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기부
이승철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10/16 [11:03]
구만석 집사가 목사 앞에 봉투 하나를 불쑥 내민다. 목사는 ‘뭐냐’고 묻기도, ‘펴 보기’도 거북하다. 잘 못하면 가벼이 촐랑대는 사람 되기가 쉽다. ‘마리아의 향유냐?(요한12:2)’, 아니면 다른 교회로 가겠다는 ‘이적(離籍) 원서냐?’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할아버님의 말씀 ‘은인자중(隱忍自重)’이 생각나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을 때, 구만석이 “목사 님! 열어나 보세요. ”봉투를 손에 들려주며 “약정헌금 1억 원입니다.” 어찌 보면 목사를 시험하는 걸로도 여겨진다. ‘교회에 자본주의 때가 묻었다’고 비판하는 여론을 들어 아는지라 첫 마디가 어렵다.
조심스레 ‘수고하셨습니다.’이었다. 구만석은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아닌가요?” “이번 투표 결과를 두고 목사님 고민 크신 줄 압니다.” “속으로 타고 있는 교회의 불을 제가 꺼지 않으면 누가 끄겠습니까?” “어젯밤 인천 화재사건을 보면서 소방수 결심을 생각하고 찾아왔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계가 실렸다. 목사는 ‘사업가라 다르구나!’를 속으로 연발하며 “구 집사 님! 감사합니다. 이 큰 돈 교회 어디에 써야겠습니까? 장학금으로 쓸까요?” 구만석 집사 “빚은 도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푼돈이라도 아껴 빚부터 갚는 게 도리입니다. 빚지고 허우대만 자랑하면 속이 보입니다. 집안도 마찬가지, 조강지처(糟糠之妻) 좋다는 게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조강지처는 구멍 난 속옷을 입고도 규모 있게 살림을 한답니다. 교회일수록 빚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돈으로 빚부터 얼른 갚으세요.”
어찌 들으면 명령조이다. “빚 없어야 하나님이 칭찬합니다. 빚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제 말은 끝났으니 갑니다.” 차 한 잔 마실 틈도 주지 않고 벌떡 일어선다. 구만석 떠난 뒤 봉투를 열어보니 1억 원짜리 수표가 들어있다. ‘0’이 8개 동그라미를 몇 번이고 세어 보았다. 한 손에 1억 현금을 만져 보기 처음이라 손끝이 바르르 떨린다. 당장 당회를 열고 회계 담당자를 시켜 은행 빚을 갚으니 몸이 나를 듯이 가볍다.
강단에서 제대로 좋은 말이 술술 나온다. 이 소식이 퍼지자 새로 된 장로 나사연이 가장 기뻐한다. 나중에 들으니 조합장 박달재가 구만석을 만났고, ‘소방관’ 예화를 들려준 것이란다. 이를 두고 야구 9회 말 만루 홈런이라고 한다. 선거 후유증이 일거에 싹 씻겨 집사 그룹, 당회원, 교인들의 무거운 마음이 확 풀렸다.
『별주부전』 토끼가 용궁에서 벗어난 기분들. 구만석이 교회에 들어서면 어른·애 할 것 없이 길을 비껴주고 고개가 땅에 닿도록 인사한다. 이게 사람의 도리 교인의 인격이다. 어려운 때 도움을 받고도 황소처럼 눈만 멀뚱거리면 그런 사람 소만도 못하며, 교회 뭘 하러 다닌단 말이냐.
이런 사람을 뼈 없는 미물이라고 한다. 미물의 기도, 찬송, 성경구절 인용은 김빠진 사이다나 마찬가지이다. 국회의원 국정 감사기간 나라 빚 걱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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