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고난 짧은 영광’ 마감...‘큰 어른’ 이희호 삶 재조명

민주주의·여성인권 개척자 ‘영원한 동지’ DJ 곁에 잠들다!

송경 기자 | 기사입력 2019/06/14 [13:50]

‘긴 고난 짧은 영광’ 마감...‘큰 어른’ 이희호 삶 재조명

민주주의·여성인권 개척자 ‘영원한 동지’ DJ 곁에 잠들다!

송경 기자 | 입력 : 2019/06/14 [13:50]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6월10일 밤 별세했다. 이 이사장은 가족과 지인들의 찬송과 기도 속에 향년 9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이 이사장은 한때 대통령을 지낸 정치인 김대중의 아내이자 여성 운동가, 민주화 운동가, 평화 전도사로 100년 가까이 신산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 이사장의 마지막 길은 여야 정치권을 포함한 각계각층 인사들이 조문을 하며 애도의 물결로 가득했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며, 이 이사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큰 어른’다웠다. 이 이사장의 빈소를 찾은 시민들은 “이 여사란 호칭을 쓰지 말자”면서 “대통령 부인보다 시대의 선생님으로 기억돼야 한다”고도 했다. 영원한 동지 DJ 곁에 잠든 ‘자연인 이희호 선생’의 삶과 마지막 길을 따라가 봤다.

 


 

마지막 메시지 “하늘나라 가서 민족의 평화통일 위해 기도하겠다”
빈소 찾은 시민들 “영부인보다 시대의 선생님으로 기억돼야 할 분”

 

정치권 국회 파행 책임공방 잠시 접고 일제히 ‘이희호 타계’ 애도
김정은 조의문·조화 보내 애도 표시…마지막 길도 남북관계 돌파구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장례가 6월14일 국립 현충원에서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성 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이사장 사회장’이란 명칭으로 치러졌다.


이날 오전 7시 이 이사장이 52년간 다닌 신촌 창천감리교회에서 장례예배를 한 뒤 운구행렬이 동교동 사저를 거쳐 국립현충원에 오전 9시30분경 도착했다.


이어 사회장 추모식에선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이낙연 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조사를 낭독했고, 상임고문인 문희상 국회의장과 고문인 여야 5당 대표가 추도사를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조전은 김덕룡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대독했다.


‘정치인 김대중’의 아내이자 여성 운동가, 민주화 운동가, 평화 전도사로 100년 가까이 신산한 삶을 살다 간 고인의 약력 보고는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이, 여성계 대표로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 사회단체 대표로 김상근 KBS 이사장이 각각 추모사를 했다.


1시간에 걸친 추모식이 진행된 후 이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으로 운구돼 안장예배를 드린 후 ‘영원한 동지’였던 DJ 곁에 안장됐다. 안장예배에는 유족과 장례위원들이 참석했다.

 

▲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장례가 6월14일 국립 현충원에서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성 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이사장 사회장’이란 명칭으로 치러졌다. <뉴시스>    

 

마지막 메시지 ‘평화통일’


6월10일 밤 별세한 이 이사장은 이 세상과 작별하면서 마지막으로 특별한 메시지를 남겼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메시지는 평생을 여성 운동과 민주화 운동, 평화 전도사로 활약한 ‘큰 어른’다웠다. 고인은 동교동 사저와 노벨평화상 상금을 각각 김 전 대통령의 기념관과 기념사업 기금으로 써달라는 유언도 함께 남겼다.


이 이사장의 사회장을 주관한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는 6월11일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희호 이사장의 마지막 메시지를 세상에 전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지난해 준비한 유언을 통해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이 이사장은 또한 “우리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제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그러면서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유언을 받들어 변호사 입회하에 세 아들의 동의를 받아 유언장을 작성했다”며 “유언 집행에 대한 책임은 제게 맡기셨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과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한 김대중평화센터 사업을 잘 이어가도록 당부하셨다”고 전했다.


현재 김 전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 상금은 원금을 제외한 이자의 경우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노벨평화상 상금의 대통령 기념사업 기금사용 계획과 관련해 “민주주의와 평화, 빈곤 퇴치 등 세 가지가 김대중평화센터와 김대중도서관의 목적”이라며 “김 전 대통령께서는 민주주의와 평화뿐만 아니라 빈곤 퇴치를 위해서도 평생 수고하셨기 때문에 그쪽 부분이 좀 더 집행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이 이사장의 별세와 관련해 “여사님은 병(病)으로 소천하신 것이 아니고 노환으로 가셨다”고도 했다. 아울러 “만 97세에 노환으로 장기가 둔해지는 등 어려움을 겪어 병원에 입원한 것”이라며 “일부 언론에서 의식이 없었다거나 암에 걸렸다거나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여사님은 한 번도 의식을 잃어본 적이 없다. 마지막까지 의식이 있었지만 힘이 없어서 눈 감고 계시다가 병문안을 오면 당당히 맞이해주셨다”며 “임종 때도 모든 가족들이 모여 찬송하는데 입으로 살짝살짝 따라 부르셔서 가족들이 놀랐다. 찬송가를 같이 부르시다가 편하게 소천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평생 어려운 사람들,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늘 함께 하시고 김대중평화센터의 이사장으로서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한 일을 계속하시다가 소천하셨다”고 고인을 기렸다.

