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1부 <7> 동백꽃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양갈보가 한 여인 삶 속에…”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9/07/19 [10:12]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1부 <7> 동백꽃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양갈보가 한 여인 삶 속에…”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9/07/19 [10:12]

“희망집 하고 있지만 예전엔 기지촌에서 미군들에게 몸 팔았대”
“더 놀랍고 슬픈 사실은…그 전엔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것이지”


순박한 처녀든 굴러먹던 논다니든, 미군을 보곤 얼마나 놀랐을까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나 사악한 괴물과 섹스를 해야 한다면…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실화를 아프게 그린 영화 ‘귀향’ 한 장면.    

 

좀더 가자 낡아빠진 기와지붕을 인 작은 한옥이 나왔다. 담벽 너머로 마당이 훤히 보였다. 우물가에 여자들 몇이 쭈그러 앉아 머리를 감거나 손빨래를 하며 시시덕거렸다. 한 여자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설거지통에 쏟아붓자 그릇이며 유리잔 따위가 부딪혀 쟁그라운 소리를 냈다. 이마나 어깨에 내려앉는 눈송이를 먼지인 양 털어내는 하얀 손도 보였다.


문간방에서는 얼굴이 작고 창백한 한 여자가 문을 열어 놓은 채 엎드려 하늘을 쳐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방 한켠에 놓인 옷장과 화장대 따위가 얼핏 바라다 보였다. 전축에서 잡음이 섞인 멜랑콜리한 곡조의 미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피에로가 휘파람으로 그 곡을 따라 불자 담배 피던 여자는 멀뚱히 쳐다보며 동그란 연기를 만들어 띄어 보냈고, 다른 여자들은 담벼락 위로 얼굴만 쑥 드러난 희극적인 그의 표정을 향해 깔깔댔다.

 

간판도 메뉴표도 없는 희망집


“헤이, 짝퉁 채플린, 찬밥이라도 한술 뜨고 가.”
“헤헤, 내일 구수한 된장찌개 끓여 주면 얼음밥이라도 구수히 먹지롱.”
“된장은 없고 치즈뿐인데 어쩐다니. 차라리 치즈 국을 끓여 줄까나?”


여자들은 아무런 사심 없이 까르르 깔깔 웃어댔다. 그 순간만큼은 속세의 번뇌를 벗어난 선녀들 같았다. 하지만 그때, 멀지 않은 곳에 철둑길이라도 있는 듯 기차가 요란스런 소음을 내며 지나가는 바람에 그 웃음소리는 갈가리 찢겨 삼켜져 버리고 말았다.


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기지촌의 중심지로 들어가기 전의 길목에 허름한 판자집이 하나 있었다. 피에로를 따라 청운은 그곳으로 들어섰다. 탁자 세 개가 놓인 작은 간이식당 같았다. 젊은 여자 몇이 둘러앉아 수다를 떨며 허연 김이 오르는 칼국수를 후룩후룩 먹고 있었다.


“누님, 잘 주무셨지유?”


피에로가 빈 탁자 밑의 의자를 꺼내 걸터앉으며 말했다.


“이눔아, 지금이 몇 시관데 그딴 소리냐.”


주방 앞쪽의 의자에 앉아 있던 호호백발 할머니가 대꾸했다.


“히히, 누님은 시간이 굳어 있다면서 뭘 그러우.”
“그래, 욘석아, 내가 한이 많아서 그럴 뿐이지.”


뚱뚱한 그 할머니는 일어나서 주방으로 들어서며 구시렁거렸다.


“구름아, 우리도 칼국수 먹을까?”
“응, 그래.”


청운은 피에로의 물음에 대답하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아냐, 할매 칼국수도 이 동네 사방에 소문난 일미지만… 앞으로 먹을 기회가 많을 테니 오늘은 그냥 가정식 백반을 먹자. 국이 시원할 거야.”
“응, 좋아.”


피에로가 주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누님, 밥 주세요.”


안에서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피에로는 난로 위의 주전자를 들어 보리차를 컵에 따랐다.


