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의 새로운 수장으로 전영현 부회장을 깜짝 선임하며, DS부문이 이전과 완전히 다른 리더십을 맞게 됐다. 전 부회장은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두루 경험한 반도체 전문가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특히 다양한 신기술 개발 경험이 풍부해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AI(인공지능)용 반도체 시장에서 완전히 다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삼성SDI 배터리 사업을 반석에 올려놓은 인물로 사업적 감각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 출신 전영현 선장 기용···HBM 등 차세대 AI 메모리 주도권 탈환 특명
반도체 부문 수장 임기 갈수록 단축···권오현 7년→김기남 5년→경계현 3년
비상 경영 와중에 위기 경보···글로벌 반도체 전쟁 중 수장 교체 특단조치
▲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수장을 ‘원 포인트’ 인사로 교체한 배경에는 조직 안정은 물론 긴장감을 불어 넣으려는 의지가 읽힌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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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현 신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은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 성공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다.
전 부회장은 지난 2000년부터 삼성전자 메모리연구소 D램 2팀장과 반도체총괄 메모리연구소 D램 설계팀장, 메모리 D램 개발실장,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 메모리사업부장 등을 역임한 반도체 전문가다.
삼성전자가 전 부회장을 새 DS부문장에 발탁한 배경도 이런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 부회장이 AI용 고성능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탈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전 부회장은 특히 삼성전자에서 다양한 ‘신기술 개발’을 이끈 인물이다. 50나노미터(㎚·10억 분의 1m)급 1GB D램을 개발한 공로로 2008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대한민국기술대상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20나노와 18나노급 D램 미세공정 개발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30년 넘게 메모리 시장의 1등을 지키고 있지만, 최근 AI용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서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HBM은 SK하이닉스로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4세대 HBM(HBM3) 이후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아직 뚫지 못한 엔비디아의 공급망을 최근 미국 마이크론까지 뚫자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의 90%를 확보한 엔비디아, 초미세 공정 시장을 장악한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 등과의 협력 관계를 통해 HBM 시장에서 우위가 굳건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전 부회장의 풍부한 경영 노하우로 위기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뜻이 이번 ‘원 포인트 인사’의 핵심이다.
전 부회장 등판으로 조직 안정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전 부회장은 반도체 전문가임에도 지난 2016년 삼성전자와 계열사인 삼성SDI가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사고로 위기를 맞자, 이듬해 삼성SDI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후 5년간 삼성SDI 대표를 역임하다 지난해 삼성전자에 다시 복귀했다.
전 부회장이 SK하이닉스의 전신인 LG반도체 출신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전 부회장은 LG반도체가 1999년 반도체 빅딜로 당시 현대전자에 합병되자 회사를 떠나 삼성에 몸담았다.
LG 출신이 삼성전자 DS부문장에 오른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으로, 업계에서 기술 인재를 중용하는 삼성전자의 인사 원칙이 발휘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3년 2월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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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부문장 임기 점점 단축
삼성전자가 DS부문 수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경계현 사장은 전영현 부회장이 맡아오던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옮겼다.
이로써 경 사장은 2022년 DS부문장에 오른 지 만 3년을 채우지 못한 채 반도체 수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는 그만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변화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 사장 이전에 DS부문을 이끌었던 김기남 삼성전자 고문은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DS부문장을 맡았다. 이후 김 고문은 202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및 종합기술원 회장으로 선임돼 2023년까지 재직했다.
김 회장 이전 DS부문장이었던 권오현 현 서울대 이사장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 정도 삼성전자 DS부문을 총괄했다. 권 이사장 역시 2017년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겠다며 자진 사퇴했다.
삼성전자는 이후 권 이사장을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 18년 만에 ‘회장‘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권 이사장을 예우했다.
전반적으로 삼성전자 DS부문장의 임기는 7→5→3년으로 짧아지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그만큼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작금의 반도체 시장은 특정 제품군만 따져선 안 되고 거시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빅테크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고객 예측’ 관점에서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신임 DS부문장인 전 부회장은 ‘반도체통’으로 이런 흐름에 걸맞은 인물로 꼽힌다.
원 포인트 인사의 배경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수장을 ‘원 포인트’ 인사로 교체한 배경에는 조직 안정은 물론 긴장감을 불어 넣으려는 의지가 읽힌다.
반도체 사업을 맡고 있는 DS부문은 긴 불황을 지나 올해 들어 본격적인 반등을 시작하고 있는데, 이번 인사로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 새 리더십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중 수장을 바꾸는 특단의 조치라는 점에서 삼성의 승부수로 통한다. 통상 삼성전자는 ‘신상필벌’과 ‘세대교체’를 근간으로 연말에 인사를 단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경영 환경에 따라 원 포인트 인사를 통해 시장에 적시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번 인사도 메모리 시장 전망이 불투명한 만큼, 연말까지 상황을 보기에는 늦는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은 지난달부터 임원 주 6일제 근무에 동참하는 등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또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도 최근 비용 절감을 포함한 경쟁력 강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그것도 핵심인 반도체 사업 수장을 교체한 것은 위기 경보를 한 단계 더 격상시키는 조치로 해석된다.
동시에 DS부문을 사장급에서 부회장급으로 격상시켜 조직에 힘을 실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특히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AI 반도체에 삼성전자의 명운이 달린 만큼 새 리더십으로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밝혔다.
아울러 “전 부회장이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킨 주역으로 그동안 축적된 풍부한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반도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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