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칩스법‘ 시행 2년, 반도체 산업 어디로 가나

‘칩스법’ 믿고 미국에 투자한 삼성전자·하이닉스 대략난감

인터넷뉴스팀 | 기사입력 2024/08/23 [16:04]

미국 ’칩스법‘ 시행 2년, 반도체 산업 어디로 가나

‘칩스법’ 믿고 미국에 투자한 삼성전자·하이닉스 대략난감

인터넷뉴스팀 | 입력 : 2024/08/23 [16:04]

“이제 미국은 세계 5대 첨단 로직, 메모리 및 첨단 패키징 공급업체의 본거지다.”(백악관 2주년 논평)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서 시작된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노력을 상징하는 ‘반도체 과학법(칩스법)’이 8월로 2주년을 맞았다. 칩스법 이후 미국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원하며 전 세계 반도체 제조·첨단 패키징 시설을 빨아들이고 있다. 첨단산업 제조 경쟁력을 높였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지만, 여전히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백악관은 최근 ‘반도체 과학법’ 시행 2주년을 맞아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 취임 이후 기업들이 반도체 및 전자 분야에 3950억 달러(536조 원) 이상을 투자하고 11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투자 유치 성과를 밝혔다.

 


 

트럼프, ‘반도체 보조금 축소’ 등 노골적 보호주의 발언으로 세계경제 충격파

미·중 패권 경쟁 ‘현재 진행형’···대통령 누가 되든 ‘미국 우선 경제’ 불 보듯

 

삼성·하이닉스, 미국 정부 지원 비율 높아···반도체 시장 유리한 고지 차지?

근무 문화충돌, 미·중 갈등 변수 작용···칩스법 시너지에 따라 시장공략 좌우

 

▲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미국은 반도체를 발명했고, 과거 전 세계 칩의 거의 40%를 생산하던 제조 강국이었지만 높은 인건비와 제조 원가 부담 등의 영향으로 현재 전 세계에 공급되는 반도체의 10%만 생산하고 있다.

 

특히 AI(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첨단산업의 중심이면서도 이들 산업용 반도체를 모두 국외에서 제조하고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거론돼왔다. 미국이 ‘반도체 과학법(칩스법, CHIPS Act)’을 제정하고 전 세계 반도체 기업에 총 39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을 살포하고 있는 이유는 자국 내에 제조시설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이 법의 보조금 수혜를 입은 우리나라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만 TSMC, 미국 인텔 등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현지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상태다.

 

백악관은 ‘칩스법 2주년’ 논평에서 “다른 어떤 국가도 2개 이상의 공급업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이제 미국은 세계 5대 첨단 로직, 메모리 및 첨단 패키징 공급업체의 본거지“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또한 “미국은 2032년까지 전 세계 첨단 칩 공급량의 거의 30%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칩스법 덕분에 미국은 다시 한 번 우리 삶에 동력을 제공하는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대담한 베팅? 中 자립 부채질?

 

그러나 칩스법 2주년 성과와 관련해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최근 발간한 칩스법 성과 보고서를 통해 “2022년 8월 칩스법 제정 후 10년 후인 2032년에는 미국의 첨단 칩 제조 용량이 3배 이상 늘어 글로벌 점유율이 28%를 차지할 것”이라며 “만약 칩스법이 없었다면, 같은 기간 점유율은 9%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밝혔다.

 

존 뉴퍼 SIA CEO(최고경영자)는 “칩스법은 미국의 역사 흐름을 바꾸고, 경제와 국가 안보 등을 위해 더 많은 반도체 프로젝트를 유치할 수 있다는 일종의 대담한 도박이었다”며 “지금까지는 그 베팅이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반면 기업들의 투자 계획이 모두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과학법’에 따라 공표된 주요 제조업 투자 가운데 약 40%가 지연 또는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FT>는 시장 상황 악화, 수요 감소, 미국 대선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변경한 것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미국의 강력한 수출 통제 정책에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점 역시 논란을 낳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 봉쇄에도 불구하고 AI 칩과 첨단 메모리 반도체 자급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중국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 ‘어센드 910C(Ascend 910C)’의 성능이 엔비디아의 ‘H100’과 성능이 비슷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이 규제에 나설수록 중국 반도체 기업들도 자립화에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고래 사이 새우’ 삼성·하이닉스

 

‘10조 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칩스법’ 시행에 따라 미국 정부로부터 받게 된 지원 규모다. 두 회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 비율은 대만 기업 TSMC 등 경쟁사보다 높은 만큼 미국 반도체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건설 자재비를 감당해야 하는데다 최근에는 업계에서 미국 근로자와의 ‘근무 문화 충돌’, ‘대중국 투자 제한’ 등이 문제로 떠오르면서 안정적인 미국 투자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 회사는 미국 정부와의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 추가 지원을 이끌어내고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도록 대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8월 초 SK하이닉스의 미국 인디애나주 반도체 첨단 패키징 생산 공장에 총 9억5000만 달러(1조3000억 원)를 지원한다는 예비거래각서(PMT)에 서명했다. 직접 보조금은 4억5000만 달러(6200억 원)이며 대출은 5억 달러(6900억 원) 규모다.

