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 화기 왕성한 사람은 수기·금기 집터 만나야 삶이 무난
불기운 필요한 사주팔자는 화기 강한 집이야말로 ‘발복’의 뇌관
소싯적에는 봄 가뭄이 심할수록 화재가 자주 났다.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지붕이 있던 자리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슬레이트 지붕이 얹히기 전이어서 대다수가 초가지붕이었는데 가뭄으로 바짝 마른 초가는 일단 불이 붙었다 하면 미처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이기 일쑤였다. 요즘이사 시골까지도 소방차가 배치되어 불이 났다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 초기에 불길을 잡지만 예전에는 소방차가 아니고 두 사람이 양쪽에서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펌프질을 하는 수동 양수기를 얹은 수레가 고작이었으니 불이 났다 하면 발이 안 보이게 수레를 끌고 화재 현장을 향해 달려갔다.
열 살 남짓했던 그때 나는 다른 그 무엇보다 불구경을 하는 게 좋았다. 불난 집의 후끈후끈한 열기와 왁자지껄 뒤숭숭한 분위기가 왜 그리도 좋았던지 경찰서 망루에 설치된 사이렌이 다급하게 울면 신발도 온전하게 발에 꿸 겨를도 없이 뛰어나와 사람들이 몰려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가 봤자 나 같은 어린 것들은 소화 작업에 보탬이 되는 게 아니라 걸리적대는 방해물에 불과했지만 볼거리가 별로 없었던 그 시절의 나에게 불구경이란 결코 빠트려서는 안 될 최고의 구경꺼리였다.
해묵어 두툼한 초가지붕 속이 온통 시뻘건 불덩어리가 되어 서까래와 들보가 밑으로 와르르 내려앉으면서 하늘 높이 불똥을 불어 올리는 장관은 어린 가슴을 마구 두근거리게 만드는 스릴과 감동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누구보다 불을 좋아했던 것 같다. 정월 대보름이 가까워지면 논둑을 따라 길게 쥐불을 놓거나 깡통에 불을 담아 돌리는 놀이에 앞장서곤 했다. 어른들 몰래 주머니에 성냥을 넣고 다니며 불장난을 하다 얻어걸려 직사하게 맞기도 하고 하마터면 집을 홀랑 태워먹을 뻔하기도 했다.
화기와 길흉의 상관관계
후에 나이가 들어 명리공부를 하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불과의 인연을 돈독히 하려고 기를 썼는지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건 내가 오동지 섣달에 세상에 태어났고 사주팔자를 구성하는 여덟 개 글자 중에도 화기에 속하는 글자가 없었던 탓이었다. 갈증에 내몰린 자는 물을 찾는 쪽으로 처신을 하고 북풍이 몰아치는 눈길을 걷는 자는 몸을 녹일 화기를 찾는다는 아주 평범한 진실이 사주팔자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화기가 부족한 팔자였으므로 나도 모르게 화기를 보충하려는 행동이 극성스런 불구경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아울러 그 깨우침이 옳다는 확신을 할 만한 사건이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직접 보고 들은 얘기다. 우물가에 모여든 여인네들의 호들갑이 심상치 않았다.
“어떡한대? 그 집 여편네가 실성해서 대처 병원으로 실려 갔다며?”
“집에 불나고 큰아들 죽고 마누라는 실성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겠네?”
“불난 집터는 10년 재수가 없다는 말도 있는데 굳이 고집을 부려 그 자리에 집을 지었으니 지금보다 더한 일이 닥칠지 누가 알아?”
우리 집에서 오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조아무개라는 사람이 살았다. 어느 해 봄 그 집에 불이 나서 가재도구 하나 변변히 건지지 못하고 몽땅 재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충고하기를 ‘불난 집은 재수가 없으니 이참에 다른 곳에 집을 알아보든가 셋집을 구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러나 한 고집하는 조아무개는 대답대신 코웃음을 치더니 보란 듯이 불 난 자리에 번듯한 집을 지었다.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재수가 옴 붙는 바람에 그가 큰아들과 아내를 잃었는지에 대한 답을 그 당시에는 제시할 수 없었지만 세월이 흘러 명리공부를 하고 풍수지리에 눈을 뜨면서 지기(地氣)의 개념을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자 불이 났던 자리에 집을 짓고 살다 재수 옴 붙었다는 말을 들은 조아무개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가옥의 화재는 모닥불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번 불길이 집을 에워쌌다 하면 아예 초열지옥이나 다름없다. 놋그릇이 녹아 찌그러질 정도로 치솟은 고온은 지기마저 화기로 변질시킨다. 지기는 땅속에서 발생하는 기운으로 가상 곧 집의 좋고 나쁨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본디 조아무개의 집은 수기(水氣)나 목기(木氣)에 해당하는 지기였는데 화재를 치르면서 지기가 화기로 변질되고 그에 따라 그 집 식구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화기의 해악이 가해진 게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타고난 사주팔자에 화기가 왕성한 사람은 수기(水氣)나 금기(金氣)에 속하는 지기와 만나야 삶이 무난하다. 그런 팔자가 불행히도 강한 화기에 속하는 지기를 만나면 필요 이상 화기가 왕성해지니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이 가시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가장 흔한 예로 화기가 너무 왕성하면 정신줄이 느슨해지거나 폐질환이 발생하거나 집을 나가 버리는 비극이 따르기도 한다.
불난 집 이사 후 일이 술술
그렇지만 모든 일이 비극으로만 기울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사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는 법, 나처럼 따뜻한 불기운을 필요로 하는 사주팔자는 화기가 강한 집이야말로 ‘발복’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가끔은 이사를 하고부터 일이 술술 잘 풀리고 눈에 띄게 형편이 나아지는 게 왠지 맘에 걸린다면서 상담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 사주를 보면 한겨울이나 한여름에 태어난 사람이다. 사주를 보고 그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전자는 화기가 왕성한 집으로 이사를 한 사람이고 후자는 수기나 금기가 왕성한 집으로 이사를 한, 말하자면 ‘발복의 뇌관’을 차지한 사람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언제 이사를 하셨소?”
“삼년이 다 돼 갑니다.”
“혹시 그 집에 불이 난 적이 있다는 말 못 들으셨소?”
“아뇨, 못 들었는데요? 왜요? 불난 집이면 안 좋은 겁니까?”
“천만에! 그 반대요. 댁이 운이 트이려니까 그 집과 인연이 닿은 거요. 대운에서 화운이 오자면 몇 년 더 기다려야 하는데 대신 화기 왕성한 집을 만났으니 화운이 온 거나 다름없지.”
“제가 원래 하는 일마다 꼬이는 편이었는데 이사를 하고부터 일이 수월하게 풀리기에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이게 혹시 나쁜 일을 앞두고 사탕물림을 하는 건 아닌지 겁이 나서요.”
“나쁜 일 없을 거요. 가상도 좋고 몇 년 후 화운도 오니 이제부터 제대로 운이 펴겠소.”
며칠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큰 불이 난 적이 있답니다. 그래서 재수 없는 집이라고 소문이 날까봐 쉬쉬하면서 시세보다 싸게 저한테 넘겼다는 겁니다. 제가 되레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이더군요. 근데 말입니다. 혹시 제가 일이 안 풀릴 때 집에 불을 싸지르면 운이 좋아질까요?”
뭣이라? 이 사람 진짜 큰일 낼 사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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