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연구가 장천규 소장의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

흉지의 세종대왕릉, 회룡고조혈 대명당으로 이장한 사연

글/장천규(풍수연구가) | 기사입력 2019/05/10 [10:43]

풍수연구가 장천규 소장의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당야사

흉지의 세종대왕릉, 회룡고조혈 대명당으로 이장한 사연

글/장천규(풍수연구가) | 입력 : 2019/05/10 [10:43]

생전의 세종대왕, 부친 옆 무덤 원해 ‘손 끊기고 장자 잃는’ 터에 안장
풍수가 최양선의 예언대로 세종의 자손들 줄줄이 흉한 일에 휘말리고…
자손 발복 왕성하다는 여주 회룡고조혈 이장 후 흉사 벗어나 백년성대

 

▲ 경기도 여주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합장한 영릉이 있는데, 이곳은 자손의 발복을 왕성하게 해주는 회룡고조혈(回龍顧祖穴) 대명당이다.    

 

경기도 여주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합장한 영릉이 있다. 이곳은 북성산의 맥이 굽이쳐 흘러 세종대왕릉에 혈을 맺었다. 우리는 세종대왕릉을 회룡고조혈(回龍顧祖穴)이라 한다. 회룡고조혈은 북성산의 산줄기가 굽이쳐 오다가 다시 되돌아서 산줄기가 시작된 산, 즉 북성산을 바라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할아버지가, 아들이 손자를 낳으면 그 손자가 예뻐서 보고 또 보고 하듯이 자연도 자신의 몸에서 뻗어나간 산줄기가 굽이쳐 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 바라보는 곳에 좋은 기운을 더 많이 불어넣어 그곳에 묻힌 자손의 발복을 왕성하게 해준다.

 

왕릉의 입구에는 시냇물이 있는데, 이 시냇물을 금천이라 한다. 생기(生氣)는 물을 만나면 멈춘다고 했는데 금천은 왕릉에 생기가 머물게 하기 위함이다. 금천을 건너기 위해 금천교가 설치되어 있다. 금천교를 지나면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홍살문은 외부에서 잡귀나 나쁜 기운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높이가 다른 돌길이 있는데 높은 길은 신도(神道)로 선왕의 혼령이 가는 길이며 낮은 길은 어도(御道)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왕이 지나가는 길이다. 정자각(丁字閣)은 정(丁)자 모양의 건물로 제물을 진설하고 제향을 하는 곳이다.


왜 정(丁)자 모양으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황제의 릉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날 일(日)자를 사용하여 일자각(日字閣)으로 지어졌는데, 황제는 10천간(天干) 중 태양을 상징하는 남녘 병(丙)자의 의미인 날 일(日)자를 사용하여 일자각(日字閣)을 사용했으며, 제후인 왕은 달 월(月)자를 상징하는 넷째천간 정(丁)자 사용하여 정자각(丁字閣)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종 옆에 무덤 쓴 후 흉사 줄이어


이제 세종대왕릉의 야사로 눈을 돌려보자.


이곳에는 두 가지 야사가 있는데 세종대왕릉이 있기 전에 광주이씨 이인손의 묘였다는 주장과 한산이씨 이계전의 묘였다는 주장이 있다.


세종은 미리 자신의 무덤을 정할 때 헌릉에 모셔진 아버지 태종의 무덤 근처에 묻히기를 원했다. 그런데 풍수가 최양선이 “그곳에 능을 설치하면 손이 끊어지고 장자를 잃는다”고 말하며 반대했으나 세종의 뜻대로 아버지 무덤 근처에 안장했다.


그 후 세종의 자손들은 산소로 인해 흉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장남인 문종이 죽고, 안평대군·금성대군·평원대군·영흥대군 등 아들들 대부분이 요절하거나 죽임을 당했으며 문종의 뒤를 이은 단종 또한 삼촌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세조의 장자인 의경세자가 단명하고, 세조 또한 피부병 등으로 고통을 받다가 둘째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 할아버지인 세종의 무덤을 잘못 쓴 것을 인정하고 안효례에게 천장할 곳을 찾게 했다.


왕릉 선정 시 <경국대전>에는 “능역은 한양성 서대문 밖 100리 안에 두라”는 조건이 있어 안효례와 여러 지관들은 도성인근 100리의 땅을 모두 조사했으나 세종대왕의 능을 천장할 택지를 찾지 못했다. 결국 남한강의 뱃길을 이용하면 하루 만에 왕복이 가능한 여주까지 찾아보기로 했다.

