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큰 성공을 거둔 뒤 모완일(48) 감독은 더 편한 선택을 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다수 시청자가 좋아할 만한 대본을 골라 좀 더 예상이 가능한 작품을 만들었다면 스타 연출가라는 그의 입지는 한층 더 탄탄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상한 대본에 끌려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글을 잊지를 못해서 결국 연출하기로 했다. 그렇게 만든 작품을 내놓고 그는 계속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작품이 잘되면 얼마나 좋은지 이미 알고 있다. 솔직히 나는 속물적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웃음) 욕심이 많은데…결과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떨린다.”
8월 23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문제작이다. TV 드라마라는 건 대체로 부담 없이 틀어 놓고 누워서, 설거지 하면서, 손톱 깎으면서 편하게 봐도 상관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작품은 그게 안 된다. 각 잡고 앉아서 한 장면, 한 장면 집중해서 봐야 할 정도로 도무지 편하지가 않다. 각기 다른 두 가지 시간대, 겹쳐질 수 없는 두 가지 사건, 난데없이 발생하는 일들과 불쑥 나타나는 캐릭터들. 플롯은 복잡하다. 과거와 현재, 상상과 현실을 수시로 오가는 교차 편집 역시 피로감을 준다.
“왜 고민을 안 했겠는가. 당연히 보기 쉽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만드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이 작품이 아니라고 봤다. 날것의 매력이 모두 사라져 버릴 테니까.”
알려진 대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공모전 당선작이다. 모 감독에 따르면, 이 작품을 쓴 신예 손호영 작가는 이 대본을 쓰면서 영상화될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손 작가 스스로 자신이 시리즈물을 쓸 수 있을지, 이를테면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 이야기를 펼쳐본 것이고 그게 공모전에서 상까지 받게 된 것이지 영상화를 생각해본 적도, 그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모 감독은 “그래서 이 작품이 다른 작품과 달랐던 것”이라며 “작가를 만나 시리즈로 만들 것이라고 하니까 정말 황당해했다”고 말했다.
“참 불친절하고 이상한 글이었는데, 이상하게 내 얘기 같았다. 왜 그런 느낌을 받은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 게 작가의 필력일까. 살면서 참 힘들고, 혼자인 것만 같을 때가 있는데 그 느낌이 이 대본에 잘 표현돼 있다고 생각했다. 스토리는 이상해도 담고 있는 감정은 보편적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분명히 나처럼 이 작품에 동감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공개된 이후 반응은 극단으로 나뉘고 있다. 올해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고 상찬하기도 하지만 망작이라는 혹독한 평가도 있다. 한쪽에선 8회차 내내 이어지는 긴장감이 인상적이라고 얘기하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선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단 넷플릭스 공식 순위에선 TV쇼 비영어 부문 4위로 출발했다. 아직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공이나 실패를 얘기하긴 이른 시점이다. 모 감독은 “만든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게 정말 못난 얘기이지만 난 이 작품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잘 안 됐다는 걸 가정할 때, 다른 작품이라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잘 안 되면 정말 힘들 것 같다.(웃음) 그만큼 애정이 많다다. 선물 같은 작품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그 배우들은 모두 사랑스러웠고. 정말 좋은 스태프도 함께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모을 수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모 감독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두고 고민하던 때의 얘기를 꺼냈다. 선뜻 하자니 부담스러운 면이 있고, 안 하자니 이게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 버리는 걸 참기 힘들 것 같았다고 했다. 이 작품이 다른 사람 손에서 잘 나오면 잘 나온 대로, 못 나오면 못 나온 대로 오랜 미련으로 남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전작인 <미스티> <부부의 세계> 등을 연출할 땐 확신이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로는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어쨌든 좋은 대본을 만나서 행복했다. 행복했던 만큼 최선을 다한 건 맞다. 이 감독이라는 자리가 잘하기는 어려운데 망치기는 쉽다. 망친 게 아니라 잘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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