이 신뢰한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게 포드의 진단. 여기에는 미국의 정책이 베이징을 향한 2차 제재가 추가된 ‘최대 압박’으로 돌아갈 위험성도 한몫하고 있다고. 미국은 유엔을 통해 과정을 통제하는 방식 대신, 한반도 주변 지역의 국가들 사이에서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긴장감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그들의 조기 단결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TV 생중계 보너스 챙겨라” 


포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영리하게 처신했다. 짧다면 짧은 지난 10년간 서로 반감을 품었던 시진핑과 지난 3월 북경에서 화해한 일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미국 정부의 서투른 외교와 맞물려 힘의 균형을 흔들었다”고 분석했다. 


“북한을 상대로 한 연합전선은 와해 중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역할을 나눴다. 시리아 사태에서 러시아가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면, 한반도 문제에서는 중국이 그런 위치다. 두 나라는 북한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만으로도 제재 완화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남한 정부는 두려움과 선호에 의해 움직인다. 그들은 자국의 기회가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유엔에 의해 거부되고 북한 경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통제력이 증가할까봐 두려워하지만, 한편으로는 포괄적 참여를 선호한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은 서로 얽히고설킨 채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상황이 나빠져서 미국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의 동조가 없는 북한 정권 제재는 한 손으로 손뼉을 치는 격이고 남은 유일한 각본은 물리적 방법뿐이라고 인식한다면, 정말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마지막이자 최고의 희망은 두 번째 정상회담이다. 말 그대로 대타협이 필요하다.” 


포드는 “미국에서 전달할 만족스러운 타협안에는 ‘종전’ 선언과 평화회담의 시작, 제재 해제를 위한 초기 일정 전달 등이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의 경영과 첨단기술, 대학교육 의 리더들이 북한에 방문해 과학기술과 근대화, 투자 등에서 김정은의 손을 덜어준다면 금상첨화”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북한 측을 향해 “영변 흑연감속원자로와 관련 시설 폐기 및 무력화, 파괴와 더불어 국제 전문가들의 풍계리 시험장 조사,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영구 중단 등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이를 TV로 생중계 한다면 큰 보너스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누구나 한반도의,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미래가 어느 방향을 향해야 모두에게 이로울지는 잘 안다. 하지만 그 방향이 어느 쪽인지, 그리고 그 길이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래서 글린 포드는 ‘터널의 끝에는 빛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터널이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표현으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북한에 관한 정확한 지식과 인사이트를 담은 글린 포드의 분석은 그 터널을, 우리 모두 가야 할 길을 올바로 찾을 수 있는 지도이자 나침반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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