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 기자와 이탄희 판사의 사법농단 진실 추적기 지상중계

“이해할 수 없는 강제징용 재판, 판사 뒷조사…그 뒤에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집단 있었다”

정리/송경 기자 | 기사입력 2019/08/23 [13:57]

권석천 기자와 이탄희 판사의 사법농단 진실 추적기 지상중계

“이해할 수 없는 강제징용 재판, 판사 뒷조사…그 뒤에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집단 있었다”

정리/송경 기자 | 입력 : 2019/08/23 [13:57]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재판 지연은 ‘양승태 코트 사법농단’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2012년 대법원에서 역사적인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2013년 일본 전범기업의 재상고가 접수된 뒤 2018년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사건이 5년간 대법원에 묶여 있는 사이 원고 9명 중 8명이 숨졌다. 베일이 벗겨진 순간 적나라한 내막이 드러났다. 법원행정처에서 판사들이 법관의 양심을 저버린 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건들을 만드는 사이 행정처 간부들과 청와대, 정부 사이에는 은밀한 만남과 전화통화들이 이어졌다. 그 결과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돼 재판을 받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법원에는 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베테랑 기자 권석천이 부당한 지시에 저항해 사표를 냄으로써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베일을 벗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탄희 전 판사와의 심층 인터뷰를 시작으로 오랜 법조기자 생활에서 만났던 다양한 취재원의 증언을 듣고, 법정에서의 재판을 취재하고, 방대한 관련 자료를 검토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법원 내부의 실상을 파헤치는 <두 얼굴의 법원>(창비)을 펴냈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는 권석천 기자의 책을 바탕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강제징용 재판 지연의 뒤에서 대한민국 최고 권력집단이 벌인 사법농단의 진실을 간추려 지상중계한다.

 


 

강제징용 재판 지연은 ‘양승태 코트 사법농단’ 빙산의 일각 불과
법원행정처 판사들 양심 저버린 채 재판에 영향 미칠 문건 작성
법원행정처 간부들과 청와대, 정부 사이엔 은밀한 만남과 전화통화

 

이탄희 전 판사,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베일 벗기는 데 결정적 역할
그 똑똑한 ‘양승태 코트’ 판사들은 왜 이토록 처참하게 실패했을까?

 

‘강제징용 재판 사례’는 한일 간의 마찰 넘어 사법농단의 본질 압축
현실의 법원은 대법원장 받들고 사법부 지킨다는 조직논리로 움직여
사법농단 의혹과 진상규명 과정에서 ‘두 얼굴의 법원’ 적나라한 노출

 

김명수 코트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코트 법원행정처 조사하는 한계
충격 문건 드러났지만 결론은 ‘블랙리스트’ 없었고, 형사처벌 어렵다?
조직논리는 법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함께 넘어서야 할 문제

 

“자유·평등·정의.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현관 장식벽에 새겨진 단어들이다. 지금 판사들은 이 단어들 앞에 서 있다. 당신은 진정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위해 살았는가? 대답하지 않는 자, 영원히 이 물음에 붙들려 있어야 한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대답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꼼짝할 수 없다.

 

2017년 2월16일, 그날이 없었다면. 판사들은 이 곤혹스러운 물음 앞에 서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사법농단’이라는 말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판사님들의 속마음에 시민들이 충격 받는 일도 없었을 테고. 2017년 2월16일 이탄희 판사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면.


대법원장, 대법관, 법원행정처 간부, 법원장, 판사들, 그들 하나하나가 우수했고 명석했으며 성실했고 선량해 보였다. 그런 사람들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오죽하면 이런 개탄이 나왔을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원의 엘리트들을 뭉텅 데리고 갔다.’”


베테랑 기자 권석천이 ‘사법농단’에 대한 최초의 심층 기록을 엮은 책 프롤로그에서 한 말이다.


