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2부 <4> 리틀 아메리카

수줍은 처녀가 살던 마을은 양갈보 소굴로 타락했다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9/08/23 [10:31]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2부 <4> 리틀 아메리카

수줍은 처녀가 살던 마을은 양갈보 소굴로 타락했다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9/08/23 [10:31]

“서울 한가운데 노른자위 땅 100만 평이 다 미군부대라니”
“얼마나 많은 농부들의 기름진 논밭이 저 밑에 깔렸을까?”

 

부대 주변 양색시들은 미군 이동할 때 ‘담요부대’ 만들어 뒤따라
땅바닥에 군용담요 깐 채 야수 같은 이국 사내들 욕망 받아냈다

 

▲ 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 함락,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기게 된 대한민국. 사진은 영화 ‘인천 상륙작전’ 한 장면.    

 

새해 들어 청운은 의외로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됐다.


피에로 형이 잘 아는 어느 미군 장교의 안내로 미군부대 내부를 구경하게 된 것이었다. 회색 담장 위에 철조망이 높게 쳐진 삭막한 풍경 저 안쪽엔 과연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부대 안으로 들어선 청운은 내심 깜짝 놀랐다. 머릿속으로 공상하던 일반 군부대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군 부대에 대한 인상이 삼엄하고 황량한 일종의 수용소 같다면, 미군 부대는 마치 거대한 놀이공원이나 산뜻한 신식 공장 또는 대학 캠퍼스처럼 보였다.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하나의 소왕국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지프차는 잘 포장된 길을 달려 나갔다. 진입로에 사열병처럼 늘어선 나무들은 잎이 다 진 채 하얀 눈꽃을 피우고 있었다. 본부 건물은 저 멀리 위엄스레 우뚝 선 채 푸른 하늘에 성조기를 휘날리고 있었다. 길 양 옆의 널따란 평지엔 정원처럼 잔디가 깔렸고 푸른 빛을 잃지 않은 조경수들이 잘 다듬어져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연병장도 마치 온갖 헬스 기구가 잘 갖춰진 운동장인 듯싶었다.

 

그곳은 아예 리틀 텍사스


장교클럽 입구의 화려한 장식물들, 아담한 도서관과 최신식 장비를 자랑한다는 병원, 넓은 수영장에 출렁거리는 맑은 물, 탁 트인 전망이 부러워 보이는 곳에 들어선 아파트…. 20여 분 동안 지프차를 탄 채 돌아다녔으나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드넓은 일종의 디즈니랜드 같았다. 골프장까지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중단했다.


겨울이지만 포근한 휴일이라 그런지 맨션 아파트 앞의 광장에서는 가든파티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테이블 위로 하얀 접시와 유리잔들이 햇빛을 투명하게 반사하고, 바비큐가 황금색으로 익어 가며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산해진미와 미주(美酒)를 앞에 둔 미군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행복스러웠다.


‘미국은 원체 땅이 넓으니까 여기서도 자기네들 몸에 맞게 아주 스케일 크게 지어 놨구나. 미국의 작은 도시 하나를 옮겨 놓은 것 같아. 흐, 이 정도면 아예 리틀 텍사스라고 불러도 되겠어. 저들에겐 이것도 좀 좁은지 몰라. 아, 하지만 얼마나 많은 농부들의 터전인 기름진 논밭이 저 밑에 깔려 버렸을까. 반강제적이라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던데….’


청운은 홀로 생각에 잠겨 미군 장교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용산의 미군 기지는 여기에 비하면… 마치 왕궁과 같다고나 할까.”


피에로가 말을 꺼냈다.


“뭐?”


청운이 대꾸했다.


“히히, 뭘 그리 놀라? 언젠가 미8군 소속 악극단을 따라 한번 들어가 봤지 뭐.”


“정말?”


“응. 하지만 정규 단원이 아니라 시다바리 역할이었어, 쯧….”


“그래, 어땠어?”


“한마디로 엄청나더군. 서울 한가운데의 노른자 땅 100만 평이 다 미군부대니까. 기지 안으로 들어가는 문만 스무 개가 넘는다더군. 메인 포스트엔 주한미군 사령부, 미8군 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따위가 있는데, 그 지하에는 극비 지휘소를 비롯해 상상도 못할 시설이 들어서 있대.

 

그리고 남쪽 지역엔 고급 맨션 단지와 학교, 병원, 스포츠센터 등등 거대한 편의 시설이 삐까번쩍하더군. 북쪽 지구엔 한층 더 산뜻하고 첨단적인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한국 사람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더구먼. 아무튼 말이야… 봄에 꽃이 화려하게 핀 그곳의 드넓은 정원은 정말 꽃대궐 같았어. 아, 언제 그 화려찬란한 무대에 서볼까나….”


피에로는 사근사근하고 희극적인 표정으로 미군 장교와 이따금 얘기를 나누면서 청운에겐 그런 말을 속닥거렸다.

 

▲ 살기가 막막한 언례는 최후의 수단으로 텍사스 타운 내 클럽에서 일하며 생계를 연명하게 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언례가 양색시가 됐다는 사실에 불쾌해한다. 사진은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한 장면.    

