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연구가 장천규 소장의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

충신 박문수는 죽어서 묻힐 자리도 나라에 양보했다

글/장천규(풍수연구가) | 기사입력 2019/06/07 [10:23]

풍수연구가 장천규 소장의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

충신 박문수는 죽어서 묻힐 자리도 나라에 양보했다

글/장천규(풍수연구가) | 입력 : 2019/06/07 [10:23]

어사 박문수 묘는 높은 곳 앉아 군사 지휘하는 ‘장군대좌형’
독립기념관 자리 양보하고 은석산 묻히며 병천시장 비보풍수

 

▲ 충청남도 천안 병천시장이 내려다보이는 은석산 정상 부근에 자리 잡은 어사 박문수의 묘.    

 

충청남도 천안시에는 어사 박문수의 묘가 있다.
은석산의 한 줄기가 산 정상 부근에 혈을 맺었는데 그곳에 어사 박문수의 묘를 조성했다. 이 묘를 풍수적으로 이름을 붙이면 장군대좌형(將軍臺座形) 명당이라 한다. ‘장군대좌형’이라 함은 장군이 높은 곳에 앉아 군사를 지휘하는 형상을 말한다.


주차장부터 은석사까지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천안시에서 길을 따라 박문수의 야사를 만들어 놓았는데 먼저 그 이야기를 소개한다.

 

▲ 주차장에서 은석사로 이어지는 등산로에 있는 박문수 야사.

 

박문수의 야사 네 토막


제1화 박문수와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어머니가 하루 종일 일해도 쌀독에 보리쌀 한 줌 채우기가 어려운 것을 보고 박문수는 어머니 몰래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하여 보리쌀로 바꾸어 왔다.


어머니는 그것을 알고 박문수를 꾸짖었다.
“굶더라도 머릿속을 채워 아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돌아가신 네 아버지의 뜻이니, 너는 일을 해서 먹을거리를 얻어 오기보다 힘써 배우고 익혀 과거에 급제해야 한다. 나라 위해 일하라고 너를 낳았지 보리쌀 벌어 오라고 낳은 것이 아니다!”


어머니는 박문수가 공부를 열심히 하게 조언했으며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찹쌀유과를 만들어 줬는데 지금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앞두고 합격을 기원하며 찹쌀떡을 먹는 것도 이때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제2화 간신이나 고개를 숙이는 법이옵니다


영조 대왕은 어사 박문수를 무척 아꼈는데. 박문수가 영조에게 보고를 할 때 고개를 들고 보고하는 것을 본 좌의정과 우의정이 박문수를 꾸짖었다.
“무엄하게도 상감마마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말하시오? 고개를 숙이지 않고 허리만 구부리는 불손함이 어디 또 있겠소?”


그러자 박문수는 영조에게 허리만 굽히고 고개는 쳐든 채 말했다.
“전하, 임금과 신하가 마주보고 이야기하면 한결 부드럽고 거리감이 없이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사옵니다. 간신이나 고개를 숙이고 보고하는 법이옵니다.”


영조는 박문수의 말을 듣고 이해를 하고 그 후부터 신하들은 고개를 들고 말하라는 분부를 내렸다고 한다.


제3화 사적으로는 원수이나 공적으로는 합당한 죄가 아닙니다


박문수는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인 이우당·조태채와 반대당에 있었다. 조태채의 아들인 조관빈도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박문수는 평소 조태채의 충절을 흠모하여 조관빈에게 항상 은은한 정을 두고 있었다.


어느 날, 조관빈을 질투하는 자가 모함하여 장차 극형에 처하려 하니 박문수가 그를 구원하고자 임금께 아뢰었다.
“관빈이 몹시 흉한 죄를 지었으니 마땅히 벌해야 합니다만, 결코 죽일 만한 죄는 아니옵니다.”


임금은 의아해서 물었다.
“조관빈은 너의 원수가 아니냐?”


그러자 박문수는 아뢰었다.
“사적으로는 원수이나 공적으로는 합당한 죄가 아니옵니다. 전하께서 관빈을 꼭 죽이시려면, 신이 원수를 갚기 위해 청한 것으로 나라 안팎에 포고하고 죽이소서.”


