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라’ 미국의 군복 걸쳤지만 속엔 죄악 숨긴 채…
하층민 무시당하는 설움을 기지촌 여자들 노리개 삼으며 탕감
‘그깟 ×들 기분 상해서 죽여도 한국 경찰은 우릴 건드릴 수 없어’
분단국 위험수당 포함된 월급날이면 여인들의 몸을 가지고 놀았다
▲ 주한미군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한 여성의 마지막 3분을 시적으로 재현한 영화 ‘동두천’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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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으로서는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入門)이라면 입문이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예사롭자 얺은 고생을 겪은 청운은 겉으론 별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는 성싶었다.
‘흐… 어떤 곳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만… 이런 곳에서 생활하게 될 줄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지. 만일 피에로 형이 아니었다면 평생 동안 이런 델 와볼 기회나마 있었을까? 혹시 이야기로 들을 순 있었을진 몰라도 직접 발을 들여 놓긴 어려웠을 거야, 흐흐…. 돈 많은 사람들은 세계 각국을 유람하면서 진귀한 곳을 찾아다닌다는데… 내가 발 딛고 사는 땅에 있는 요지경을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지.’
청운은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찰싹 때렸다.
‘흐흐… 피에로 형과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과연 내가 여기 오지 않았을까? 운명이라고 하기엔 좀 칠칠맞고… 그 어릿광대 같은 형의 손짓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 깃든 어떤 욕망으로 여기 와서 머물게 된 게 아니겠느냔 말야.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모종의 욕구와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미러볼의 오색 불빛 속에 녹아들어 스스로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달러를 뿌리는 고객
청운은 의외로 바삐 뛰어다녀야 했다. 그의 직책은 청소 따위를 맡아 하는 일종의 잡부였으나, 한밤중 홀이 한창 바쁠 때는 서빙을 돕기도 하고 주방 보조로 잠시 일하기도 했다. 바깥 하늘에선 별이 빛나고 홀의 천장에서 거울 공이 돌아가고….
다행히 부상당한 다리의 상태는 많이 좋아지고 있었다. 아직 조금씩 절뚝거리긴 했지만 거의 표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어쩌면 이전의 건강하던 다리로 회복될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가져볼 만도 했다.
블루문의 홀보이가 된 이후로 청운은 미군을 예전처럼 볼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이방인을 바라보던 시선, 피에로 형의 초대로 홀 안에 앉아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구경하던 눈길은 이제 일단 거두어야 했다. 그들은 달러를 뿌리는 고객인 것이다. 돈에도 품격이 있는 것일까? 워싱턴 대통령이 박힌 미국 달러 앞에서 세종대왕이 새겨진 한국은행권 지폐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청운은 편견 없이 사실 그대로 미군들을 바라보려고 했다. 가능하면 한 인간으로서….
모든 존재가 그렇듯 미군 중에도 선량하고 신사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개쌍놈 같은 양아치도 많았다. 그런 치들은 대부분 자기 나라인 미국에서는 하류인생으로서, 가난에 찌들고 무식한 탓으로 홀대받는 자들이었다. 개중엔 뒷골목 우범지대를 떠돌며 마약을 하고 성폭행이나 강도짓뿐만 아니라 살인까지 저지른 뒤 도망쳐 온 불량배나 강력 범죄자도 섞여 있었다. 쉽게 말해 그런 치들은 ‘아름다운 나라’인 미국의 군복을 걸치고 있지만 속엔 죄악이 숨겨진 채(물론 모든 인간의 내부엔 죄악 성향이 잠복돼 있겠으나…) 어떤 바이러스처럼 강한 활동성을 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일부 미군은 한국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대하면 자기 위신이 짐승으로 추락될까 봐 짐짓 인간의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자기네 나라에서 하층민으로 무시되고 핍박받은 울분과 설움을 약자인 한국 남자에 대한 우월감이나 소녀같이 작은 기지촌 여자들을 노리개 삼아 능욕하는 짓으로 탕감하는지도 몰랐다.
청운은 가능하면 그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보려 애를 썼다. 지피지기랄까.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냥 일상 속에서 보고 겪으며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부대끼노라면 어느 날 문득 인종을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그래도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을 특별한 인간 또는 신이라 여기고 이국의 미개한 작은 여자들을 돈 주고 구입한 시녀나 성노예로 삼아 희희낙락하는 것이었다.
미군 중에서도 질이 좀 낮은 하류 양아치들이 주한미군에 섞여 많이 들어오는 건 한반도가 전쟁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1950년에 (누가 먼저 때렸든)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쟁을 벌였던 남한과 북한은 일단 휴전협정을 맺었을 뿐 아직 싸움을 끝낸 건 아니었다. 오히려 물밑으로 더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으르렁거리는 중이었다.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전쟁… 만성이 된 한국 사람들은 대수롭잖게 생각하게끔 되었으나 미국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에겐 그렇지가 않았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속에 지닌 위험지역이었다. 아무리 고국에서 홀대받는 구겨진 청춘일지언정 사지(死地)와 비슷한 곳으로 가긴 싫었을 터였다.