 

용산은 원래 한이 많은 땅


용산(龍山)은 원래 한이 많은 땅이었다.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채 민족의 혈맥인 듯 눈물인 듯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가까이 바라보며 희비애락을 함께 한 긴 세월… 용산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 가치가 높았으므로 한반도가 외적에 침략당할 때면 늘 외국 군대의 주둔지로 차압되었다.

 

고려시대 말엽엔 몽골군에 의해 병참기지로 사용되었고, 조선시대 후기에 나라가 어지럽던 땐 중국 청나라 군이 대규모로 주둔했으며, 한일 병합 뒤론 일본군이 전격적으로 주둔해 와 온 나라를 마구 유린했다.

 

그리고 1945년 8월에 일본이 항복하고 쫓겨나자마자 곧장 미국 군대가 들어와 진을 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소불위적으로 위세를 떨치며 기지를 점점 확대해 나갔다.


주한미군은 좁은 남한 땅 전 지역에 걸쳐 무려 100여 곳의 기지를 갖고 있다. 전 국토의 요소마다 주한미군이 있는 셈이다. 서울 외에 동두천, 의정부 뺏벌, 파주 용주골, 인천 부평, 평택, 군산 아메리카 타운 등이 잘 알려진 곳이지만 각 지방에서도 미군은 노른자위 땅을 점령하고 있었다.

 

부산의 하야리아 부대, 대구의 병참기지, 강원도 춘천, 원주, 영월, 충청도 대전, 천안, 경북 왜관, 경남 진해, 마산, 김해, 전남 광주뿐만 아니라 제주도 모슬포까지 온 국토에 걸쳐 어마어마한 미군기지가 육신의 암부처럼 퍼져 있었다.


미군의 무책임한 자연 파괴와 오염으로 인해 금수강산은 점점 병들어 갔다. 특히 전북 군산의 평화로운 농촌 마을을 파괴하고 들어선 아메리카 타운은 박정희 정부가 주도해 건설한 거대한 미군 향락 위안 천국이라고 들었다.*
(*주한미군은 평택에 미국 육군 역사상 최대급이요, 미군 해외시설 중 최고급이라는 ‘캠프 험프리스’를 거의 한국 돈으로 짓고 있다. 한반도 분단 해소 또는 긴장 완화에 대한 고려는 별로 없이 미군만의 계산대로 밀어붙이는 셈이다. 또한 그러면서도 용산기지를 완전히 반환하지 않고 일부 주둔을 계속함으로써 용산민족공원 건설을 반토막나게 하고 있다-지은이 주)


“형, 클리프란 저 친구는 대체 어떤 놈이야?”


청운이 미군 장교를 흘낏 살펴보며 피에로에게 물었다.


“응, 내 팬이지.”


피에로는 능청스레 대꾸했다.


“뭐? 농담이겠지….”


“흥, 너 날 무시하니?”


“형이 무슨 인기 배우라구 팬이 다 있겠어?”


“아냐, 이 친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기 땜에, 나 자신보다는 내 연기 속에서 슬쩍 보이는 독특한 정서와 미학에 공감한 거야. 그래서 하버드 대학을 다니다가 미군에 입대해 한국으로 날아온 거래.”


“음, 그럼 한국말도 알겠네? 혹시 내가 아까 미국을 욕한 것도 알아들었을까?”


“모르지. 하지만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냥 넘겼을 거야.”


“왜?”


“한국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거든.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관계와 그 진실을 알고 싶대.”


“그런 취지에서 자기네 부대 내부를 이렇게 구경시켜 주는 걸까?”


“모르지 뭐. 근데 얜 지금 홀의 어떤 계집애한테 열을 올리고 있어. 중매 좀 잘 서 달라고 이러는지도 몰라. 헤헷….”


“그 여자가 누군데?”


“붉은 여우.”


“늘 진홍색 춤옷을 입고 나오는 그 여자 말이야?”


“응, 그 댄서… 헌데 걔는 얘가 싫은 모양이야.”


“왜?”


“그걸 내가 어찌 알겠어.”


“좀 특이하긴 하더라.”


“히히, 너도 좀 관심이 있냐?”


“관심은 무슨….”


“보통내기가 아닌 건 확실해. 어린 나이에 요런 복마전에 들어와 어쨌든 꼿꼿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돈을 꽤 벌 텐데 낭비도 않는다는 소문이야.”


“나름대로 무슨 꿈이 있는 모양이겠지.”


“모르지. 고향 집에다 많이 송금한다는 얘긴 들리더군.”


“암튼… 싫어하는 놈에게 강제로 몸을, 마음을 희롱당한다면, 여자든 남자든 무척 괴로울 거야.”


청운은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느 흑인 병사에게 쫓기던 그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날 그 어두컴컴한 계단에서 그녀는 한 여인이 아닌 외국 군인에게 욕망의 대상인 암컷으로 취급돼 자칫하다간 한 주먹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대체 왜 그런 짐승의 신세가 되어야 했을까.