권 기자는 부당한 지시에 저항해 사표를 냄으로써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베일을 벗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탄희 전 판사와의 심층 인터뷰를 시작으로 오랜 법조기자 생활에서 만났던 다양한 취재원의 증언을 듣고, 법정에서의 재판을 취재하고, 방대한 관련 자료를 검토했다. 그 작업들을 통해 사건이 처음 불거졌던 당시의 상황과 세 차례에 걸친 대법원의 자체 조사, 검찰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충실하고도 입체적으로 담을 수 있었다.


“그 똑똑한 ‘양승태 코트’의 판사들은 왜 이토록 처참하게 실패했을까? 이번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이 남긴 최대의 미스터리다. 그들의 실패는 단순히 수사와 판결, 징계의 대상이 된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이 가장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원하지 않는 장소에 서 있다.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든 무죄가 선고되든 그들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과정을 읽다 보면 이탄희 판사가 왜 두 번 사표를 내야 했는지 알게 되는 동시에 한국 법원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특히 ‘강제징용 재판 사례’는 한일 간의 마찰 차원을 넘어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법농단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재판 지연은 ‘양승태 코트 사법농단’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사진은 대법원 모습. <뉴시스>


권석천 기자는 ‘사법농단’이 단지 양승태 코트 몇몇 인물들의 일탈이 아니라 대법원장 중심의 법원 시스템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될 수밖에 없는 조직논리에서 비롯됐음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낸다.

 

나아가 조직의 존재 이유인 공적 가치를 배신하고 조직원들―구체적으론 고위조직원―의 사사로운 이익에 충성하는 조직논리가 세월호 참사부터 각종 부정부패 사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지적하고 경고한다. ‘사법농단’이라는 사건 앞에 서 있는 지금이 한국사회의 중요한 갈림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는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김명수 코트의 판사들도 실패했다. 대법원이 여러 차례 진상조사를 벌였지만 의지 부족, 역량 부족의 자기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자체 해결을 하지 못해 검찰 손에 맡겨야 했다. 이 두 번의 실패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탄희는 왜 두 번 사표를 내야 했을까?”


권석천 기자는 “사법농단 의혹과 진상규명의 뒤에 두 얼굴의 법원이 있다”면서 “하나는 국민 앞에서 자유·평등·정의라는 공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법원이고 다른 하나는 대법원장을 받들고 사법부를 지켜야 한다는 조직논리로 움직이는 현실의 법원”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법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당신과 내가 함께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공직사회가 그리고 공적 가치를 지향하는 영역들이 모두 같은 함정에 빠져 있었다. 조직부터 살고 봐야 한다는 도그마 속에서 조직의 존재 이유를 배신해왔다. 세월호 참사부터 각종 부정부패, 국정농단, 사법농단까지 모든 일들이 이 조직논리의 프리즘 안에 있다. 판사들의 좌절이 못내 안타까운 것은 그래서다.”


바닥으로 추락한 법원의 신뢰를 회복하고 주권자인 시민을 위한 재판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사회가 조직논리를 넘어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대한민국 헌법이 법관의 독립을 보장한 이유는 뭘까? 모두가 실패하지 않도록 법관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법복 입은 그들마저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렸음이 발각됐다. 다른 이들의 실패를 정리해줘야 할 그들이 더 크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거 보라고. 세상은 원칙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야.’ 현실은 우리에 게 이죽거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감히 이렇게 묻고 싶다. ‘모든 허위의 베일이 벗겨진 상황을 나쁘게만 볼 일일까,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마지막 골목까지 다다른 지금, 오히려 시작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 같았던 법원 내부 실상


양승태 코트에서는 믿기 힘든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판사를 뒷조사하고, 법관들의 인터넷 카페를 사찰하며, 학술 연구단체 해체 방안을 연구했다. 재판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건이 만들어지고, 청와대와 국회를 어떻게 움직일지 브레인스토밍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러한 일을 한 주체가 판사들이라는 사실이다.

 

▲ 양승태 체제에서 법원행정처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뉴시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실화였지만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 사건의 내막을 생생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발령을 받은 직후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며 사직서를 제출해 ‘사법농단’을 우리에게 알렸던 이탄희 전 판사(현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소속 변호사)와의 심층 인터뷰가 필요했다.

