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1부 사창굴의 약속 1

“코쟁이 놈들한테 헤닥거리며 몸 팔곤 싶지 않아”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9/06/14 [10:19]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1부 사창굴의 약속 1

“코쟁이 놈들한테 헤닥거리며 몸 팔곤 싶지 않아”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9/06/14 [10:19]

어떤 여자가 껌 짝짝 씹으며 눈웃음 “놀다 가, 잘해줄게, 응?”
“찔레 언닌 서너 달 전 동백꽃 지듯 피 머금고 죽어 버렸어”

 

“몸 팔아 먹고 사는 신세지만…양갈보와 비교하면 기분 드럽지”
“미군 끄나풀이던 양아비가 여윈 내 소녀의 몸과 영혼 강간했지“

 

▲ 사창가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 '나쁜 남자' 한 장면.    

 

청량리역 광장의 탑시계 바늘은 이미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하긴 글렀다. 이 부근에서 적당히 보내고 내일 출발해야지. 그런데 왜 굳이 여길 다시….’


청운은 혼잣말을 하며 찬바람이 불어대는 광장을 거닐었다.


‘청량리는 삭막한 동네지만 왠지 삶의 희비애락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느껴져. 명동이나 종로와는 쪼끔 다른 듯해. 어릴 때부터 서울의 밑바닥을 헤매 다녀서 그럴까? 혹은….’


청운은 문득 걸음을 멈춘 채 가만히 서 있더니 절룩절룩 걸음을 옮겨 588 골목 쪽으로 다가갔다. 어둑한 어둠 속에 분홍빛 조명이 비쳐 나와 섞여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


골목 입구에서 망설이는 건 그곳이 범죄를 유혹하는 듯한 추악한 사창가 소굴이라서가 아니었다. 범죄는 오히려 휘황찬란하고 번듯한 곳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더 음험하게 저질러지는 세상이었다. 청운은 그곳에 선 채 겨울바람의 회오리가 아닌 정신 속의 회오리를 체감하고 있었다.

 

그 슬픈 여인은 어디에?


1년 전인지 2년 전인지 정확히 계산하긴 어렵지만 그때도 그는 이곳에 서 있었다. 돌고 도는 시간의 회오리가 그의 뇌수를 어지럽혔다. 1여 년 전의 시간이 마치 어제처럼 돌아와 오늘의 어깨를 슬쩍 두드리고 막힌 내일 앞에서 주춤거리는 성싶었다.


그날은 특수부대에 입대하기 전날이었다. 어떤 여자에게 이끌려 이곳까지 왔었다. 그 창녀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다고 말했었다.


‘그 슬픈 여인은 지금도 과연 이곳에 있을까? 한두 해 사이에 난 이렇게 변해 버렸는데… 과연 기억이나 하려나?’


청운은 불그죽죽한 늪 안쪽으로 절뚝절뚝 걸어 들어갔다. 차가운 바람이 전신주를 휘이윙 울리고 홍등의 그림자를 설핏 흔들면서 음산한 골목을 휩쓸어 갔다. 유리창 속에 정육처럼 진열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자들을 지나쳐 청운은 좁은 갈래길 앞에서 주춤거렸다.


“아리송하군. 하지만 어느 쪽을 택하든 더 아리송해질 것 같아. 어차피 만나도 좀 서글플 듯하니 그냥 아무데로나 가 보자.”


청운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어떤 여자가 불쑥 팔을 붙잡았다. 쥐 잡아먹은 듯한 붉은 입술로 껌을 짝짝 씹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놀다 가. 잘해줄게, 응?”
“찾는 사람이 있어서….”
“아이 참, 장미나 백합만 꽃인가 뭐.”


여자는 아양을 떨었다.


“무슨…?”
“아이 참, 코스모스나 맨드라미도 개성이 있고, 치자꽃은 향기로워 좋잖아, 응?”
“그럼 혹시 폐병 든 찔레꽃을 알아요? 다리를 절룩거렸는데….”


