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조원태 지분 많지 않지만 영향력 크다고 판단해 직권 지정
정몽구 명예회장은 ‘의사소견서’ 받아 기존 총수 지위 유지키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LG·한진·두산 그룹의 총수를 각각 구광모·조원태·박정원 회장으로 변경했다. 구광모·박정원 회장은 재벌 4세이고, 조원태 회장은 3세다. 20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에 이어 국내 재벌 3·4세 경영 체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 공정위가 5월15일 LG·한진·두산 그룹의 총수를 각각 구광모·조원태·박정원 회장으로 변경했다. 사진은 박정원 두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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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5월15일 ‘2019년 공시대상·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 이 세 그룹의 총수를 새롭게 지정했다고 밝혔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창업주 이후 4세대인 동일인이 등장하는 등 지배구조상 변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벌 3·4세 총수 등극
LG·한진·두산은 각각 구본무·조양호·박용곤 전 회장이 별세하면서 뒤를 이을 후계자가 필요했다. 특히 한진의 경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 전 회장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뜨면서 그룹 내 혼란을 빚은 탓이다. 한진은 공정위에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기한 막판까지도 내부 합의를 이루지 못해 “삼 남매 간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조 전 회장의 지분 17.84%를 두고 승계 방식이나 상속세 마련 문제로 한진에 내홍이 있다는 게 재계 안팎의 해석이다.
공정위는 총수를 지정할 때 지분율과 경영활동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여부 등을 토대로 판단한다. 공정위는 한진의 경우 조 회장이 지분 자체는 많지 않지만 임원 선임이나 신규 투자 결정 등 주요 경영활동에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판단해 직권으로 지정했다.
총수는 재벌그룹의 정점에서 주요 임원의 선임이나 투자를 결정하는 등 사실상 그룹을 지배한다. 총수가 바뀌면 그를 기준점으로 관련 계열사 범위가 새롭게 획정된다. 총수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 6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등이 '동일인 관련자'로 분류돼 이들이 일정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들이 총수일가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의 규제를 받게 된다. 또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그룹 총수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통상 총수가 바뀌는 사례는 드물다. 기존 총수가 사망하는 등 중대하고 명백한 교체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만 일어나는 일이다.
지난해 공정위는 의식불명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한정후견이 개시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 대해 총수 지위를 유지하는 건 현실과 맞지 않다고 판단해 교체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는 이 회장 주치의에게 경영 활동이 가능한지 문의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확인서를 받기도 했다. 신 회장의 경우 한정후견인 개시 이후 롯데에서 지주회사 전환과 임원변동 등 소유지배구조상 큰 변화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정몽구 명예회장의 기존 총수 지위를 유지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이번에 총수 변경 신청을 하지 않았고 관련 서류도 정 명예회장 명의로 제출했다. 하지만 그간 재계에선 정 명예회장의 ‘건강이상설’에다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이 실질적으로 현대차를 이끌고 있다는 점 때문에 ‘새 총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공정위는 정 명예회장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의사 소견서까지 받은 결과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한 상태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정 명예회장이 동일인 관련자, 즉 정 총괄수석부회장을 통해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도 봤다.
김 국장은 “정 총괄수석부회장이 실제 밖으로 드러나는 액션을 취했다고 해도 정 명예회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개연성이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편 효성·금호아시아나·코오롱 등 기존 총수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기업들도 이번에 별도로 총수 변경을 신청하지 않았다. 공정위 역시 이들의 실질 지배력에 변화가 크지 않다고 판단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공정위와 기자단 일문일답
다음은 김 국장이 공정위 출입기자단과 나눈 일문일답.
-지난해 삼성과 롯데는 건강진단서와 금치산자 결과를 요청했는데 현대차는 따로 요청하지 않았나.
▲요청을 했고 정몽구 회장의 건강상태에 대한 의사소견서를 받았다. 내용은 공개해 드릴 수 없다. 자필서명, 건강소견서를 종합 고려해서 현대차의 동일인은 정몽구 회장으로 유지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자료 제출이 늦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자료 제출이 늦어졌다기보다는 4월12일까지 동일인 지정 관련 자료를 다 제출했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의 자필서명이 제출이 늦어졌다. 5월8일 자필서명이 제출돼서 동일인 지정에 별 문제가 없었다.
-자필 서명이 늦어진 이유는.