 

권석천 기자는 10차례에 걸친 이탄희 판사와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사건 전개과정을 추적했다.


“책을 위해 판사 이탄희와 인터뷰를 해나가면서 확인한 것이 있다. 그가 겪은 경험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처음 사직서를 냈던 2017년 2월 이후 자신을 덮 쳐오는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히고, 대화한 지난 2년에 한국사회가 농축돼 있다.

 

한번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이탄희 판사는 지쳐 보였다. 자신이 원치 않던 상황 속에서 겪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려야 했으니까. 그 과정을 통해 성숙했으나 또한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평생 깨고 싶지 않았던 판사의 꿈을 박탈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더 강해졌다.”


“우리에게는 사법농단에 맞서 저항했던 이탄희가 있고, 한목소리로 진상규명을 외쳤던 전국의 판사들이 있다. 내밀한 압박에도 법관의 양심을 지킨 핀사들이 있다. 정의와 원칙이 살아 숨쉬는 세상을 위해 지금도 땀 흘리는 그들이 있기에 한국 사법에 거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제가 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중대한 상황을 또다시 무관심과 진영논리의 휴지통에 욱여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과거’를 손가락질하는 대신 ‘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모두의 미래’를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관련자 몇몇의 처벌을 판단하는 형사법정의 좁은 틀에 ‘사법농단의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질 때 법원의 변화가 시작된다. 법원이 달라지면 그 변화는 사회 곳곳으로 펴져나간다. 자유·평등·정의가 대법원 장식벽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 약동할 때 여러분과 저의 일상은 바뀔 수 있다. 이제 서막을 올렸을 뿐이다. 재판은 이어질 것이고, 증거와 증언은 계속 나올 것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저마다의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이 순간에도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권력에 선악이 없듯 진실에도 선악이 없다. 맞서지 않으면 진실은 지켜지지 않는다. 조금은 다른 세상에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부디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행동하고, 대안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책에는 ‘좋은 판사’의 꿈을 키워가고 있던 판사 이탄희가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갈등의 한복판에 서게 되면서 겪게 됐던 일들이 속도감 있는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사표를 내게 되는 과정과 이후 사표를 철회하는 과정에서 그가 법원행정처와 고위 법관들로부터 받았던 회유와 부당한 지시, 압박, 선배 판사들의 정치적인 언행까지 그 모든 것이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에 충격에 빠지게 된다.

 

사법농단 베일 벗겨지니…


“2017년 2월 대한민국 법원은 블랙홀 속으로 들어갔다. 시작은 한 젊은 판사가 던진 사표였다. 그 사표 한 장이 관료사법의 지축을 뒤흔들 사법농단의 베일을 벗겼다. 법원 자체 조사가 거듭될수록 의혹의 몸집은 커져만 갔다.

 

결국 법관들은 법정이 아닌 검찰청 조사실에 앉아야 했다. 전직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되고 얼마 후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차장, 그리고 판사들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자신들이 어떻게 재판했는지는 돌아보지 않는다. 사진은 임종헌 전 차장.  <뉴시스>    

 

어떤 이는 터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피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한다. 누구는 관료사법이 곪아서 터진 일이라고 하고, 누구는 진보 성향 판사들이 일으킨 반란이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제 마무리해야 할 때라고 한다. 양쪽 다 물러설 기미가 없다. 갈등은 증폭되고 변주된다. 그 한복판에 사법권 독립이 있다.


헌법은 말한다. 재판은 그 어떠한 영향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권력(정치세력)과 돈(재벌과 펜언론)과 확성기(압력단체)를 쥔 이들만 발언권을 갖는 법정이라면 재판의 공정함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법 앞에 평등’을 지키기 위해 판사는 독립하여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은 왜 중요한가? 판사는 그냥 재판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보라. 당신이 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당신은 누구를 해치지도, 무엇을 훔치지도 않았다. 당신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증거를 조작했다. 수사기관에서 당신을 무섭게 다그치고 몰아붙여 자백을 받아냈다. 그렇게 법정에 앉게 됐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신은 자신을 방어하려고 할 것이다. 알리바이를 대고, 수사기관에서 어떻게 조사받았는지 이야기하려고 할 것이다. 마음은 불안하다. 3~4주에 한 번씩, 기껏해야 5분, 10분 정도 법정에 앉는 것 말고는 판사 얼굴을 볼 기회가 없다. 지난달 재판에서 당신 말에 귀 기울이던 판사가 오늘 재판에서는 왠지 냉정해 보인다. 이러다 유죄 판결이 나오는 건 아닐까?