하지만 위험수당이 꽤 쏠쏠했기 때문에 기피지역 1번지인 이 황토에도 잡다한 미국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지원해 왔던 것이다.
해외 미군 기지는 나라마다 다른 양상이었다. 한국에는 주로 젊은 독신 남성 군인을 1년간 배치한 반면, 일본과 독일에는 2∼3년으로 복무 기간을 조금 더 길게 두었고 아내와 자녀도 함께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을 일단 전시지역으로 판단해, 가족을 함께 보내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군과 각 주둔국 사회 사이의 관계도 다르게 형성되었다. 가족을 동반해 긴 복무기간을 받고 배치된 기혼 군인들은 미혼 군인들에 견줘 기지 주변 주민들과의 관계가 훨씬 건전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한국인을 무시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치 대통령이나 황제처럼… 달러 지폐에 그려진 그들의 대통령이 그런 권력을 주는지도 몰랐다. 물론 좀 차이는 있었다. 백인은 겉으론 점잖아 보이면서도 이기적이고 아집이 아주 강했다. 고정관념적인 독한 편견이라고나 할까.
그에 비해 흑인은 늘 허연 이를 드러낸 채 싱긋빙긋 웃다가도 감정이 성해져 폭발할 경우엔 말리기가 힘겨웠다. 자기를 버리는 건 좋은데 무심 무아가 아니라 자기 파괴적으로 될 땐 남까지도 사해(死海)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다. 즉, 자기의 죽음으로 남의 생명마저 빼앗는 것이다. 히히 웃으며….
사람은 낯선 이국이나 이방 지역으로 떠나게 되면 나름대로 소망과 욕망을 담은 꿈을 꾼다. 기지촌의 여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꾸듯 미군들도 코리안 드림을 꾸며 한국 땅으로 왔을까? 만약 그렇다면 과연 그 꿈은 어떤 걸까? 그들이 미개국이라고 무시하는 작은 나라에서 바라는 소망이나 욕망은…?
맨해튼이나 시카고 뒷골목에서 놀던 양아치들이 주한미군 출신 선배에게 듣는 조언 중 하나는 ‘한국은 여자들이 꽤 예쁘면서도 값은 싸다. 일본이나 독일엔 비하면 껌값이지. 그리고 암캐처럼 마구 조져도 상관없어. 그깟 년들을 우리가 기분 상해서 죽여도 한국 경찰 놈들은 우릴 건드릴 수가 없어. 실제로 계집년의 바기나 속에 콜라병을 처박아 죽이고도 유유히 귀국해 버리면 그만이야’라는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롤리타 콤플렉스를 가진 놈들에겐 일종의 천국일 수도 있단 말야. 왜냐? 그년들의 키가 대개 작아서 우리 몸에 비하면 어린 소녀 같다고 할 수 있거든. 몸매가 아담하면 다 아담하지. 좀 닳고 닳은 여자의 바기나라도 우리들 페니스가 들어가면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고 하니까. 흐흐흐…’
그 소리는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미군의 입으로부터 청운이 직접 들은 것이었다. 그들은 분단국의 위험수당까지 포함된 월급을 받은 날이면 땅거미를 밟고 클럽으로 몰려 들어와서 유쾌하게 웃으며 달러 지폐로 슬픈 소녀 같은 여인들의 몸을 가지고 놀았다. 마치 로마의 황제가 노예 시녀에게 바라는 것을 해주길 바라는 듯이….
혹시 먼 옛날 그들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무대로 원주민을 사냥하여 노예로 부리거나 사냥당해 부려먹인 기억이 잠재의식 위로 떠올라 뇌리를 살살 간지른 건 아닐까? 그래서 백인들과 흑인들의 가학증과 피학증이 동시에 레일을 지나 이 한국 땅으로 와서 가엾은 여인들을 학대하는 건 아닐까?
‘인디언 헤드’는 미군부대의 심벌 마크였다. 미국인들이 아메리카에 상륙해 그곳 원주민이던 인디언들을 쫓아낼 당시 미군 기병대들은 죄없는 무수한 주민들을 총칼로 무참히 살육했다.
그리고 생사람의 머리를 잘라내 총검에 꽂고 다니며 용맹성을 자랑했다. 이제 그들의 후손인 미군들은 선조들을 존숭하는 의미로 별과 도끼 문양 안에 인디언의 머리 모양을 새겨넣어 도안하여 군복 왼쪽 어깨에 단 채 한국 땅을 활보했다.
