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햄버거는 썩지 않고,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으며, 감자칩은 배가 불러도 끊임없이 먹게 되는 걸까? 영국의 의사이자 의학 전문 방송인 크리스 반 툴레켄은 “초가공식품은 음식이 아니라 산업적으로 생산된 식용 물질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초가공식품은 최대한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유통 과정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소비자를 자극적인 맛에 길들이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공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수익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초가공식품 산업은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다면, 결코 사람이 먹을 것에 해서는 안 될 행동들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먹고 있는 것일까? 크리스는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에 화제를 일으키며 뜨거운 반응을 얻은 책 <초가공식품,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웅진지식하우스)를 통해 조금은 께름칙한 음식들을 먹으면서 느꼈던 의문들에 대해 구체적이고 성실하게 대답한다.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산업식품 시스템 안에선 사람이 먹잇감···시스템의 동력 제공하는 돈의 원천”
초가공식품이 해로운 이유는 소금·설탕 때문이 아니라 가공 방식 자체가 문제
햄버거는 사실상 ‘미리 씹어서 나온 것’···음식물 부드러울수록 치과 문제 초래
근본적 해결책은 유해 식품에 경고 라벨 붙이고 식품회사와 이해 충돌 끝내기
▲ 왜 어떤 햄버거는 썩지 않고,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으며, 감자칩은 배가 불러도 끊임없이 먹게 되는 걸까? <사진출처=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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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공식품이 나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먹는 것은 다르다. 초가공식품은 몇 년 전부터 가장 위험한 음식의 대표주자가 되었으나, 왜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의 미각과 후각, 면역계, 손재주, 치아, 턱 해부학, 시력 등등 사람의 생물학, 생리학, 문화 중에서 에너지의 역사적 필요성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수십억 년의 시간 동안 우리의 몸은 다양한 음식을 이용하는 데 훌륭하게 적응해왔다. 하지만 지난 150년 동안 음식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니게 됐다. 우리는 새로운 분자를 이용해서 만든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우리의 진화 역사에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과정을 이용해서 만든, ‘음식’이라 부를 수도 없는 물질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가 섭취하는 칼로리 중에는 변성전분, 전화당, 가수분해 분리단백질, 정제하고 탈색하고 탈취하고 수소를 첨가하고 상호 에스테르화한 종자 기름을 통해 섭취하는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합성 유화제, 저칼로리 감미료, 습윤제, 향미제, 식용색소, 색안정제, 탄산제, 고화제, 중량제, 반증량제 등 우리의 감각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분자들로 이루어진 이상한 혼합물을 만들어내 먹고 있다.”
영국의 의사이자 의학 전문 방송인인 크리스 반 툴레켄은 자신의 저서 <초가공식품,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초가공식품에 저항하라”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병원의 감염병 전문의인 크리스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련했고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에서 분자 바이러스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기업이 아동 영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와 협력하고 있다. 쌍둥이 형제이자 의사인 잰드와 CBBC의 어린이 의학 프로그램 〈오퍼레이션 아우치!Operation ouch!〉를 오랫동안 진행하며 대중에게 매우 친숙한 의사가 됐고 이 프로그램으로 영국 아카데미(BAFTA)상을 두 번 수상했다.
“모두 내려놓고 초가공식품의 공포를 온전히 경험해보자. 그렇다고 폭식이나 과식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초가공식품에 대한 저항을 멈추라는 것이다. 나는 4주 동안 그렇게 했다. 만약 당신도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완독할 때까지 해보기 바란다. 당신에게 이런 행동을 권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나는 사실 별로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첫째, 당신은 이미 온종일 초가공식품을 권하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둘째, 당신이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한다면 이미 칼로리의 60퍼센트 정도를 초가공식품으로부터 얻고 있을 것이므로 한 달 동안 그 비율을 80퍼센트로 올린다고 해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크리스는 2021년 한 달간 식단의 80퍼센트를 초가공식품으로 먹은 뒤 몸의 변화를 관찰한 BBC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뜨거운 반응응 일으키며 ‘초가공식품’이란 용어를 널리 알렸다. <초가공식품>은 크리스가 성인 대상으로 집필한 논픽션이다.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에 화제를 일으키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초가공식품에 대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유해한 식품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호기심으로 최신 의학과 과학의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는 크리스의 책은 식품산업의 혐오스러운 진실을 드러낸 르포르타주이자 논란을 무릅쓴 용감한 고발이며 현대인에게 건강한 식생활을 제안하는 설득력 강한 건강서적이다.