 

이인손 유언 무시해 명당 뺏겨


광주이씨 이인손의 야사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안효례가 여러 지관들과 함께 여주 땅에 이르러 왕릉을 찾게 되는데 때마침 소나기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비를 피할 곳을 찾았다. 그런데 저 멀리에 비를 피할 집이 한 채 있었다.

 

“저쪽으로 가서 비를 피합시다.”


안효례 일행은 그곳에서 비를 피하며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비가 그치고 안개가 걷히니 눈앞에 하늘이 내려준 명당 터가 있지 않은가?


“아! 저곳이다.”


안효례와 지관들은 깜짝 놀라 그곳에 올라가 보니 세상에 둘도 없는 명당이었다.


“이곳은 회룡고조형의 대명당이다! 이 묘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아라!”
“예, 이곳은 우의정을 지내신 이인손 대감의 묘입니다.”


안효례와 지관들은 이인손 대감의 후손들에게 이곳이 세종대왕을 모실 명당 터라고 말하고 떠났다.


이인손의 후손들은 아버지가 당부한 말을 떠올리며 후회했다. 이인손이 살아 생전 이 터를 정할 때 지관이 당부한 말이 있었다.


“이 터에 묘를 쓰게 되면 크게 발복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큰 부와 권력을 얻어도 묘 입구에 다리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또 제각을 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제각을 짓게 된다면 사람이 들어가서 쉬지 못하도록 낮게 지어야 합니다.”


이인손은 후손들에게 지관의 말을 유언으로 당부했다. 이인손의 묘를 쓰고 난 후 후손들은 부를 형성하고 관직에 높게 오르며 집안이 더더욱 번성을 했다. 그런데 성묘를 갈 때마다 신발을 벗고 개울을 건너야 하는 불편함에 아버지의 유언을 망각하고 개울을 건너갈 다리를 만들었다. 또 성묘 시 모든 일들이 복잡하고 힘들어 그곳에 제각을 짓기로 하고 사람이 들어가 일을 해야 하니 크게 짓도록 했다.


이인손의 후손들은 유언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후손들은 명당을 빼앗기고 아버지를 이장해야 했다. 이장을 하려고 파묘를 하고 시신을 들어내니 그곳에 글이 씌어 있었다.


“이곳에서 연을 날려 연이 높이 떠오르거든 연줄을 끊어라! 그리고 그 연이 떨어지는 곳에 이장하라!”


후손들은 산소에서 나온 글귀대로 연을 날리고 연이 떨어진 여주시 능서면 신지리의 땅에 이인손을 이장하게 되었다.


또한 한산이씨 이계전의 야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 삼은의 한 분인 목은 이색 선생의 손자이며 대제학을 지낸 이계전에게 지관이 “이 땅은 자손이 번창할 터입니다”라고 추천을 했다.


이계전이 죽고 장사를 지낼 때 지관은 자손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이곳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봉분이나 비석을 만들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 당시 권세를 누렸던 한산이씨 자손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봉분을 크게 만들고 비석도 크게 세웠다. 때마침 여주로 세종대왕릉을 천장할 터를 찾으러 온 안효례에게 이계전의 묘 자리를 들키고 말았다. 안효례는 이곳으로 세종대왕을 천장할 것이니 대제학 이계전의 묘를 이장하라고 했다. 후손들은 대제학 이계전의 묘를 여주시 점동면 사곡리로 이장했다.

 

▲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여주의 영릉으로 옮기고 조선왕조는 흉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종대왕릉 옮겨 조선국운 연장


세종대왕릉을 이장하려고 땅을 파보니 대왕과 소헌왕후의 무덤에는 물이 가득하고 수의도 썩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여주의 땅에서는 왕릉을 조성하려고 땅을 파는데 그곳에서 글귀가 적힌 돌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 돌에는 “이곳은 동방의 성인이 묻힐 자리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여주의 영릉으로 옮기고 조선왕조는 흉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릉을 여주로 옮긴 이후 그 능지가 천하의 명당이라 조선의 국운이 100년이나 더 연장되었다며 ‘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처럼 풍수지리를 잘 활용하면 집안의 번영과 자손의 건강을 보장하며 수맥이나 흉지에 묘를 쓸 경우 그 해는 자손들이 목숨을 잃거나 집안끼리 반목하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지금에도 흉지에 묘를 쓰면 자손이 해를 입고 명당에 묘를 쓰면 발복을 하는데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선조들이 이룩한 지혜와 업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더 연구하며 보존하는 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포토뉴스
3월 둘째주 주간현대 1244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