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고시원 화재사건’으로 바라본 도시 취약계층의 실상

빈곤층 최후의 주거지, ‘고시원’…제도 개선 필요하다

문병곤 기자 | 기사입력 2018/11/18 [23:32]

‘종로 고시원 화재사건’으로 바라본 도시 취약계층의 실상

빈곤층 최후의 주거지, ‘고시원’…제도 개선 필요하다

문병곤 기자 | 입력 : 2018/11/18 [23:32]

고시원은 본래 '구획된 실(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 또는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영업‘을 하는 곳을 의미한다. 결국 학원가와 가까운 곳에서 저렴하게 기초적인 수준의 의식주만 해결할 수 있는 주거공간을 원하는 고시생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 고시원은 더 이상 고시생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높아지는 생활비와 집값문제 때문에 보증금과 같은 돈 없이도 저렴하게 주거할 수 있는 숙박시설로 형태가 변했다. 이로 인해 이제 고시원은 고시생뿐만 아니라 중년이나 노년층의 사람들도 이용하는 공간이 돼버렸다. 


 

▲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고시원 화재 현장 앞에서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와 주거권네트워크, 빈곤사회연대, 민주노총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한편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사진출처=빈곤사회연대>


스프링클러 없었던 이유…“건물주가 동의하지 않아서”

‘주거취약계층’ 정책 필요…시민단체·정치권 ‘한 목소리’

 

 

종로고시원 화재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추모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은 고시원이라는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숙박공간에서 일어난 참사라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시민단체들은 주거와 관련된 법들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취약계층의 주거지

지난 11월9일 오전 5시경,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 국일고시원에서 일어난 불로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쳐 총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관할 소방서 역량을 총투입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소방관 173명과 장비 52대를 투입해 같은 날 오전 7시쯤 화재를 완전히 진압했다. 현장에서 구조된 후 병원으로 이송된 17명 가운데 7명은 상태가 위중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사망했고 나머지 11명도 크게 다쳤다. 

 

화재가 유일하게 있는 출입구 쪽에서 시작되면서 거주자들의 대피가 어려웠다. 때문에 생존자들은 3층 창문으로 뛰어내리거나 배관 혹은 완강기 등을 타고 내려와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생존자 중에서는 “월 4만원 더 내고, 더 비싼 창문 있는 방에 거주해서 살았다”고 말한 이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건의 비참함을 전했다. 

 

발화원인에 대해 경찰은 “수집한 증거물을 국과수의 보낼 예정”이라며 “결과까지는 최대 3주가 걸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존자 중 한 명인 고시원 301호 거주자가 “자신의 방에 전기난로를 켜두고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불이 붙어 있었고, 이불로 불을 끄려 했으나 오히려 불이 번져 탈출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열기의 복사열이 원인으로 짐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건물은 지상 3층·지하 1층 규모로, 1층은 일반음식점, 2~3층은 고시원으로 이뤄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고시원 2층에는 24명, 3층에는 26명이 거주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40~60대의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였다. 사망자 중에서는 한국에서 거주해온 일본어 강사도 한 명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현재의 고시원은 단순히 고시생들이 시험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월세비용 등을 아끼기 위한 도시 노동자들의 거주공간인 것이다.

 

주거환경개선

실제 서울시는 일부 고시원들을 사회적 취약계층이 사는 주거 공간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2012년부터 사회적 취약계층인 고시원 거주자에 대한 최저 주거 안전성 마련의 일환으로 2009년 7월 1일자로 개정된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전부터 설치 운영된 노후고시원에 대해 안전시설 설치 지원 사업을 매년 진행해왔다. 취약계층이 50% 이상 거주하는 노후고시원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다. 

 

지원대상은 2009년 이전에 지어진 낡고 영세한 고시원이다.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대상은 아니나, 거주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취약계층이고 시설이 낡아 화재에 취약한 고시원에 4억여원을 들여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주는 대신 고시원 운영자는 5년간 거주자들의 임대료를 동결하는 조건이다.

 

이날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도 건물 운영자가 이런 조건을 받아들여 관할 종로구청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신청했고, 시가 심사해 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최종 설치 단계에서 건물주가 거부해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건물주가 왜 최종 단계에서 동의하지 않았는지는 현재로선 확인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노동계 등도 주거환경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고시원 화재 현장 앞에서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와 주거권네트워크, 빈곤사회연대, 민주노총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한편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여관여인숙이나 쪽방 외에도 고시원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공간, 생활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면서 "치솟는 집값, 월세의 만연, 부족한 공공임대주택과 소극적인 공공부조 등의 환경 속에서 저소득·빈곤 1인가구들이 목돈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고시원과 같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쪽방, 여관, 비닐하우그 등 비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 전국적으로 37만 가구에 달하며 이중 15만 가구가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 

 

이어 "하지만 거주자에 대한 출구전략은 매우 부족하다. 고시원 등을 도시빈민의 거처로 인정하고 현 거처에서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정책 또한 미흡하다"면서 2007년 시작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은 연 평균 600호를 공급한 것에 머물러 비주택거주자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도시빈민들의 주거환경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는 한편, 현재 도시빈민들의 주요 주거지인 고시원에 스프링클러, 화재경보기 등 화재 예방 시설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1월 종로 여관 화재 이후에도 비주택 주거지의 안전대책을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왔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다. 국토부는 지난 10월 주거환경이 열악한 노후 고시원 등을 매입하여 양질의 주택으로 개선해 저소득 가구에게 공급하는 공공리모델링 시범사업과 쪽방촌 인근 매입임대를 활용한 단체 이주 지원 시범사업을 내년부터 시범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비주택 주거지 거주자 중 매우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임대주택 사업으로, 실제 노후·불량한 상태의 거주지에 대한 안전대책과 주거대책은 아니다. 실존하는 곳들에 대한 별도의 주거기준과 안전기준 수립·점검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도 취약계층 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고시원 등 주택 이외에 거주하는 가구에 대한 수요조사 지원, 노후 고시원 리모델링 시범사업 등을 정부가 발표한 바 있다"면서 "관련 예산 확보가 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재난관리위원회 설치법을 발의한 지 1년이 됐지만 아직까지 논의가 안 되고 있다"면서 "상시적 재난 점검과 조사 업무가 이뤄지도록 재난관리시스템 정비를 위해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종로 고시원 화재로 6명의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고 20여 명의 부상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이들 대부분은 고시원에서 쪽잠을 자던 생계형 일용직 근로자들"이라고 말했다.

 

가난해도 인간답고 안전한 집에서 살 수 있는 주거권은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돼야 한다. 이번 사고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일용직 노동자, 주거빈곤층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보다 촘촘한 사회안전망과 주거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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