흉포성과 정복욕을 상징하는 그 마크 외에도 미군들은 모자나 셔츠에 ‘태어남은 우연, 사랑은 선택, 살인은 직무’라는 따위의 글귀를 새겨 단 채 뽐내기도 했다. 아예 문신을 새겨 우쭐거리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청운은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모든 인간에겐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다고 옛 성현들도 경계하지 않았던가. 선입견 따윈 버리고 부대끼며 살다 보면 문득 실체가 느껴지지 않겠는가 싶었다.
▲ 미군 기지촌 여성들이 느꼈던 상처와 아픔을 그린 영화 ‘아메리카 타운’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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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릇한 미약에 취한 축제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 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 주렴
그 후론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 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기지촌 거리엔 캐럴송이 울려 나오고 있었다.
그 음습한 골목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곡조가 묘한 효모 발효 작용을 일으켰는지 남녀 행인들의 마음을 부푼 빵처럼 들뜨게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한낮부터 잔칫날처럼 블루문뿐만 아니라 모든 홀과 거리가 흥청대는 느낌이었다. 동두천 전체가 하나의 요상스런 소행성으로 변해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미군들보다 오히려 한국인들이 더 흥분한 모습이었다.
홀 여자들은 서양 대목을 맞아 달러깨나 벌어들일 작정으로 그랬다더라도 그 외의 사람들은?… 아니, 기지촌 여자들의 마음속에서도 달러뿐만이 아닌 어떤 소망이나 추억과 꿈이 꿈틀거리고 있지 않았을까?
청운은 거렁뱅이 신세로 서울 거리를 떠돌던 시절에 명동이나 퇴계로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은 적이 있었다. 성당과 교회는 그런 날일수록 오히려 평소보다 좀 외로워 보였다.
상점들의 불빛이 화려찬란하게 빛나는 번화가로 들어서면 사람들이 마치 밀물처럼 넘쳐흘렀다. 젊고 아름답고 활기찬 남녀들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 어떤 꿈과 꽃구름이 어디에선가 곧바로 기다리는 것처럼… 천국이 바로 이 땅에 나타난 듯이… 하지만 그건 신을 향해 가는 인고의 행렬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의 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하기야 선남선녀들의 멋지고 예쁘게 꾸민 얼굴도 자세히 보면 화장한 가면일 뿐 그 속엔 욕망에 들뜬 버마재비나 불나방과 하루살이의 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국경일보다 더 휘황스럽지만… 실상은 야릇한 미약에 취한 섹스 축제가 아닐까?’
청운은 일전 한푼을 구걸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 군중 속에 슬쩍 끼어들었다가 비껴나기도 하며 생각했다. 고독했기에 그런 어설픈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그들의 발밑에 붙은 먼지보다도 하찮은 인생이란 기분이 얼핏 들었다. 하긴 다음날 주워 읽은 신문에서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향락 추구적인 세태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긴 했다.
성(聖)탄절이 아닌 성(性)탄절… 콘돔 판매 급증… 이브엔 로맨틱해지는 청춘 남녀의 본심은… 참된 사랑이 아닌 사이비 욕망이 아닐까?… 크리스마스 3개월 이후 낙태수술 급증… 사랑을 버리고, 이기적인 장미꽃과 칼을 든 현대의 슬픈 모정… 이런 추세라면 올해에 이어 다음해엔 더 많은 불법 낙태수술이 횡행할 듯… 징글벨의 복음이 태아 유령의 구슬픈 울음으로 변하기 전에 대책 필요….
性축제 후 일그러진 휴식
그렇게도 찬란하던 이브였건만 성탄절 당일엔 도시가 무슨 역병이라도 지나간 폐허처럼 잠잠했다. 과도한 성축제 후의 일그러진 휴식일까.
교회나 성당은 오히려 평일보다 한산하고 고즈넉한 풍경 속에 놓여 있었다. 청운의 마음속엔 지난 밤의 고독감이 아직껏 깊이 남아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마술 같신도들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간 텅 빈 성당 안으로 청운은 쭈뼛쭈뼛 들어섰다. 그리고 어둠 속에 희뿌옇게 떠오른 마리아 상을 향해 중얼거렸다.
“성모님, 우리 어머니를 찾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죽은 아드님을 안고 슬퍼하시지만, 제 어머니는 살아 있는 어린 자식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닌 어디선가 울고 계실 겁니다. 비록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자식마저 버린 무정한 모정이래도 전 엄마가 그립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왠지 더욱 더….”
