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일본판 ‘알리바바’를 만들려고 한다.” 지난 2019년 11월 18일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재팬의 경영 통합 계약을 체결했을 당시 일본 현지에서 나온 기대감이었다. 현지 언론에서는 손정의 회장이 먼저 네이버에 손을 내밀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어 2021년 3월에는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지분을 보유한 합작사 A홀딩스를 설립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A홀딩스 초대 공동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았다.
당시 라인은 일본 내 이용자 수가 약 8000만 명에 달하고, 인터넷 검색 서비스인 야후재팬 이용자는 5000만 명이었다. 특정 한 나라에 기반해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의 판단이 경영 통합의 배경이었다.
2019년 네이버 이해진-소프뱅크 손정의 ‘AI 동맹’은 결국 예정된 서곡?
‘라인’ 경영권 넘기라는 日···AI 핵심 ‘데이터’ 통제권 둘러싸고 이권 다툼
일본 기업 참여 전 아시아 시장에서 성장했던 ‘라인’ 경영권 내줄 위기
국제통상 전문가 “한·일 투자협정 위반 따른 ISDS 제소 등 강력 행동해야”
▲ 일본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은 ‘라인’의 경영권을 빼앗기 위한 일본 정부의 속셈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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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라인을 일본에 출시해 최대 메신저로 키운 주역인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현 글로벌 투자 책임자)는 내수 기업 꼬리표를 떼고, 미국과 중국 기업에 맞설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가 누구보다 절실했다. 그리고 첫 해외 진출 성공 사례인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경영 통합을 통해 일본발(發) 거대 인터넷 기업 신화 쓰기에 도전했다.
두 회사 경영진은 당장 모바일 메신저와 포털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고 향후 미국, 중국 등 글로벌 빅테크의 AI(인공지능) 기술력에 견줄 수 있는 한·일 AI 플랫폼을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분명히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혈맹 관계는 끈끈한 듯 보였다. 그러나 손정의 회장은 뼛속부터 장사꾼이었을까. 최근 소프트뱅크는 일본 정부의 물밑 지원을 받으며 네이버로부터 라인의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라인’ 삼키려는 일본의 속내
경영 통합을 마친 2021년 이후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혈맹 관계에 균열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네이버 블로그에서 IPX(옛 라인프렌즈) 스티커 판매가 종료됐고 9월 네이버페이는 ‘라인페이’와의 연동을 종료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Z홀딩스와 라인·야후재팬이 합병하며 ‘라인야후’로 새 출발을 했다. 업계에서는 3년간 두 회사의 시너지 창출이 더디고 글로벌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경영 효율화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라인야후의 대표이사는 라인 출신 이데자와 다케시 사장이 맡았다.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중호 Z홀딩스 대표는 라인야후 CPO(최고상품책임자)로 선임, 유일한 라인야후의 한국인 이사회 멤버가 됐다.
하지만 라인야후 새 출발 직후 악재가 터졌다. 지난해 11월 한국 네이버 클라우드를 통해 제3자의 부정한 접근이 발생, 일본라인 이용자의 개인정보 약 44만 건이 유출됐다. 이후 일본 정부의 조사에서 추가 정보 유출이 드러나 피해 규모는 51만여 건으로 늘어났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 3월 라인야후가 시스템 업무를 위탁한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해 사이버 보안대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다면서 ‘네이버와의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에 나섰다. 이어 라인야후가 마련한 보안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며 4월 2차 행정지도에 나섰다.
▲ 야후 재팬과 라인의 통합 전 로고. 라인야후는 지난해 10월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만든 합작사 Z홀딩스의 자회사인 야후재팬과 라인이 합병해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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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탈 야욕’은 일본의 큰 그림?