 

미국정부는 산타클로스가 아니었다


1945년 초가을,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미군은 항구도시인 부산과 인천을 통해 한국 땅으로 들어왔다. 승리에 취한 그들은 술과 여자를 찾았다. 그리하여 얼마 후 인천 부평에 첫 미군 기지촌이 들어섰다. 양색시들 중 일부는 이전에 일본군을 받던 위안부 출신이었으며, 일부는 가난에 찌든 하층민의 딸들이었다.*
(*일본군 위안부는 한반도 북쪽의 일본군 기지뿐만 아니라 중국, 동남아시아, 남태평양의 전선에도 배치되었었다. 조선총독부는 각 지역마다 처녀 수를 할당했는데, 처음엔 큰 돈을 벌게 해준다며 은근히 꾀다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땐 강제로 납치해 끌고갔다-지은이 주)


6·25 전쟁을 거치며 미군 기지촌과 양공주들의 수는 점점 불어났다. 집과 가족을 잃고 난민이 된 여인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미군을 좇아다녔다. 부대 주변에서 기생하던 양색시들은 미군이 훈련을 위해 깊은 산속으로 이동할 때면 이른바 ‘담요부대’를 만들어 뒤따랐다. 어둠이 내려 군의 작전 훈련이 끝나는 즉시 그녀들은 푸른 군용 담요 한 장을 으슥한 땅바닥에 깐 채 밤이 깊도록 계속 야수 같은 이국 사내들의 욕망을 받아냈다.


남북한 간의 피 어린 동족상잔이 일단 끝나고도 미군은 이 땅에 계속 주둔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무장인력을 강화하고 기지를 확대해 나갔다.

 

그건 실상 남한을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 자기네의 욕망을 더욱 더 확장할 만한 군사적 요충지를 마련하려는 계획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결코 실없이 남을 도와주는 산타클로스가 아니었다.(하하, 요즘도 그걸 믿는 바보가 있을까? 어린애도 이젠 속지 않으련만…)


미군이 완전히 이 땅에 터를 잡고 앉은 1960년대는 기지촌의 호황기였다. 수많은 농촌 처녀들과 도시 빈민가 소녀들이 동족 남성과 사랑해 혼인하지 못하고 이국의 병정들에게 몸을 바쳐야 했다. 10만여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전국 각지의 기지촌에서 미군들에게 몸을 팔아 목숨을 이어갔다.


국내에서 매춘은 공식적으로 불법이었으나 기지촌인 100여 곳은 특별 매춘지역으로 지정됐다. 동두천은 최대의 기지촌으로서 일명 리틀 텍사스라고 불렸다. 박꽃이 핀 정겹던 초가집은 울긋불긋한 원색의 간판을 단 클럽에 밀려나고, 맑은 물을 떠먹던 박 바가지는 맥주 캔으로 바뀌었으며, 댕기 땋은 수줍은 처녀들이 살던 마을은 일시에 양갈보의 소굴로 타락해 버렸다.


묵은 해가 가고 새로운 년도가 밝아오면 사람들은 왠지 희망을 지니게 된다. 특히나 하루하루를 고되게 살아가는 빈민들은 속으로나마 더 큰 소망을 품는 것이다.


까마득하던 1960년대가 저물고 1970년대가 시작되자, 신문과 방송은 위대한 영도자 박 대통령께서 온 민족이 함께 잘 사는 복지국가를 건설키 위한 원대한 청사진을 발표했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인지 별 반향이 없었다. 그것보다는 AFKN 방송을 듣고 입수한 미군철수 방침이라든가 한국 정부의 대책-외교적 읍소와 방위비 분담금 인상 그리고 미군 장병 건강을 위한 기지촌 단속과 검진 강화 등 찜찜한 소식만 유언비어를 달고 근심스레 떠돌았다.

 

풀이슬 같은 기지촌 여자들 삶


“형, 우리 남한과 북한이 통일돼 한민족끼리 오순도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세계 평화에도 협조하고 말야. 그러면 미국이 이 작은 땅을 무기 전시장으로 만들지 않아도 되고… 또 몸을 팔다가 외국 군인에게 흉악한 죽음을 당하지 않을 텐데….”


청운은 기지촌 여자들의 풀이슬 같은 삶에 이어, 북파공작원으로 덧없이 죽어간 어린 동료들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난 미국이 우리나라를 홀랑 집어삼켜 버릴까 봐 걱정이야.”


“뭐?”


“이 세상엔 히틀러 같은 사람과 채플린 같은 사람 그리고 그 둘을 섞어 놓은 듯한 자들도 있겠는데… 내 생각엔, 미국은 겉으론 채플린 같으면서도 속은 히틀러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더라구. 히히히….”


피에로는 복화술사처럼 입은 다문 채 웃었다. 미군 장교 클리프가 돌아보자 피에로는 슬쩍 표정을 바꿔 마치 하회탈처럼 웃어 주었다.


“아무튼 덕분에 좋은 구경하는군. 이건 형 덕분이야? 저 친구 덕택이야?”


“나도 몰라. 흐흣….”


그들은 미군 장교 전용극장에 들어가 <목구멍 깊숙이>란 영화를 선명한 무삭제판으로 보고 난 후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셨다.


<다음 호에는 ‘블루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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