▲추측해보면 그룹 문화라는 게 있지 않은가. 윗사람의 결재를 받고 하는 게 빠른 그룹도 있고 어려운 그룹도 있다.
-건강상의 이유는 아닌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의사소견서를 조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공정위가 확인하는 작업은 없는가.
▲관행적으로 기업 측 요청을 존중한다. 의식불명이나 후견절차가 들어가서 실질적 영향력 행사를 못 한다고 판단되면 위원회가 직권으로 바꿀 수 있다. 현대차의 경우 범죄를 저질러 입증하기 위해 자료가 필요하다면 조사를 하고 증거자료를 입수할 텐데 동일인 관련해 법상 큰 규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룹 쪽에서 동일인을 유지하겠다고 했고 중대하고 명백한 사유가 없는 한 저희가 가서 조사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공정위가 한진그룹 동일인으로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를 직권지정했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가.
▲조양호 회장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한진에서는) 동일인 변경 신청서를 위원회에 내야 하는데 지난 5월3일 내부에서 의사합치가 이뤄지지가 않아 동일인을 못 정한다고 했다. 지정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한진의 계열사 범위나 자산을 확정할 수 있기 때문에 특수관계인 중 조 대표이사에게 지정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조원태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한 소속회사, 주주현황, 위임장 확인서 등을 요청했다. 위임장에는 한진칼에 위임한다는 자필서명을 했다. 확인서에는 지정과 관련된 자료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자필서명을 했다. 14조4항에 따라 위원회에서 직권으로 지정했다.
-구광모 LG 회장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도 기업에서 총수지정을 요청했는데 공정위가 크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LG는 지주회사 체제다. 지주회사 LG를 지배하면 LG그룹 전체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구광모 대표이사는 LG 대표이사로 등재돼있고 최다 투자자이기도 하다. 두산은 지주회사 체제는 아니지만, 박정원 회장이 코어(중심) 회사의 대표이사다. 총수일가 지분도 많은 상황이라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한진이 조원태 대표이사를 총수로 지정할 때 따른 서류만 낸 게 맞는가.
▲기존 동일인이 있으면 확인서하고 위임장을 다 제출한다. 지정 관련 자료에 책임을 지겠다는 서명이다. LG·두산·한진은 기존 동일인이 사망해서 변경 신청을 해야 한다. 그런데 LG·두산은 변경신청을 냈고 한진은 내부 합치가 되지 않아서 신청을 못 했기 때문에 14조4항에 따라 직권지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원태 대표이사가 위임장 확인서에 자필서명을 냈기 때문에 이번 지정과 관련해 한진이 허위로 자료를 냈다면 조 대표이사가 책임을 지게 된다.
-조원태 대표이사의 서명만으로 한진의 실질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한진의 경우 최정점에 있는 게 한진칼이다. 한진칼 공동 대표이사로 등재됐지만 일단 대표이사이고 대부분 동일인 관련자 지분이 한진칼에 많다. 그런 상황에서 지분이 다소 낮다고 하더라도 의사결정이나 조직변경, 투자결정 등을 내릴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를 보면 현시점에서 조원태 대표이사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선친 지분 상속 방법 등은 관련이 없는가.
▲안 받았다. 지분정리가 됐다면 더 명확하게 볼 여지는 있지만 10월쯤 마무리될 것 같은 상태다. 이번 지정과 관련해서는 지분 관련 어떠한 자료를 요구한 것도, 받은 것도 없다.
-네이버는 이번 변경신청서나 의견을 제시한 게 없나.
▲올해는 별도로 변경신청을 하지 않았다.
-공정위에서는 이번 4대 총수로 세대변화가 이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친족범위가 넓어지게 되는데 기존 제도에 대한 실효성 문제는 없는가.
▲LG·두산은 4세가 동일인이 됐다. 창업주가 만든 그룹의 동일인이 4·5세로 가면 친족 관계 범위가 달라진다. 그러면 독립경영이 나올 수도 있고 새로운 회사가 그룹에 들어올 수도 있다. 총수 4·5세로 간다고 해서 시책 적용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 기업집단 정책이 이상해진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은 자료 제출 시점에 실질 지배력이 제일 높았던 것인가. 내년에 바뀔 가능성이 있는가.
▲그룹 쪽에서 동일인 변경 신청을 하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두 사람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해 그대로 유지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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