영조는 박문수의 말에 크게 감동하여 관빈을 사면했다.


제4화 왕의 남자


무수리 출신 소생으로, 일찍이 궁궐 밖에서 백성들과 섞여 살았던 영조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박문수는 성장 환경이 비슷해서 직설적이고 고집이 강한 성향까지도 많이 닮았다.

영조가 “박문수의 고집은 큰 병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영조는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박문수를 영성군으로 봉하고 이후 박문수와 함께 사치 방지법 등을 만들어 낭비를 막고, 국가재정을 정립하는 절용애민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박문수가 죽자 영조는 “나의 마음을 아는 이는 영성이었고, 이제 그가 없으니 누가 나를 이해해줄까?”라며 슬퍼했다.
노론이 득세하던 영조시대에 소론 출신으로 유일하게 천수를 누리며 정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박문수는 무한신뢰를 주었던 영조의 신하였다.

 

살아서 충신, 죽어서 충신


이제 어사 박문수 묘에 얽힌 야사로 가보자.


박문수가 유명한 지관을 불러 자기가 묻힐 자리를 미리 정하는데….


“지관 선생님, 제가 천안에 묘 자리를 정하려고 하는데 후손이 번창할 자리를 소개해 주시오.”
“예! 대감. 제가 좋은 자리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그게 어디입니까? 당장 가봅시다.”
“예! 그곳은 천안 목천에 있습니다.”


어사 박문수와 지관은 목천으로 가서 자리를 보게 되었는데 천하의 대명당이었다. 박문수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그곳을 지나던 한 스님이 말했다.
“이곳은 묘를 쓸 자리가 아닙니다.”
“당신이 이곳에 묘를 쓰게 되면 200년, 300년 뒤에 다시 파헤쳐질 것이오.”


박문수는 깜짝 놀라 그 이유를 물었다.


“이곳은 200년, 300년 뒤 나라에서 긴히 쓸 자리입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곳으로 가서 자리를 정하시오.”

그렇게 말하고 스님은 사라졌다.


박문수는 사라진 도인의 말을 생각하며 지관에게 말했다.
“이곳이 나라에서 긴히 쓸 자리라고 하니 어찌 내가 이곳을 차지하겠습니까? 도승의 말대로 자리를 다시 찾읍시다.”

후일 이곳에는 독립기념관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하여 지관과 박문수는 은석산의 정상 부근에 자리를 하나 찾았다.


“대감! 여기 장군대좌형의 명당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단점이 무엇입니까?”
“예! 장군대좌형에는 군사에 해당하는 막사와 병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막사와 병졸이 없습니다.”
“그럼 해결방법이 있습니까?”
“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
“무엇이오! 어서 말씀해 보시오.”
“이곳에서 바라다보이는 저 아래 마을에 시장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오가게 하면 그 단점을 보완할 것입니다.”


박문수는 묘 자리에서 바라다보이는 아랫마을에 병천시장을 만들었다.


그 후 어사 박문수의 후손들은 날로 번성하여 그 지역의 유지가 되어 있었다. 나라가 일본 놈들에게 넘어가고 암울한 시기에 일본 놈들은 조선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병천시장이 좁다는 이유를 들어 시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박문수의 후손들은 모두 일본의 주재소를 찾아가 시장을 없앨 수 없다며 시위를 했는데, 일본의 주재소는 박문수 후손들의 시위에 손을 들고 병천시장을 옮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병천시장이 유지되었다. 현재 병천시장 근처에는 전국에서 유명한 병천순대 거리가 있다.


이처럼 우리가 어사 박문수 묘를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살아서는 정의로웠고, 죽어서 묻힐 자리도 나라에서 200년, 300년 뒤 긴히 쓸 자리라는 말을 듣고 양보했으며, 자신의 묘 자리를 은석산의 장군대좌형으로 옮겨 잡았으니 박문수는 충신이 아닐 수 없다.


또 장군대좌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을 만든 것 등은 비보 풍수의 하나이며 이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고쳐서 쓸 수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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