그런데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판사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당신 사건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 판사에게 ‘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면, 그래서 판사가 당신에게 편견을 갖게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이 피고인이 아니라 피해자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당신을 폭행하거나 추행했던 범인이 재판에 넘겨졌다. 당신은 그 범인이 강력하게 처벌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판사실로 전화를 건다. ‘판사님, 우리 법원을 위한 일인데 가능하면 선처해주시면 좋겠네요.’ ‘하하, 그래요? 언제 저녁이나 하시죠’ ‘결론을 바꿔 달라는 말씀은 아니고요, 절차적인 편의 정도만 부탁드려도 될지요. 선고기일을 미뤄주시고, 재판을 한두 번 더 열 수 있겠습니까?’ 벌금형일 수도 있고 집행유예일 수도 있다.

 

판사는 양심에 따라 재판했다고, 자신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말한다. 절대 부당한 영향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겠는가?”


“하긴 뭐, 다른 대안도 없다. 대한민국에 법원은 하나뿐이다. 다시 선택해 재판받을 수 있는 제2의 법원은 없다. 재판에 당신의 운명을 걸어야 할 때 당신의 정치적 입장이 보수 진보냐에 따라 그 불안감이 달라지겠는가? 누군가 당신 모르게 재판에 개입한다면 보수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고, 진보라고 해서 덜 불안할 수 있는가?

 

판사가 한쪽 말만 듣고 다른 쪽 말은 듣지 않는다면 다른 쪽에 선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하게 된다. 한쪽은 마음 놓고 재판받고, 다른 쪽은 ‘마음 졸이며 재판받으라는 것’은 ‘법 앞에 평등’이 아니다. 이것은 이념이나 진영을 넘어서는 문제다.

이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직업들 가운데 직업 이름이 헌법에 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더욱이 헌법이 직무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한 직업은 법관 하나뿐이다. 헌법이 법관의 독립을 유독 강조한 것은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재판독립을 지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라’는 명령이다.”

 

법원이 감춰온 또 다른 얼굴


“나하고 여기, 여기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연구회 공동학술대회가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해주세요.” “인사권자에게 보은해라.” “판사 뒷조사 파일이 나올 텐데 놀라거나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 부분은 이미 정책 결정이 됐다.”

 

사법농단 재판관들의 노골적인 표현들은 그동안 법원이 감춰온 또 다른 얼굴의 일부일 뿐이었다.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릴 때, 판사들이 성명을 발표할 때 평범한 샐러리맨들은 부러움을 토로한다. 샐러리맨들은 한날 한시도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살지 못한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도 입 다물고 복종해야 한다. 헌법의 어떤 조항도 그들의 독립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판사들은 자신의 독립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독립할 수 있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쓸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권리이자 의무이고, 축복이자 고통이다.

 

스스로 권력이 된 사법부 법원의 독립이 곧 사법권 독립이라는 착시의 원인은 대법원장 중심의 법원 시스템이다. 많은 판사들은 눈앞에 보이는 대법원장 한 사람을 독립된 사법부의 상징으로 여긴다. 대법원장을 사법부인 양 혼동한다. 법원을 움직여온 것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라는 공적 가치가 아니라 ‘대법원장 중심의 사법부를 위하여’라는 조직논리였다. 그 조직논리 아래 재판에 입김을 넣으려 했고, 판사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법 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을 우두머리로 떠받드는 가부장적 시스템의 핵심장치로 기능했다. 그 결과가 바로 ‘제왕적 대법원장’이다. 그 제왕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법원행정처 판사들에게 인사 혜택이 집중됐다. 그들을 이끄는 법원행정처장은 차기 대법원장 후보 물망에 올랐고, 차장은 대법관 제청 0순위로 불렀다. 심의관들은 사법연수원 동기 중 선두로 주목받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보수 성향의 이른바 ‘정통 법관’이었다. 그는 유신시대인 1975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법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엘리트 법관의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으로 사법연수원 동기(2회) 중 선두를 지켰다.

