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희(48, 사진)) 감독에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아 달라고 했다. 이 감독은 특정 장면이나,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이슈 혹은 문제를 짚어내지 않았다. 대신 마음에 관해 얘기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결정하고 개봉을 앞두기까지 4년 넘는 시간 불안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내가 맞다’고 되뇌었지만 그 감정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았다고 했다.
“2016년 <미씽>을 끝낸 뒤 다짐한 적이 있다. 날 믿자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감독이니까, 내가 답을 가지고, 내가 끌고가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 마음을 계속 유지하는 게 쉽진 않더라.”
<대도시의 사랑법> 촬영을 끝낸 게 지난해 가을이었다. 이 감독은 남편과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을 보러 갔다고 했다. 이 영화엔 배우 정우성이 ‘신상호’라는 인물로 짧게 나온다. 신상호는 영화감독의 마음가짐에 관해 말하며 “널 믿으라”고 말한다. 이 감독은 이 장면을 보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다’고 위로 받았다고 했다.
“난 이 영화가 너무 좋은데, 사람들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안 좋아할 수 있고 불편할 수 있다고 자꾸 의심하게 된다. 그렇지만 날 믿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날 믿어주고, 나보다 이 영화를 더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니까.”
이 감독이 영화공개를 앞두고 불안과 의심에 관해 얘기하는 이유가 짐작이 가긴 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2019년 박상영 작가가 내놓은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다른 사람 눈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재희와 성정체성 때문에 자꾸만 움츠려드는 흥수의 이야기다. 영화는 스무살 때 만난 두 아웃사이더가 13년 간 동거하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남녀가 친구로서 동거한다는 설정부터 이른바 ‘유교걸’ 따윈 될 수 없는 여자 그리고 동성애자 남성이 등장한다는 것, 청춘성장물이면서도 주류를 향한 비주류의 일침이 직접적으로 표현된다는 점 등은 분명 일부 관객에겐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일지도 모른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중간중간 ‘내가 미쳤다. 무슨 용기로 이걸 한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 감독이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화를 논의하기 위해 박 작가를 처음 만난 게 2019년 12월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된 게 2020년 초였다. 물론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생긴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캐스팅이었다. 김고은이 출연을 확정한 뒤 흥수 역을 맡을 배우를 1년 넘게 구하지 못했다. 동성애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성 연인과 스킨십 장면 등이 있는 게 남자 배우들에게 큰 벽을 세운 게 됐다.
“남자 배우가 없어서 이 영화를 못 만들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마저 들었다. 그때 <파친코>를 보고 노상현 배우에게 연락을 했다. 노상현 배우를 만난 날 화장실 앞까지 쫓아가서 ‘꼭 하셔야 한다’고 부탁했다.(웃음)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게다가 김고은 배우는 이 작품을 위해 1년을 기다려줬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코미디를 바탕에 둔 성장담이다. 강의와 클럽을 오가던 대학 시절을 시작으로 입대와 제대, 취업과 결혼 등 일련의 과정을 재희와 흥수를 통해 훑어 간다. 다만 단순히 청춘과 성장에 관해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재희를 통해서는 여성을 향한 사회의 부당한 시선에 대해 짚어주고, 흥수의 이야기로는 성소수자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온한 시각을 비판한다. 이 감독은 이 부분을 표현해가면서 자기 검열 극복과 대중성 유지 사이에서 갈등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재희를 만들어갈 땐 “일하는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다”고 했다. 이 감독을 포함해 제작자·작가 등 주요 스태프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재희와 여성에 대해 얘기하며 영화를 하나씩 쌓아올려 가는 게 수월했다고 한다. 그러나 흥수는 달랐다. 흥수는 남성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좀 더 세심한 접근과 면밀한 취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흥수의 동성 연인과 스킨십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찍어놓고 흥수 관련 (스킨십) 장면을 넣어 보기도 하고 빼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뺐을 때 자연스럽지 않더라. 결국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가야 한다고 봤다. 최종적으로 나온 영화가 저희가 가장 자연스럽다고 판단한 것들인 거죠. 사실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싫었다. 왜 내가 겁을 내야 하나,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혐오의 시대’ ‘남녀 갈등의 시대’로 불리는 세태를 볼 때 <대도시의 사랑법>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다. 이 감독은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는다”며 “그렇게 휘둘리면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할 수 없고 영화도 만들 수 없다. 우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나갈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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