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여학생 ‘잔혹 동시’ 논란

‘패륜적 내용’ vs‘교육 현실 고발’ 술렁이는 어른들

조미진 기자 | 기사입력 2015/05/18 [14:00]

초등학교 여학생 ‘잔혹 동시’ 논란

‘패륜적 내용’ vs‘교육 현실 고발’ 술렁이는 어른들

조미진 기자 | 입력 : 2015/05/18 [14:00]

초등학교 여학생이 쓴 일명 ‘잔혹 동시’ 한 편 때문에 파문이 일었다. “학원 가고 싶지 않을 땐 엄마를 씹어 먹어, 눈깔을 파먹어” 등의 충격적인 동시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 게다가 시 본문 옆에 성인작가가 그린 삽화는 잔인하고 적나라해 비난의 강도를 더했다. 이후 시를 쓴 아이의 심리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학부모, 출판사에 대한 비난이 거세져 출판사는 해당 시집의 전량 폐기를 결정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초등학생부터 사교육 등에 내몰리는 한국 교육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거나 ‘문학적 비평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도 드러내고 있다.<편집자주>

‘학원가기 싫은 날, 엄마를 죽여 가장 고통스럽게 먹어’
성인 작가의 삽화도 ‘잔인’…충격과 비판 드러낸 여론
“사회에 영향 끼치는 출판, 신중해야” 등 견해 다양해

 
[주간현대=조미진 기자] 최근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이 출판사를 통해 낸 시집에 실린 시 하나를 두고 여론이 들끓었다. 해당 시의 내용이 지나치게 패륜적이고 잔혹하다며 학부모들과 여론이 술렁였고, 결국 문제의 시가 실린 시집은 전량 폐기가 결정됐다. 하지만 아이가 이런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등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 최근 ‘잔혹 동시’로 불린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동시의 본문과 잔인하고 적나라한 관련 삽화.     © 주간현대



어린이날의 충격 보도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세계일보> 1면을 통해 “여초등생이 쓴 잔혹동시 충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이 기사에는 시의 본문 내용과 삽화까지 자세히 소개돼 있었고 여론은 크게 술렁였다.

<학원 가기 싫은 날> 이라는 제목의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뿐만 아니라 엽기적인 시의 내용을 더욱 잔혹하게 표현한 삽화 또한 학부모를 비롯한 여론을 충격에 빠뜨렸다.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다량의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죽은 듯하며, 엄마의 것으로 유추되는 심장을 여자 아이가 먹고 있는 모습을 잔혹하게 묘사 한 것. 게다가 이 시집의 주 독자층은 초등학생이다.

해당 시는 지난 3월30일 이모(10) 양이 출간한 <솔로강아지>라는 동시집에 수록된 30편의 시 중 하나다.

이 양의 오빠가 출판사를 통해 시집을 출간한 것을 보고 자신도 시집을 내고 싶어 1년 동안 이 양이 직접 쓴 시라는 것.

이 양 어머니 김바다(42) 시인은 “그 시를 읽고 아이가 다니기 싫어하는 학원엔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이렇게 싫어하는 줄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런 말을 들었다면 엄마로서 화를 냈을 테지만, 시는 시일 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딸은 이전에도 많은 시를 썼으며, 다른 아름다운 시도 많은데 이 시만 가지고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시집을 출간한 출판사 측도 해당 언론를 통해 작가 의도를 존중했고, 예술로서 발표의 장이 확보돼야 한다는 판단으로 출간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문비 출판사 김숙분 발행인은 “성인 동시 작가가 어린이를 위해 썼다면 출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어린이가 자기의 이야기를 썼기에 가감 없이 출간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집에 실린 모든 작품에 조금도 수정을 가하지 않았고, 실린 시들은 섬뜩하지만 예술성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삽화에 대해선 “글이 작가의 고유 영역인 만큼 그림 그리는 화가도 자기 영역을 존중했다”면서 “이것을 보고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발견하고 어른들의 잘못된 교육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언론에 따르면 또래 아이들 중에선 “무섭지만 심정은 이해가 된다”는 반응도 나왔다. 김모(13) 군은 “그림을 보고 소름이 돋았지만 내용은 공감된다”며 “얼마나 학원 가기 싫었으면 저런 글을 썼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부모와 교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여론 또한 마찬가지다. 시를 쓴 이양이 ‘사이코패스로 발전할지 모르는 위험성이 엿보인다’며 심리적 치료 내지 교화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이렇게 방치하고 출간까지 시킨 부모들의 가치관과 의식에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셌다.

또한 출판사에 대해선 “좋은 의도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지만 잔인한 삽화까지 지원해주며 해당 시를 내준 것은 화제성과 돈벌이에 눈이 멀어 아이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렇게 논란이 확산되자 출판사는 지난 5월6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시중에 나간 도서까지 모두 회수해 폐기하기로 했다.


김 발행인은 사과문에서 “시집 일부 내용이 표현 자유의 허용 수위를 넘어섰고 어린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항의와 질타를 많은 분들로부터 받았다. 이를 받아들여 폐기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들 동의 없이 출판사가 전량 폐기를 결정했다며 이 양의 부모는 지난 5월7일 법원에 <솔로강아지> 회수 및 폐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 양의 어머니는 언론을 통해 “책을 회수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동시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아이들을 숨 쉴 틈 없이 학원으로 내모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우화다. 작품성과 시적 예술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우리 딸은 아주 밝고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일부 네티즌이 말하는 패륜아와 전혀 거리가 멀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 양의 부모들은 시집 폐기 방침을 받아들였다. 이 양의 아버지는 지난 5월10일 “일부 크리스천들이 사탄의 영이 지배하는 책이라며 심한 우려를 표현하고 계신다”며 “크리스천으로서 심사숙고한 결과, 더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원치 않아 전량 폐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작가인 이 양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이 양은 중앙일보를 통해 “어린이도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시는 시일 뿐인데 진짜로 받아들인 어른들이 많아 잔인하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양은 해당 시를 출판사에 꼭 실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전문가들이나 학계에서도 동시 ‘학교 가기 싫은 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어린이가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하는 것은 문학 교육에서 중요하지만 상업 시장에 출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책이 출판되면 펴낸 당사자가 윤리적 책임, 사회적 반향, 미학적 평가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 양이 각종 비난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꼬마의 시 세계가 매우 독특하다”며 “도덕의 인민재판을 여는 대신 문학적 비평의 주제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그 시만 뺀다면, 나머지 시들은 내용·형식 면에서 매우 독특해 널리 권할 만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어린이들은 실상 더럽고 치사하고 때론 잔인하다. 그 절반은 타고난 동물성에서 비롯되고, 나머지 절반은 후천적으로 부모에게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lovelythsu@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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