“여긴 간판도 없고 메뉴표도 없어. 그냥 할매집이라고도 하고 또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입에서 입으로 퍼져 희망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그리고 여기 메뉴표가 없는 건 칼국수와 백반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야. 하지만 앞으로 자주 들르다 보면 내 말이 헛소리란 걸 알게 될 거야. 히히….”


그때 백발 할머니가 주방에서 소리쳤다.


“야, 가져가!”
“옛, 누님!”


피에로가 재빨리 뛰어가더니 커다란 둥근 쟁반을 들고 왔다. 구수한 시래깃국 내음이 콧속으로 스며들어 뇌를 깨웠다. 수북히 담긴 쌀밥엔 보리가 점점이 섞여 구미를 돋우었다. 반찬은 멸치가 들어간 두부조림, 마늘장아찌, 잘 익은 김치가 전부였다.


청운은 우선 국그릇을 들어 반쯤 훌훌 마시곤 밥을 쏟아부었다. 그러곤 슬슬 비벼 한술 가득 뜬 후 김치를 얹어 맛나게 먹었다. 간간이 마늘을 집어 사각사각 씹었다.


옆 테이블의 아가씨들과 실없는 수다를 떠느라고 밥을 반밖에 못 먹은 피에로는 자기 밥을 청운에게 떠넘기려고 애썼다.


“형 덕분에 정말 맛있게 먹었어. 하지만 더 이상은 땡….”


청운은 웃으며 마치 종을 흔들 듯 손사래를 쳤다.
피에로는 수다를 멈추고 갑자기 밥상 앞으로 돌아앉더니 순식간에 밥과 반찬을 먹어치웠다. 무슨 마술이라도 부린 듯 그릇들이 깨끗해졌다. 마지막으로 국그릇을 들어 입가심을 한 그는 흰소리를 한 마디 늘어놓았다.


“구름아, 왜 백프로 쌀밥보다 보리 혼식이 맛있고 몸에도 더 좋은 줄 아니?”
“글쎄….”
“그건 음양 조화 때문이란다. 저 백발 누님의 지론이지. 쌀은 봄에 씨앗을 뿌려 가을 햇볕을 잔뜩 받고 익었으니 양이며, 보리는 한겨울 엄동설한을 찬 땅에서 돋아나 견뎠기에 음기가 강하니라. 잘 살펴보면 각각 생긴 모양새도 남녀의 심벌을 닮았으니, 섞어 먹는 게 천지의 이치에 맞느니라. 히히히….”
“저 녀석이 또 헛소리를 늘어놓는구나. 다 처먹었으면 어서 꺼지거라.”


주방 쪽에서 백발 할매의 지청구가 터져나왔다.


“흥, 지난번처럼 또 보리밥풀과 쌀밥풀떼길 서로 붙여 음향 합궁 쇼를 한번 해보시지.”


칼국수를 먹던 한 여자의 말에 다른 여자들도 까르르 웃어댔다.


“누님, 잘 먹고 가요. 동생 것도 같이 달아 놓으세요.”


피에로가 일어서서 소리쳤다.


“이놈아, 갚지도 못하면서 무슨 큰소리여! 그래도 지옥에 가서라도 받으려고 장부에 꼭꼭 적어 두고 있으니께 걱정 말어. 허지만 니 동생이란 녀석은 오늘 밥을 참 맛있게 먹어서 한번만 공짜로 해줄 테니 그리 알어!”
“히히, 잘 계세요.”

 

▲ 제2차 세계대전, 차디찬 전장 한가운데 버려진 소녀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일본군만 가득한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현장이었다. 사진은 영화 ‘귀향’ 한 장면.    

 

위안부와 양갈보의 한


그들은 밖으로 나와 눈발을 맞으며 걸었다. 흐린 빛을 띠고 흐르는 개천 앞에서 담배를 꺼내 피웠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개천 위에 내려앉는 눈발은 작은 나비들처럼 소리 없이 춤추다가 사라져 갔다.


“백발 할매의 나이가 꽤 들어 보이지?”


피에로가 물었다.


“응. 아마도 환갑 진갑을 지났을 것 같던데….”
“고생을 많이 해서 그렇지 그렇게까진 많지 않어.”
“그렇구나.”
“한이 많은 분이야.”


