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줍줍’으로 불리는 아파트 무순위 청약이 과열되고 있다. 최소 수 억 원에서 최대 수십 억 원의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로또 청약’이 동시에 진행되면서다. 청약 신청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한국부동산 ‘청약 홈페이지’는 온종일 접속이 마비되고, 결국 청약 접수 마감 시간을 하루 더 연장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단지와 무순위 청약 아파트를 중심으로 청약 광풍이 몰아쳤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7월 29일부터 이틀간 진행한 동탄역 롯데캐슬 전용면적 84㎡ 1가구 무순위 청약에 294만4780명이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동탄역 롯데캐슬 아파트 1가구 모집에 무순위 청약 294만 명 몰려 ‘광풍’
신축 분양가 상승·집값 상승·주택공급 부족 우려 높아 시세 차익 기대감↑
청약홈 마비 사태까지 빚어지자 “청약이 로또보다 더 사행성” 볼멘소리
수도권 청약 폭주하지만 지방은 미분양 6만가구 육박···TK 1만7000호 적체
▲ 2017년 최초 분양 당시 동탄역 롯데캐슬 모델하우스에 몰린 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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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순위 청약은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분양가(4억8200만 원)가 주변 시세보다 낮아 10억 원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300만 명에 가까운 청약자가 몰렸다는 분석이 부동산 업계에서 나왔다.
동탄역 롯데캐슬은 역대 최고 경쟁률과 역대 최다 청약 신청 등 기존 기록들을 모두 갈아치웠다. 기존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단지는 지난해 6월 청약을 진행한 서울 동작구 ‘흑석 자이’로, 2가구 모집에 93만4828명이 신청했다. 또 최다 신청자 기록은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가 세웠다. 무순위 청약 3가구 모집에 101만3456명이 신청한 것이다.
또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도 7월 31일 진행된 1순위 서울지역 청약에서 178가구 모집에 9만3864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527.3대 1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59B 유형은 16가구 모집에 2만5678명이 몰려, 1604.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래미안 원펜타스는 7월 30일 진행한 특별공급 청약에서 114가구 모집에 4만183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은 352.5대 1을 기록한 바 있다.
“일단 넣고 보자” 청약홈 마비
청약시장에선 공사비 상승에 따른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는 데다, 수도권을 중심을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에 오르고, 주택 공급 부족 우려마저 더해지면서 수요자들의 불안이 청약 과열로 이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신축 아파트 분양가와 청약 경쟁률이 치솟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서울 3.3㎡당 분양가는 4882만 원이었다.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서울 아파트 1순위 평균 청약경쟁률은 167대 1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1순위 평균경쟁률인 51대 1 대비 3배 이상 높은 셈이다.
또 무순위 청약이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내 집이 필요한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가 더욱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집값 안정이라는 분양가 상한제의 취지가 무색하게 무순위 청약으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순위 청약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무순위 청약에 300만 명 가까운 청약자가 몰린 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며 “최소 수 억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 심리가 반영되면서 청약시장 왜곡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지나친 청약 과열은 무순위 청약 제도의 본래 취지를 저해한다”며 “시세 차익의 일정 비율을 국민주택 채권을 사도록 하는 등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최근 1가구 무순위 청약 모집을 마친 동탄역 롯데캐슬은 역대 최고 경쟁률과 역대 최다 청약 신청 등 기존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사진은 동탄역 롯데캐슬 분양 당시 홍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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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경품 추첨 행사 아니냐
최근 경쟁률이 300만 대 1에 육박하는 ‘로또 청약’이 나오고, 시세보다 저렴한 일부 알짜 단지에만 신청자가 몰리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무순위 청약, 분양가 상한제 등 청약제도에 대한 개선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동탄역 롯데캐슬‘ 무순위 청약에 신청자가 역대급으로 몰린 것은 해당 청약이 통장가점이나 연령, 거주지 제한 등이 없는 ‘무순위 청약’으로 나왔고, 실거주의무 및 전매제한도 적용되지 않은데다 공급가격이 2017년 분양 당시 수준(4억8200만 원)에 불과해 현 시세(약 16~18억 원) 대비 최대 10억 원의 시세 차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기 때문이다.
또 같은 시기 청약을 진행한 서울 서초구 ‘반포 래미안 원펜타스’의 경우 규제지역 내 민간택지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서 각각 전용 84㎡ 기준 분양가(23억3000만 원)가 인근 시세(40억 원대) 대비 최대 20억 원 저렴하다는 평가가 나오자, 특별공급과 1순위 청약을 합쳐 총 292가구 모집에 13만4047명의 인파가 몰렸다.
그러자 청약자들 사이에서는 청약 시장을 두고 “이 정도면 대국민 경품행사 아닌가”, “로또보다 더 사행성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는 볼멘 소리가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당첨자가 이미 내정돼 있다”는 근거 없는 조작 루머까지 퍼지는 등 회의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도 “아무리 로또 청약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몰리는 게 맞나 싶다”며 “일부 청약에 대비한다고 청약홈 서버 용량을 청약 가입자 수만큼 늘리자니 또 정부 재원이 낭비될 우려도 있다”고 토로했다.
