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과 위메프에서 촉발된 대규모 정산금 미지급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을 넘어선 가운데, 중소형 이커머스의 도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소형 이커머스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서 신규 투자가 줄며 경영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소비자들마저 외면하면서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티메프 사태 이후 정산금을 지급하지 못한 뒤 영업을 종료한 사례가 등장하면서 ‘제2의 티메프’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또한 티몬과 위메프의 대규모 정산금 지연 사태 이후 정부와 업계 등에서는 이커머스 업계의 긴 정산 주기에 대한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가구·가전 쇼핑몰 ‘알렛츠’ 돌연 폐업···사자마켓·1300k 서비스 종료 예정
11번가 정산 주기 앞당겨···소비자·셀러 대형 이커머스로···중소 플랫폼 위기
▲ 티메프 사태 피해자들이 8월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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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구·가전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알렛츠’는 8월 16일 홈페이지를 통해 영업종료 사실을 공지했다.
알렛츠는 “부득이한 경영상의 사정으로 8월 31일자로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다”고 적었다.
알렛츠 운영사인 인터스텔라의 박성혜 대표는 임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불과 2~3일 전만 해도 어떻게든 잘 버티면 ‘티메프’로 시작된 여러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최근 마지막 투자유치가 8월 15일 최종 불발되면서 더 이상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앞서 인터스텔라는 2020년 산업은행으로부터 20억 원 규모의 벤처 투자를 받았지만, 이후 추가 투자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알렛츠의 갑작스러운 서비스 종료 이후 소비자 환불 대응과 입점 판매자에 대한 정산이 이뤄지지 않자 피해 판매·소비자들은 박성혜 대표를 고소했다.
알렛츠 영업 종료 사태와 관련해 경찰에 접수된 신고가 103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서울 성동경찰서를 집중수사관서로 지정하고 알렛츠 운영사 대표를 출국금지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성동경찰서는 8월 19일 박성혜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알렛츠 관련 상담은 8월 5일부터 21일까지 모두 477건 접수됐다.
인터스텔라의 지난해 말 기준 감사보고서를 보면 자산이 113억 원인데 부채가 317억 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지난해 매출은 150억 원이지만 영업손실 규모는 104억 원에 달한다. 누적 결손금은 357억 원을 기록했다.
알렛츠만이 아니다. 중소형 이커머스 업체들의 서비스 종료가 잇따라 예고되고 있다. 버즈니가 운영하는 오픈마켓 쇼핑몰 사자마켓을 비롯해 NHN위투가 운영하는 쇼핑몰 ▲1300k ▲위투MRO ▲소쿱(SOKOOB) ▲1200m 등 4개도 9월 30일 사업을 종료할 예정이다. 1세대 해외명품 편집 쇼핑몰 한스타일(리앤한) 역시 오는 10월 4일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했다.
더욱이 여러 쇼핑몰에 동시에 입점해 사업을 영위하는 판매자들이 많은 만큼 이 같은 움직임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커머스 관계자는 “이커머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짐에 따라 신규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면 경영난이 지속될 수 있다”며 “여기에 파트너사들이 유동성 문제를 겪게 되면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산 주기 단축’ 추진
지난 7월 발생한 티몬과 위메프의 대규모 정산금 지연 사태 이후 정부와 업계 등에서는 이커머스 업계의 긴 정산 주기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와 유통업계에서는 ‘티메프 사태’의 가장 큰 원인으로 60~70일에 달하는 긴 정산 주기와 에스크로 방식을 도입하지 않아 판매자들의 정산 대금을 회사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었던 티메프의 구조적 문제를 꼽는다.
이에 따라 국회와 금융당국 등은 이커머스 업체들의 정산 주기를 40일 이내로 단축해 법제화하고, 에스크로(Escrow) 방식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에스크로란 플랫폼 업체가 결제 대금을 은행 등 제3자에게 입금해 중개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에스크로 방식은 플랫폼 업체가 판매자에게 결제 대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을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정산주기 단축 이전에 이커머스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정산 주기를 앞당기는 분위기다.
11번가는 상품 배송이 완료된 다음날 정산금의 70%를 우선 지급하는 ‘안심정산’ 서비스 시행하고 있다. SK스토아 역시 ‘고객사 케어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자체 재원으로 마련한 예치금을 기반으로 정산 주기를 기존 열흘에서 3일로 단축한다.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는 매달 1일과 15일 정산을 진행한다. 소비자가 구매 확정을 한 후 7일까지 환불이 발생하지 않으면 고정 정산일인 매월 1일과 15일에 대금이 지급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강제적으로 정산 주기를 단축하는 것은 중소 플랫폼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빠른 정산을 위해서는 재무 상태가 좋아야 하는데, 성장 단계에 있는 중소 플랫폼은 대규모 투자 유치를 하지 않는 이상 현금 유동성을 높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정산 주기 단축은 소비자들의 대형 이커머스 쏠림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 ‘티메프 사태’ 이후 중소 플랫폼 대신 11번가, G마켓 등 대기업 기반의 이커머스 업체로 소비자들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8월 10일 기준 11번가의 일간 사용자(DAU) 수는 약 161만 명으로 티메프 결제 기능이 정지된 7월 24일(114만명) 대비 약 40% 증가했다. 신세계그룹 이커머스 계열사 G마켓도 8월 1일부터 15일까지 여행 상품 카테고리 방문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42% 늘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티메프 사태’ 이후 불안감이 커진 소비자들이 가격 경쟁력 대신 상대적으로 재무 건전성이 뛰어난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판매자들 역시 쿠팡이나 11번가, G마켓뿐 아니라 알리익스프레스로도 많이 움직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정산 주기를 단축할 경우 상대적으로 현금 보유량이 적은 중소 플랫폼의 경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오픈마켓 사업자 갈 곳은?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 이후 중소 플랫폼 서비스 종료가 잇따르면서 오픈마켓의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셀러들의 대안으로 ‘자사몰’이 떠오르는 모습이다.
티몬과 위메프의 대규모 정산금 미지급 사태에 이어 1300k, 알렛츠 등 소규모 플랫폼들이 영업을 종료한 이후 이커머스 시장에 대한 투자가 얼어붙으면서 플랫폼의 미정산 사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입점 사업자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한 자영업자 온라인 카페에서는 “티메프 사태 이후 어느 오픈마켓을 입점해야 할지 고민”이란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오픈마켓은 중개 플랫폼에 판매자들이 모여 상품을 판매하는 구조다. 셀러 입장에서는 자사몰 구축에 비해 오픈마켓 입점이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번 티메프 사태로 인해 오픈마켓 정산 주기와 판매대금 관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자사몰 시대’가 도래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자사몰은 판매자가 직접 사이트를 운영하는 온라인 직판 채널이다 보니 사이트 구축과 관리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 다만, 자사몰은 수수료가 낮다는 특징이 있다.
정산지연 및 플랫폼의 신뢰도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셀러들이 오픈마켓 입점보다 자사몰 구축에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온라인 카페와 SNS(소셜 서비스) 등에서는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 추천 받는다”, “자사몰 운영할지 고민 중인데 장단점 알려달라” 등의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카페24 등 자사몰 구축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상황 역시 ‘자사몰 시대’ 도래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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