청운은 묵묵히 걸었다. 피에로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은퇴해서 희망집을 하고 있지만 예전엔 여기 기지촌에서 미군들에게 몸을 팔았대.”
“아, 그랬구나.”
“그런데 더 놀랍고 슬픈 사실이 뭔지 아니?”


피에로는 눈을 돌려 청운의 눈을 바라보았다.


“뭔데 그래?”
“그 전엔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거야.”
“뭐?”
“열댓 살 봄에 고향 들녘에서 나물 캐다가 잡혀갔다더군.”
“그럴 리가 있어? 전혀 실감이 안 나는걸.”
“자세한 건 네가 다음에 알아봐. 하지만 확실한 건… 일제 식민지 시대와 지금이 그리 크게 멀지는 않다는 사실이야.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자마자 곧장 미군이 밀고 들어와 총독부 건물에서 일장기를 내려 버리고 대신 미국 성조기를 올려 걸었다잖아.”
“그럼 태극기는?”
“모르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 국민들 가슴속에서 피를 흘리며 나부끼고 있었을라나, 히히….”
“그렇구나. 난 일제 식민지 시대와 지금은 전혀 다른 먼 나라의 얘기인 줄 알았었는데….”
“나도 그랬어. 근데 백발 누님이 살아온 얘길 들어 보니까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기지촌의 양갈보가 한 여인의 삶 속에 같이 들어 있는 거야.”
“그 누님 연세는?”
“꺾인 백댓 살쯤.”
“뭐?”
“쉰다섯 살쯤이란 말이지.”
“말도 안 돼. 난 그 시대와 이 시대 사이에 깊은 강물이 가로질러 흐르는 것 같은데….”
“하지만 계산해 보면 사실인걸 뭐.”


청운은 침묵했다.


“앞으로 간혹 희망집에 가봐. 백발 할멈의 인생사도 기구하지만, 요일별로 구수한 된장찌개, 청국장, 김치찌개 따윌 먹을 수 있으니까 말야. 봄이 오면 싱그러운 나물 반찬도 많이 나올 거야.”


저쯤 기지촌 유흥가의 입구가 보였다. 지금은 낮이라서 조용하고 눈송이에 가려 언뜻 깨끗해 보이지만, 밤이 오면 온갖 소음과 현란한 불빛이 난무하며 허구의 성채를 쌓아 올리고 그 속에선 젊은 인간의 욕망들이 꿈틀거릴 것이었다.


둘은 찻길을 건너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리저리 계속 걸었다. 깨진 콜라병과 빈 맥주 캔 따위가 나뒹구는 길은 환락의 밤거리보다 훨씬 더 을씨년스럽고 지저분하고 위협적인 느낌을 주었다. 건물의 시멘트 벽엔 조잡한 글씨로 낙서가 휘갈겨져 있기도 했다.


‘살인자는 리챠드! 잡아 죽이지 않고 뭐 하냐? 병신 같은 대한민국!’
‘그리운 안나… 아이 러브 유. 영원히….’
‘바기나는 똑같다. 양키 고홈!’

 

무지갯빛 뿌리는 미러홀


눈은 이제 그쳐 있었다.
낡았지만 기와지붕을 올린 꽤 넓은 한옥 한 채가 나타났다. 피에로의 뒤를 따라 청운은 그 집으로 들어섰다. 마당가에 큰 오동나무가 마른 잎을 두어 개 단 채 섰고 그 옆엔 오래 된 듯싶은 우물이 있었다. 우물가엔 아까 어떤 집에서 본 것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우물이 말랐는지 모르지만 펌프질을 해서 물을 퍼 여자들은 세수를 하거나 작은 빨래를 주물거리며 잡담을 하곤 했다. 검둥개 새끼 한 마리가 눈 쌓인 마당 한쪽을 뛰어다니다가 별 적의 없이 심심풀이로 짖어댔다.


“오요요~ 이리 온… 눈이 내리니 동화 속에 나오는 강아지가 된 기분인가 보구나. 어서 형님한테로 와.”


피에로가 불렀으나 검둥이 녀석은 ‘뭔 개소릴 지껄여’라고 생각하는 듯 힐끗 흘겨볼 뿐이었다.