분양가상한제는 지난 1999년 분양가 자율화 시행 이후 주택 가격이 급등하자 2005년 정부가 투기수요 억제와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시행한 제도다. 현재 공공택지와 규제지역(서울 용산·강남·서초·송파) 내 민간택지의 경우 기본형 건축비와 택지비, 건축가산비, 택지가산비 등 네 가지 요소를 고려해 분양가가 일정 금액 이하로 제한된다.
그러나 최근 공사비 및 집값 급등으로 분양가 상한제 적용 단지의 공급가격과 인근 시세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실수요뿐만 아니라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또 이미 집값이 수 억 원 이상 오른 알짜 단지에서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무순위 청약 등 일명 ‘줍줍’ 청약이 나오는 경우 무분별하게 청약하는 이들이 몰리면서 시장 왜곡도 발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청약 과열 방지를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보완하고 무순위 청약도 최소한의 기준을 만드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서울의 경우 특히 강남권을 중심으로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고 있다 보니 시장과 별개로 분양가 상승을 제한하고 있는 부분이 청약 과열을 시키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해 분양가가 아무런 제재 없이 임의적으로 산정될 경우 분양가가 또 치솟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심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 팀장은 “사실 분양가상한제는 공공택지에서는 합리적이지만 민간택지에는 비합리적인 규제다. 그로 인해 주택들이 수요에 비해 저급화되고 조합원들의 사업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유지하되 분양가상한제는 완화해 실거주자만 살 수 있도록 하면 고급화 주택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토부는 최근 분양가상한제 제도 개선을 위한 용역을 준비 중이다. 다만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 극단적인 방법은 취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일부 청약이 로또가 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분양가상한제 자체가 의미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현재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에 대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택지비 및 기본형건축비 등 요소가 사업별로 어떤 비율로 달라지는지 파악하기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며, 상한제를 폐지해 분양가를 인위적으로 올릴 생각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폭주···지방은 미분양
수도권 청약은 많게는 수백 만 개의 청약통장이 몰리지만 지방에는 여전히 미분양 매물이 쌓여 있다.
실거주 수요와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수요를 충족하는 수도권 청약 매물은 ‘로또’로 불리며 각광을 받지만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되지 못하는 지방 아파트는 브랜드 단지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부동산R114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청약을 진행한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94.2대 1을 기록했다. 3698가구 모집에 총 34만8443명이 접수했다. 수도권 11개 단지 중 60%가 넘는 7개 단지는 1순위에서 마감됐다.
그러나 지방은 총 3139가구 모집에 2만7747명이 접수해 평균 경쟁률 8.8대 1을 기록했다. 총 7개 단지 중 유일하게 미달 없이 흥행에 성공한 충북 청주 ‘청주테크노폴리스아테라’(47.4대 1)를 제외하면 1대 1 수준이다.
올해 1~7월 누적치를 살펴보면 수도권 분양시장은 1순위 평균 22.47대 1 경쟁률을 보였다. 12개 단지가 분양했던 서울은 148.87대 1 경쟁률을 보였다. 비수도권 광역시(1.57대 1) 및 지방도시(12.04대 1)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서울 강남3구의 청약시장은 높은 분양가에도 분양가 상한제로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이 지역 아파트의 1순위 청약 경쟁률은 2019년 42.45대 1 수준이었으나 2020년 87.99대 1로 올랐고 2021년 161.23대 1→2023년 152.56대 1 등 세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2월 서초구 ‘메이플자이’의 1순위 평균 경쟁률은 442.32대 1, 지난 7월 이뤄진 래미안 원펜타스 1순위는 527.3대 1이라는 경쟁률이 나왔다.
이처럼 청약시장이 양극화되는 동안 지방에는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2024년 6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7만4037호로 전월 대비 190호(2.6%) 늘었다. 특히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도 1만4856호를 넘어 11개월째 증가세를 보였다. 지방의 미분양 물량은 5만8986호로 전체 미분양 중 79.7%, 준공 후 미분양은 1만1965호로 역시 전체 80.5%를 차지한다.
비수도권에서는 ‘미분양 무덤’이라 불리는 대구가 9738호가 가장 많고 경북 7876호로 그 뒤를 이었다. 충남 5536호, 경남 5217호, 부산 5205호, 강원 4740호도 상당한 미분양 물량이 쌓였다. 강원 미분양은 4740가구로 전월 대비 1101가구(30.3%), 대전은 3299가구로 761가구(30%) 늘었다. 수도권이라도 경기 평택, 안성, 이천 등 공급이 많고 상대적으로 서울과 거리가 먼 지역은 미분양 물량이 늘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의 공급 가뭄으로 인해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가격 경쟁력 있는 단지에 청약 통장이 몰리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하반기 민영 분양물량은 약 12만 가구로 지난해 하반기보다 13% 줄었다. 특히 서울 하반기 공급 물량은 1만3999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8458가구) 대비 24% 감소할 전망이다.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래미안 레벤투스’와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잠실르엘’을 비롯해 서울 서초구 방배동 ‘디에이치방배’ 등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청약 수요자의 관심이 높은 단지들의 분양이 예정돼 있다.
주승민 한국부동산원 부연구위원은 “수도권 미분양은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 금방 해소될 수 있지만 지방은 다르다”며 “비수도권은 현재 대구시가 인허가를 사실상 금지하다시피 한 것처럼 강한 공급 조절 정책을 해야만 일부 미분양 해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