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

풍수도사 남사고는 왜 부친 묘를 9번이나 옮겼나?

글/장천규(풍수연구가) | 기사입력 2019/09/06 [11:36]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

풍수도사 남사고는 왜 부친 묘를 9번이나 옮겼나?

글/장천규(풍수연구가) | 입력 : 2019/09/06 [11:36]

명당 골라 부친 남희백 묘 이장…얼마 후 가보면 엉뚱한 묘가 ‘떡~’
유명한 풍수가 입소문…부친 묘 이장→파묘 8번 계속되자 오기 발동

 

무덤 옮기면 벼락 맞아 죽는 ‘뇌정택일’ 후 비룡상천형 터에 부친 이장
그 터는 마른 뱀이 나무에 걸린 형상…‘부친 덕은 여기까지’ 이장 포기
미래 살핀 후 비석 세우고 ‘6대 방손 남구만이 개봉축하리라’ 글귀 적어

 

▲ 풍수도사 남사고의 부친인 남희백의 묘는 아홉 번 이장을 하고 열 번 묘를 쓴 이야기로 유명하다.    

 

경북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에 남사고의 부친인 남희백의 묘가 있다. 남희백의 묘는 남사고가 아홉 번 이장을 하고 열 번 묘를 쓴 이야기로 유명하다.


천축산에서 뻗은 산맥의 줄기가 굽이쳐 오다가 혈을 형성했다. 그 혈에 남사고는 아버지 남희백의 묘를 조성했다. 남희백의 묘는 명당 터인 것은 분명한데 정혈에서 약간 윗부분에 묘를 쓴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사고 의 구천십장(九遷十葬)의 야사로 눈을 돌려보자.


남사고는 아버지 묘가 좋지 않다는 알고 이장하기로 결심한다. 옛날에는 모든 산이 나라의 것이라 묘 자리를 찾아서 먼저 그 자리에 묘를 만들면 자기 것이었다.


사람들은 남사고가 유명한 풍수사라는 것을 소문을 들어 다 알고 있었다. 유명한 풍수사를 모시려면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일반인들이 풍수사를 모셔서 묘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남사고는 아버지 묘 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때 눈에 띄는 자리를 하나 발견하고 기뻐했다.


‘이제야 아버님을 명당 터에 모시게 되는구나!’


남사고는 아버지 묘를 파묘하여 자기가 찾은 명당 터에 이장을 했다.


‘내가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도사가 되었는데 이제야 내 아버님을 모시게 되었구나!’


남사고는 기쁘게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다.

 

부친 이장했지만 번번이 파묘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 묘를 다시 찾은 남사고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 묘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묘가 조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남사고는 이것이 어떤 영문인지 알아보았다. 사람들이 남사고가 유명한 풍수사인 것을 알고 남희백의 묘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자기 부모님을 모신 것이었다. 남사고는 아버지 유골이라도 찾아야 했다. 주위를 살피니 남사고에게 쓴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소신이 부모님을 명당터에 모시고자 나쁜 일을 벌였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선생님의 아버님 유골은 다른 곳에 모셨습니다.”


남사고는 유골을 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남사고는 다시 묘 자리를 찾았다. 그곳에 아버님을 다시 장사지내고 산을 내려왔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묘소에 가보니 전과 똑같이 아버지의 묘가 다른 사람의 묘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편지에 유골을 다른 곳으로 이장했다고 적혀 있었다.


남사고는 아버지 유골을 다시 찾은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다시 명당 자리를 찾아 이장했다. 그러나 계속 그런 일이 발생했다. 남사고 또한 화가 났다.


‘아니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니냐!’


‘나에게 이야기를 하면 명당자리를 찾아줄 것인데 이렇게 남의 아버지를 마음대로 이장하고 자리를 차지하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


남사고는 여덟 번을 이런 일을 당하고 화도 나고 오기도 생겼다.


‘아홉 번째 이장은 어느 누구도 묘에 손을 댈 수 없게 해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남사고는 명당을 다시 찾았다.


“아! 여기구나!”


“이제 누구도 파묘하지 못하도록 택일을 하자!”


