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그동안 자동차 신흥 강국 인도에 공을 들여왔다. 14억 명의 인구 대국 인도는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자동차 시장에 속한다. 그뿐 아니라 인도는 전기차 신시장으로도 뜨고 있다. 그런 만큼 지금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는 글로벌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글로벌 최강자들이 앞다퉈 인도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역시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인도 시장을 수시로 찾아 미래 성장전략을 점검하곤 했다.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는 현대차 인도 법인이 인도증권거래위원회에 기업공개(IPO)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인도 법인이 IPO를 통해 최대 30억 달러(약 4조 원)를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인도 현지에 생산시설을 추가로 짓는 것은 물론 전기차 생태계 구축의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인도 법인 IPO로 최대 30억 달러 조달···현지 생산시설과 전기차 생태계 구축
장재훈 사장 “인도 법인 상장은 새 도전과 혁신···인도 현지화와 리더십 강화”
인도 사업장 찾은 정의선 “인도는 현대차그룹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권역”
“인도를 글로벌 수출 허브로 육성···권역 중요성 고려해 지원 아끼지 않겠다”
▲ 현대자동차그룹이 갈수록 중요도가 커지는 인도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
현대자동차그룹이 갈수록 중요도가 커지는 인도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가장 뜨고 있는 인도 시장에서 모빌리티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현지 기업공개(IPO)도 추진한다.
현대차 인도 법인은 지난 6월 14일(현지 시각) 인도증권거래위원회(SEBI)에 상장을 위한 예비투자 설명서(DRHP)를 제출했다. SEBI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비슷한 성격의 감독 당국으로, 인도 증시의 상장 심사를 담당한다.
SEBI의 예비 심사를 통과해야, 이후 공모가와 상장 일정을 정할 수 있다. 심사는 보통 2~3달 걸리는 데, 이르면 이달 말이나 늦어도 다음 달 중순에는 현대차 인도 법인의 기업공개(IPO) 여부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현대차가 SEBI에 낸 투자 설명서에 따르면 현대차 인도 법인은 이번 IPO를 구주 매출 방식으로 진행한다. 신주 발행이 아니라 모회사인 현대차가 가진 기존 지분 중 일부를 시장에 매각하는 것이다.
현재 현대차가 지분 100%를 가진 현대차 인도 법인은 액면가 10루피(약 159.7원)의 보통주 8억1254만1100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약 17.5%인 1억4219만4700주가 공모 절차를 밟게 된다. 공모가 끝나면 현대차의 지분은 82.5%로 줄어든다.
현대차가 지분을 주당 얼마에 팔지는 예비 심사가 끝나야 결정된다. 다만 시장에서는 최대 30억 달러(약 4조 원)에 달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그렇게 되면 현대차 인도 법인의 기업가치를 19조 원 정도로 인정받는 것으로, 인도 IPO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 인도 법인이 이처럼 높은 기업가치를 자신하는 배경에는 막강한 실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2023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에 약 6144억 루피(약 9조8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2024회계연도에도 지난해 4월부터 12월 말까지 누적 매출액이 5330억 루피(약 8조5000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2023년 1~12월) 현대차 인도 법인은 전년 대비 8% 늘어난 77만7876대를 판매하며, 역대 최대 판매 기록을 새로 썼다. 2009년 이래 인도 승용차 판매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자동차 수출 분야에서는 20년 가까이 1위에 올라 있다. 지금까지 인도 공장이 수출한 차량은 150개국, 353만 대에 이른다.