 

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등을 거쳤다. 양 대법원장의 경력 중 특히 두 가지가 주목받았다. 하나는 서울지방법원(서울지법) 파산수석부장이다. 외환위기 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로 신설된 파산부의 초대 수석부장을 맡았다. 그는 당시 총 자산 규모 30조 원에 달하는 기업들을 관리하면서 국가 경제와 기업의 중요 성을 실감했다.

 

다른 하나는 ‘관료사법의 정점’으로 불리는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보좌하며 행정처 조직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하는 자리다. 행정처 송무국장과 사법정책연구실장 등을 거친 그는 사법 행정의 달인이었다. 대법관 임명 제청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차장이 된 지 7개월 만에 낙마하고 말았다. 2003년 8월 대법관 제청 논란 속에 4차 사법파동이 터진 것이다. 양승태 차장은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밝혔다. 당시 최종영 대법원장은 그를 만류하고 특허법원장으로 보냈다가 2005년 2월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했다. 양승태로서는 특허법원장으로 와신상담한 것이 법원과 판사들에 대한 생각을 굳히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양승태는 2011년 9월 대법원장에 올랐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법원을 장악하고 자신의 관점을 관철하려 했다. 등산 애호가인 그는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믿었다. 법원을 사랑하는 원로의 마지막 마음을 후배 판사들에게 전하고 싶어 했다. 판사들과의 간담회가 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원장이 절박할수록 판사들이 받는 압박감은 심해졌다.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의 뜻을 재판과 인사에 반영하려 하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불신은 불신을 낳았고,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양승태 체제에서 법원행정처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이탄희 판사가 좋은 판사로 남기 위해 사표를 낸 후 세 차례 이어진 임종헌 차장과의 전화통화 내용은 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일어났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탄희 판사의 사표를 철회시키려는 법원행정처 간부와 선배 판사의 압박과 회유는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 누구도 영원히 법원의 주인 행세를 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주인을 잘못 만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계속하여 바뀝니다.”


이판희 판사가 재판부로 복귀하기로 한 뒤에도 “사법정책연구원이나 사법연수원에 가 있다가 새 대법원장 밑에서 역할을 하라”는 막판 설득이 이어진다.


이탄희 판사는 그 고비 고비를 어떻게 넘어섰을까. 유능한 조직원이 되느냐, 좋은 판사로 남느냐, 그리고 공적 가치냐, 조직논리냐의 기로에서 이탄희 판사가 어떻게 외로운 결단을 했는지를 통해 삶의 기준을 정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조직논리 앞에서 드러난 한계


권석천 기자는 양승태 코트에 이어 김명수 코트에서 실시됐던 세 차례의 진상조사 과정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숱한 우여곡절로 점철됐던 진상조사가 어떤 저항과 한계에 부딪히게 됐는지에 대해 살아 있는 증언들이 이어진다. 이탄희 판사를 비롯해 진상조사기구의 관계자, 당시 법원행정처 간부, 일선 법원 판사 등 다양한 입장에 섰던 이들의 이야기도 녹였다. 당시 드러난 문건들과 증언들로 조사 과정을 재구성해낸 것만으로도 자료적 가치가 있다.

 

▲ 사법농단을 둘러싼 3차례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김명수 코트의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코트의 법원행정처를 조사하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사진은 김명수 대법관.   <뉴시스>    


이탄희 판사의 사직서 제출이 알려지면서 드러난 사법행정권 남용은 3차에 걸친 대법원 진상조사 과정에서 점차 진상이 확인돼간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엘리트 법관’의 집결지로 불렸던 법원행정처가 있었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을 받들며 사법 위에 사법행정이 있음을 공고히 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선발되기를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판사들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판사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재판에 입김을 불어넣으려 했다.