남사고는 뇌정택일(雷霆擇日, 무덤을 이장하려고 파면 번개와 벼락으로 인해 죽음을 당할 수 있는 택일)을 했다. 그리고 남희백을 비룡상천형 명당에 이장을 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와 집에 도착했다.

 

10번째 쓴 묘는 고사괘수


하루는 거지 떼들이 집을 찾아와 노래를 불렀다.


“구천십장(九遷十葬, 아홉 번 이장하고 열 번 장사지내다) 남사고야 비룡상천(飛龍上天,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 웬말이냐? 고사괘수(枯蛇掛樹, 마른 뱀이 나무에 걸려 있는 형상) 아니더냐!”


남사고는 깜짝 놀라 거지들을 다 내보내고 노래를 부르는 거지를 불러 물었다. 그러나 그 거지는 풍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자신은 어느 노인이 하는 말을 듣고 따라 부른 것이라고 했다.


남사고는 하도 이상하여 아버지 묘소에 가보았다.


‘아! 내 잘못이구나!’


남사고는 무릎을 치며 이장을 하고 싶었으나 이장을 할 수가 없었다. 다시는 파묘할 수 없도록 뇌정택일을 한 것이 문제였다. 파묘를 하게 되면 번개와 벼락으로 인해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남사고는 ‘아버님의 덕이 여기까지구나’ 생각하고 미래를 살폈다. 그리고 비석을 하나 세웠다. 비석에는 “육대 방손(직계자손이 아닌 사촌이나 형제 등의 자손) 남구만이 개봉축(改封築 봉분을 다시 고쳐 만들다)하리라!”고 적어 놓았다.


시간이 지나고 남사고의 손이 끊겨 묘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남구만이 삼척부사로 임명을 받고 길을 가는데 길 옆 남희백의 묘를 지나가던 중 그곳 비석에 적힌 글을 보니 남구만 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상하다 생각하며 삼척에 도착했다. 미심쩍은 생각에 남구만은 족보를 열어 보았다.

 

그런데 묘의 주인 남희백의 6대 방손이 자신인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남사고가 6대 방손 남구만이 아버지 묘소 옆을 지나갈 것을 알고 비석에 남구만의 이름을 적어 놓은 것에 감탄했다.


남구만은 남사고가 비문에 적어 놓은 것처럼 봉분을 다시 꾸몄다. 남구만은 그 덕으로 인해 승승장구하여 영의정까지 올라갔다.

 

▲ 남구만은 5대 조상 남사고가 비문에 적어 놓은 대로 6대 조상 남희백의 봉분을 다시 꾸몄다. 남구만은 그 덕으로 인해 승승장구하여 영의정까지 올라갔다.    

 

비석 세워 실수 바로잡아


경북 울진군에서는 격암기념관을 만들고 남사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격암 남사고 선생은 1570년(선조3년) 관상감 천문교수가 되었으며 풍신수길의 출생, 문정왕후의 죽음, 정여림의 난, 선조의 등극, 임진왜란, 남명조식의 죽음, 자신의 죽음 등 많은 예언을 적중시켰으며 전란을 피할 수 있는 10승지(①충남 공주 유구마곡, ②전북 부안 변산, ③전북 남원 운봉 두류산, ④충북 보은 속리산, ⑤전북 무주 무풍, ⑥경북 성주 만수동, ⑦경북 예천 금당곡, ⑧경북 풍기 금계촌, ⑨경북 봉화 춘양, ⑩강원 영월 정동 상류)를 예언했고 한반도가 백두산 호랑이 형상임을 주장했다.

 

특히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만주 땅을 할퀴는 형상이다. 백두산은 호랑이 코에 해당하며 포항에 위치한 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래서 포항의 영일만 동쪽 끝 땅을 호랑이 꼬리라는 뜻으로 호미곶(虎尾串)이라 일컫게 되었다.”


이처럼 기인인 남사고는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해동의 소강절이라 불리며 천문과 지리의 오묘한 경지에 통달한 도사이지만 자신의 부모님 묘소는 약간의 실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하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아쉬워한다. 항상 어떤 일을 할 때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며 최선을 다해 실행해야 한다. 또한 결과를 확인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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