또한 인도 전역에 1366개의 판매점과 1550곳의 서비스 센터를 운영 중이며 전기차, 경유, 휘발유 등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를 출시하고 있다. 인도 시장 전용 음성 인식 서비스인 ‘블루링크TM’을 선보일 정도로 현지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차는 인도 IPO로 조달한 자금을 전동화 생산 시설과 충전 인프라 구축, 공급망·판매망 정비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지난 7월 28일 열린 ‘CEO 인베스터 데이’ 행사에서 “인도 시장에 주목한 이유는 환경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라며 “인도 상장은 새로운 도전과 혁신이 될 것이며 인도 현지화와 리더십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SUV 알카자르 앞세워 시장공략
현대차가 인도 현지 전략 모델인 중형 스포츠실용차(SUV) 알카자르의 ‘부분 변경’ 모델을 출시했다. 현대차는 인도 전략 모델의 신차를 지속 선보이며 현지화 전략을 더 강화한다는 분석이다.
2021년 출시 이후 인기를 끌고 있는 알카자르 신차로 인도 판매량이 얼마나 더 증가할지 주목된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8월 22일(현지 시각)부터 알카자르 부분 변경 모델에 대한 사전 예약을 진행 중이다. 2021년 인도 시장에서 알카자르를 첫 출시한 이래 3년 만에 내놓는 부분 변경 모델이다.
▲ 현대차가 인도 현지 전략 모델인 중형 스포츠실용차(SUV) 알카자르의 ‘부분 변경’ 모델을 출시했다.
|
현대차 인도 법인은 알카자르에 대해 “6인승 및 7인승 프리미엄 SUV”라며 “웅장함, 편안함, 편리함에 더해 첨단 기술 및 안전 기능으로 고객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부분 변경 모델은 H형 헤드램프 등 디자인 측면에서 큰 변화를 노렸다. 기존 알카자르에 현대차의 최신 디자인을 이식했다는 평이다.
여기에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을 비롯해 70개 이상의 안전 기능을 갖췄다.
알카자르는 현대차가 2021년 선보인 인도 전략 모델이다. 경·소형 중심의 모델에 만족하지 않고, 프리미엄 SUV 현지화를 추가했다.
현대차는 알카자르 출시로 ▲소형 세단 아우라 ▲소형 SUV 크레타 ▲경형 SUV 엑스터 ▲경형 해치백 그랜드 i10 니오스 등 총 5개의 인도 전략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알카자르는 출시 이후 인도 시장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다. 2021년 5월부터 판매된 알카자르의 인도 현지 누적 판매량은 올해 7월까지 7만6973대에 달한다. 인도 현지화 전략 강화가 판매량 증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의 인도 법인 전체 판매량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인도에서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하며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제 인도는 판매가 부진한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인도에서 지난해 상반기 대비 4.6% 증가한 31만 대(도매 기준)를 판매해 역대 상반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2021년 연간 판매량 50만 대를 돌파한 이후 매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2년 70만811대에서 2023년 76만5784대로 늘었다. 올해 1~7월 인도법인 판매량은 45만324대로, 월간 6만 대 이상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 같은 판매 호실적에 대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엑스터’ 신차 출시 및 SUV 주요 모델의 판매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번 알카자르 부분 변경 출시로 7월 이후 판매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인도 전략 모델의 신차를 투입하며 특유의 현지화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올해 사상 최대 판매량을 기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 정의선 회장이 지난해 8월에 이어 올해 4월 인도로 간 까닭은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
‘수소 밸리’ 낙점···인도 투자 본격화
현대차그룹은 인도 법인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인도 현지에 생산시설을 추가로 짓는 등 전기차 생태계 구축의 속도를 내게 된다. 적시 투자를 통해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수소 밸리’로 낙점한 인도 투자를 본격화한다. 올해 초 타밀나두주(州) 정부와 업무협약을 시작으로 현지에 사업 거점도 확보한다.
현대차는 마드라스 인도공과대학(IIT) 타이유르 캠퍼스에 ‘수소 혁신센터’를 설립한다. 투자 금액은 총 18억 루피(286억 원)로, 2026년 가동 예정이다.
현대차의 해외 수소 사업 거점은 중국 광저우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센터 설립은 현대차와 IIT, 무역투자진흥기관인 가이던스 타밀나두의 파트너십이 배경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파트너십은 수소 기술 연구에 중점을 둔 전문 연구 시설을 마련하고, 수소 기술의 개발과 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체결됐다.
