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형제와 가족 사이에 형성된 높은 긴장감 통해 묵직한 질문 던져
“언제까지 '8월의 크리스마스'가 대표작? 최근작이 대표작 됐으면”
▲ 새 영화 ‘보통의 가족’과 함께 스크린으로 돌아온 허진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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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을 살아가는 기준이 있지 않은가. 그 기준이 무너지게 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얘기해보고 싶었다.”
10월 16일 공개된 허진호(61) 감독의 새 영화 <보통의 가족>에는 결론이나 답이 없다. 대신 물음과 의문이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나요’ 같은 것들이다.
너무 다른 두 형제가 있다. 변호사인 형의 목표는 돈인 것 같다. 큰돈을 거머쥘 수 있다면 누구라도 변호할 수 있다. 의사인 동생은 명예가 중요한 사람으로 보인다. 돈이 없는 환자라도 우선 치료를 해줘야 한다는 모습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형제의 아이들이 어느 날 밤 노숙자를 무차별 폭행해 큰 부상을 입혔고 이 남자는 사경을 헤맨다. 경찰은 범인 추적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제는 이제 결심해야 한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건을 덮을 것인가, 아니면 자수시켜 참회하게 할 것인가. 영화 공개를 앞두고 허 감독을 만났다.
“거창하진 않더라도 누구나 신념 혹은 가치관 같은 게 있다. 도덕 기준도 있을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자식 문제와 얽히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가 아버지가 돼 보니까 그걸 알겠더라. 이때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이 드러나고 삶이 흔들릴 수도 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가 아닌가.”
<보통의 가족>은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가 2009년 내놓은 소설 <더 디너>가 원작이다. 두 형제 가족 사이에 형성된 높은 긴장감, 이를 통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 워낙 인상적인 작품이어서 2015년엔 이탈리아, 2017년엔 미국에서 두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허 감독은 이 작품을 교육·학교폭력 등 한국적 요소를 첨가해 풀어냈다. 그는 “원작이 있고, 이미 두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을 다시 한 번 영화로 만든다는 데 부담이 있었지만, 이전까지 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연출을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리적 딜레마와 자식 문제 그리고 여기에 인간의 양면적 모습들. 이런 건 내가 이전부터 관심 있는 주제였다. 원작은 좀 더 결이 다양하다. 입양이 있고, 인종 문제, 정신병적 요소들도 있다. 우리 영화는 좀 더 간결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초·중반부에 유머를 넣은 게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들과 차이점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건 역시 출연진이다. 설경구가 형 재완 역을, 장동건이 동생 재규 역을 맡았다. 재완의 아내 지수는 수현이, 재규의 아내 연경은 김희애가 맡았다. 2012년 <위험한 관계>를 함께한 장동건을 제외하면 허 감독과 처음 호흡하는 배우들이다. 네 배우가 한 자리에 모이는 세 차례 식사 장면은 <보통의 가족>의 백미. 묘한 우월감과 열패감, 뒤섞여 있는 진심과 거짓, 애정과 증오가 얽히고 설키며 서스펜스를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기괴한 웃음까지 끌어낸다. 네 배우의 호연과 허 감독의 연출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네 배우가 워낙에 성실했다. 밥 먹는 장면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쉬운 장면이 결코 아니었다. 힘든 과정이었는데 배우들이 정말 잘 해줬다.”
허 감독 필모그래피는 2016년 <덕혜옹주> 이후 분기점을 맞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 등으로 멜로라는 장르에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그는 이제 다양한 장르에서 이전에 보여준 적 없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허 감독의 오랜 팬들은 그가 다시 한 번 멜로 영화를 만들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허 감독은 “언제까지 <8월의 크리스마스>가 대표작이어야 하냐?”며 “감독은 언제나 가장 최근 작품이 대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웃으며 말했다.
“거의 30년이 된 영화를 아직도 기억해주니까 당연히 감사하다. 최근에 열린 런던 한국 영화제에선 <보통의 가족>‘이 개막작이었고 <봄날은 간다>도 틀었다. 내 영화이지만 새롭더라. 또 모른다. 어떤 새로운 멜로영화를 하게 될지. 하지만 내 영화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모든 영화들이 감정을 따라가는 작품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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