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고 사회적 갈등이 격화되는 등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비상 진료체계 지원을 위해 1800억 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 지원이 3월부터 매달 이뤄지고 있다. 3월부터 5월까지 약 5000억 원이 투입됐으며 6월 이후 추가 지원하는 방안도 현재 이달 말로 예정돼 있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여기에 정부는 3월에 예비비 1285억 원도 편성했다. 이 돈을 합치면 전공의 이탈로 인한 공백을 막기 위해 국고·건보를 통해 7000억 원 이상이 쓰이는 셈이다.
비상 진료체계 유지 매달 1800억 건보 재정 투입···종합병원 3~4개 지을 돈
빅5 병원마저 무급·희망 퇴직 등 비상 경영···간호사 등 다른 직종에도 피해
환자들 피해 더 막심···수술지연 피해 신고 451건···“불필요한 사회 비용 계속”
▲ 5월 17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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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전공의 이탈로 인한 공백을 막기 위해 7000억 원 이상을 투입했다. 이 돈은 의료 인력의 야간·비상 당직 인건비, 전공의 공백에 대처하기 위한 의료 인력 채용, 중증도에 따른 환자 회송, 구급차 이용료,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및 군의관 파견 등으로 쓰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3~4월 의료 수입이 급감한 병원을 대상으로 7월까지 건강보험을 선(先)지급하는 추가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5월 20일부터 신청 접수를 받고 있다.
막대한 건보료 투입 부적절
비상 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지만, 전공의 이탈로 인해 막대한 규모의 건강보험료와 국고가 투입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무상의료운동본부에 따르면 500병상 규모의 소위 ‘괜찮은 종합병원’ 수준의 공공병원 1개를 짓는데 약 2500억 원이 필요하다. 종합병원급의 공공병원 3~4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 비상 진료체계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건강보험료는 세금이 아니라 우리가 아플 때 병원 가서 쓰려고 모아놓은 돈이다. 지금 우리가 병원도 못 가는 상황에서 월급이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의사들의 파업 때문에 이 돈을 써야 한다는 건 굉장히 부당하다”고 말했다.
전공의와 의사를 제외한 다른 직종의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병원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무급휴가 또는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5 병원’으로 꼽히는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등은 이미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무급 휴가 등에 나섰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희망퇴직을 시행하기로 했다. 경희의료원은 6월부터 급여 지급 중단과 희망퇴직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5월 14일 결의대회를 열고 “병원은 앞다퉈 비상경영 체계를 선언하고 병동을 통폐합하거나 무급 휴가, 강제 연차를 강요하고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이은영 경희의료원지부장은 “전공의가 빠져나가면서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무급휴직, 병동 폐쇄 등 각종 방법으로 감내해 가고 있다”고 전했다.
환자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5월 14일 기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는 총 720건의 피해신고서가 접수됐는데 수술 지연 451건, 진료 차질 140건, 진료 거절 94건, 입원 지연 35건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법률 상담을 지원한 건수도 300건에 달한다.
사회적 갈등과 피해가 심화되자 서울고등법원은 이례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대한 근거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판결 전까지 의대 증원 절차를 보류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의료 대란이 장기화되면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계속 지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3월 13일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의 텅 빈 강의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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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명 전문의 취득 1년 연기
1만 명에 달하는 전공의들의 전문의 취득이 1년 연기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에서 이탈자가 얼마나 복귀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5월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제5조 및 시행규칙 제4조에 의해 전공의는 수련 연도 내에 수련 공백이 발생하면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하며, 시행규칙 제10조 및 11조에 따라 추가 수련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할 경우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된다.
전문의 시험은 매년 1월 시행되는데 원칙적으로 학기가 끝나는 2월까지 수련을 마칠 수 있는 전공의를 대상으로 하고, 예외를 두더라도 5월까지는 수련 기간을 다 채워야 한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은 지난 2월 19일부터 집중적으로 의료 현장을 이탈했다. 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2월 19일 기준 근무지 이탈자는 1630명이었으며 2월 20일 7813명으로 급증했고, 2월 21일 8024명, 2월 25일 9006명으로 늘어났다. 1만 명에 가까운 전공의들이 5월 안에 복귀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내년 1월 전문의 취득이 불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도 5월 1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3개월 지난 시점으로 계속 현장에서 이탈하면 전례를 비쳐봐도 시험 응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의 신규 취득자가 1만 명 가까이 이탈하게 되면 필수의료를 포함한 의료계 인력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전공의 개인에게도 진로가 1년 지연되는 것은 물론이고, 내년에 기존 인원들과 함께 수련을 받게 되면 수련의 질이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
여전히 전공의들의 복귀는 감감 무소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5월 14일 기준 100개 수련병원 레지던트 9997명 중 출근을 하는 인원은 633명에 불과하다. 5월 9일 기준 595명보다 5일 사이 38명 증가했지만 그 규모는 미미한 실정이다.