“호호, 하두 허튼소릴 하니까 강쥐까지도 무시하는군.”


세수를 마친 여자가 머리에 묶었던 수건을 풀어 닦으며 이죽거렸다.


“헤헤, 누님과 누이들, 모두 안녕? 마침 만난 김에 내 아우 구름이를 소개할게. 앞으로 좀 잘 봐줘요. 순진한 애 물들이지 말고….”


피에로는 청운을 향해 찡긋 눈짓을 했다. 청운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합니다. 시골 촌놈입니데이.”


그는 짐짓 능청을 떨었다.


“숫총각이야?”
“몇 살인데 그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람. 열 살짜리 플레이보이도 있고 서른 살짜리 숫보기 총각도 있는 세상인걸.”
“겉으론 순진해 보이지만 속엔 능구렁이가 들어앉았는지도 몰라.”


그런 소리들을 늘어놓곤 여자들은 까르르 웃어댔다.


“어서 영업 나갈 준비 않고 무슨 새살을 그리들 떨어대!”


깊숙이 들어앉은 안방 쪽에서 뚱뚱한 한 여자가 대청 마룻바닥을 쿵쿵 울리며 걸어 나왔다. 혹시 옛날 같으면 현숙한 안주인이 버선발로 살몃살몃 나타나올 법도 했건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뱀눈에 하이에나같이 야릇한 웃음을 입술 밖으로 흘리는 기분 나쁜 존재였다. 퍼머 머리에 양돼지처럼 희멀건 안색이었다. 커다란 보석이 박힌 듯 번쩍거리는 귀고리와 손가락에서 빛나는 반지들….


“사장 부인인데 사실은 사장보다 더 높은 여자니 알아서 해.”


피에로가 청운의 귀에 살짝 속삭였다.


“누구야, 쟨?”


여자가 무슨 기분 상한 일이라도 있는 양 쌍을 잔뜩 찡그리곤 물었다.


“예이~ 마님, 이 총각은 제 의형제이면서 이번에 홀 보이 역을 맡게 된 단역 배우입니다.”
“배우는 무슨… 개소리 그만해, 욘석아!”


여자는 입귀로 슬쩍 웃으며 물었다.


“그래, 누구라구?”
“윤청운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해봐. 계집을 사악한 뱀으로 알고….”


청운은 무슨 말인가 하려 했으나 여자는 대뜸 신발을 꿰신곤 나가 버렸다.


머리를 다 감은 아가씨가 하얀 수건을 풀어 슬슬 닦으며 뇌까리곤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문을 열어 놓은 채 화장대 앞에 앉아 분홍색 루즈를 꺼내 입술에 바르기 시작했다. 방안에 놓인 자개 장롱과 침대 모서리, 전축 위에 놓인 꽃병 따위가 거울에 비쳐 반쯤 보였다.


‘저 동백꽃은 과연 생화일까 조화일까?’


청운은 꽃병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야, 그만 가자.”


피에로가 말했다.


“응.”


청운은 뒤따랐다.


뒷문을 통해 어둑한 복도를 한동안 걸어가자 갑자기 현란한 불빛의 일부가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피에로가 문을 열었다. 홀 천장에 달린 미러볼이 빙글빙글 돌며 오색 칠색의 무지갯빛을 뿌리고 있었다.


청운은 주춤했다.


‘아, 색깔은 어찌 이다지도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에 현혹시키는 것일까? 저건 사람이 만들어 매달아 놓고 끄며 껴는 하나의 물건일 뿐인데… 사람 마음을 홀리는 도깨비불 같은 요소가 있어. 아마 일단 저 속으로 들어가면 홀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안 홀린다고 뻐기는 건 어린애 같은 자기 기만일 뿐이야. 흠, 하지만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어. 홀리려고 들면 홀리는 척하면 되지. 부처님도 색즉시공이라 했다던데… 흐, 그래도 저 색깔은 참 묘하군.’


청운은 생각에 잠겼다.


“야, 뭐해? 어서 들어와!”


피에로의 목소리를 듣고 청운은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영업이 시작되기 전이라 홀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바로 이곳에서 어젯밤의 그런 광란과 애욕의 향연이 펼쳐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피에로는 카운터 쪽으로 급히 걸어가더니 공손스레 고개를 숙였다.