여자는 입에서 껌을 꺼내 무심중에 매만져 딱딱 소리를 내면서 청운을 흘겨보았다.


“혹시 그 찔레 언닐 잘 알어? 흠, 단골은 아닌 것 같고… 고향 동생이야, 아님 고이 숨겨둔 기둥서방이셨나?”


여자는 자기 말이 실없는지 깔깔 웃어댔다.


“어디 살고 있는지 알아요?”
“어디? 흠, 알면 꽃 천지로 데려다가 살게?”
“….”
“여기 없어.”
“그럼?”
“서너 달 전에 동백꽃 지듯 피를 머금고 죽어 버렸어.”


여자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랬군요. 그럼 이만….”


청운은 돌아섰다. 그때 여자가 아까보다 더 완강하게 그의 팔을 낚아챘다.


“그냥 가려구? 매정한 남자!”
“그럼…?”
“내가 그 언니의 뼛가룰 산에 뿌려주었단 말야. 그쪽이 궁금해 할 얘길 더 해줄 수도 있구….”
“음.”


여자는 청운의 표정을 흘낏 보곤 낚시에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어쨌는지 손아귀를 푼 뒤 앞장서 골목 안쪽으로 스며 들어갔다.


허름한 건물 앞에서야 청운은 겨우 전에 한번 와본 곳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여자를 따라 삐걱거리는 마루를 지나 한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불을 켜자 화사한 분홍빛이 좁은 공간을 에로틱한 분위기로 물들였다.


“좀 앉아 있어. 음료수 한잔 가져올게. 혹시… 술도 좀 사올까?”
“그래요. 소주든 맥주든 좋을 대로….”
“화끈해서 좋아. 역시 전설의 순정파답군.”
“뭔 소리유?”
“아, 그런 게 있어. 우선 돈부터 좀 줘.”


청운은 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아이, 마음통도 참 크셔라.”


여자는 종종걸음으로 뛰어나갔다.

 

“기지촌엔 양갈보 우글우글하대”


‘난 과연 죽은 폐병쟁이 창녀의 얘기를 얻어 듣기 위해 여기 앉아 있는 것일까? 혹시… 육욕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모르겠다. 그걸 따져 봤자 뭘 하나. 내 인생은 돌고 도는 만화경처럼 허망했는걸….’


청운은 불그무레한 방안에 홀로 남자 생각에 잠겼다. 그는 마치 멜랑콜리한 감상에 젖은 노인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입귀로만 슬쩍 웃었다.


얼마 후 여자가 검은 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그녀의 몸에서 추위의 비늘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카운터에도 있는데 너무 비싸게 후려 처먹기 땜에 살짝 가게에 가서 사왔어.”


여자는 호들갑을 떨며 비닐봉지에서 소주와 구운 오징어를 꺼냈다. 그녀는 두 잔에 찰랑찰랑 술을 따르고 나서, 잠시 낡은 레코드 판을 조작해 구슬픈 노래를 흘려 내었다.


“자, 일단 건배! 대단한 척하는 세상도 한 찰나뿐이니,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삶을 위해 건배!”


청운은 잔을 맞대곤 묵묵히 소주를 들이켰다.


“고통 속에 살다가 동백꽃 같은 피를 흘리며 저승으로 갔지만, 만약 영혼이란 게 있다면 그 언닌 그나마 기분이 괜찮겠네. 젊은 신랑이 순정을 걸고 찾아왔으니 말야.”


여자는 짓궂은 눈길을 던지며 웃었다.


“화장해서 뼛가루를 뿌려줬다구요?”
“그랬었지.”


그녀는 새 담뱃갑의 은테를 돌려 개봉한 후 한 개비 피워 물곤 연기를 휘 내뿜었다.


