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가게 꿈꾸던 ‘을지OB베어’ 손님들 줄 서는데 시름 깊은 내막

건물주 “방 빼!”…‘을지로 노맥’ 원조 39년 명성 위태위태

추광규(인터넷뉴스신문고 발행인) | 기사입력 2019/04/26 [09:58]

100년 가게 꿈꾸던 ‘을지OB베어’ 손님들 줄 서는데 시름 깊은 내막

건물주 “방 빼!”…‘을지로 노맥’ 원조 39년 명성 위태위태

추광규(인터넷뉴스신문고 발행인) | 입력 : 2019/04/26 [09:58]

“장사꾼은 골목의 신뢰를 얻어야 성공한다!” 요리사 박찬일이 쓴 <노포의 장사법> 을지OB베어 편에서 나오는 창업주 강효근 선생 인터뷰의 한 구절이다. 수십 년 장사 철학에서 우러나는 늙은 상인의 경험담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골몰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자영업 시장 진출 가속화로 인해 음식점 폐업률은 92%에 이른다는 통계치도 있다는 점에서 그 경험담이 전하는 무게는 한층 묵직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생맥주 맛 좋은 집’ 39년째 북적북적
건물주, 갑자기 지난해 10월30일 자로 임대차 계약 해지 통보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호랑이’, 삼성 라이온즈의 ‘사자’, 여기에 OB 베어스의 ‘곰’은 1980년대 초반 가장 익숙한 캐릭터였다. 30여 년을 훌쩍 뛰어넘어 1980년대 당시 눈에 익숙했던 ‘곰’ 캐릭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프로야구 원년 팀인 OB 베어스의 캐릭터가 거품 가득한 맥주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 39년째 ‘대한민국에서 생맥주가 가장 맛있는 집’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을지OB베어’ 모습.    

 

‘OB베어’ 앞세운 노맥 원조


서울 중구 을지로3가 뒷골목에 자리 잡은 ‘노가리 골목’ 또는 ‘을지 페스타’라고 불리는 이곳의 원조 가게인 ‘을지OB베어’의 모습이다. 지난 4월19일 찾은 ‘을지OB베어’는 오후 6시 직장인들의 퇴근시간이 넘어가면서 손님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6평 규모의 가게는 물론 주차장에 깔아 놓은 간이 테이블마저 만석을 이뤘다.

 


뒤늦게 도착한 손님들이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면서 그 줄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기다리는 손님들의 얼굴에 어려 있는 표정도 재미있다. 즐거움과 행복한 순간을 고대하는 표정으로 읽힌다. 그들은 왜 이 골목의 다른 맥주집 자리가 비어 있음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까?

‘을지OB베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생맥주 맛이 좋다’고 하는데 그저 평범한 생맥주 집은 아닌 듯했다.


을지OB베어는 황해도 송화 출신이라는 창업자 강효근(92) 선생이 1980년 당시 공구상 골목이었던 이 자리에 들어와 터를 일구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로 장사를 시작한 지 39년째다. 1980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원년 팀으로 발을 내디딘 OB맥주가 자사의 ‘OB베어’ 브랜드를 단 체인점을 모집했는데 그 1호점이 바로 이 가게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해서 한 자리에서 이어오고 있는 39년이라는 세월의 무게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는 ‘백년가게’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또 서울시는 보존가치를 인정하면서 ‘서울미래유산’이라고 명명했다.

 

사계절 다른 ‘생맥주’ 온도


을지OB베어가 39년이라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고, 세월이 흐를수록 인기가 더욱 치솟는 비결은 무엇일까? 창업자 강효근 선생의 사위 최수영(64) 선생은 먼저 1980년 당시부터 이어오고 있는 ‘생맥주 냉장 숙성’을 그 비결로 꼽았다.

 


그는 “장인이 1980년 당시에는 구하기 힘든 제너럴 일렉트릭 냉장고를 미군부대에서 불하받아 냉장 숙성을 했다”면서 “그렇게 하면 급속 냉장 생맥주는 지니지 못한 묵직한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의 맥주 통은 냉장고에 직접 연결된 디스펜서로 뽑도록 되어 있고, 지금도 그 방식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요즘에는 이 같은 호프 기계가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번거롭다는 이유 때문에 거의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공간 효율을 극대화하고 간편하게 뽑기 위한 순간 냉각식이 차지했단다. “숙성하는 생맥주의 온도가 다른 것은 차원이 다른 이 집 생맥주 맛의 또다른 비결”이라고 했다.