그의 눈에 맺힌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뺨 위로 굴러 툭 떨어졌다. 갑자기 그는 흐흐 하고 허탈하게 웃고 나서 다시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마 성모님은 이 세상 모든 고아들의 어머니이시겠지요? 그런데 당신 친아들의 생일날 이 세상은 음주가무와 문란한 성 축제로 요란벅적했다고 합디다. 차라리 당신의 아들 예수가 이 땅에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니, 저 같은 거렁뱅이는 우리나라의 원래 풍속대로 긴 동짓달 겨울을 견디며… 고통 속에서도 모닥불 가에서 순박한 꿈을 지닐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땅에서 이방인 같은 존재가 되지 않고….”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계속 중얼댔다.
“성모 마리아님, 당신의 아드님께서 성스러운 탄생을 하신 날이 과연 오늘이 맞습니까? 사실은 오늘이 아니라 어느 여름날… 누구보다도 친히 낳으신 당신께서 잘 아시겠지요. 어떤 허접스런 잡지책에서 보니 크리스마스는 성 니콜라스… 그리고 예수님은… 지중해에 가까운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자랐으니만큼 황색의 아시아인에 더 가까울 텐데… 하얀 피부에 멀쩡한 미국인처럼 그려져 있는 건 어찌된 일인가요? 만약 이것이 잡지에 한갓 흥밋거리로 소개된 유언비어가 아니라 ‘예수님의 위조’라면… 어머니 된 분으로서 얼마나 가슴 쓰린 노릇입니까. 그래도 세계 각국에 알려진 예수님의 모습은 저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인상을 닮는 법이라는데, 우리 한국 땅에 소개된 예수님은 그저 미국인이 만들어낸 모습과 완전히 판박이입니다. 하하하… 혹시 모조된 아드님의 얼굴 때문에 한국 땅의 마리아님은 한결 수심이 깊고 쓸쓸한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하, 이건 농담입니다. 죄송합니다….”
청운은 마치 유령처럼 맥없이 성당을 걸어나와 정처없이 거리를 배회했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흰 눈이 내린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찬 겨울이 왔다
썰매 타는 어린애들은 해 가는 줄도 모르고
눈길 위에 썰매를 깔고 즐겁게 달린다
긴긴 해가 다 가고 어둠이 오면
오색 빛이 찬란한 거리 거리에 성탄 빛
추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마음껏 즐기자
맑고 흰 눈이 새 봄빛 속에 사라지기 전에….
한 대목 잡으려는 여인들
청운은 황량하고 처량하기만 했던 옛 크리스마스의 추억에서 깨어났다.
오후 다섯 시가 지나자 병영 근무를 마친 미군들이 화려하면서도 편리한 사복으로 갈아입고 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희끗거리던 눈발이 함박눈으로 변했는지 그들은 백설을 뒤집어쓴 채 캐럴송을 휘파람으로 불며 히히덕댔다. 제법 흥청거리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결코 평소보다 소란스런 편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미군들에게 있어 크리스마스는 신성한 날이었다. 평생토록 인간의 고통을 사랑으로 치유해 준 예수라는 분이 이 세상에 온 날인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그분이 베푼 진리와 자비를 가슴속에 새기며 자라나 성탄절이면 감사의 마음을 표하게 된다. 마치 한국의 개천절이나 석탄일 같다고나 할까.
그런 날 술 한잔 마시며 축제의 기분이 젖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평소보다 사건과 사고가 적었다. 여느 땐 백인과 흑인은 서로 견원지간처럼 미워하며 으르렁거렸다. 서로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비웃었다. 백인은 흑인을 옛 선조들이 그랬듯 짐승처럼 무시했으며, 흑인은 그런 백인들을 살육자의 자식으로 여기고 증오했다. 그렇다 보니 클럽마저도 백인 전용과 흑인 전용 업소로 나뉠 정도였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엔 꼭 그렇지 않았다. 특히 블루문처럼 큰 곳의 홀엔 흑백인이 섞여 들어와, 이국에서의 삶을 서로 위로하는 듯 빙긋 미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지만 언제 어느 곳에도 망나니 같은 놈은 있는 법인지 의외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는 기이한 별세계였다.
클럽 여인들은 한 대목 잡기 위해 제 나름대로 최고의 화장술을 발휘해 단장하곤 미군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외부의 한국 사람들이 양색시, 양공주, 양갈보 따위로 부르는 그녀들도 무슨 요괴나 마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환경에 처했을 뿐인 한국 여인이었다. 모종의 화인(火印)이 찍힌….
그 검붉은 도장이 자의에 의한 건지 타의에 의해 찍혔는지 청운은 아직 판별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들의 가슴에 찍혔을 붉은 낙인은 반투명의 간유리에 의해 불그무레하게 번져 무슨 뜻을 지닌 글자인지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대충 짐작만 될 뿐….
<다음 호에도 ‘대니 보이’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