“그 언닌 별명이 찔레 아니랄까 봐 은근히 톡 쏘는 면이 있었지. 폐병까지 들어 피를 한 모금씩 토하는 주제에. 그러니 누가 좋아하겠니? 결국엔 무정한 세상에 낙엽보다 못한 신세가 되어 길바닥을 떠돌다가… 마지막 며칠 동안은 이 방에서 나하구 함께 어렵사리 지냈어.”


“그랬구나.”
“응, 그 언니가 평소엔 얌전한데도, 한번씩 술에 취해 양반집 고명딸이었네, 어쩌네 허풍을 떨면 별로 보기 좋진 않았지.”


여자는 술잔을 들어 홀짝 마셨다.


“음, 이제 세상 떠난 사람 얘긴 그만하죠.”
“그래요. 이제부턴 산 사람들을 위해 건배!”


둘은 잔이 깨질 듯 쨍 부딪쳤다.


“그럼 자긴 그동안 어디 갔다 온 거야? 이젠 여기 청량리에 정착할 거야?”


여자는 자기가 반쯤 마신 술잔을 청운의 입에 대어 주며 물었다.


“난 일년 전에 청량리역 시계탑 앞에 온 후로 아무곳에도 가지 않았어. 냉동돼 있었던 것만 같아.”
“뭐?”
“내게 청량리는 머무는 곳이 아니라… 어딘가로 찾아 떠나려고 준비하는 곳일 뿐….”
“어딜 가려고?”
“동두천.”


청운은 심드렁히 대꾸했다.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긴 왜?”
“아는 형을 만나러….”
“거기가 어떤 곳인 줄 알어?”
“사람 사는 동네겠지 뭐.”
“사람은 살지만, 인간 지옥이란 얘기두 있어.”
“왜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거긴 미군부대가 들어서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지촌이래. 양갈보들이 우글우글한다더구먼. 변소의 구더기 같은 것들….”


여자는 혀를 쯧쯧 찼다. 마치 자신은 갈보나 창녀가 아닌 듯… 그러나 속마음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지 상을 잔뜩 찡그린 채 소주를 입속에 털어넣었다. 그러고는 짐짓 이중 감정 속에서 갈등하는 양 머리카락을 파르르 흔들었다.


“괜히 흥분하는 것 같네. 여기나 거기나 뭐 크게 다를 게 있다구….”


청운은 술을 쭉 들이키곤 위악적으로 이죽거렸다.


여자는 발끈하더니 바락 성을 냈다.


“흥! 아무리 몸 팔아 먹고 사는 신세지만… 그런 양갈보하구 비교한다면 기분이 상당히 드럽지. 내가 아무리 비루먹은 국내산 똥개 놈들하구 붙어 연명하는 똥치래두 말야, 징그러운 코쟁이 놈들한테 헤닥거리며 몸을 팔곤 싶지 않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다 좋아서 그러고 살겠어. 인생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있을 텐데….”
“흥, 거긴 화대가 꽤나 쎄긴 쎄다더군. 그러니 뭐 양놈 돈 보고 그 소굴에 들어간 거지 뭣 땜에 그랬겠어. 천만금을 준대도 난 그런 곳은 싫어.”

 

588보다 더 먼 미군 기지촌


여자는 소주를 쭉 들이켰다. 그녀의 얼굴은 화장을 진하게 해서 그렇지 실은 나이가 제법 들어 보였다. 하기야 젊고 팔팔한 시절이라면 낡은 외진 구석에서 움츠려 있을까. 하지만 청운은 내색하지 않았다. 상대가 젊은 티를 내면 젊은 마음으로 대하면 되고 늙은 척하면 그냥 그렇게 받아 주고 싶었다. 웃고 있지만 내면에 박인 고독한 인상 때문인지 몰랐다.
혹시 저 여자는 이 시궁창을 삶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청량리 588보다 더 먼 그 미군 기지촌을 미지의 지옥이라고 생각해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청운은 무심결에 웃었다.


“뭘 그 따우로 웃어, 기분 나쁘게스리.”
“이 세상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루하루가 쾌락의 날인 사람들도 많겠지만… 시시각각이 괴롭고 허망스런 인생이라면….”
“한창 땐데 괜히 엄살이야.”