55만 건의 보안 유출을 빌미로 일본 정부가 한국 사기업에 지분 매각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일본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은 ‘라인’의 경영권을 빼앗기 위한 일본 정부의 속셈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특히 세계적으로 AI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일본 국민 메신저인 ‘라인’을 자국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라인은 일본에 지진이 나면 막중한 역할을 할 만큼 전 국민이 이용하는 서비스다. 일본 IT 시스템 기술로는 라인과 같은 플랫폼을 만드는 게 역부족인 데다가, AI 기술력에서도 뒤처지고 있어 전 국민 데이터가 모여 있는 라인 플랫폼이 탐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라인 사태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건 라인야후의 결산 발표가 진행된 5월 8일이다. 이날 라인야후는 신중호 CPO 직위는 유지시키고 이사회 멤버에서는 제외했다. 라인의 기술 개발은 지속적으로 맡기면서 경영 의사결정 권한은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또 라인야후 CEO는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청했으며 네이버 위탁을 순차적으로 종료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다음날에는 소프트뱅크 CEO가 결산 발표회에서 “네이버와 자본관계 변화를 협상하고 있다”고 밝히고, “A홀딩스는 이미 소프트뱅크가 지배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분 구조는 50:50이지만 이미 이사회에서 소프트뱅크가 경영권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침묵하던 네이버는 5월 10일 “회사에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프트뱅크와 성실히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소프트뱅크에 A홀딩스 지분을 매각하는 수순을 밟겠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네이버가 자율적으로 결정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미온적인 방침만 내놨을 뿐이다.
이번 라인 사태는 예견 가능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일본 총무성의 이례적이고 무례한 행정지도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와 지분을 절반씩 갖는 동맹 자체가 자충수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통합법인에 50%씩 지분을 출자했을 당시 향후 경영권 행사 방식과 협상 방식 등에서 내부 마찰이나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동업의 의미라고 하지만, 해외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할 때는 통상 51:49의 지분 비율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경영 통합을 결정했을 때부터 이번 라인 사태를 염두에 둔 소프트뱅크의 큰 그림이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미 A홀딩스 이사회 구성도 소프트뱅크의 지배력이 높았다. 지난 2021년 경영 통합 당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A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지만, 이사회 의장은 공동대표인 미야우치켄 소프트뱅크 사장이 맡았다. 이사회 5명 가운데 3명이 소프트뱅크 측 인사로 꾸려졌다. 라인야후 이사회 멤버도 신중호 CPO가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일본계 IT기업 고위 관계자는 “손정의 회장은 뼛속부터 장사꾼이다.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와 계약을 할 때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대비했어야 한다. 애초에 라인의 가치가 포털 야후재팬보다 훨씬 큰데 소프트뱅크와 지분을 50%씩 나눠 가진 게 실수다”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한국의 벤처들은 기술만 있으면 장사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해외 기업과 경영통합 시 미국 기업들처럼 유능한 국제 변호사를 써서 계약조항을 꼼꼼히 살피고 최대주주 지분을 뺏기지 않을 조항 등 시나리오별로 독소 조항을 만들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2019년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만찬 겸 회동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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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시장 키웠더니···“제2 수출통제”
1억9600만 명. 네이버가 개발한 메신저 앱 ‘라인’의 전 세계 월 이용자 수(지난해 12월 말 기준)다. 일본 9600만 명, 태국 5500만 명, 대만 2200만 명, 인도네시아 600만 명 등 라인은 아시아 지역 대표 메신저 앱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메신저 앱은 현재 소프트뱅크와의 합작사인 라인야후로 통합되기 전부터 있던 서비스다. 네이버가 2011년 일본에 우선 출시한 후 전 세계 230개국에 출시하며 역량을 넓혀왔다.
네이버가 라인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해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와 손잡은 건 지난 2019년이다. 당시 네이버 일본 법인이었던 NHN재팬이 메신저 앱을 출시한 지 8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네이버는 전 세계 각국에 라인 앱을 비롯해 여러 서비스를 출시하며 이용자 수를 늘려왔다. 대표적으로 모바일 간편 결제 서비스 ‘라인페이’는 전 세계 6400만 명(지난해 10월 기준)이 이용한다. 인도네시아·대만·태국 등에 운영 중인 금융 서비스 ‘라인뱅크’는 이들 세 나라에서만 약 84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이렇게 아시아 시장 지배력을 키워온 라인은 소프트뱅크와 힘을 합쳐 현재 자회사 119개(지난해 말)를 거느린 빅테크로 성장했다.
그 와중에 라인은 일본에서 개인정보 51만여 건이 유출되는 상황을 겪었다. 개인정보를 위탁했던 네이버 클라우드 서버가 해킹된 탓이다. 통상적으로 개인정보 해킹이 있으면 정부는 해당 기업에 책임을 묻고 과징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요구했던 사항은 자본관계 정리였다. 소프트뱅크가 확실한 경영권을 쥐라는 얘기다.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을 소프트뱅크에 넘기라는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요소다.
