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39년 전 광주학살 철저기획

“광주는 슬프다, 광주는 아프다! 또다시 피를 토한다!”

글/문일석(본지 발행인) | 기사입력 2019/05/17 [13:03]

신군부 39년 전 광주학살 철저기획

“광주는 슬프다, 광주는 아프다! 또다시 피를 토한다!”

글/문일석(본지 발행인) | 입력 : 2019/05/17 [13:03]

“DJ 연고지 광주 건드리면 가장 극적인 효과 거둔다고 판단”
“나라 지킬 무기로 광주에서 자국민 살해…용서받지 못할 짓“

 

▲ 1980년 5월 당시 미군·한국군 군 비밀기관에 종사하던 이들로부터 ‘광주 타깃’이란 무서운 증언을 들으면서 광주는 슬프다, 광주는 가슴 아프다. 그 진실을 접하고 또다시 피를 토한다.    

 

2019년 5월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 39년째를 맞이하는 날. 긴 시간이 흘렀다. 당시 신군부(전두환·노태우 등 군사 쿠데타 세력의 통칭)가 전남 광주를 학살현장으로 선택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서울·부산·대전이 아닌 광주를 선택한 이유는 “당시 야당 총재로 신군부 정권 찬탈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고지”라는 점과 “지역차별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해 광주를 건드리면 가장 극대화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군부의 판단”이었다는 것. “시위하러 나온 민중을 학살함으로써 권력찬탈의 가장 극대화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군사작전 식 정치찬탈이었다”는 증언이 나온 것.


지난 5월16일,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김용장씨와 허장환씨는 5·18 민주화 운동에 따른 신군부의 광주학살이 철저하게 기획된 것이었다는 증언을 했다. 1980년 미 육군 501정보단 요원 출신의 김용장씨는 “미군에서도 특히 미 국무성에 보낸 보고서를 보면 이미 알았다”면서 “진행 과정을 그분들도 세밀하게 검토하고 그러니까 그 과정들이 다시 말하면 시나리오”라고 증언했다.


1980년 한국군 보안사령부 소속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 당시 보안사 특명부장이었던 허장환씨는 “전두환씨 입장에서 필연적으로 정권 찬탈을 해야 하는 필연성이 있었고 광주를 타깃으로 삼아야 되는 필연성이 있었다”면서 “그래서 이런 필연성에 목표를 둔 명확한, 확연한 시나리오”라고 주장했다.


허씨는 광주에서 5·18 피흘림의 살육작전이 감행된 것, 즉 광주가 목표가 된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야당 총재로 신군부의 정권 찬탈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고지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지역차별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해 광주를 건드리면 가장 극대화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군부의 판단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이 방송 가운데 “광주를 타깃로 삼았다”는 내용의 주요 부분이다.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인용한다.


-김어준: 광주는 거기서 하필 그런 시위가 격화돼서 일어난 게 아니라 광주는 선택한 것인가, 이 전체가 하나의 기획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단 말이죠. 우선 결과적으로 그것부터 두 분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각각 다른 관점에서, 당시 두 분 다 광주에 계셨으니까 보셨겠지만 이게 기획이고 시나리오 맞습니까?
▲김용장: 맞습니다. 시나리오입니다.


-김어준: 당시 미 육군 관점에서 그렇게 파악하신 거죠?
▲김용장: 그렇습니다.


-김어준: 그럼 보안사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시나리오입니까?
▲허장환: 보안사 관점이 아니고 제가 봤을 때, 그 당시 시나리오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김어준: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에 참여하셨으니까요.
▲허장환: 예. 그런데 필연적이라는 건 동일합니다. 전두환씨 입장에서 필연적으로 정권 찬탈을 해야 되는 필연성이 있었고 광주를 타깃으로 삼아야 되는 필연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필연성에 목표를 둔 명확한, 시나리오입니다. 이 시나리오를 짜지 않으면 그렇게 완벽하게 각본이 써내려 갈 수가 없었습니다.


-김어준: 이게 처음 나온 이야기거든요, 사실. 이게 비극이지만 시민과 당시 계엄군이 부딪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상황이 어지럽고 격하게 벌어져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결과론적으로. 이것과 처음부터 그걸 의도했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도시도 선택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도 하셨어요, 증언 와중에. 도시는 어떻게 선택이 된 겁니까, 그러면?
▲허장환: 여러 도시를 예상을 하고,


-김어준: 아, 물망에 처음부터 있었다?
▲허장환: 사전에 대상에 올렸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김어준: 여러 도시를 검토하는 단계가 있었던 거죠, 앞에?
▲허장환: 예, 검토는 했죠. 그런데 그건 서울에서 이루어졌고, 그다음에 광주를 해야 되겠다는 필연성은,


-김어준: 다른 도시는 어떤 게 검토됐습니까?
▲허장환: 그건 미 국무성에 보고한 저분이 아주 정확하게 분석해서 보고를 했으니까 알고 계실 겁니다.


