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연구가 장천규 소장의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

비룡상천 혈에 묘 쓰고 윤보선 집안 불같이 일어났다!

글/장천규(풍수연구가) | 기사입력 2019/08/16 [11:37]

풍수연구가 장천규 소장의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

비룡상천 혈에 묘 쓰고 윤보선 집안 불같이 일어났다!

글/장천규(풍수연구가) | 입력 : 2019/08/16 [11:37]

윤보선 증조부, 걸인 구한 대가로 얻은 명당에 윤득실 묘 조성
용 승천하는 터에 묘 쓴 후 근현대사 움직인 인물 숱하게 배출

 

▲ 충남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에 자리 잡은 윤보선 대통령의 고조부 윤득실 공의 묘.    

 

충남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에는 윤보선 대통령의 고조부이신 윤득실 공의 묘가 있다. 이 묘는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의 혈로 산줄기가 굽이쳐 오다가 용이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아래에서 위로 쭉 뻗어 올라가는데 그 정상의 아랫부분에 혈을 맺는다.


비룡상천형의 혈에는 여의주가 있어야 하는데 묘에서 앞에 보이는 산이 여의주 봉으로 아주 아름답다. 윤득실 묘에는 다른 묘에서 볼 수 없는 좀 다른 것이 있다. 모든 묘는 묘를 감싼 활개나 곡장을 설치하는데 그것은 묘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묘를 보호하기 위한 활개는 좌우가 대칭이 되고 균형이 맞아야 되는데 이곳은 백호 쪽의 활개는 봉분보다 높고 청룡 쪽의 활개는 낮아 대칭에 맞지 않는다.


활개가 비대칭인 것은 묘를 조성할 당시 풍수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조성했기 때문이다. 묘의 혈에서 바라보았을 때 좌측의 청룡은 가깝고 높아 묘를 보호하지만 우측의 백호 쪽은 허약하여 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활개를 높게 설치하여 비보한 것으로 보인다.

 

걸인 구해주자 명당터 보답


이제 윤득실 묘의 야사로 눈을 돌려보자.


윤득실은 낙향하여 백성들을 보살피며 살았는데 윤득실이 죽자 가세가 기울었다. 하루는 윤득실의 셋째아들 윤취동이 둔포 장날 장 구경을 하고 시장에 다녀오는데 어떤 사람이 길에 쓰러져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윤취동이 외쳤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정신 차리시오.”


“여기서 있으면 얼어 죽습니다.”


윤취동은 쓰러진 사람을 깨웠으나 그 사람은 움직이지도 않고 그대로 있었다. 윤취동은 여기서 너무 지체하면 이 사람이 죽는다는 생각에 등에 업고 집으로 움직였다.


“부인! 아랫목에 이불을 펴시오.”


“예! 알겠습니다.”


“부인! 따뜻한 미음도 준비해주시오.”


윤취동은 걸인을 아랫목에 누이고 미음을 쑤어 걸인의 기력을 회복하게 하였다.


걸인은 점점 기력이 회복되고 몸이 좋아졌다.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걸인을 집에서 극진히 보살피며 건강을 되찾게 하였다. 겨울이 지나고 걸인은 윤취동에게 말을 걸었다.


“선비님! 감사합니다. 죽은 목숨을 살려 주시고 한겨울동안 보살펴 주셔서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건강을 회복하셨으니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선비님. 저는 절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그곳에서 풍수를 조금 공부했습니다. 저를 보살펴 주신 보답으로 묘 자리를 하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윤취동은 스님을 따라 묘 자리를 보러 갔다.


“선비님! 이곳입니다. 이곳은 비룡상천형의 명당입니다.”


“이곳에 선비님의 부친을 모시면 크게 발복할 것입니다.”


윤취동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스님!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이 나라에서 받은 땅이 아닙니까?”


“이 너머에 이순신 장군님의 묘소도 있는데 어떻게 여기에 아버님을 모십니까?”


“선비님! 땅의 주인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아버님을 모시지요.”


윤취동은 하는 수 없이 아버지 윤득실을 이순신 장군 후손의 땅에 이장을 하였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봉분을 만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그 소문이 이순신 장군의 후손에게 알려졌다. 후손들은 묘를 이장하라고 몇 번이나 재촉했다. 그러나 윤취동은 스님 말대로 묘를 이장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윤씨 집안은 불같이 일어나 아산 일대의 유지가 되었다. 윤취동은 이순신 장군 후손들에게 부탁하여 묘가 있는 토지를 매입하고 아버지 묘를 잘 조성하였다.

 

▲ 윤득실 공의 묘는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의 혈로 산줄기가 굽이쳐 오다가 용이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아래에서 위로 쭉 뻗어 올라가는데 그 정상의 아랫부분에 혈을 맺는다.    

 

조부가 손자 무등 태운 형국


윤득실 묘를 쓴 후 윤씨 가문은 한국 근현대사에 인물을 수십 명 배출하고 고손자에 이르러 대한민국 대통령이 탄생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풍수지리에 능한 사람이었다. 대통령을 마치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으나 고조할아버지 묘 위에 자신의 묘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고조할아버지보다 묘가 위에 있다 하여 역장이라고 말을 많이 한다.


윤씨 문중에서는 고손자가 대통령이 되어 손자가 예뻐서 할아버지가 등에 무등을 태운 형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윤보선 대통령은 그곳이 명당인 것을 알고 자신의 묘 아래에 후손 중에다른 사람이 묘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에 나무를 심어 묘를 다시 쓰지 못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윤득실이 백성을 계몽하고 백성들을 위한 삶을 살았으며 윤취동 또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죽을 쑤어 굶주림을 해소하게 하고 길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다. 그렇게 조상부터 쌓인 덕이 명당을 얻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명당은 그 터의 주인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하늘이 정한다고 하는데 명당의 주인이 아닌 사람이 그 터에 들어가면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이 야사에서 보듯 그 땅의 주인이 다른 사람이라 해도 그것은 윤득실의 것이었다. 그것은 하늘이 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 후손이 그 사상을 본받아 살아가며 큰 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득이나 욕심만 좇는 현대사회에 살면서 이제는 조금 더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덕을 베풀면서 풍요로운 삶이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최소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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