이번엔 여자가 웃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잖아. 대학생이든 가난한 공장 품팔이든… 어느 때나 어느 곳이나 젊은 사람들이 항상 많이 죽어 온 것 같아. 타살이든 자살이든… 비밀스레 죽어 사라지는 사람도 많고….”
“쳇, 뭘 그렇게 삼각한 눈으로 말하구 그래? 자, 한잔!”


창녀는 술잔을 들어 청운의 잔에 쨍 부딪치곤 천천히 음미하며 들이켰다. 그러더니 문득 감상적인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아, 먼 남쪽 고향으로 가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나도 그런걸. 하지만 난 어딘지 몰라서 가보고 싶어도 못 가는 신세….”
“그렇구나. 그런데 다리는 왜 절어? 찔레 언니 말로는 순수한 어린 왕자라던데, 응?”
“그 누나도 참 허풍쟁이로군. 순수는 무슨… 내가 이래봬도 인생의 쓴맛 짠맛 다 맛본 사람이라구. 누나들보다 더 한이 많은 인간일 수도 있다구.”


청운은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칫, 까불구 있어.”


여자는 눈을 살짝 흘겼다.


“정말이야. 한번 들어 보실라우?”


청운은 히히 웃고 나서, 코흘리개 때 엄마한테 버림받은 후 거지가 되어 청계천 바닥을 떠돈 일부터 시작해 누명을 쓰고 선감도에 잡혀가 고생한 사연 등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악마산이나 북파공작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아휴, 불쌍해라. 어린 것이… 그래두 이 년의 가련한 신세에 비할까 보냐.”


여자는 투명한 소주를 꼴깍꼴깍 마시고는 마치 무슨 파란만장한 인생 대결이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체험담을 슬슬 꺼냈다.


“가난… 가난이 사람의 일생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말하면, 아마 돈 많은 갑부뿐만 아니라 요령 좋은 정치가 분들이나 사기꾼과 도둑놈들은 비웃겠지만… 내겐 사실이었어.”
“흠, 내 인생도 그럴지 모르는걸 뭐. 모정(母情)보다 더 강한 가난이랄까. 아버지하구 트러블은 좀 있었지만, 만일 궁핍하지 않았다면… 아마 엄마가 어린 자식을 내버리진 않았을 텐데….”


여자는 술잔을 들어 쭉 비웠다.

 

“친아빠 독립운동, 계부 일본 앞잡이”


“난 친아빠는 모르구 의붓아비만 알아. 엄만 시장 길가에서 과일 장사를 하다가 그 남자를 만났지. 썩은 사과 나부랭이로 허기를 달래거나 굶는 날이 더 많았던 시절… 그래서 삼각지에 있는 어떤 집에 들어가 살게 됐어. 계부는 손 하나가 의수였지만, 미군부대 군속이라 벌이는 괜찮았던가 봐. 하지만 술고래에다 주정이 심해 때론 배고팠던 과거보다 힘겨웠어… 언젠가부터 엄마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양키 물건 장사를 시작했던가 봐. 계부를 통해 빼돌린 미제들을 암시장에다 파는 거지. 달러에 미쳤는지 딴 놈팽이에 미쳤던지, 엄마는 서울을 벗어나 의정부나 동두천 기지촌까지 드나드는 모양이었어. 하루 이틀 사흘씩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지. 그런 무렵이면 엄마는 ‘아빠 밥상 잘 챙겨줘’라고 뇌까리곤 했지….