 

이와 함께 미국 재무부는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투자하는 금액의 최대 25%까지 세제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미국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는 데 38억7000만 달러(5조3400억 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도 지난 4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 진행 중인 파운드리 공장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해 64억 달러(8조8000억 원)의 보조금이 확정됐다. 현재 미국 정부와 추가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한국 기업은 경쟁사보다 보조금에서 비교적 우대를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의 전체 미국 투자금 중 보조금 비율은 14.2%, SK하이닉스는 11.6%다. 인텔(8.5%)과 TSMC(10.2%)보다 높은 수준이다.

 

투입해야 할 자체 비용이 줄어든 만큼 공장 건설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추가 투자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테일러 공장을 기반으로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를 고객사로 적극 유치할 예정이다. 미국에는 엔비디아, 애플, AMD 등 빅테크 기업이 포진하고 있는데다 첨단 반도체 수요 확대로 생산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미국 공장을 거점으로 삼아 고대역폭 메모리(HBM) 고객사들을 끌어모을 전망이다. 또 현지의 퍼듀대 등 연구기관과 협력해 첨단 반도체를 연구·개발한다는 방침이다.

 

▲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그러나 넘어야 할 산 많아

 

하지만 이들 기업의 미국 투자가 마냥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미국 내 인건비와 자재비가 크게 올라 감당해야 할 공장 건설 비용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평균 임금은 7만7463달러로 한화로 1억 원을 훌쩍 넘는다. OECD 평균 임금 5만3416달러를 웃도는 수치다.

 

특히 최근에는 현지 근로자들과의 ‘문화 충돌’로 인해 공장 운영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TSMC의 미국 애리조나 사업장에서 대만 관리자와 미국 근로자 간의 문화 충돌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차이는 있지만 대만과 한국은 긴급 상황 발생 시 늦은 밤에도 근무를 하는 등 엄격한 근무 조건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대규모 현지 인원을 채용할 예정인 만큼 현지 인력과의 원활한 소통이 필요한 상태다.

 

이 밖에도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의 대(對)중국 투자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 산업계는 8월 초 미국 재무부에 한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가 막히지 않도록 규정을 명확히 해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두 회사는 수출·생산 등 중국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만큼 미국·중국 정부와 원활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와 협의해 얼마나 시너지를 잘 내는지가 관건”이라면서도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만큼 미리 대응책을 짜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새로운 청구서 내밀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선전으로 미국의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칩스법’ 실행 로드맵에도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중국 견제라는 미국 정부의 ‘대전제’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트럼프 집권 시 자국 기업 우선주의가 더 강화되거나 대중국 수출 규제 동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오는 11월 5일 치러지는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 이후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혼전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을 대신해 나온 민주당 카말라 해리스 후보(현 부통령)가 당선된다면 칩스법은 큰 틀에서 변함 없이 정책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당선 이후 국제협약인 ‘파리 기후변화 협정’에서 탈퇴하는 등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친환경 정책 기조를 급전환한 사례가 있다.

 

현재로선 축소 또는 폐지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와 자국 제조업의 활성화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주요 공약이다. 이미 양당의 합의로 관련 법이 미국 의회를 통과한 만큼 보조금 지급 자체를 번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보조금 청구서···업계 촉각

 

하지만 보조금 ‘청구서’가 달라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대만이 우리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다”면서 “대만이 미국에 새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미국이 수십 억 달러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보조금 지급을 결정한 바이든 행정부를 겨냥한 발언이지만, 보조금 지급에 따른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업계에 회자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경우 동맹국·파트너의 중요성에 따라 자국은 물론 동맹국과 연계한 공급망 강화를 추진해 왔지만, 트럼프의 경우 자국 중심주의가 한층 더 강화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조금 지원 기업에 금액에 따른 추가 투자를 요구하거나,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자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도 동원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만일 미국이 추가 투자를 요구한다면 현지의 높은 인건비, 규제 준수 비용 등으로 인해 투자 대비 수익성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도 지난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보조금을 안 준다면 우리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는 입장을 밝혀, 미국 현지 투자가 보조금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반도체 보조금을 빌미로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거나, 대중국 무역 통제 동참을 더욱 강도 높게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생산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으로서는 설비 투자나 사업 운영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다만 트럼프 후보의 강도 높은 대중국 규제로 중국 제품에 대한 미국의 무역 장벽이 강화되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심화될수록 세계의 제조기지로서 중국의 역할은 지금보다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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