현대차는 이곳 수소혁신센터를 통해 수소 생산을 위한 전해조 개발과 수소 제조 및 공급망 현지화, 수소 충전소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인도 수소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도 기여한다는 목표다.
이러한 투자는 앞서 현대차가 밝힌 인도 사업 계획의 일환이다. 현대차는 올해 1월 인도 첸나이(과거 마드라스)서 열린 ‘타밀나두 글로벌 투자자 회의’에서 타밀나두주 정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총 618억 루피(약 9800억 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타밀나두주는 연간 82만 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는 현대차 첸나이 공장이 위치한 곳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8월 인도 하리아나주(州)에서 GM 인도 법인이 보유하고 있던 연 13만 대 규모 생산 설비를 갖춘 자동차 공장을 인수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2025년 이후 이 공장이 본격 가동하면 현대차·기아는 인도에서만 약 140만 대를 생산하게 된다.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글로벌 대전이 벌어지면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인도 시장에서 거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 회장이 지난해 8월에 이어 올해 4월 인도를 방문한 것도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인구를 보유한 인도는 지난해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내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4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인도는 독립 100주년인 2047년까지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국가 비전 ‘Viksit Bharat(발전된 인도)@2047’을 추진하고 있다. 이 비전은 지속 가능성, 경제적 번영, 기술 및 혁신, 현대적 인프라, 포용적 사회 등을 포괄하고 있다.
모빌리티 주요 거점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인도 자동차 시장 규모는 500만 대로 중국·미국에 이어 견고한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승용차(Passenger Car) 시장은 410만 대 규모로, 오는 2030년에는 5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3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강력한 전동화 정책도 펼치고 있다. 올해부터는 ‘최소 5억 달러를 인도에 투자하고 3년 안에 전기차를 생산하는 업체에게 최대 100%인 수입 전기차 관세를 15%로 대폭 인하’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정 회장의 4월 인도 방문은 이 같은 인도의 급속한 변화 발전 과정 속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인도 사회의 중추적 모빌리티 기업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다양한 사업적 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차원이다. 동시에 진정성 있는 사회공헌과 ESG 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인도 고객들이 더욱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다.
정 회장은 인도 하리아나주 구르가온시에 위치한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에서 가진 현대차·기아 임직원 타운홀 미팅에서 “인도는 현대차그룹의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권역 중 하나”라며 “인도권역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세계 경제 침체와 공급망 대란 등 수많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꾸준히 좋은 성과를 창출했다”고 강조했다.
인도권역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면서 힘을 실어주겠다는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인도를 글로벌 수출 허브로 육성해 나갈 것이다. 인도권역의 중요성을 고려해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정 회장은 이어 “경제발전이 가속화하고 있는 인도에서 현대차그룹이 시장점유율 2위를 달성했다”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며 브랜드 파워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도 했다.
2026년 인도 진출 30주년을 맞는 현대자동차는 ‘모빌리티 혁신기업, 그리고 그 너머(Innovator in Mobility and Beyond)’를 목표로 2030년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단기간에 인도 주요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한 기아도 ‘기아 2.0’ 전략을 통해 양적,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현대차가 이렇듯 인도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생산 기지를 만든 뒤 지속하지 못하고 밀려난 ‘뼈아픈 중국 시장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2016년 114만 대의 판매고를 올렸지만 2017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대대적인 보복 여파로 지난해 24만 대 수준으로 급감했다. 5곳에 달하던 현지 공장도 2곳을 매각해야만 했다.
지난해엔 중국 현지 직원수가 7745명으로 줄며 처음으로 인도(1만935명)에 밀렸다. 반면 인도는 1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7만3015명), 북미(1만9389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직원 수를 거느리고 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한때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현대차가 인도 시장을 ‘제2의 중국’으로 키우고 있다”며 “기업상장을 통해 현지 시장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면 향후 더욱 빠르고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