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젊은 게 아니라, 젊게 사고(思考)하는 것이다. ‘만년 청년’ 김수철(66)은 청년이란 틀에 박힌 단어를 항상 펄떡거리게 만드는, 언제나 ‘젊음의 적자’다. 1977년 데뷔한 그는 무엇보다 함부로 젊음을 정의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2집(1984년)에 실린 “젊은 그대 잠 깨어 오라”(<젊은 그대>)라는 노랫말은 그래서 노년의 명령이 아닌, 자연스레 젊음의 강령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수철이 가요 솔로 정규 9집 <난 어디로>(1991) 이후 33년 만인 최근 발매한 솔로 10집 <너는 어디에>는 나이듦의 훈수를 아끼는 대신 청년에 대한 공감이 넘친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아낌없이 주며 감응하는 ‘나무’ 같은 앨범. 10분짜리 곡을 담는 등 실험이 넘치지만, 그건 뽐내는 음악이 아니라 음악에 진 빚을 되돌려주는 노력이다.
33년 만에 솔로 10집 ‘너는 어디에’ 발매···10분짜리 곡 등 실험정신 넘쳐
청년을 향한 공감 곳곳에···뽐내는 음악 아니라 음악에 진 빚 돌려주는 노력
돈도 중요하지만 돈 주고 못 사는 것 있는 법···‘우리는 잃지는 말자’ 메시지
“놀러 간 적 없이 수십 년간 음악만 만들고 공부···발표 안 한 것 1000곡 넘어”
“내게는 음악만 있었지만 절대 후회 않는다···공부하는 사람에게 후회란 없다”
▲ 김수철이 33년 만에 발매한 솔로 10집 <너는 어디에>는 나이듦의 훈수를 아끼는 대신 청년에 대한 공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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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은 지난 30여 년 동안 개인 음반 대신 국악의 현대화에 천착해왔다. 그렇게 청년에게 자랑스럽게 전해줄 수 있는 ‘우리 소리의 긍지’가 담긴 문화 콘텐츠를 빚어냈다.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음악에만 천착해온 그의 삶은 음력(音歷)이 증거한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80년 친구들과 독립영화 <탈>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타를 가야금처럼 쳐서 음악을 만든 것이 장대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김수철은 대중적 감각이 있음에도, 스스로 대중성을 멀리했다. 영화 <고래사냥>의 주제곡 <나도야 간다>, 대중의 한을 달랜 <못다핀 꽃 한송이>,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의 OST <치키치키 차카차카>, 불멸의 응원가 <젊은 그대> 등 그는 마음만 먹으면 히트곡을 쏟아낼 수 있는 벼락 같은 ‘음악 천재’ 반열에 올랐었다.
하지만 독립영화 <탈>로 자신의 독자 장르인 기타 산조의 기반을 닦았고, <별리(別離)>는 김수철의 머나먼 ‘국악 항해’의 닻을 확실히 올렸다. 이후 실험과 파격에 대중화를 더하는 작업이 본격화됐다. <황천길> <불림소리> <팔만대장경> 같은 국악 앨범은 난해하기보다 국악에 대한 그의 확실한 견해였고, 우리음악에 묵직함을 더했다. 김수철이 참여한 영화 <서편제> OST는 무려 100만 장 이상 팔렸다.
지난해 10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연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는 국악 현대화 여정의 화룡점정이었다. 그렇게 ‘음악적 사명’을 우선시한 끝에 45주년 기념 음반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너는 어디에>가 나왔다. ‘작은 거인’의 거만하지 않은 팽팽한 음악적 긴장은 여전히 날이 서 있다. 이것이 진짜 젊은 음악이다. 다음은 최근 충무로에서 김수철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가 여전히 회자된다.
▲국악 현대화 프로젝트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줄 줄은 몰랐다. 그런데 1층 표가 1시간 만에 매진됐다. 내 주변에서도 보고 싶어 한 분들도 많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소방대원, 경찰, 집배원들을 무료로 초대하기도 했다. 약 40년간 국악 현대화를 위한 음악만 작곡했는데 그걸 공연 콘텐츠화로 시작한 의미도 있었던 무대다. 특히 이 무대로 탄력 받아 33년 만에 나의 가요 음반도 내게 됐다.
