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감독과 관심사 비슷···그의 생각 잘 안다”
“불가능합니다.” 배우 탕웨이에게 김태용 감독의 다음 작품에도 참여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거절할 수도 있느냐고 했다. 탕웨이는 ‘하겠다’거나 ‘하지 않겠다’는 답변 대신 이렇게 말했다.
2011년 김 감독의 영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3년 뒤 결혼했다. 그리고 탕웨이는 남편이 13년 만에 내놓은 새 영화 <원더랜드>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김 감독이 <원더랜드>를 포함 장편영화 4편을 만들었으니까 절반을 탕웨이가 주연배우로서 책임을 진 것이다. 그리고 탕웨이는 김 감독이 제안하기만 하면 다음 작품에서도 연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그분의 사고, 그분의 생각을 잘 안다. 김태용 감독과 공통된 흥미와 관심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들을 감독님에게 던지기도 한다. 그러면 감독님은 나 대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나와 공유하고 대화한다. 음…이건 정말 행운이다.”
<원더랜드>는 이 부부가 살아가는 바로 이 방식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김 감독은 약 10년 전 AI 관련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AI에 대한 대화와 아이디어 공유는 탕웨이·김태용 부부의 일상이 됐다.
탕웨이는 “감독님이 이 이야기를 구상할 때부터 관련된 얘기를 나눴다”며 “내가 마치 감독님의 실험 대상이 된 것 같았다”고 했다. 앞서 김 감독은 탕웨이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배우”라고 표현했다. 이 얘기를 그에게 전하자 탕웨이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정작 질문을 많이 한 게 누군데!”
“감독님은 내게 정말 많이 물어봤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너라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썼을 것 같은가, 어릴 때 네 꿈은 무엇인가, 심지어 내가 말하는 걸 녹음하기도 했다. 대화를 하다가 운 적도 있는데 그때도 녹음을 했다니까.(웃음) 내 안에서 뭔가를 계속 끄집어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누가 누구한테 질문을 했다는 건가!”
이렇게 완성된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AI로 되살려 화상통화를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한 마디로 만나지만 못할 뿐 죽은 사람을 계속 만날 수 있고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탕웨이는 ‘바이리’ 연기를 펼쳤다. 죽음을 앞둔 바이리는 어린 딸과 손녀를 홀로 키워야 하는 엄마를 위해 자신을 AI로 남기기로 한다. 하지만 바이리도, 바이리의 딸도, 바이리의 엄마도 이 서비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
모녀 3대로 이뤄진 이 가족은 아마도 실제 탕웨이의 가족 관계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하다. 탕웨이는 외동딸이고, 탕웨이의 딸 역시 외동딸이다. 탕웨이의 어머니 역시 외동딸이라고 한다. 탕웨이는 “나와 엄마 그리고 딸의 관계가 영화 속 모습과 굉장히 비슷해서 자연스러운 몰입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배경이 있어서인지 탕웨이는 다른 모든 부분에선 김 감독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쪽이었지만, 엄마 역을 맡을 배우와 딸을 연기할 배우를 선택할 땐 적극 개입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완성된 호흡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세 모녀 케미스트리는 <원더랜드>의 클라이맥스에서 특히 빛난다. 이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될 때 영화는 감정적으로 최고조에 이르고, 갖가지 질문을 동시다발로 쏟아내며 관객을 고민에 빠지게 한다. 이 작품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에 관해 말하기도 하며, AI를 통한 관계 복원에 대한 탐구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탕웨이는 “AI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 관계의 가능성을 펼쳐나가는 영화”라며 “감독님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담아내려 한다”고 말했다.
“아까 나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고 했는데, 감독님은 마치 과학자같았다. 꼼꼼하게 연구해서 그 결과를 영화에 다 담으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예술가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 영화에 담아냈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감독님 옆에서 그가 다양한 시도를 해나가는 모습을 봤고, 그걸 즐겼다.”
탕웨이는 김 감독과 익숙한 관계가 되면서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짧아진 건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는 “<만추>를 할 땐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알게 된 사이니까 서로 알아가야 할 게 많았으니까. 작품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젠 그런 시간이 짧아졌다.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평소에도 알고 있으니까. 참 좋은 작업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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