“이상한 혼합물로 이뤄진 물질들은 19세기 말부터 우리의 식단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처음에는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로는 침투 속도가 빨 라져 현재는 영국과 미국에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고, 전 세계 거의 모든 사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익숙하지 않은 음식 환경에 진입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나란히 생겨난 새로운 생태계로 진입하게 됐다. 이 생태계 역시 자체적으로 군비경쟁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 군비경쟁은 에너지의 흐름이 아니라 돈의 흐름에서 동력을 얻는다. 이것은 산업식품 생산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크리스는 “산업식품 생산 시스템 안에서는 사람이 먹잇감”이라면서 “사람이 이 시스템에 동력을 제공하는 돈의 원천”이라고 지적한다. 이 돈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거대한 초국가적 기업에서 수천 개의 소규모 국내 기업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진화하는 기업들로 구성된 생태계에서 일어나면서 복잡성과 혁신을 이끌어낸다는 것.
이들이 우리 주머니에서 돈을 뽑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미끼가 바로 ‘초가공식품’이라고 한다. 초가공식품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화의 선택 과정을 통해 자리 잡았다. 이 안에서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구입해서 먹는 제품이 시장에 서 오래 살아남는 제품이 된다. 이렇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식품들은 체중이나 다른 많은 기능을 조절하는 신체 시스템을 전복하도록 진화해 왔다.
초가공식품은 이제 영국과 미국의 평균 식단에서 무려 6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초가공식품은 우리의 식품 문화로 자리 잡았으며, 우리 몸을 구성할 때 사용하는 주요 물질이 됐다. 호주, 캐나다, 영국, 미국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국가적 식단이다.
“초가공식품의 공식적인 과학적 정의는 아주 길지만 간단히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어 있고 표준의 가정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성분이 한 가지라도 들어 있다면 초가공 품이다. 이 중에는 우리에게 ‘정크푸드’로 익숙하게 알려진 것이 많지만 유기농 식품, 방목 식품, 윤리적 식품이라는 것들 중에도 초가공식품이 많다. 이런 제품은 건강에 좋다거나, 영양이 풍부하다거나, 환경 친화적이라거나,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명목으로 팔리기도 한다. 경험적으로 보면 포장지에 건강에 이롭다고 적혀 있는 음식도 대개는 초가공식품이다.”
산업적으로 생산된 식용물질
실제로 마트에서 구매해 부엌 찬장에 넣어둔 식품을 꺼내 성분표를 한번 살펴보자. 변성 옥수수전분, 대두 레시틴, 산도조절제, 구아검, 말토덱스트린, 팜스테아린, 분리 단백질, 덱스트로스, 인공색소, 향미료, 감미료, 안정제···. 읽기도 어려운 글자들이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런 성분들은 정교한 장비와 복잡한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옥수수, 콩 같은 작물을 기름, 단백질, 전분 등의 성분으로 분해해서 그 성분을 화학적으로 변성한 다음 다시 첨가물과 결합해 성형, 압출, 압력 같은 산업 기술을 이용해 조립한다. 초가공식품은 나날이 발전하는 가공 과학의 승리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파이, 프라이드치킨, 피자, 버터, 팬케이크 믹스, 페이스트리, 그레이비, 마요네즈 같은 것들은 모두 진짜 식품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초가공식품이 아닌 음식은 비싸기 때문에 전통적인 재료 성분을 저렴한 재료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합성물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대체 재료는 일반적으로 동물 사료로 키운 작물에서 추출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런 작물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굉장히 저렴하다.”
크리스 반 툴레켄은 “식품의 성분표를 확인해서 적혀 있는 원재료 중에 단 하나라도 평범한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성분이라면, 그 식품은 ‘초가공식품’”이라고 말한다. 이 기준으로 보자면 초가공식품이 아닌 음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초가공식품은 언제부터인가 위험한 음식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대체 초가공식품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 초가공식품은 몇 년 전부터 가장 위험한 음식의 대표주자가 되었으나, 왜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사진출처=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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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질환의 1차적 원인
크리스는 초가공식품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자신의 몸을 쓰기로 결심했다. 4주간 하루 칼로리의 80퍼센트 이상을 초가공식품으로만 채우는 식생활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화제가 된 BBC 다큐멘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이고 있는가? What Are We Feeding Our Kids?〉로 자세히 볼 수 있다)
실험이 끝난 뒤 크리스의 몸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체중은 7킬로그램이 늘었고, 소화불량, 변비, 치열이 생겼으며 집중력이 저하되고 잠을 깊게 못 잤다. 그중에 크리스가 알아차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식욕 호르몬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포만감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은 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에도 거의 반응하지 않은 반면, 배고픔 호르몬은 식사 직후에도 치솟았다. 지방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렙틴이 다섯 배 높아져 있었고, 염증을 나타내는 수치는 두 배가 됐다.