-첫 트랙 <너는 어디에>로 시작해 여덟 번째 트랙 <기타산조>까지 서사가 쭉 이어지던데.
▲<너는 어디에>는 어렸을 때 꿈 얘기를 하고, 외로우면 옆에 있어주고 격려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어디 갔을까에 대해 노래한 곡이다. 사회에 적응하면서 인생이 조금씩 달라지지 않는가. 여기서 꿈은 진짜 꿈일 수 있고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하루하루 먹고 살다 보니 바쁜데 그래도 ‘우리는 잃지는 말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돈이라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돈 주고도 못 사는 게 있으니까.
-‘나무들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로 시작하는 <나무>가 그 다음 두 번째 트랙이다.
▲우리는 함께 사는 세상으로부터 자꾸 멀어진다. 그래서 ‘나무의 참사랑’을 본받거나 담아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나무>의 가사가 이 앨범 전체 분위기의 핵심 메시지다. 나무는 다 주지 않는가. 함께 사는 세상이 너무 절실한 지금 나무의 참사랑이 필요하다.
-<아자자>는 3분26초짜리 트랙인데, 10분짜리 트랙 <야야아자자>를 줄인 건가?
▲원래 10분짜리를 타이틀로 하려고 했다. 후배들이 ‘형 미쳤어?’ 그러더라. ‘형 지금 틱톡 영상이 10초짜리야. 누가 10분을 들어?’라고들 했다. 그런데 어차피 나는 돈 안 되는 음악을 많이 했다. 10분짜리가 좋다. 이것 때문에 음반을 내려고 한 것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여기 다 있으니까. 그런데 MZ세대와 더 소통하고 싶었다. 그래서 10분짜리도 싣고, 3분짜리도 실었다.
젊은 세대들이 힘들고 불안한 때 아닌가. ‘우리 친구가 되자’고 제안하며 격려하는 노래다. 용기의 노래인 것이다. 사실 MZ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다 힘들다. 힘들고 어려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격려의 노래다.
-<그만해> 트랙은 대표곡 <정신 차려> 제목을 가사에 활용하기도 했던데.
▲요즘 다들 ‘전쟁이 일어나겠니?’ 하고 생각했는데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일어났다. 국내에서도 욕심 때문에 계속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옛날에는 ‘정신 차려’라고 했는데 지금은 다들 더 힘드니까 ‘그만해’라고 외치는 것이다.
-<휙> 트랙은 사운드 완성도가 너무 좋았다.
▲그렇다. 사운드가 좋은 곡이다. 세월이 너무 빨라 ‘휙’ 지나가니 ‘그만 다투자’는 곡인데, 우리를 구제할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다고 노래한다.
-<나무사랑>을 듣는 내내 울컥하더라.
▲<나무>의 오리지널이 이 노래다. <나무>는 뒤에 절규나 호소를 좀 덜한 거고, 내가 원래 주장하는 바는 이 <나무사랑>이다. 서정적으로 메시지를 조용히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 <기타 산조>는 김수철의 독자 장르다. 김덕수 사물놀이 팀과 함께한 기타·국악기 합주곡이다. 이 곡이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음반이 더 완결성을 갖췄다.
▲내가 싱글로 한두 곡씩 내면서 흥행을 보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앨범 전체를 봐야 나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싱어송라이터를 넘어서 1인 밴드로서 앨범 작업을 거의 홀로 한 건 진짜 대단하다. 그야말로 ‘장인 정신’이다.
▲이런 방식으로 작업한 게 <정신 차려>가 실린 앨범 <원 맨 밴드(One Man Band)> 이후 두 번째인데 <너는 어디에> <나무> 건반(최태완) 빼고, 드럼은 우리 집에 없으니까 컴퓨터로 찍은 것 외에 홀로 다 작업했다. 정말 쉬운 작업은 아니다. 홀로 덧입혀서 녹음을 해야 하니 계속 상상을 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 미치지 않으면 음악이 좋게 안 나온다.
-지난 6월 강원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 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것도 크게 화제가 됐다. 특히 MZ세대가 ‘젊은 세대’를 비롯한 김수철의 노래를 떼창하는 모습이 진풍경이었다.