그때가 아마 열두어 살쯤 되었을 거야. 어느 날 밤, 밥보다 반주를 더 흡족히 마신 양아비는 트럼프 카드를 꺼내 갖가지 마술을 보여주며 내 눈을 홀렸어. 그리고 미국에서만 나오는 신비스런 넥타라며 검푸른 병에서 음료수를 한잔 따라 주었지. 난 홀짝 마시고는 헤롱헤롱 정신이 나가 버렸던가 봐. 완전히 뻗어 버린 건 아니었지만 제정신을 잃은 몽롱한 상태였어. 양아비는 귀신처럼 웃으며 여윈 내 소녀의 몸과 영혼을 강간했지. 후훗…


그놈이 누군지 알아? 먼 일제시대엔 일본군 정보원 노릇을 하다가 해방 후엔 미군의 끄나풀이 된 자식… 놈은 그 뒤에도 계속 내 몸을 유린했어. 난 거부하고 싶었지만… 만약 엄마한테 알리면 다시 길바닥으로 내쫓아 쫄쫄 굶주리게 하고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협박했기 땜에… 어쩔 수가 없었어. 사실은 한두 번 엄마에게 슬쩍 귀띔을 하기도 했었지만… 별일 아니라면서, 새아빠 말 잘 들으라며 눈을 흘기는 바람에 한숨만 짓고 말았지.”


여자는 쓸쓸한 모습으로 술을 들이켰다.


“흐흐, 지옥은 우리가 모르는 어느 땅 밑에 있지 않아.”


청운은 우울한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한데 나중에 의붓오빠라는 개새끼들까지 잭나이프와 혀로 위협하면서 강제로 몸에 올라타곤 지랄발광을 떠는 거야. 고딩 놈이 그러자 중삐리 새끼도 따라 히득거리며 좆을 들이대더군. 악당이라고 해야 할까, 정신병자라 해얄까? 내가 칼을 들고 결사적으로 막아도 그놈들은 슬쩍 물러나는 듯하다가 끈덕지게 덤벼들어 욕심을 채우곤 했어. 그 자식들의 엄마는 계부와 이혼을 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암튼 미국에 들어가 사는 모양이더군.”
“….”
“아, 만일 친아버지가 제대로 살아 계시고… 홀로 가난이 힘겹더라도 엄마가 계부 놈을 따라가지 말고 좀 견뎠더라면… 이렇게까진 망가지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더 기막힌 일이 뭔지 알어, 응?… 히힛… 친아빠가 바로 그 음흉한 계부 놈한테 잡혀 죽었대.”
“뭐?”
“일제시대 말기에 우리 아빤 독립운동을 하신 청년이었대. 그러다가 일본군 밀정인 계부의 끈질긴 추적으로 결국 체포된 거지. 그동안 놈은 엄마를 매일같이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때론 달콤한 말로 꼬시기도 한 모양이야… 해방되기 한 달 전에 감옥소에서 죽은 친아빠를 난 잘 몰라. 그때 난 겨우 서너 살이었고 아빠 얼굴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거든. 이런 얘기도 사실은 좀 자란 후 술 취한 엄마가 주절대는 소릴 들은 거라 긴가민가해… 아무튼 계부는 해방 후엔 일본군 대신 미군의 끄나풀이 되었고 6·25 전쟁 뒤부터는 한층 더 위세등등해졌지. 그 철면피는 아빨 죽인 것만으론 성이 안 찼는지 계속 엄마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는가 봐. 혹시 마타하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감시하는 척 도와주는 척하며 지분거리던 놈은 전쟁이 끝날 무렵 결국 엄마를 첩으로 만들어 버린 거야.”

 

<다음 호에 계속>


작가 김영권은 누구인가?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으며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고 <작가와 비평>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仙甘島) 수용소의 비밀> <소년 북파공작원> <보리울의 달> <동상의 꽃꿈> 등이 있다.
소설 <몽키하우스>는 ‘언덕 위의 하얀 집’ ‘양공주 병원 감옥’이라 불리는 동두천 낙검자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소설로서, 한미관계에 얽힌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삶을 그릴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분단된 남북대결 시대에 미국과 미군은 대체 무엇인지 깊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메일 주소: nammunsan@naver.com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10월 셋째주 주간현대 1115호 헤드라인 뉴스
1/2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