권석천 기자와 이탄희 판사는 양승태 코트가 실시한 진상조사위원회 조사(1차 조사) 과정과 그 한계점에 대해서도 자세히 짚었다. 들끓는 판사들의 진상규명 요구 속에서 시작된 진상조사위 조사는 대대적인 관련자 조사 활동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열쇠였던 행정처 컴퓨터 조사를 하지 않기로 하는 등 명백한 한계를 보였다.


이탄희 판사는 조사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진상규명에 협조하지만 “양쪽 다 다치지 않게 할게”라는 말로 대표되는 법원 내부논리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결론과 더불어 일부 판사의 일탈로 인한 해프닝으로 결론 내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 결과는 의혹을 오히려 증폭시킴으로써 판사사회의 진상조사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대법원장 취임 전부터 사법농단 의혹 규명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은 취임 후 진상조사에 나선다. 추가조사위원회(2차 조사)를 구성해 1차 조사의 한계였던 물적 조사(행정처 컴퓨터 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갖가지 문건들이 발견됐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판사사회를 뒷조사했음이 명백한 증거로 입증됐을 뿐 아니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선고 등 사회적 이슈가 되는 재판과 관련된 충격적 문건들이 몸통을 드러낸다.

 

1차 조사 때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행정처 간부와 심의관들이 입을 맞춘 사실도 밝혀진다. 추가 조사 요구와 법원 내부의 반발이 첨예하게 맞서는 가운데 대법원장은 추가 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한다.


책에는 김명수 코트의 특별조사단에서 진행한 3차 조사도 그려진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핵심 관련자들의 컴퓨터를 추가로 조사했다. 그 결과 상고법원 추진 과정에서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를 구상하고 내부 여론을 단속하는 문건들을 발견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 과정에서 공개된 문건 내용과 행정처 판사들의 모습에는 그동안 법원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문건에 언급된 ‘사법부’는 누구를 말하는지, 문건 작성이라는 ‘브레인스토밍’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왜 판사가 행정처란 관료조직에서 일하면 안 되는지, ‘물의야기 법관’ 관리가 어떻게 ‘양들의 침묵’을 강요했는지 드러난다.


그러나 3차 조사는 김명수 코트의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코트의 법원행정처를 조사하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충격적인 문건들이 드러났지만 결론은 ‘블랙리스트’는 없었고, 형사처벌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1~3차 조사를 거치며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개념은 ‘판사 뒷조사’→‘전체 판사들 동향 조사’→‘인사상 불이익 검토’→‘인사상 불이익 실행’으로 끊임없는 변태(變態) 과정을 거치며 결국 없던 일로 귀결된다. 행정처가 움직일 수 없는 상수가 됨에 따라 문제의 구도도 ‘전체 법원 대 법원행정처’가 아니라 ‘법원행정처 대 임종헌 개인의 스타일’로 일축된다.


그 완결판은 3차 조사 후 ‘대법관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입장문이었다. 법원행정처부터 13인의 대법관, 고위 법관들까지 그간의 상황은 어찌됐든 “재판은 신성해야 하고” “사법부를 지켜야 한다”는 조직논리에 포획된 상태에서 법원 내부의 자정(自淨)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법관 징계와 탄핵소추 등 조사 이후의 조치가 충실하게 이뤄지지 못한 채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검찰 수사로 한정지어진다.


검찰 수사는 재판으로 이어졌지만 아무도 진심으로, 구체적인 언어로 사과하고 반성하지 않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차장, 그리고 판사들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자신들이 어떻게 재판했는지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어떤 이들로부터 재판받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김명수 코트가 왜 제대로 법원 제도 개혁을 못하고 있는지, 왜 법관 징계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하는지, 진정으로 법원의 조직논리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묻고 있다. 진실을 밝히고 원칙을 다시 세우는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대법원 재판의 부끄러운 민낯


책에서는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라는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를 통해 한국 법원의 재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냉정한 눈으로 해부한다.