▲사실 3년 전부터 페스티벌 섭외 요청이 왔는데 시간이 안 맞았다. 이번에 출연하게 됐는데, 그렇게 호응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MZ세대와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홍대 앞에서 소극장 정기공연을 열까 한다. 동서양 오케스트라 이후에 대형 공연 섭외 요청이 계속 오는데 거의 거절했다. 작은 공연으로 MZ세대를 더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년 청년’의 이미지라 젊은 세대에게 더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감히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없다. 항상 젊은 세대에게 ‘격려한다’ ‘응원한다’는 말밖에 해줄 게 없다. 당장 힘들어 하는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는가? 나이 든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이해하고 격려고 응원해야 한다. ‘우리 때는 이랬는데…’ 이런 말 자체가 소용 없다. 힘들어 하면 우선 받아주고 안아주는 게 먼저다. 소극장 공연을 계획한 것도 꼭 음악만 들려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하려는 것이다.
-어떻게 계속 깨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깨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어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과거 얘기를 하는 것도. 내가 옛날에 가수왕이었던 게 현재 활동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간단히 정보 정도만 전달하는 것이다. 우선 교감하며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작고한 김민기(학전 전 대표) 선생도 그렇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진정한 어른’들이 계셔 다행다.
▲김민기 형님은 훌륭한 작곡가·가수·뮤지컬 감독 이전에 먼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존경한다. 항상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나나 형님 역시 친분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우리가 친했던 것도 사람들이 잘 모른다. 2021년 개관 30주년 공연 때 ‘공연 좀 해줘’ 딱 이 한마디면 다 끝나는 사이였다. 그때 예정됐던 스케줄 다 정리하고 학전 30주년 공연을 바로 잡았다. 민기 형님이 내게 처음 부탁했던 것이었고, 나도 민기 형님을 사랑하니까 공연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참 멋지다.
▲그러니까 <너는 어디에>는 우정이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세종문화회관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 때도 양희은 누나는 물론이고 이적, 성시경, 백지영, 화사가 게스트로 와줬다. 정말 고마웠던 건 ‘나는 니네가 왔으면 좋겠다’ 딱 한마디만 했는데 그걸로 다 정리가 됐다는 점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분들 어떻게 다 모으셨어요?’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화사는 어린 친구인데도 의리가 정말 대단하더라. 이와 별개로 KBS에서도 놀랐다. <불후의 명곡> 할 때, 평소 이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없는 이적, 성시경이 출연했으니까. 후배들이 도와주는 건 내가 살아온 흔적이라 정말 감사하다. 내가 음악만 하는 선배니까 가능한 것 같다. 빌딩 몇 채 갖고 있는 부자였으면 그렇게까지 안 따랐을 것이다.
-영화·드라마 OST 작업도 많이 했다. <서편제> OST야 워낙 유명하지만 영화 <두 여자의 집> 등 재조명돼야 할 OST들도 많다.
▲너무 앞서가기도 했던 건 같다. 그래서 망했디. 하하. (<두 여자의 집> OST인) <외로운 침묵>의 가사는 내가 정말 좋아한다. 엄청 외로울 때 썼다. (영화 <성 리수일뎐> OST인) <아름다운 사랑>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김수철 음악’은 조명하면 할수록 새롭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돈 안 되는 음반 작업을 많이 했는지 알겠는가, 하하. 발표 안한 것만 해도 1000곡이 넘는다. 가요만 있는 게 아니고 국악 등 장르도 다양하다. 나는 놀러간 적이 없다. 수십 년 동안 계속 음악 만들고 음악 공부만 해왔다.
-한 우물만 파는 장인들은 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 내겐 음악만 있었다. 그걸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사람은 후회라는 게 없다.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악은 당연히 계속할 것이고, 가요 음반 발매 기간도 앞으로는 이렇게 길지 않았으면.
▲‘쉰 살까지는 작곡을 열심히 해야지’ 해서 했는데 그러다 보니 예순 살이 넘었다. 그동안 ‘국악 현대화’ 장르를 열심히 했고 다섯 종류 정도를 개척했다. 그 다음엔 클래식, 뉴에이지 대중음악을 공연문화 콘텐츠로 만들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들을 통해 MZ세대에게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고 싶다. 그들이 가질 만한 문화를 전해주고 싶다. 그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될지 안 될지 모르겠으니, 지금처럼 꾸준히 음악을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