 

정치권 공방 잠시 접고 애도


이 이사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6월11일 정치권은 국회 파행의 책임을 놓고 벌이던 공방을 잠시 접고 일제히 이 이사장의 타계에 애도를 표했다.


여야 5당은 전날 밤 전해진 비보에 논평을 통해 추모의 뜻을 밝혔으며 이날 오전 진행된 지도부 회의에서는 현안 발언에 앞서 고인의 민주화 업적을 기리며 이를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6월11일 오전 진행된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를 넘어 20세기 대한민국의 위대한 여성 지도자로서 역사에 기억될 것”이라며 “우리 당으로서는 김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됐던 큰 어른을 잃은 슬픔이 크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오늘도 동교동 자택에는 김 전 대통령과 이 이사장의 문패가 나란히 걸렸을 텐데 하늘에서 회우하셨을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과 함께 고난을 이기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 삶을 사셨던 이 이사장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추모했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거목이었던 여성 지도자 이 이사장의 삶을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추모한다”며 “김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가장 가까운 비판자로서 독재세력과 싸우는 민주화 투쟁의 동지로 매섭고 엄혹한 격정의 세월을 함께 헤쳐 오셨다”고 회고했다.


검은 옷차림으로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이 이사장은 여성이 가진 포용의 미덕을 정치권에 보여줬다”며 “김 전 대통령 당시 국란 극복과 정치 안정에 큰 힘이 됐다”고 고인을 평했다.


나 원내대표는 “영부인을 넘어서 든든한 정치 동반자로서의 이 이사장의 삶은 국민과 여성에게 큰 울림을 남겨줬다”며 “먼저 서거하신 김 전 대통령 곁으로 가셔서 생애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여성운동가로 민주화 투사로 평화전도사였던 이 이사장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면서 “평생을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고인의 삶을 기리며 영면을 기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의당은 향후 장례 일정에서 고인의 높은 뜻을 기리고 위해 모든 예우를 다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의당은 고인의 위대한 삶을 계승하는 데 노력할 것이다”라며 “고인의 필생의 신념이었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6·15 공동선언을 계승 실천하고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평화 협치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대중 정신’ 계승을 표방하는 민주평화당은 당 관계자 대다수가 이 이사장의 빈소를 찾아 장례를 지원했다.


박주현 평화당 수석대변인은 이 이사장 별세에 관한 논평에서 “우리 모두는 여사님이 걸었던 여성, 민주주의, 인권, 사랑의 길을 따라 전진하겠다”면서 “‘이희호’라는 이름은 항상 기억될 것”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 이사장님의 여성 리더적인 면모는 김 전 대통령의 인생의 반려자를 넘어 독재 속에서 국민과 역사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켜낸 정치적 동지로 자리하셨다”며 “정치적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김 전 대통령님의 삶에 이 이사장님이 계셨던 것을 국민들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김여정 편에 조의문 보내


이 이사장의 마지막 가는 길은, 교착 국면에 빠진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실마리도 제공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이사장의 별세에 대한 조의 표명 방식으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판문점으로 보내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며 애도를 표한 것.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6월12일 오후 경기도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부터 고 이희호 여사 조화를 전달 받고 있다. <뉴시스>    


김 위원장은 6월12일 오후 5시께 판문점 통일각에서 김여정 부부장과 이현 통전부 실장을 통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호 통일부 차관, 장례위원회 대표 자격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에게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했다. 양측은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만나 15분가량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 실장과 서 차관, 박 의원은 오후 7시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권노갑 장례위원장과 유가족 등에게 조의문과 조화를 전했다.


김 위원장은 ‘리희호 녀사의 유가족들에게’라는 제목의 조의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리희호 녀사가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리희호 녀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김 위원장이 함께 보낸 조화는 약 2미터 높이로 흰색 국화꽃으로 장식됐다. 조화에는 ‘고 리희호 녀사님을 추모하여, 김정은’이라고 적힌 검정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김 제1부부장으로부터 조의문과 조화를 건네받은 뒤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여정 제1부부장은) 이 이사장의, 그간 민족 간 화합과 협력을 위해 애쓰신 뜻을 받들어 남북 간 협력을 계속해 나가길 바란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없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것 없었다”고 밝힌 뒤 “오늘은 고인에 대한 남북의 추모와 애도의 말씀에 집중했고, 우리 측도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의원 역시 “김 부부장이 이 이사장님의 서거에 대한 애도와 이 이사장님의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김 위원장의 애도를 유족들과 장례위에 전달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또한 박 의원은 김여정 부부장에게 “10년 전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파견 온 북한 조문단 이야기를 언급하며 ‘이번 이 이사장님 서거 때 조문 사절단이 오기를 기대했지만 오시지 않아서 대단히 아쉽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그러자 김 부부장은 특별한 말은 하지 않고 재차 김 전 대통령과 이 이사장님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를 위해 헌신한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고 전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10월 셋째주 주간현대 1115호 헤드라인 뉴스
1/2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