5월 16일 의대생과 전공의 등이 신청한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항고심에서 서울고법이 기각·각하를 결정하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음에도 대거 복귀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의사·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오히려 기각이 낫다. 단일대오를 유지하자”는 반응이 나왔고 의료계 법률대리인은 즉각 재항고 의사를 밝혔다.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아 전문의 배출이 지연되면 사회적 피해와 함께 전공의 개인에게도 피해가 간다.
복지부가 5월 10일 정부에 제출한 의사인력 임금추이 자료에 따르면 전공의를 제외한 요양기관 근무 의사인력 평균연봉은 3억 원을 넘는다. 표시과목별로 보면 안과의 경우 평균 임금이 6억1500만 원, 정형외과는 4억7113만 원에 달한다. 안과 희망자의 경우 전문의 취득이 1년 미뤄지면 단순 산수적으로 6억 원의 손해를 보는 셈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개인적 손해를 감내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 정도 대규모 인원을 다 징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추가 시험 응시 기회 등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를 대상으로 구제를 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근무지 이탈 기간에도 휴가나 병가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인정을 받았다면 그 기간만큼은 추가 수련 기간에서 제외할 수 있지만 의대 증원에 반발해 무단 이탈한 기간은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5월 17일 브리핑에서 3개월 이상 이탈한 전공의 대상 구제책을 별도로 마련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거나 줄일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복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는 “5월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정말 법적으로 어떻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보인다”며 “수련 1년이 늦어지면 사회가 받는 데미지보다는 전공의 본인이 받는 손해가 더 큰데,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5월 16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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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아웃 전공의’ 대비해야
석 달째 의료 현장을 이탈 중인 전공의들이 복귀가 불투명한 상태로 지속되면서 전공의가 없이 의료 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대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5월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5월 16일 기준 근무 중인 레지던트는 617명으로 전체 9996명 중 6.2%에 그친다. 5월 14일 기준 633명보다 오히려 16명 감소했는데, 일자별 증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추세적으로 복귀가 미미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전공의는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추가 수련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된다. 이번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은 지난 2월 19일부터 집중적으로 현장을 이탈했기 때문에 5월 넷째주 안에 복귀하지 않으면 이들의 전문의 취득은 1년 지연된다.
이 경우 내년도 신규 전문의 약 3000명 공급에 차질이 빚어져 주로 대형병원인 수련병원 중심으로 인력 공급 체계에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설령 이들이 대거 복귀를 하더라도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미이행에 따른 의사 면허 정지 행정처분을 원칙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서 일정 기간 업무 공백이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기약 없는 전공의 복귀보다는 전공의 없이도 의료 체계가 정상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이제는 전공의가 돌아오길 기대하기 보다는 정부가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고 싶다면 전공의가 없는 상황을 ‘뉴 노멀’로 두고 의료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전문의 중심 병원과 의료 전달체계 확립이 꼽힌다. 국내 최고 병원으로 소위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 소재 주요 5대 병원의 경우 전체 의사 인력 중 무려 40%가 전공의로 채워질 만큼 값싼 노동력인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다.
의료 전달체계의 경우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혀왔는데, 2차 병원이나 지역 내 종합병원을 건너뛰고 서울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려 환자 쏠림 현상 및 지역의료 붕괴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27년까지 국립대병원 전임교수 정원을 현재보다 1000명 이상 증원하고 의료기관 설립 시 의사 배치 기준을 개정해 전문의를 더 많이 고용하도록 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전문의 고용을 확대하고 전공의 위임 업무를 축소하는 시범사업을 국립대병원과 지역 수련병원 중심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의료 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상급종합병원이 중증·고난도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송·회송 수가를 적용 중이며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라도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전문병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내 1~3차 의료기관 진료 연계를 강화하고 3차 의료기관 이용을 위해선 2차급 병원에서 진료 의뢰서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다만 의료 인력의 대체 자원은 충원이 더딘 상황인데, 2월 말 약 9000명이던 진료지원 간호사는 4월 말 기준 1만1395명으로 2000여 명 늘어나는 데 그쳤고 복지부가 4월 16일 국립중앙의료원에 개소한 시니어 의사 지원센터는 개소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채용이 이뤄진 사례가 없다.
정 위원장은 “(전공의 이탈로) 이렇게까지 문제가 불거졌는데, 전공의가 돌아온다고 해서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 이제는 전문의 중심 병원의 정확한 모형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전공의가 없는 상황에서 의료체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청사진을 잘 제시해야 국민들도 의료개혁을 믿고 지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