이 가운데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에 라인야후 모기업 A홀딩스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네이버 직원들뿐만 아니라 업계, 학계, 정계 곳곳에서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칫 10년간 공들여 온 아시아 시장을 일본 정부 압박 속에 포기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건 해결해야 할 숙제지만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이 라인 앱 사용자 기반의 데이터 확보에 탐을 낸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을 지냈던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일본이 경제안보를 빌미로 라인이 10년 넘게 공들여왔던 플랫폼 사업을 날로 먹겠다는 속내가 있는 것 같다”며 일본 정부·기업의 태도에 대해 “‘라인 강탈’이다. 제2의 수출 통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총무성이 네이버와의 자본 관계 재검토 요청을 지시한 지 약 한 달 만에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유감을 표명했다.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5월 10일 오후 “일본 정부는 행정지도에 지분을 매각하라는 표현이 없다고 확인했지만, 우리 기업에 지분매각 압박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와 우리 기업의 의사에 반하는 부당한 조치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강력히 대응해 나가겠다”며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사항이 있을 경우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와도 공동 대응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 국제 통상 문제로 짚지 않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네이버, ISDS 등 강력 대응 필요”
국제 통상 전문가들은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ISDS) 등 강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ISDS란 투자유치국의 투자자 보호 의무에 위반이 발생한 경우 발생한 손해에 대해 투자자가 직접 국가를 상대로 국제 중재를 통해 배상받는 제도다. 네이버가 일본 정부의 부당한 압박에 지분 매각을 검토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한국 정부와 협조해 국제 중재에 나서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가 국제통상법 ‘비례성 원칙’에 위반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달성하려는 행정 목적과 행정 조치 사이에 비례성이 없으면 해당 정부가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뜻이다.
송 변호사는 또한 한·일투자협정 10조 ‘공정 공평 대우’ 규정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경영권을 넘기라는 압박 행위 자체는 중대한 국제통상법 위반이다. 판례도 있다”며 “네이버로서는 그 지분을 넘기는 것이 정말로 네이버가 원하는 해결이라면 그렇게 하는 거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제 중재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양희 교수도 “ISDS로 하면 거의 100% 승산이 있다. 일본 정부는 안보라는 핑계로 예외라고 말하겠지만 되든 안 되든 우리가 이 카드를 가지고 (일본 정부와 기업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ISDS는 네이버가 직접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투자 협정 주체인 만큼 정부가 네이버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네이버는 지금 일본에서 사업을 완전히 접고 나올 게 아니라면 일본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도 “한국 정부가 기업 대 기업으로만 맡기지 말고 일본에 투자해서 일본 시장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 한국 경제계에 대한 보호 또는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매각 수순이라면 유리한 협상을
네이버가 지난 13년간 글로벌 사용자 2억 명에 달하는 서비스로 키워낸 ‘라인’의 경영권을 일본 기업에 내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라인야후에서 네이버의 지분을 인수하라는 신호가 나오면서 일본 정부의 부당한 압력 행사라는 국내 여론의 지적이 쏟아졌다.
이같은 비판 여론에 일본 정부는 “행정지도에 네이버 지분을 매각하라는 직접적인 내용은 없다”며 모호한 해명을 내놨지만,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를 빌미로 소프트뱅크는 네이버에 라인야후 지분 매각을 요구하고 있다. 라인야후는 이사진 전원을 일본인으로 교체했다.
만약 네이버의 라인 지분 매각이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면, 앞으로 네이버가 얼마나 유리하게 소프트뱅크와 매각 협상을 타결시키는지가 관건이다.
메신저 라인의 일본 사업 지배력을 넘기는 대신 라인이 막대한 이용자를 보유한 동남아, 대만 등 아시아 사업권을 가져오는 시나리오가 이상적이지만, 당초 소프트뱅크와 맺었던 경영 통합 계획서에 어떤 조항이 담겼는지에 따라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네이버의 기술력과 노하우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글로벌 성공 사례 ‘라인’ 플랫폼의 경영권과 위탁 관계 등 기술 협력을 소프트뱅크에 순순히 넘겨주게 됐다는 점에서 네이버뿐 아니라 국익 측면에서도 막대한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네이버는 소프트뱅크와 지분 협상을 진행 중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일본 총무성 행정지도) 보고서 제출 이행시기(7월 1일)까지 소프트뱅크 측과 (지분 조정 관련)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했다”면서 “소프트뱅크와의 지분 조정 협의가 계속 이어지는 만큼 그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고 전했다.