식욕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이 결과는 2019년 케빈 홀의 연구진이 수행한 실험 결과와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2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2주간 한 집단에는 초가공 식단, 다른 집단에는 비가공 식단을 제공했고, 2주 뒤에는 두 집단에 식단을 바꿔서 제공했다. 소금, 설탕, 지방의 함량은 오차가 없게 제한했으며 참가자는 원하는 만큼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했다. 실험 결과, 초가공 식단을 먹은 사람은 비가공 식단을 먹은 사람보다 하루에 평균 500칼로리를 더 먹었고 당연히 체중도 불었다. 놀라운 점은 비가공 식단을 먹은 참가자들은 원하는 만큼 양껏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체중이 줄었다는 점이다.
초가공식품이 더 맛있었던 것도 아니다. ‘맛’을 넘어서 초가공식품을 과식하게 만드는 무언가 다른 속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연구 이후로 초가공식품이 온갖 건강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게 된 1차적 원인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점점 더 늘어났다.
자신의 몸을 이용한 크리스의 실험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의 이면에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어떻게 건강을 망치는가?
그렇다면 초가공식품은 어떻게 우리의 건강을 망치는가?
“2022년에 학술지 <신경학(Neurology)>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7만2000명 이상을 통해 추출한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10퍼센트 늘면 치매 위험이 25퍼센트 올라가고,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은 14퍼센트 올라갔다. 건강에 미치는 이런 여러 가지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 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식생활 패턴을 보정한 이후에도 초가공식품을 제일 많이 먹은 4분의 1의 참가자가 제일 적게 먹은 4분의 1과 비교했을 때 사망 위험이 26퍼센트 높았다.
비슷하게 보정한 미국의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고했다. 6만 명의 영국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전 원인 사망 위험률이 22퍼센트 증가했다. 스페인의 한 연구에서는 전 원인 사망 위험률이 62퍼센트 증가했다. 이런 규모의 영향이 거의 모든 연구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좋지 않은 이유가 그냥 포화지방, 나트륨, 당이 많고 영양소는 빈약한 음식이기 때문이라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사항을 모두 보정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크리스는 자신의 책에서 다양한 연구의 사례를 제시하며 “초가공식품이 해로운 이유는 그저 지방이 많아서, 소금이 많아서, 설탕이 많아서가 아니다”고 말한다. 영양소의 내용물이 아니라 가공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업적으로 변성시키고, 가루로 만들고, 압축한 음식은 섬유 구조가 완전히 파괴되는 동시에 매우 부드러워져서 씹기 편해진다. 사실상 ‘미리 씹어서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음식물이 부드러울수록 우리는 음식을 더 빨리, 더 많이 먹게 되는 것은 물론 턱뼈의 발달이 저해되기 때문에 치과 문제를 불러온다.
또한 초가공식품은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매우 건조한다. 건조함은 초가공식품에서 대단히 중요한데, 식품 안에서 미생물이 성장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유통기한을 터무니없이 늘려주기 때문이다. 이는 초가공식품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세 딸의 아빠인 크리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음식은 인간의 뇌를 해킹한다”고 경고한다.
“식생활 실험 마지막 4주 차가 되니 당장 눈에 띄는 신체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체중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허리띠를 두 칸이나 느슨하게 풀어야 했다. 그리고 내 체중이 불면서 가족도 함께 체중이 불었다. 아이들이 코코팝, 피자, 오븐용 감자칩, 라자냐, 초콜릿을 먹겠다고 덤비는 것을 막기가 불가능했다. 내가 몰래 숨어서 먹을라치면 리라가 기어코 나를 찾아내서 같이 먹겠다고 떼를 썼다. 초가공식품의 영향을 일반적인 생활 방식에서 오는 영향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나는 불안한 꿈을 많이 꾸고 있었다. 보통은 딸아이들의 죽음에 관한 꿈이었다. 그렇다고 전에는 이런 꿈을 절대 꾸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가 초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몸을 씻어내던 기간 동안에는 이런 꿈을 꾸었던 기억이 없다. 나는 이제 소금을 많이 먹고 있었다. 그래서 물을 더 많이 마시고, 소변도 많이 봐야 했다. 혹시 이것 때문에 꿈을 꾸는 것일까? 나는 새벽 3시나 4시 정도에 악몽을 꾸거나, 소변을 봐야 해서, 혹은 양쪽 모두 때문에 잠에서 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잠이 오지 않아서 부엌으로 가서 간식을 먹었다. 보통은 따분해서 먹는 경우가 많았다.”
