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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고딕풍 서스펜스 ‘이블 아이’

불안에 휘청거려 악에 기대다 일그러진 사랑

박소영 기자 | 기사입력 2015/03/02 [09:50]

압도적인 고딕풍 서스펜스 ‘이블 아이’

불안에 휘청거려 악에 기대다 일그러진 사랑

박소영 기자 | 입력 : 2015/03/02 [09:50]
공허한 사람들의 이블 아이 같은 존재를 향한 집착
의지하고 매달리는 인간들을 조롱하고 싶은 ‘악마성’

 
폭력적인 세상의 압력과 폐색을 공포라는 확성장치로 이야기하는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2013년 작품. ‘일그러진 사랑과 관계’를 주제로 써내려간 네 편의 중편이 실린 고딕풍 서스펜스 소설집이다. 미국의 거장 오츠는 <이블 아이>에서 한층 더 괴이한 스토리텔링으로 현대인이 가진 불치의 강박과 불안을 그린다. 등장인물들은 환상적으로 비현실적이면서도 무섭게 익숙하다. 각 편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이블 아이(악마의 눈)” 같은 존재의 남자에게 위로를 찾고 영혼을 기댄다. 그러나 강한 남자들은 약한 여자들을 지배하고 위협하고, 이내 여자들은 겁먹고 무기력해진다. 그러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예속을 원한다. 그들은 가해자와 피해자일까, 아니면 악의 공범자일까.<편집자주>


 
[주간현대=박소영 기자] 네 편의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들은 강한 남자들의 지배를 받는다. 자기 확신이 없고 부모의 죽음 때문에 감정적으로 휘청대는 ‘마리아나’는 지배적인 남편에 대해 무기력하다. ‘리즈베스’는 어리기 때문에 당연히 경험도 확신도 없다. ‘바트’의 어머니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정의보다 아들을 편들고, ‘세실리아’의 삶은 또 다른 지배자의 등장에 과거를 반복하게 될 위험에 처한다.


폭발하고 독을 옮기는 사랑

히치콕의 〈현기증>과 대프니 듀 모리에의 공포소설 <레베카>를 연상시키는 표제작 <이블 아이>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텔리 남자의 네 번째 아내가 된 이십대 ‘마리아나’의 불투명하고 절망적인 미래를 예고하는 수작이다. 작가 오츠의 예리한 문장은 어둡고 불편하고 우회적인 그들의 삶을 뭉크의 그림처럼 음울하게 그리면서 불완전한 생각과 돌연한 사고의 흐름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블 아이>에서 ‘마리아나’는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고지대에 자리한 쇼케이스처럼 근사한 집에 손님처럼 얹혀산다. 부모를 잃고 상심한 ‘마리아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준 남자는 결혼 후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 혹은 하등한 존재처럼 대한다. 그러던 중 남자의 전 부인이 방문하고, 한쪽 눈이 없는 광적인 전 부인에게 충격적인 과거의 사건에 대해 들은 ‘마리아나’는 불온한 미래를 예감한다.

<아주 가까이 아무 때나 언제나>는 순진한 열여섯 살 소녀 ‘리즈베스’의 위험한 첫사랑을 그린다. 또래에 비해 앳되고 예쁘지도 않은 ‘리즈베스’는 잘생기고 훤칠하고 영리한 청년이 호감을 보이며 접근하자 아찔하고 우쭐한 행복에 젖는다. 그러나 그의 정체가 드러날수록 균형을 잃고 흔들린다. 이 사랑은 떨칠 수 없는 악령처럼 ‘리즈베스’의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는다.

<처단>은 정신적인 균형감이 없는 남자 대학생 ‘바트 핸슨’의 불안한 영혼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약에 취한 ‘바트’는 부모가 클럽 회비를 대주지 않고 자신의 행동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자, 새로운 게임을 클리어하듯 말끔한 방법으로 그들을 처단하려고 계획을 세운다. 늦은 밤 부모의 침실에서 도끼를 휘둘렀던 ‘바트’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어머니의 진술로 인해 존속살해죄로 법정에 서지만, 이후 어머니의 증언 번복으로 두 사람의 삶은 역겨운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기반으로 완전히 역전된다. 1996년 작 <좀비>처럼 철저한 악인의 일기와도 같은 이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묘사와 초조한 리듬의 전개가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압도적이다.


조롱하고 싶은 악마성

<플랫베드>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스물아홉 살의 ‘세실리아’가 가진 성적 트라우마와 폭력의 순환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 성추행의 기억 때문에 성 공포증을 갖게 된 ‘세실리아’는 남자친구 N의 끈질긴 추궁에 결국 비밀을 털어놓는다. N은 과거의 죄인을 찾아가 처참하게 응징하지만, 젊고 강한 N의 폭력적 복수가 ‘세실리아’의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정당한 방법이었을까 하는 비릿한 의문을 남긴다.

그녀들의 균열은 경종과 같은 비극이 벌어진 후에도 다시 지속된다는 점에서, 혹은 지속될 거라고 예측된다는 점에서 한층 무섭다. 군림하는 연상 남편의 어리고 순종적인 아내가 갑자기 남편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 혹은 신뢰를 갖게 될 리 없고, 열여섯 살 소녀에게 느닷없이 평화와 성숙이 찾아올 리 없고, 인종차별주의자인 대학생은 자신이 얼마나 자기중심적 존재인지 계속 알지 못할 것이며, 폭력의 희생자가 폭력의 주체가 되는 것만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그렇게 무기력하고 사악하게 계속된다.

폭력적이고 수직적인 관계의 양상은 이제 너무도 확연하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관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설득하고 속이면서까지 그 관계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그녀들의 이러한 수동적인 면모는 폭력적인 그들의 행위에 힘과 당위를 실어주며 현재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 “어디서 살고, 누구와 있고, 버려지지 않고 외롭지 않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들은 고독한 세상에 혼자 남겨지느니 희생자라도 되는 쪽을 스스로 선택했다.


 
저자 소개-이스 캐롤 오츠
1938년 뉴욕 주 록포트에서 공구 제작자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조이스 캐럴 오츠는 여덟 살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처음 문학을 접하고 열네 살 때 할머니에게서 타자기를 선물 받아 작가의 첫걸음을 시작한다. 1964년 스물여섯 살 때 <아찔한 추락과 함께With Shuddering Fall>를 발표한 이후로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비롯해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서 쉼 없이 왕성하게 활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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