 

대법원(법원행정처), 청와대(외교부), 그리고 일본 기업의 재상고를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삼각 편대’를 이루어 이 사건 재판에 깊숙이 관여했다. 법원은 상고법원 등 법원이 추진하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청와대의 협조를 원했고, 청와대가 원하는 결론이 나올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행정부가 재판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재판을 지연시킬 수 있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심지어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액을 줄일 수 있는 방안까지 고민했다.


①법원행정처에서 수상한 문건들이 어떻게 생산됐는지, ②문건 밖 현실에서 법원행정처와 청와대·정부가 어떻게 상호 작용했는지, ③그들 뒤에서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어떻게 움직였는지, 세 단계를 순차적으로 살펴보고 면밀하게 분석한다.

 

징용 피해자라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판단하는 민사재판에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집단들이 모여 머리 맞대고 대책을 논의했고, 그 결과를 실행에 옮겼다. 저자는 임종헌 전 차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 드러나고 있는 그 맥락과 문제점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끔 규명해나간다.


재판이 법정 밖의 힘에 의해 왜곡되고 굴절되는 과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보면서 법원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의 정신은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진실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서 법률 규정에만 능한 ‘법 기술자’들의 손에 자신의 인생과 운명을 맡기고 싶은 사람은 없다. 권력과 인적 네트워크에 의해 재판이 변질된다면 판결은 자신에게 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종적인 판단 과정인 대법원 재판이 그러하다면 법원 재판 전체가 신뢰받을 수 없다.

 

‘사법농단’은 조작된 신화인가?


세 차례에 걸친 대법원 진상 조사에 검찰 수사, 재판 과정을 거치며 사법농단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정권 교체를 계기로 사법부까지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몰았다”며 ‘사법농단’이라는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보인다. 다른 한쪽에서는 “대법원장 중심의 사법행정이 권력화하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태”라며 개혁해야 할 ‘오래된 현실’이라고 말한다.


진실은 어떤 것일까. 권석천 기자는 독자들에게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독자 스스로 판단 내리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형사재판의 좁은 틀에 ‘사법농단’의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관련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법관들이 직권남용 혐의의 대상이 된 초유의 이번 사건에서 공적 가치를 끝까지 놓치지 말고 유무죄를 가려야 한다.

 

하지만 법관의 재판상 독립과 공정한 재판의 원칙을 형사재판에서 본격적으로 토론하고 정리하기는 힘들다. 형사재판과 별도로 판사들에게 행위의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또한 이 사건의 원인이 된 조직논리는 단지 법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넘어서야 할 문제임을 깨닫기를 희망한다. ‘사법농단’은 청와대 권력, 정부 권력, 국회 권력, 언론 권력이 ‘손에 손잡고’ 벌인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에도, 검찰에도, 기업에도 조직이 존재하는 곳에는 조직논리를 재생산해내는 ‘행정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법원에서 얻은 경험을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법원이 다시금 시민들의 믿음을 되찾고 우리 사회의 진정한 ‘저울’이 될 때까지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 법원을 다시 세우는 일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었고, 권석천 기자의 말대로 “새로운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은 사직서로 공적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판사 이탄희의 결단과, 일선 법원에서 재판의 독립을 끝까지 지켜냈던 판사들의 용기, 신뢰받는 재판을 하기 위해 진상 규명을 요구했던 법관사회의 열망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권석천 기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더이상 조직이라는 거창한 이름 앞에 무릎 꿇으려 하지 않는다고,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싶어 한다고,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제시한다.


“환멸에 빠지지도, 두려워하지도 말자. 과도기가 조금 길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파도를 헤치며 순항 중이다.”
이제 공익 변호사가 된 이탄희 판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저는 2년의 긴 싸움에서 살아남았고, 더 성장했어요. 그래서 행동양식도, 사고방식도 더 단단해졌어요. 젊은 법조인들도, 시민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린 모두 경험을 통해 성장해왔고, 성장하고 있어요. 삶이 고단하고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잠시 미뤄둘 순 있지만 경험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두고 보세요. 필요할 때 그 경험은 다시 소환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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