저렴한 재료, 긴 유통기한
초가공식품의 목적은 수익성 높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초가공식품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를 처음 이끌어낸 것은 2010년 브라질의 한 연구팀이었지만, 그 후로 초가공식품이 인체에 해를 입히고, 암, 대사질환, 정신질환 발생률을 높이며, 음식 문화를 망치고, 불평등과 가난, 조기 사망을 불러오고, 지구에도 해를 입힌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방대한 데이터가 등장했다. 초가공식품의 생산에 필수 적인 식품 시스템과 그 필수 산물인 초가공식품은 생물다양성 감소의 주요 원인이고, 전 세계 탄소 배출에 두 번째로 크게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초가공식품은 기후 변화, 영양실조, 비만이 서로 꼬리를 물며 상승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 비만이 가장 활발히 연구됐지만, 입에 올리기는 제일 어렵다. 식품과 체중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 리 좋은 의도로 말해도 많은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가공식품은 체중에 미치는 영향과는 별개로 여러 방식으로 고통을 초래한다고. 초가공식품이 심장질환, 뇌졸중, 조기 사망을 일으키는 이유는 단순히 비만을 야기하기 때문이 아니다. 체중과 상관없이 초가공식품 소비량에 따라 그 위험이 커진다. 그런데 초가공식품을 먹는 사람은 체중이 늘지 않아도 치매와 염증성 장질환 위험이 높아지지만,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환자를 탓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비만은 식단 관련 질병 중, 사실은 거의 모든 질병 중에서 유일하게 의사에게 핀잔을 듣는 질병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크리스는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을 넘어서 초가공식품이 사회적·문화적 맥락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을 깊숙이 파고든다.
초가공식품은 극도로 저렴한 재료와 긴 유통기한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공된다. 보통 식품을 가공한다고 하면 음식을 물리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떠올린다. 그러나 ‘초가공’에는 소비자를 현혹하는 기만적인 마케팅, 비밀스러운 로비, 사기성 연구 등 간접적인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모두 기업이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돈을 뽑아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아울러 그는 식품산업의 탐욕이 어떻게 더 이상 음식이라 할 수 없는 식용 물질을 생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서 섭식 행위가 어떤 문제에까지 닿을 수 있는지 거시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크리스는 식품 늪(초가공식품을 파는 패스트푸드 매장이 너무 많아 신선식품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지역) 문제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초가공식품의 공격적 마케팅 등의 사례를 통해 더 이상 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되며 아이들을 생각하면 먹는 문제가 얼마나 긴급한 사안인지도 보여준다. 우리는 스스로 음식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식품을 고르는 방식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며, 절대 벗어날 수 없도록 설계된 식품 환경 안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린 좋은 음식 먹을 권리 있다”
영국에서 크리스의 책이 출간된 지 약 5개월 뒤인 2023년 9월 27일 모든 주요 일간지에서 일제히 비슷한 주장을 하는 기사들이 등장했다. <타임스>에는 “초가공식품이 몸에 나쁜가? 과학자들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는 기사가 실렸고, <인디펜던트>에는 “사실은 몸에 좋은 10가지 초가공식품”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들은 다섯 명의 과학자가 초가공식품에 관한 과학은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고 밝힌 최근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자 중 네 명은 초가공식품 제조회사와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여러 차례에 걸쳐 식품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연구자는 식품업계와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가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수없이 많은 연구가 코카콜라, 네슬레 등 거대 식품회사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보았던 수많은 건강 뉴스들이 정말로 신뢰할 만한 것인가를.
그가 초가공식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던지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두 가지다. 첫째, 유해 식품에 경고 라벨을 붙일 것. 라벨 시스템만으로 사람들은 어떤 식품을 피해야 하는지 식별할 수 있으며 이미 여러 중남미 국가에서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정책이다. 둘째, 이해 충돌 끝내기. 영양 관련 전문가와 기관은 식품회사와 재정적 관계, 협력 관계, 공동 브랜딩 등을 절대 피해야 한다.
크리스는 “식품 환경과 정책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식생활 문제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 건강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음식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의 권리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권리, 그리고 좋은 음식을 먹을 권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