최 선생은 “주류 도매점도 39년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다른 곳은 낮에 한 번 나가서 쭉 도는데, 불편하더라도 케그(맥주통)를 받아놨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후 새벽 해뜨기 전 5시30분을 전후해서 가져온다”고 말했다. 케그를 상온에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게 아니라 생산공장에서부터 주류 도매상 그리고 최종 소비처인 을지OB베어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냉장 상태를 유지하는 게 맛을 지키는 비결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이어 생맥주 온도에 대해서는 “겨울에는 4도, 여름에는 2도”라면서 “이것은 장인께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적정온도다. 요즘 같은 봄철에는 2도로 넘어가는 시기다. 비가 올 때도 온도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인기 비결은 이 가게의 상징인 연탄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는 ‘노가리’였다.
최수영 선생이 노가리를 연탄화덕에 굽는데 조금 특이하다. 양 손으로 노가리를 지긋이 누르면서 구워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게를 쓰지 말고 손으로 직접 구우라는 장인의 엄명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이 때문에 손은 늘 1도 화상 상태라고 하는데 “이제는 내성이 생겨 크게 뜨거움을 못 느낀다”면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노가리에 생맥주를 뜻하는 ‘노맥’의 또 다른 주인공 노가리를 연탄화덕에 굽고 있다.    


그렇게 맞춤으로 구워낸 노가리는 손으로 북북 찢은 후 이곳만의 노하우가 녹아 있는 특제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이렇게 해서 먹으니 시원스럽게 목에 넘어간 생맥주의 맛이 한층 살아나고 있었다. 39년 세월이 우러나오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생맥주’라는 찬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39년 노포 ‘여주인’ 한숨


100년 가게를 꿈꾸는 을지OB베어의 사위 최수영 선생과 기자의 대화를 바라보던 부인 강호신(59)씨의 얼굴이 어둡다. 또 최 선생의 얼굴 표정에는 생맥주 맛의 비결을 말할 때의 자긍심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어두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곳이 임차 점포인 탓에 재계약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뜻하지 않게 지난해 10월30일 임차 기한이 끝났고, 지금은 기한을 넘긴 상태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무슨 사연일까?


최 선생의 설명을 종합하면 1980년경 가게를 임차해 장사를 시작한 후 계속해서 매입을 하려고 했다는 것. 하지만 상속으로 인해 권리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실패한 후 임대차 계약을 갱신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 2013년 재계약을 했고 그 기한이 2018년 10월30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주가 계약 만료 전인 지난해 6월에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건물주는 을지OB베어 측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재계약을 최종적으로 거부한 후 지난해 10월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을지OB베어 측은 38년간 재계약이 이어지면서 얽힌 권리관계를 주장하면서 6개월이 넘게 치열하게 다투면서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을지OB베어를 사랑하는 단골들도 응원에 나섰다. 이곳의 단골손님이라는 정철승 변호사와 지역 예술가는 물론 이곳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지하철공사 역무원 등이 나서 4월22일 모임을 하고 이곳을 지켜낼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한편 재계약을 최종적으로 거부당하면서 명도소송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을지OB베어 점포를 인수하기 위해 건물주와 새롭게 임대차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진 A호프 대표는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4월23일 “제가 을지OB베어를 인수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욕을 얻어먹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우리 가게들도 많은데 두 평짜리 가게를 얻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A호프 대표는 이어 “저한테 주면서 하라고 해도 안한다”면서 “건물주가 커피숍을 하려고 비우게 한 걸로 아는데 왜 나를 임차인으로 지목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건물주 B씨는 “처음에는 커피숍을 하려고 내보내려 했는데 건강이 나빠져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월19일 기분 좋게 마신 생맥주가 취기를 돋우는데 5월10일부터 11일까지 열리는 ‘2019 을지로 노맥 축제 이웃돕기 자선행사’를 알리는 현수막과 함께 걸린 만국기가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노맥’은 ‘노가리 안주에 맥주’를 줄인 말이다.


‘을지로 노맥축제’를 상징하는 ‘을지OB베어’ 사라진다면 내년 이맘때 이 현수막은 어떤 모습을 하고 걸려 있을까? 양측의 갈등이 부드러운 봄바람과 함께 원만히 해결되기를 희망했다. 오래 묵은 점포가 우리 곁을 떠난다는 것은 오래된 벗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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