“아 지배인님, 벌써 나오셨습니까? 헤헤, 어제 말씀드린 동생을 데려왔습니다.”
“그래?”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고무질처럼 질겨 보이는 중년 남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지배인님이니 인사 드려.”


피에로가 팔꿈치로 청운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청운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흠, 얼마나 버틸진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해봐. 엿장수 저놈의 뽄달가진 따라가지 말고.”


지배인은 고개를 돌리곤 카운터 앞에 앉은 얼굴이 하얀 여자와 뭔지 쑥덕거렸다.


“제가 뭘 어쨌다고….”
“꺼져, 임마!”
“볼일 봤으니 가야죠 뭐, 헤헤….”


피에로가 미꾸라지처럼 움직였다. 청운은 한 발짝 한 발짝 홀 안으로 들어갔다.

 

농촌마을이 조악한 유흥가로


고요한 그곳은 동굴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어쩐지 원시인들의 동굴 같은… 시멘트로 지은 동굴. 분홍색으로 도배한 벽에 미러볼이 비쳐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나 실상은 철골과 콘크리트로 급조된 삭막한 건물일 터였다. 원래부터 이런 곳이 아니라, 미군 기지가 들어서자마자 고요하던 농촌 마을이 갑자기 조악한 유흥가로 변해 버린 것이리라.


‘아마 그랬겠지. 순박한 처녀든 굴러먹던 논다니든, 미군을 보곤 얼마나 놀랐을까. 하얀 도깨비나 검은 도깨비를 만난 심정이 아니었을까. 같은 인간으로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몸뚱이 밑에 깔려 야윈 다리를 벌려야 한다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나 사악한 괴물과 섹스를 해야 한다면… 물론 잘난 미군들 입장에서는 한국의 여자들이 사람 닮은 짐승이나 이상야릇한 소녀 악마로 보였을 수도 있겠지.’


청운은 씩 웃었다.


‘어쨌든… 만일 약자가 아니라면 누가 자기 몸을 도깨비에게 팔겠는가? 도깨비 방망이를 만지고 받아들여 잘 합궁을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꿈꾸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몸이든 맘이든 많이 아팠을 거야.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변질돼 버리고….’


“구름아, 바람 따라 좀더 산천 구경하면서 천천히 오거래이.”


저쪽에서 피에로가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바삐 오라고 흔들어댔다.


청운은 홀을 가로질러 그쪽으로 갔다. 카운터 앞에 은테 안경을 쓴 여자가 앉아 있었다. 작은 눈이 슬쩍 청운을 쏘아보았다. 희멀건 둥근 얼굴이었지만 루즈를 짙게 칠한 작은 입술이 모종의 매력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뒤쪽의 유리 진열장 안에도 맥주와 양주를 비롯해 갖가지 음료수 류가 구비돼 있었지만 그 옆쪽에도 캔이나 과자봉지 따위가 줄느런히 쌓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청운이 인사했지만 여자는 더 이상 고개를 들지 않고 자기 일에 몰두했다.


좀더 가자 홀의 열린 문을 통해 흐린 하늘이 바라보였다. 그쳤던 눈이 또 내려 하얀 주렴을 만들고 있었다. 밖으로 나서서 쳐다보자 ‘블루문’ 간판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곳이 입구였던 것이다.


“좀 있으면 미국 녀석들이 물밀 듯이 몰려올 거야. 다섯 시에 퇴근하거든.”


피에로가 말했다.


“형, 저기 저렇게 걸어다니는 여자들을 보니까… 왠지 시골 논의 물방개나 소금쟁이 녀석들이 생각나.”
“뜬금없이 뭔 소금쟁이냐.”
“흐흐, 왠지 모르겠어.”
“싱겁긴….”


하기야 어둠이 점점 짙어지고 네온사인 불빛이 현란해지자 길을 걷는 사내가 여자들의 몸이 색채에 휩싸여 조각나 보이기도 하고 영혼이 바닥에 떨어져 기어다니는 듯싶기도 했다.

 

<다음호에는 ‘대니 보이’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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