-김어준: 도시 선정 과정에서 어떤 도시들이 검토됐습니까?
▲김용장: 이건 제 의견입니다. 보고를 한 건 아니고,
▲김용장: 과거 역사를 보면 1927년 11월27일 광주 학생운동이 있었고 광주는 저항의 도시로 이렇게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 연고지도 되고, 비록 그분이 목포에서 태어나셨지만.


-김어준: 정치적 연고지라고.
▲김용장: 그렇죠. 정치적인 연고지이고, 그래서 가장 쉽게 광주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유리한 점들이,


-김어준: 다른 도시들은 어디가 거론이 됐어요? 마산 이야기도 나오고.
▲김용장: 마산 같은 경우는 규모가 좀 적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대구·부산 같은 데는 너무 크고.


-김어준: 목포는 너무,
▲김용장: 목포는 너무 후미진 곳에 있고 인구도 적고.


-김어준: 너무 멀다. 대전 같은 곳은요?
▲김용장: 대전은 서울에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리고 기질 자체가 대전 같은 경우는 그렇게 저항을 하지 않는, 그렇게 판단을 했을 겁니다.


-김어준: 그렇게 판단을 했다는 거죠, 당시에는? 그래서 최종적으로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아서 결론적으로 광주가 나온 거네요?
▲허장환: 가장 큰 요인은 김대중씨의 연고지다. 그리고 민족 간의 묘한 지역차별주의,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서 광주를 건드리면 가장 극대적인 효과를 점할 수 있다, 이런 판단을 해서 광주를 타깃으로 삼은 겁니다.


-김어준: 그러니까 도시가 선택된 게 먼저라는 거죠?
▲허장환: 그렇죠.


-김어준: 그러면 당시 김대중 야당 총재를 제거해야 했던 이유는 뭡니까? 군부가 가장 먼저.
▲허장환: 좀 오래전 이야기로 갑니다만,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존해 계실 때 보안사령관 또는 정보부장으로부터 아침마다 양대 보고를 받습니다. 간밤에 한반도에 일어났던 정세에 대해서. 그때 박 전 대통령이 상당하게 촉각을 세운 부분이 북괴의 동정이 좀 이상하다, 북한-김어준: 그건 뭐 당연한 것이고.
▲허장환: 그다음에 야당 당수격인, 지도자격인 김대중씨가 좀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일탈된 행동을 보인다. 이런 보고를 받으면 상당히 신경이 예민해졌습니다. 그때 보안사와 정보부가 이분한테 심려를 끼쳐 드리지 말아야겠다는 차원에서 합동적인 공작을 벌이게 됩니다.


-김어준: 김대중 당시 야당 총재를 상대로.
▲허장환: 예. 그래서 그것이 일명 그 유명한 ‘KT공작’입니다. 저는 광주·호남 지역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쪽이 고향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KT공작 요원으로 선발이 돼서.


-김어준: 아, 처음 광주를 가신 게 김대중 당시 야당 총재를 사찰하고 정보를 취합하는 요원으로 처음에 광주를 가신 거군요?
▲허장환: 예. 그런 과정에서 광주항쟁이 발발이 됐을 때 ‘아, 광주가 타깃이 되겠구나’ 하는 것을 이해를 했습니다. 광주를 타깃으로 삼은 이유를.


권력 찬탈용 학살장소=광주 타깃은 신군부, 그들이 국가를 얼마나 위험에 빠뜨렸는지를 가늠케 한다. 용서받을 수 없는 나쁜 짓을 했다.


다수의 TK(대구·경북) 사람들에게는 미안할 일이지만, 신군부의 정점(頂点)에 있었던 전두환·노태우 등 12·12 군사 쿠데타(1979년) 주역 장군들 다수는 TK 출신이었다. 그들은 고향인 대구 지역민을 학살대상으로 삼지 않고 왜 광주·광주시민을 학살장소로 정했을까? 그들이 왜 지역감정을 유발시켰는지, 그 이유와 몸통이 드러났다. 광주학살의 명령권자가 누구인지, 이제 와서야 그 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국의 국방을 지키라”고 준 무기로 광주라는 특정지역을 선정, 그 지역의 자국민을 살해했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희생지역인 광주민중들이 지켜온 ‘광주정신’은 이런 아픔을 딛고, 대한민국을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굳건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낸 정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올 5월18일은 광주민주화 운동 39주년. 당시 미군·한국군 군 비밀기관에 종사하던 이들로부터 ‘광주 타깃’이란 무서운 증언을 들으면서 광주는 슬프다, 광주는 가슴 아프다. 그 진실을 접하고, 또다시 피를 토한다.

moonils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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